17사단 종교시설 무단폐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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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2년 12월에 대한민국 육군 제17보병사단에서 벌어진 초유의 종교탄압 사태. 개신교 광신도인 사단직할 전차대대장이 개신교 예배당을 제외한 부대 내 다른 종교시설을 폐쇄하고 종교 상징물을 훼손하는 등 개인의 신앙을 부하 장병들에게 강요한 사실이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천주교측의 대응이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인 반면 불교계는 맹렬하게 대응했기 때문인지 일반적으로는 17사단 훼불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고 언론에서도 이 명칭을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천주교 역시 같이 피해를 입었다. 어찌 되었건 개인의 종교적 광신성 때문에 군기를 어지럽힌, 용납될수 없는 추태이자 만행.

2 사건의 전모

당시 전차대대장 조병석 중령(당시 42세)은 순복음교회 신자로서 사단 군종 신부군종 승려의 허가 없이 그들이 미치지 않은 이상 허가할 리가 없지 창고를 넓힌다는 명목으로 천주교 공소와 불교 법당 등 타종교 시설[1]을 멋대로 폐쇄시켜 버렸다. 심지어 거기 모셔져 있던 성모상과 불상을 창고에 처박아 버리거나 장병들을 시켜 마대자루에 담아 야산에 폐기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리고 석가탄신일에 달아놓은 연등을 "목사님이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철거하기도 했으며 장병들에게 개신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고 거부하면 전출시키길 서슴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태를 인지한 당시 사단장 서경석[2] 소장이 '종교시설을 즉시 원상복구하고 부대 내 자유로운 종교활동을 보장하라' 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전력(戰力)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부대원 전체가 지휘관이 믿는 한 신앙으로 뭉치는 것이 주효하다' 라는 개드립을 내세워 이를 묵살하는 하극상까지 벌였다는 것. 심지어 과거 조 중령이 부하 장병 16명을 개신교도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전출시켜버리는 인사파행까지 저지른 사례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3 사회적 반향

이 사건은 1993년 4월이 되어서야 사회에 알려졌는데 당시 개신교를 제외한 종교계의 큰 반발을 불러왔고 특히 불교계는 원로회의에서 총무원장에게 대응을 촉구하길 시작으로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국방부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등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엔 국방부가 법당 폐쇄와 불상 파손을 각각 불교 탄압이 아닌 군 전투지휘검열의 결과 비축물자관리창고가 비좁다고 판단되서 그런 것과 우연한 실수라고 변명했다가[3]고의적인 파괴 행각이었음이 들통나면서 불자들의 분노를 부채질한 것도 컸다.

가톨릭계는 비교적 조용하게 대응하긴 했지만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건 마찬가지. 결국 사단장은 1993년 4월 3일부로 조 중령을 대대장직에서 해임 후 구속하여 징계했고 불교계 인사를 직접 찾아 공식 사과했고 이어서 권영해 당시 국방부 장관까지 사과 및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개신교 장로이기도 한 김영삼 당시 대통령도 불교계 인사를 청와대로 초빙, 유감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사단장인 서경석 장군도 보직해임했다.

4 사건의 마무리

1993년 4월 14일 조 중령은 직권남용 및 재물손괴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그러나 '개인 사욕이 아닌 종교적 편견에 따른 것' 이라는 이유로 기소는 유예되었고 대신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본인은 구속기간 중에 전역지원서를 제출하여 결국 징계 후 전역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은 없었지만 지휘관으로서는 물론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기본 자질도 못 갖춘 광신도를 뒤늦게나마 군문에서 쫓아내게 되어 천만 다행.

참고로, 사고 친 공무원이 자진사퇴나 권고사직하는 건 드물지 않은 일. 징계가 확정되기 전에 사표를 내면 퇴직자에 대한 징계수위가 낮아진다고 한다. 정확히는 징계의 최고 등급인 파면으로 퇴직되는 경우 퇴직급여와 퇴직수당이 50%로 삭감되지만 과정이야 어쨌건 그냥 일반퇴직으로 하면 퇴직급여와 수당은 챙겨받을 수 있기 때문. 곧바로 징계가 이뤄지는 게 아니라 우선 직위해제→징계위원회 회부→의결의 절차가 이뤄져 처신을 생각할 충분히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징계가 논의되는 중에 본인이 먼저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건 결국 자신도 자신이 한 일이 파면감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말이 된다.
예전에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도 자진사퇴등으로 징계를 피할수 있었지만 지금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면 사직서를 제출한다 하더라도 보류되며 징계위원회 징계 후 결과에 따라서 달라진다. 즉 징계위원회 회부 후 사직서를 제출했더라도 파면결정이 나오면 자진사퇴로 처리되는것이 아니라 파면으로 처리됨.

한편 사단장 서경석 소장은 이 사건의 여파로 보직해임되었으나, 후에 중장까지 진급하여 전역했다. 한국군에서 보직해임 전력에도 불구하고 중장까지 진급한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사건 당시 사단장 본인이 해당 전차대대장에게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음에도 명령 자체가 무시되었다는 점도 감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똥밟았다고 처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훼손된 종교시설들은 다행히 모두 원상복구되어 이듬해인 1994년에 기념행사를 했다.

이하는 당시 사건에 관한 언론 보도자료들.

가톨릭 신문 1993년 4월 11일 제 1850호

불교신문 1994년 2월 20일
  1. 원래 창고로 쓰이던 공간을 활용해 만든 시설이었다.
  2. 월남전 참전경력과 '전투감각' 등의 저서로 유명한 고려대학교 객원교수, 주 동티모르 대한민국 대사 서경석(徐慶錫) 예비역 중장(학기 첫 강의 때마다 육군 정복 차림으로 출강하는 그 분 맞다.) 동명이인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국방일보 기사를 보면 동일인이다.
  3. 실수로 불상을 부쉈던 것이라 변명했지만 뭐 여기에서 읽으셨듯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