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의 조별 라운드의 진행 상황 중, 3조와 4조에 대해 정리하는 페이지.
목차
1 3조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1 | 스웨덴 | 2 | 1 | 1 | 0 | 5 | 4 | +1 | 3 |
2 | 이탈리아 | 2 | 1 | 0 | 1 | 4 | 3 | +1 | 2 |
3 | 파라과이 | 2 | 0 | 1 | 1 | 2 | 4 | -2 | 1 |
1.1 1경기 스웨덴 3 vs 2 이탈리아
경기장 | 에스타디우 두 파카엠부 상파울루 - 브라질 | |
경기일 | 1950년 6월 25일 15:00 (1950년 6월 26일 03:00) | |
국 가 | 스웨덴 | 이탈리아 |
득 점 | 3 | 2 |
득점자 | 한스 예프손 (25') 수네 안데르손 (34') 한스 예프손 (69') | 리카르도 카라펠레세 (7') 에르메스 무치넬리 (78') |
라인업 [1] | 이름 | 비고 | 라인업 | 이름 | 비고 |
선발 | 카예 스벤손 | GK | 선발 | 루치디오 센티멘티 | GK |
레나트 사무엘손 | 아틸리오 지오반니니 | ||||
수네 안데르손 | 파일:Attachment/Goal.jpg | 제피로 푸리아시 | |||
예리크 닐슨 | 주장 | 카를로 안노바치 | |||
잉바르 고르드 | 아우구스토 말리 | ||||
크누트 노르달[2] | 카를로 파롤라 | ||||
레나트 스코일룬 | 리카르도 카라펠레세 | 주장 파일:Attachment/Goal.jpg | |||
스텔란 닐슨 | 알도 캄파텔리 | ||||
스티그 순드크비스트 | 에르메스 무치넬리 | 파일:Attachment/Goal.jpg | |||
칼-예리크 팔미에르 | 지노 카펠로 | ||||
한스 예프손 | 파일:Attachment/Goal.jpg 파일:Attachment/Goal.jpg |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 | |||
교체 | 토르스텐 린드베리 | GK | 교체 | 주세페 모로 | GK |
군나르 요한손 Ⅱ | 주세페 카사리 | GK | |||
아네 몬손 | 오스발도 파토리 | ||||
울레 울룬드 | 이바노 블라손 | ||||
브로르 멜베리[3] | 레안드로 레몬디니 | ||||
이에곤 욘손 | 오메로 토니온 | ||||
잉바르 리델 | 지아코모 마리 | ||||
베니토 로렌지 | |||||
아메데오 아마데이 | |||||
에밀리오 카프릴레 | |||||
에지스토 판돌피니 |
3조의 첫 경기는 상파울루의 파카엠부 경기장에서 벌어졌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는 수페르가의 비극을 겪어 전력이 많이 약화된 채로 대회에 출전하였고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가 이 비극을 딛고 과연 조 1위로 결승 리그에 진출할 수 있을지도 큰 관심사였다.
당시 이탈리아의 스쿼드에는 수페르가의 비극을 겪지 않아 살아남은 리카르도 카라펠레세[4], 유벤투스의 어린 에이스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 등의 선수들이 참가하였다.
카라펠레세는 경기가 시작된지 7분 만에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집념을 가지고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스웨덴의 예프손이 이탈리아의 왼쪽 골문을 뚫는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었고 전반 33분에는 문전 상황에서 페널티 박스 밖으로 흐른 공을 수네 안데르손이 침착하게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하여 스웨덴이 결국 경기를 뒤집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계속 골문을 두드렸지만 스웨덴의 골문을 열지 못했고 오히려 후반 24분에는 예프손에게 한 골을 더 얻어맞고 패색이 짙어졌다. 후반 30분, 라이트 윙 무치넬리가 한 골을 추가하였고 이탈리아는 계속 공격을 퍼부었지만 스웨덴의 골키퍼 카예 스벤손의 방어를 뚫지 못하였고 경기는 결국 스웨덴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1.2 2경기 스웨덴 2 vs 2 파라과이
경기장 | 에스타디우 두리발 지 브리투 쿠리치바 - 브라질 | |
경기일 | 1950년 6월 29일 15:30 (1950년 6월 30일 03:30) | |
국 가 | 스웨덴 | 파라과이 |
득 점 | 2 | 2 |
득점자 | 스티그 순드크비스트 (17') 칼-예리크 팔미에르 (26') | 세사르 로페스 프레테스 (35') 아틸리오 로페스 (74') |
라인업 | 이름 | 비고 | 라인업 | 이름 | 비고 |
선발 | 카예 스벤손 | GK | 선발 | 마르셀리노 바르가스 | GK |
레나트 사무엘손 | 마누엘 가빌란 | ||||
수네 안데르손 | 알베르토 곤살레스 | ||||
예리크 닐슨 | 주장 | 카시아노 세스페데스 | |||
잉바르 고르드 | 비토리아노 레기사몬 | ||||
크누트 노르달 | 카스트로 칸테로 | ||||
레나트 스코일룬 | 다리오 하라 사기에르 | ||||
스티그 순드크비스트 | 파일:Attachment/Goal.jpg | 레온히노 운사인 | |||
이에곤 욘손 | 세사르 로페스 프레테스 | 주장 파일:Attachment/Goal.jpg | |||
칼-예리크 팔미에르 | 파일:Attachment/Goal.jpg | 아틸리오 로페스 | 파일:Attachment/Goal.jpg | ||
한스 예프손 | 엔리케 아발로스 | ||||
교체 | 토르스텐 린드베리 | GK | 교체 | 파블로 센투리온 | GK |
군나르 요한손 Ⅱ | 안토니오 카브레라 | ||||
아네 몬손 | 엘리오로 파레데스 | ||||
울레 울룬드 | 멜라니오 바에스 | ||||
브로르 멜베리 | 아르만도 곤살레스 | ||||
스텔란 닐슨 | 로렌소 칼롱가 | ||||
잉바르 리델 | 마르샬 아발로스 | ||||
앙헬 베르니 | |||||
일라리온 오소리오 | |||||
프란시스코 소사 | |||||
후안 레온 카녜테 |
만약 이 경기에서 스웨덴이 승리를 거두면 그대로 스웨덴이 결승 리그에 가는 상황이었다. 스웨덴은 이미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따냈기 때문에 한결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
스웨덴은 전반 17분, 순드크비스트가 골키퍼와의 1:1 상황에서 골을 넣으며 선제골을 넣었고 26분에는 팔미에르가 추가골을 넣어 승리를 거의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파라과이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서 전반 35분에 파라과이의 아틸리오 로페스가 스웨덴 수비수들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그리고 후반 29분 파라과이의 동점골이 터져서 양 팀이 사이좋게 무승부로 승부가 결정되었다.
1.3 3경기 이탈리아 2 vs 0 파라과이
경기장 | 에스타디우 두 파카엠부 상파울루 - 브라질 | |
경기일 | 1950년 7월 2일 15:00 (1950년 7월 3일 03:00) | |
국 가 | 이탈리아 | 파라과이 |
득 점 | 2 | 0 |
득점자 | 리카르도 카라펠레세 (12') 에지스토 판돌피니 (63') |
라인업 | 이름 | 비고 | 라인업 | 이름 | 비고 |
선발 | 주세페 모로 | GK | 선발 | 마르셀리노 바르가스 | GK |
오스발도 파토리 | 마누엘 가빌란 | ||||
이바노 블라손 | 알베르토 곤살레스 | ||||
제피로 푸리아시 | 카시아노 세스페데스 | ||||
레안드로 레몬디니 | 비토리아노 레기사몬 | ||||
지아코모 마리 | 카스트로 칸테로 | ||||
리카르도 카라펠레세 | 파일:Attachment/Goal.jpg | 다리오 하라 사기에르 | |||
아메데오 아마데이 | 레온히노 운사인 | ||||
에르메스 무치넬리 | 세사르 로페스 프레테스 | 주장 | |||
에지스토 판돌피니 | 파일:Attachment/Goal.jpg | 아틸리오 로페스 | |||
지노 카펠로 | 엔리케 아발로스 | ||||
교체 | 루치디오 센티멘티 | GK | 교체 | 파블로 센투리온 | GK |
주세페 카사리 | GK | 안토니오 카브레라 | |||
아틸리오 지오반니니 | 엘리오로 파레데스 | ||||
카를로 안노바치 | 멜라니오 바에스 | ||||
아우구스토 말리 | 아르만도 곤살레스 | ||||
오메로 토니온 | 로렌소 칼롱가 | ||||
카를로 파롤라 | 마르샬 아발로스 | ||||
베니토 로렌지 | 앙헬 베르니 | ||||
알도 캄파텔리 | 일라리온 오소리오 | ||||
에밀리오 카프릴레 | 프란시스코 소사 | ||||
지암피에로 보니페르티 | 후안 레온 카녜테 |
3조의 마지막 경기는 이탈리아와 파라과이의 일전이었다. 이탈리아는 전 경기에서 이미 스웨덴이 무승부를 거두었기 때문에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디펜딩 챔피언으로서의 자존심과 함께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희생된 동료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경기력을 펼쳐보이고 싶은 결의가 있었고 파라과이는 스웨덴을 제치고 결승 리그 진출을 위해서는 무조건 승리를 거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5]
이탈리아는 7명의 멤버를 바꾼 채로 이 경기에 임했고 그 멤버들은 파라과이를 몰아붙였다. 그 결과 전반 12분, 주장 카라펠레세가 선제골을 터뜨렸다. 아마데이의 센터링을 받아 무릎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선제골 이후에 양 팀은 계속된 공방전을 펼쳤지만 큰 소득이 없이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 17분, 이탈리아의 판돌피니가 카라펠레세의 크로스를 받아 쐐기골을 넣었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이탈리아는 파라과이를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지만 그들의 능력을 브라질에서는 더 이상 보여줄 수 없었다.
2 4조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1 | 우루과이 | 1 | 1 | 0 | 0 | 8 | 0 | +8 | 2 |
2 | 볼리비아 | 1 | 0 | 0 | 1 | 0 | 8 | -8 | 0 |
2.1 1경기 우루과이 8 vs 0 볼리비아
경기장 | 에스타디우 인디펜덴시아 벨루오리존치 - 브라질 | |
경기일 | 1950년 7월 2일 18:00 (1950년 7월 3일 06:00) | |
국 가 | 우루과이 | 볼리비아 |
득 점 | 8 | 0 |
득점자 | 오스카 미게스 (14') 에르네스토 비달 (18') 후안 스키아피노 (23') 오스카 미게스 (40') 오스카 미게스 (51') 후안 스키아피노 (54') 훌리오 페레스 (83') 알시데스 기지아 (87') |
라인업 | 이름 | 비고 | 라인업 | 이름 | 비고 |
선발 | 로케 마스폴리 | GK | 선발 | 에두아르도 구티에레스 | GK |
마티아스 곤살레스 | 안토니오 그레코 | ||||
에우세비오 테헤라 | 알베르토 아차 | ||||
후안 카를로스 곤살레스 | 호세 부스타만테-나바 | 주장 | |||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 레오나르도 페렐 | ||||
옵둘리오 바렐라 | 주장 | 안토니오 발렌시아 | |||
알시데스 기지아 | 파일:Attachment/Goal.jpg | 로베르토 카파렐리 | |||
에르네스토 비달 | 파일:Attachment/Goal.jpg | 베니그노 구티에레스 | |||
오스카 미게스 | 파일:Attachment/Goal.jpg 파일:Attachment/Goal.jpg 파일:Attachment/Goal.jpg | 벤하민 말도나도 | |||
후안 스키아피노 | 파일:Attachment/Goal.jpg 파일:Attachment/Goal.jpg | 빅토르 알가라냐스 | |||
훌리오 페레스 | 파일:Attachment/Goal.jpg | 빅토르 우가르테 | |||
교체 | 아니발 파스 | GK | 교체 | 비센테 아라야 | GK |
슈베르트 감베타 | 두베르티 아라오스 | ||||
엑토르 빌체스 | 레네 카브레라 | ||||
윌리엄 마르티네스 | 엑토르 사베드라 | ||||
로돌포 피니 | 마리오 메나 | ||||
와싱톤 오투뇨 | 베테딕토 고도이 | ||||
루벤 모란 | 빅토르 브라운 | ||||
루이스 리호 | 후안 게라 | ||||
카를로스 로메로 | |||||
후안 부르게뇨 | |||||
훌리오 세자르 브리토스 |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단판 승부로 결정된 조별 예선 경기이다.
원래 이 조에 소속되어 있던 프랑스가 기권하면서 팀 수가 더욱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누가봐도 우루과이가 올라갈 것이 분명해보였고 우루과이는 약체 볼리비아를 상대로 8:0이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로 압살해버렸다.
이 경기에서 오스카 미게스는 초대 월드컵에서의 선배 페드로 세아와 더불어 우루과이 선수로는 두 번째로 월드컵 무대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였다.
3 4강 진출팀
3조 1위 : 스웨덴
4조 1위 : 우루과이- ↑ 원래 이 대회부터 등번호가 있었지만 이 때의 등번호는 선수에 매겨진 것이 아니라 포지션에 따라 매겨졌고, 현실적으로 모든 경기에 포메이션이 남아있지 않아 등번호의 기재는 생략했다
- ↑ AC 밀란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군나르 노르달의 형
- ↑ 117경기로 스웨덴 대표팀 수비수 중 역대 최다 A매치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는 올로프 멜베리가 그의 종손자이다
- ↑ 발렌티노 마촐라의 사망으로 그가 토리노 FC의 주장 완장을 이어받았다
- ↑ 특히 당시 이탈리아의 감독은 루치아노 로보였는데 토리노 FC의 회장과 국가대표팀 감독을 겸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줄 리메 컵을 사고 희생자들의 영전에 바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