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

역대 아시안게임 야구 경기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야구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2002 부산 아시안 게임/야구
40px 역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4대 메이저 대회(올림픽, 아시안 게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프리미어 12)만 기술
1982 | 1988 | 1994 | 1996 | 1998 | 2000 | 2002 | 2003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3 | 2014 | 2015 | 2017 |

역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김충남호주성노호김응룡호
htm_200611301102590101000001010200-001.jpg
대한민국 야구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대표팀

1 개요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의 야구 종목에 대해 서술하는 페이지이다. 이 대회부터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허용되었다. 그래서 박찬호같은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이 사항이라면 나무 배트가 아니라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한 점이다.

2 상세

우승은 대한민국, 준우승은 일본. 3위는 대만. 한국팀은 메이저리거인 박찬호, 서재응을 비롯한 프로 선수들과 대학 최고의 유망주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다만, 이때 선발 기준은 병역 미필자들만 선발이었으므로, 당시 기준으로 한국이 구성할 수 있는 최강팀은 아니었다.

경기 순서는 대만 - 일본 - 대만 - 일본 - 중국(4강전) - 일본(결승전)이었다. WBC도 아니고 일본과 3번 대결;;;

예선에선 대만에 16-5로 콜드게임 승을 거두었으며, 4강에서 중국과 맞붙었다. 여기서 중간에 나온 김병현8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었다.

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은 숙적 일본을 시원하게 13 대 1의 콜드 게임승으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09년 열린 2회 WBC에서 일본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우승을 함에 따라 참가한 모든 선수들이 병역 특례를 받게 되었다. 특히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의 추신수처럼 박찬호의 병역문제 여부가 화제가 되었고, 박찬호는 무난히(?) 금메달을 획득해 이후로도 성공적인 메이저 리그 커리어를 쌓아 나가게 된다. 결승전 선발, 승리 투수였으니 상단 이미지의 박찬호를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 여기를 들어가보면 당시의 경기 내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여담으로, 이 때 드림팀의 멤버 가운데 18년이 지난 2016년까지도 꽤 많은 선수들이 현역으로 뛰고있다! 병역 미필자들만 선발했기 때문에 팀 평균 연령이 20대 초중반으로 요즘의 국가대표팀에 비해 굉장히 낮았기 때문이다.[1] 2016 시즌 현재 현역인 선수는 6명으로, 최후의 6인은 김병현(KIA), 조인성(한화), 홍성흔(두산), 이병규(LG), 박한이(삼성), 임창용(KIA)이다. 이 중에서 당시에도 KBO 리그에서 뛰고있던 선수는 임창용, 조인성, 이병규 뿐이고, 다른 선수들은 대학에서 뛰던 선수들이었다. 홍성흔은 당시 OB 베어스에 지명을 받아놓았던 상태였다.

3 참가 선수

  1. 당시 72년생이었던 김원형, 73년생 빵횽 등이 이 대표팀에서 노장이었다. 김원형은 무려 프로 8년차... 물론 그 때까지도 미필이었기 때문에 모두 병역특례를 받았다.
  2. 취소선이 그어진 것은 비리 문제로 인하대 감독 자리에서 불명예 퇴진했기 때문이다. 2008년 히어로즈의 프런트로 들어왔으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실 서재응, 장영균, 황우구의 선발은 그의 입김이 상당 부분 들어갔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3. 2004년 병역 사건 때 방콕 아시안게임 전에 병역 면탈을 시도했던 사실이 드러나 병역 특례가 박탈되고 공익요원으로 입대. 이것으로 선수 생활이 사실상 끝나고 말았다.
  4. 원래는 강동우가 뽑혔으나, 준플레이오프 때 플라이 타구를 잡다가 펜스에 부딪히며 입은 중상으로 공익 입대 예정이던 심재학이 대신 참가. 강동우는 이 부상 후유증 때문에 결국 군 면제를 받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