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힙합 MC
예명 | Kebee a.k.a Eluka |
본명 | 배이삭 |
출생 | 1983년 5월 29일, 서울특별시 |
학력 | 중앙대학교 심리학 |
소속그룹 | 이루펀트 |
소속크루 | 스피킹 트럼펫, 불한당 |
소속사 | 브랜뉴 뮤직 |
링크 | 트위터, 페이스북, 미니홈피 |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영원히 소년일 남자
감성 힙합의 거목이자 영원한 소울컴퍼니의 수장
더콰이엇한테 구라치고 오락실에서 삥뜯는 남자[1]
1.1 소개 및 경력
이승철 닮았다
대한민국의 힙합 레이블 소울컴퍼니의 전 CEO. 2011년에 물러났으며, 지금은 소울컴퍼니도 해체된 상태. 현재는 브랜뉴 뮤직 소속.
별명이자 현재는 랩퍼로써의 예명이된 '키비'는 본인의 배틀넷아이디[2]였는데 얼떨결에 힙합 닉네임으로 썼다고 한다. 휴지에 그려진 캐릭터 이름이라는 소문도 있다. 어쨌거나 원래 아무 뜻없이 지었다가 나중에 키빌라인(Keep bee line)이라고, 최단 거리를 유지하다 라는 뜻으로 붙였다. 근데 이마저도 문법에 어긋난다고 해서 '키작은 나무에 비가 내리고'라는 뜻으로 바꾼다.
2000년 음악 창작 활동을 시작, 2001년 청소년 문화 센터인 하자센터에서 만들어진 Haja 0st Hiphop Project Album에 '시작의 시작'이라는 곡으로 데뷔하였다. 또 그해 7월, '미운 오리의 새끼'[3]라는 곡으로 KBS에서 열린 "힙합대격돌 와우"라는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 즈음에 개인 사이트를 개설하고 자신이 집에서 제작한 노래를 업로드하여, 소수의 매니아들 사이에서 반향을 얻기 시작했다. "Infinite Railroad"라는 팀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파일:Attachment/키비/키비초창기.jpg
UMC는 이 시절 키비를 "옷은 정말 못 입었지만, 눈빛은 그 누구보다 또렷했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정말 못 입고 있던것 처럼 보인다 옆은 더콰이엇. 교복인가
1.2 데뷔 및 음악적 활보
2003년에는 신의의지에서 만들어진 앨범 People & Places vol.1에 "소년을 위로해줘", "두번째 일기", "풋사랑 pt.2" 세 곡으로 참여하였는데, "소년을 위로해줘"는 버벌진트와의 콜라보와 10대 소년들을 공감가게 하는 가사로 화제를 모았고 이때부터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소울 컴퍼니의 창단 멤버이자 CEO가 되어, 아티스트로써 그리고 사업가로써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와같은 개인적인 활동 말고도 이루펀트, 비 콰이엇, 가관같은 프로젝트팀 활동을 하기도 했다.
키비가 씬에 나타났을 때 여러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냈음이 증명하듯 어린 나이임에도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남못지 않은 스킬, 플로우, 라임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힙합씬에 지금도 그렇지만 지나고 나니 더욱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의 세계관과 날카로운 감성이었다. 이전까지 힙합 가사는 힙합 내부의 이야기를 하거나, 윤희중 같은 사람들이 공중파에서 아이돌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반항아 기믹이나, 김진표 같은 사람들처럼 기성 가요와 별 차이 없는 이야기, 혹은 드렁큰타이거나 테디 같은 교포들처럼 영어 반 한국말 반으로 흔히 요즘 하는 swag을 현란한 랩으로 읊거나, 갱스터랩을 위시한 사회비판을 한국식으로 해석해 보려고 하곤 했다. 다이나믹 듀오가 이따금 방송 나와서., CB mass 시절 도대체 뭘 비판하려고 하는지도 모르는데 비판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모호하거나,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이게 또 세련되지 못하게 의도가 뻔하고 노랫말이 얄팍해서 제대로 다가오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다.
키비를 위시한 수도권의 젊고 어린 랩퍼들이 소울컴퍼니로 나타났을 때 그들은 전에 없었던 방식으로 힙합을 노래하고 있었다.[4] 기존 랩퍼들이 겨우 기존 가요의 가사와 20대가 일반적으로 공감하는 지점으로 다가갔을 때 소울컴퍼니는 수도권의 청소년들이 흔히 겪고, 생각할 법한 얘기를 가사로 써냈다. 특히 키비가 소울 컴퍼니와 이 흐름 속에서 필두가 된 것은 현실을 관찰하고 잘라내 다시 풀어내는 키비의 감성이 예리했고 노랫말도 섬세하게 뽑아냈기 때문이다.[5] 김디지의 증언처럼 이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바람이고 하나의 방향이었다. 10년 전 듀스가 힙합을 통해 우울하거나 조용한 세계에서 탈피해 남자답고 진취적인 세계관을 노래한 것처럼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줄 새로운 이현도들이 10년만에 나왔다고 할 수 있으며,쓰고 있지만 좀 지나치게 빠는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이와 같은 시도는 곡의 선택폭에도 엄청난 자유도를 가져다 줬다. 힙합하면 떠올리게 되는 드럼이 낮게 둥둥거리는 곡과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아닌, 서정적인 곡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위와 같은 이유 덕분인지 더 콰이엇과 화나와 함께 소울컴퍼니에서 여중고생들에게 인기많은 MC Best 3에 늘 꼽히곤 했다.
안 그래보이지만 프리스타일을 잘한다고 한다.[6] 프리스타일의 제왕 Huckleberry P가 한국힙합에서 다섯손가락에 든다고 말했다.
사각턱이다. 그래서 까일때는 사각턱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 버벌진트의 지진아와 비견되는 단어. 본인도 그걸 아는지 사진찍을때 턱이 잘 안보이게 찍는다. 3집때 힙플에서 인터뷰에선 이런 사진도 찍었다.#
3집은 자켓만 멋있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기대에 못미치는 앨범이라는 평이 있었지만[7][8], 1, 2집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3집은 최근들어 조금씩 재조명 되고있다. 감성랩을 좋아한다면 키비의 앨범은 필청하는 것이 좋다.
3집 발매 이후 이노베이터에게 디스당했지만 본인은 전혀 반응을 안해서 이노베이터가 키비의 3집 발매 유명세를 타 떠보려는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라며 의심 받았다. 아무튼 이노베이터는 이 일로 힙합씬에서 매장당했다. 이 디스곡에 나비효과로 유명한 에쎈티가 일러스트를 그려줬다. 안그래도 까이는 사람이 이런데 참여한거 보면 정말 생각이 없는거 같다.
키비의 가장 유명한 이슈는 K의 정체. 랍티미스트 2집 수록곡 'Ghostwriter'와 키비 3집 수록곡 '그림자'에서, 그의 지인이었던 K가 그에게 가사를 써 달라는 요청을 했고 결국 고심 끝에 써주긴 했는데 나중에 K가 방송에서 자신이 쓴 가사를 뱉으면서 '힙합의 전도사'로 추앙받는 걸 보고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K는 그게 이슈가 된 이후 고뇌에 빠지다 키비에게 다시 한 번 써달라고 하고 키비는 수락하면서 이 이야기를 곡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이 이야기 때문에 힙합 리스너들 사이에서는 K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해프닝이 생겼다. 나중에 키비가 한 공연에서, 이 내용은 픽션이라 말하면서 마무리를 지었다. 장난치세요, 키비 씨?[9]
타블로와 꽤 친한 사이인듯, 에픽하이 5집의 "연필깎이"라는 곡과 "8 by 8 part 2", "Still Life"에 피처링으로 참여했으며, 타블로도 키비 3집에서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타블로의 결혼식에도 하객으로 참여했다. 4월 12일 신동엽, 김혜진의 달콤한 밤에 타블로의 지인으로 출연해서 최초로 공중파 방송에 나오나 했으나 방송 PD가 그 분량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통편집 당했다. 안습. 둘의 공통점으로는 가사를 정말 잘쓰고 소년같은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듯.
마이노스와의 프로젝트 팀이었던 이루펀트를 재결성. 2집 "Man On The Earth"를 발매. 타이틀곡 "키덜트"는 비스트의 윤두준이 피처링했으며,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한 나는 래퍼다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됐다. 특히 이 앨범 수록곡인 She is not following you는 트위터를 이용한 에피소드를 담아냈으며, 비스트의 용준형은 물론 MC 스나이퍼까지 이 곡을 추천했다.[10] 그러나 이루펀트의 1집 Eluphant Bakery 때의 감성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겐 아쉬운 앨범이다.
2011년 11월 18일, 신생 레이블 "스탠다트"의 세 번째 멤버임이 발표됐다.[11]
2013년 8월 4일부로 공익근무요원으로써 군복무를 마치고 소집해제 되었다.이제부터 부지런히 작업하여 씬에 복귀하겠다고 하며 SNS로 다른 MC들의 소집해제 축하메세지를 받았다. [12]
8월 14일에 트위터로 다음 주부터 솔로 곡을 차근차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는 트윗을 남겼으며 8월 15일엔 신곡 고래안의 방이 8월 20일에 공개된다고 트윗을 남겼다.
4집을 내고나서 돌연 스탠다트 레이블의 해체선언을 했다. 솔컴폭파의 악몽이 재현됐다
그리고 마이노스와 함께 브랜뉴 뮤직과 계약, 2015년 7월 8일에 이루펀트 3집 "Man On The Moon"을 발매했다.
1.3 앨범
- 2004.08.24 1집 <Evolutional Poems>
- 2006.03.31 Eluphant 1집 <Eluphant Bakery>
- 2006.11.14 <Evolutional Poems (Remastered)>
- 2007.10.08 2집 <Poetree Syndrome>
- 2009.05.07 3집 <The Passage>
- 2011.04.01 Eluphant Digital Single <Superstar> [13]
- 2011.04.11 Eluphant Digital Single <She Is Not Following You>
- 2011.05.04 Eluphant Single <여전히 아름답네요>
- 2011.06.09 Eluphant 2집 <Man On The Earth>
- 2011.06.28 Eluphant Digital Single <자장가>[14]
- 2011.10.05 Eluphant Digital Single <APOLLO 1/3 – 미래로 돌아가자>
- 2012.07.05 Eluphant Digital Single <APOLLO 2/3 – 별사탕>
- 2012.07.20 Eluphant 미니앨범 <APOLLO>
- 2013.09.04 Digital Single <그녀의 사무실>
- 2013.11.22 40&Eluphant <Luminant Opus III>
- 2013.12.17 4집 <Lost & Found>
- 2015.01.20 Eluphant Digital Single <크레이터(Creater)>
- 2015.02.13 Eluphant Digital Single <등대>
- 2015.06.10 애즈원&이루펀트 <복면검사 OST Part.2>
- 2015.07.08 Eluphant 3집 <Man On The Moon>
1.4 여담
예전에 힙합플레이야에 키비가 직접 올린 글이다.
'미운오리의 새끼' 란 곡으로 활동하던 2000년 초반 키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어느새 많이 게을러진 탓이겠지만 그 때에는 개인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오는 제 음악에 대한 평가 글 하나하나에 꼼꼼히 답글을 달곤 했었죠. 진심어린 격려나 따끔한 충고, 때론 의미 없는 낚시글에도 신경이 많이 쓰여 답글 하나를 다는데 한 시간씩 낑낑대곤 했으니까요. 제가 음악을 하는 목적을 발견하게 된 놀라운 사건도 역시 그 즈음에 일어났습니다. 지금부터 그 시절 얘기해볼까 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 진로고민으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던 당시, 개인홈페이지의 게시판에 올라온 한 글을 읽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미운오리의 새끼' 란 곡을 인상 깊게 들었다는 것. 그리고 삶의 복잡한 문제들로 매우 예민해있던 중에 이 곡을 듣게 되었고, 자살을 하려던 생각을 멈추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난 그 사람의 글을 다 읽고 몇 초간은 숨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제가 만든 노래를 통해 누군가의 죽을 생각을 바꾸었다는 사실은, 그저 어떻게 하면 랩을 잘할까 혹은 멋진 곡을 만들까하는 고민만 해오던 저에겐 커다란 깨달음이었으니까요. 그것은 내가 오직 내 즐거움을 위해 불러왔던 음악이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그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책임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사람을 위한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이 있고 좋은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들이 있지만 전 무엇보다 사람을 위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음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몇 줌도 채 되지 않을 부족한 재능과 능력이지만 내 작은 움직임이 누군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었던 때였습니다. 물론 음악을 한다면 ‘어느 시기’ 까지는 오직 자기 음악세계에만 취해서 역량을 쌓을 수 있어야합니다. 또한 그 ‘어느 시기’가 지난 다음도 마찬가지로 역량의 향상을 위해 매달리는 근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어느 시기, 즉 누군가 처음으로 내 음악을 듣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음악적 역량의 향상과 동시에 사람을 위한 음악을 하도록 자신의 마음을 함께 키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음악이란 건 사람이 만들어 사람에게 들려지는 세상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음악의 길을 걸은 선배님들의 조언대로, 오직 열정이란 바퀴 하나만으로 음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이제 사회 시스템에 적응해나가기 위한 또 다른 바퀴 - 돈이 되거나 명예가 되거나 -를 함께 굴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앞으로 음악의 길을 걷게 될 여러 후배분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겠죠. 하지만 사람을 위해 음악을 한다는 마음가짐은 지켜내세요. 돈과 명예를 바라는 건 인간이기에 갖게 되는 당연한 욕구지만 그 때문에 사람을 위한 마음의 길이 흐려지지 않길 바랍니다. 사람에게 전해지는 진실한 마음은 아무것도 잃지 않으면서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자라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음악을 통해 마음을 전하고, 또 누군가의 성장을 부추길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적은 돈과 작은 명예로도 보다 행복해질 수 있을 것 입니다. 리스너와 뮤지션을 꿈꾸는 사람들이 어울려있는 동네인 힙합플레야에 제 글을 남길 수 있게 된 것을 정말 반갑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빛을 쫒으며 살고 있는데, 그 빛의 실체가 무엇인지 한 번쯤 고민하며 쫓기 바란다는 말로 제 이야기를 정리할까 합니다. 비단 음악창작을 하지 않는 여러분이라도 삶을 관통하는 이 진리를 함께 간직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2000년 초 나에게 음악의 목적을 깨닫게 해주었던 신의 은총 같은 그 분에게도 다시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
이것이 위에 언급한 '미운오리의 새끼' 일화로 키비의 음악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1집 수록곡 "자취일기"의 가사 중 일부가 광화문 사거리 교보생명 빌딩 글판에 차용됐다.
"너와 난 각자의 화분에서 살아가지만 햇빛을 함께 맞는다는 것" 시 구절이나 명언 등을 적어놓는 광화문 글판에서 노래 가사를 차용하는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2010년 11월 소설가 은희경이 소년을 위로해줘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아 동명의 장편소설을 발매하였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읽어보자.[15] 책 자체는 괜찮지만 원곡인 노래에 비해서 아쉽다는 평이 많다. 책에서도 키비와 이루펀트의 가사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2005년경에 지금은 작고한 故 최인호 소설가의 "유림"이라는 책의 광고용 플래쉬로서 한 때 인기를 끌었던 통칭 유림송을 부른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의 흔적을 이 블로그에서 열람할 수 있다.[16][17]
현재 不汗黨(BULLHANDANG)크루에 속해 있고[18][19] 한국콘서바토리의 교수진중 한명이다.
대표곡으로는 Feeling you, 사라진 것도 아니다, 소년을 위로해줘, 백설공주,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 졸업식, 고3 후기, Mr. 심드렁, Goodbye Boy, Watch Me'가 있다.
2 SI 접두어의 일종
Kilo-binary의 약자. 컴퓨터 관련으로 쓰이는 접두사로, 본래 단위의 1024배[20]를 뜻한다. 현재 쓰고 있는 단위인 킬로(1000배) 대신 쓰는 것을 권장한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
- 더 보기 : 기억장치/표기 용량과 실제
- ↑ 소울컴퍼니 1집 The Bangerz의 수록곡 'One Rainy Day'가사 때문에 나온 드립이다. 제리케이항목에도 같은 곡에서 나온 드립이 쓰여있다.
- ↑ 이루펀트: 공명 - 당시 키비란 이름은 단지 베틀넷 아이디 / 물론 그땐 지금의 나 상상 했던건 아니지
- ↑ 이 곡을 듣고 키비에게 감동받았다는 사람 덕분에 키비의 음악방향이 정해졌다고 한다.
- ↑ 아주 유래가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곡을 써내려고 노력하던 시기와 거의 겹친다고 봐야 한다.
- ↑ 예컨대 키비가 곧잘 하던 동화 뒤집어 보기와 같은 시도도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미운 오리의 새끼', '백설공주', '잃어버린 아이들의 숲'같은 곡들이 있고, 참신한 재해석과 메세지로 다른 힙합 뮤지션들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을 볼 수 있다.
- ↑ 앨범을 내기전에는 감성적인 가사보다는 프리스타일 래퍼로 더 유명했었다. UMC의 "Power to the People"에 출연했을 때도 프리스타일을 선보인 바가 있다.
- ↑ 대중적으로도 좋고 잘뽑은 앨범인데 1, 2집에서 보여줬던 감성적인 가사를 기대했던 리스너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앨범일 수도 있다.
- ↑ 그런데 3집을 보면 GoodBye Boy같은 곡도 있는데..?
- ↑ 나중에 호모 리릭쿠스라는 사이트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픽션이라고 진위를 밝힌 것을 후회했다.
- ↑ 특히 MC 스나이퍼는 마이노스에게 러브콜을 보낸 적이 있을 정도로 마이노스의 팬이다. 이 때 이후로 스나이퍼와 이루펀트는 현재 트위터 맞팔 중.
- ↑ 라임어택과 마이노스도 스탠다드 소속이기 때문에 이전 솔컴 멤버들이 모두 이쪽으로 옮기는 게 아닌가 하는 소리가 있었다.
- ↑ 여담으로 스탠다트의 프로듀서 일렉트루는 누구인가에 대해 몇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키비의 소집해제와 동시에 사라져버려 사실상 키비=일렉트루로 굳어진 상황. 복무중 음악 활동을 위한 일종의 커버로 받아들여졌다.
- ↑ 근거 없는 스웩만 부려대는 MC들을 까는 곡인 Superstar가 실려 있었는데 정규에서는 빠졌다. 앨범 전체적인 색과도 맞지 않을 뿐더러 곡 자체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
근데 이거 솔컴 The Best 수록곡인데? - ↑ 2집의 CD에만 실린 곡이었다.
- ↑ 북콘서트도 열렸으며, 제목에 영감을 준 키비는 물론 은희경 작가의 지인 되시는 요조(!)도 참가했다.
- ↑ 한 때 이 블로그에서 유림송 시리즈 3편을 MP3 다운로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는데 지금은 막혀 있어서 다운로드가 불가능하다.
- ↑ 참고로 "유림" 광고용 플래쉬는 '파마헤드'에서 제작하였다. 이 플래쉬를 본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역사적인 인물을 너무 장난스럽게 표현한 것 아니냐', '대박이다', '제대로 엽기다', '숲으로 가자, 유림의 숲으로 가자. 효충예경 가득한 숲으로 가자~”라는 중독성 있는 가사라는 등의 호불호가 갈렸다고 한다.
- ↑ 참고로 이 크루 멤버들의 네임드가 하나같이 ㅎㄷㄷ하다.
- ↑ 하지만 이때당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중이였기에 앨범작업에 참여하지 못하여 크루원으로써 작업물이 전무한 상태... 옵티컬 아이즈와 같이 입단하면서 나온 한길을 걸어가라 不汗黨 Remix에서도 키비의 파트는 없으며 이번 절충 3집에도 참여하지 못하였다.
- ↑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