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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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 김정은[1]

1 개요

Butterfly Effect.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이론이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Edward Norton Lorenz)가 1961년 기상관측을 하다가 생각해낸 이 원리는 훗날 물리학에서 말하는 카오스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변화무쌍한 날씨의 예측이 힘든 이유를 '지구상 어디에서인가 일어난 조그만 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날씨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출발은 과학 용어였지만 시발점이 된 사건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큰 변화가 결과적으로 생겼을 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2014년 버전으로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면 나비(나지완)가 아시안게임에 가서 군 면제가 되자 안치홍이 입대를 결심하고, 선동열이 불러서 설득하다가 임의탈퇴를 언급해 버려, 분노한 팬들 때문에 결국 감독을 포기하여 2016년 현재 김기태KIA가 되었다는 것이다.

수아레스의 이빨 때문에 콜롬비아가 수아레스 없는 우루과이를 꺾고 8강에서 만난 브라질의 에이스 네이마르의 척추를 수니가가 부러트려 미네이랑의 비극의 시발점을 제공했다든가. 이외에도 일본에서 '바람 불면 통장수가 돈을 번다(風が吹いたら桶屋がもうかる)'라는 이야기와 영국에서 '못 하나가 없어서 말 편자를 잃었다(For want of a nail, The horseshoe was lost)'라는 이야기도 있다.

처음에 이 현상을 설명할 때는 나비가 아닌 갈매기가 사용되었지만 이후에는 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갈매기를 나비로 바꾸었다. 이 가상의 현상은 기존의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른바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한 의존성, 곧 작은 차이가 경이로운 결과를 부르는 사례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간간히 브라질이 발음이 비슷한 것이 이유인지 베이징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원전은 위 로렌즈의 동료 과학자 필립 메릴리스(Philip Merilees)가 1972년에 정한 윗말 그대로이다. 이론이 나온 지 10년쯤 뒤의 일로 작정하고 만든 일종의 슬로건/모토이다.

이 이론이 나오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로렌즈는 기상관측 프로그램을 사용하다가 무언가 흥미로운 계산 결과를 발견하고 재확인하기 위해 다시 계산을 시켜봤는데 처음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와 그래프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당황한 그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처음부터 다시 따져보다가 상당히 황당한 결론이 나왔다. 그 이유는 바로 2번째 계산을 시도할 때 그는 계산 속도를 좀 더 빠르게 하려고 넣어야 할 수치 중 하나를 한 자리 정도 반올림해서 넣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로렌즈는 이를 계기로 이 카오스 이론을 고안해냈다.

이를 학회에 발표하면서 나비 모양의 그래프(단순히 우연히 발견한 그래프로 그저 예시를 들기에 적합했다는 이유로 사용됨)를 이용하면서 위의 갈매기를 인용하였으나 이를 감명 깊게 들은 기자가 나비 효과라 명명하며 기사를 써버렸고 어느날 신문을 보니 자신도 처음 듣는 나비효과가 세상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나비가 쓰이게 된 이유로는 1952년에 나온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SF소설 <천둥소리(The Sound of Thunder)>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1995년에 고려원에서 출판한 <시간여행 SF 걸작선>에 실려 있다. 이 작품에선 중생대의 나비 한 마리 때문에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바뀌어 히틀러 같은 놈이 당선된다[2]는 단편 소설로 2005년도에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도 되었다. 2011년 국내 개봉 당시 제목은 '타임 코드'.

2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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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가 지니는 파장이 얼마나 무서운 지 체감이 안 오는 위키러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현실 예시와 창작 예시를 추가한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사례 문서도 함께 보면 좋다.

2.1 현실 예시

2.1.1 한 사람조작이 만들어낸 엄청난 역사의 폭풍 + α

  • 얘기를 하기 앞서, 1748년에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불완전한 종결을 맺은 오스트리아마리아 테레지아는 1756년 당시 유럽 외교사의 일대 혁명적인 대사건인 동맹의 역전을 감행하면서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반대로 영국과 동맹을 맺은 프로이센이 선제공격을 하면서 7년 전쟁이 터지게 되었는데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군의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결국 베를린이 함락되자 프로이센 국왕이 평소에 목에 걸고 다니던 로켓에 담긴 독약을 먹고 자살할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이대로 7년 전쟁의 결과는 프로이센의 패배로 끝날 것 처럼 보였다.
    • 하지만 다 이길 것만 같은 이 7년 전쟁에서 한 가지 거대한 변수가 나타났다.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여제가 사망했고 곧 이어 어떤 무능한 황제가 재위를 하는 덕분에 7년 전쟁의 판도와 적대국이었던 프로이센을 통치하는 국왕운명이 뒤바뀌게 되었다. 천성적일 수 밖에 없는 독빠였던[3] 이 황제가 무조건적으로 프로이센에게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주었고 그 덕분에 전세가 역전이 되어 프로이센이 승리를 맞이하여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반면 프로이센을 지원해준 러시아에서는 표트르 3세가 저지른 병크 때문에 민심부터 근위대등의 귀족들 까지 등을돌려 나중에 근위대가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고위 귀족자제들이 주축인 근위대를 홀대하고 홀슈타인 출신 떨거지 양아치들을 데려와서 근위대대신 자신을 호위병력으로 삼은 것 때문에 근위대가 반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 이 반란의 여파로 예카테리나는 차르 지위를 유지하려 귀족들에게 이권을 퍼 주는 식으로 반발을 무마하려다가 러시아의 고질이된 농노제까지 더 강화시켜버리게 된다. 이 때문에 재위중 푸가초프의 난이 일어났고 러시아는 후진적인 전제군주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외교적으로도 훗날 프로이센을 적대하지 않고 폴란드를 분할해야 했고,러시아는 서유럽의 자유주의와 완전히 반대로 가게 된다. 한편 이 동맹의 역전의 여파로 엉뚱하게 당시 영국에 종속된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을 하는 수혜를 보게 된다.
    • 만약에 7년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그대로 패배하게 된다면 프로이센을 위시한 독일영토는 이전 시대처럼 다시 결속을 하지 못하게 300개의 제후국으로 분할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오늘날의 프로이센 왕국과 바로 아래의 역사의 운명을 바꿀 사건, 그리고 그 사건 덕분에 일어난 전쟁독일 제국의 탄생도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독립을 했던 미국도 어쩌면 식민지로 계속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다.
  • 1870년 7월경 라인란트-팔츠 주의 휴양지로 유명한 작은 마을에서 빌헬름 1세엠스에서 가진 회담내용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의 적개심을 유발하기 위한 조작으로 바로 그 해에 보불전쟁이 일어났고 ,1871년 그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전하게 되었다. 이 패전으로 프랑스는 더 이상 서유럽의 육군 최강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여파로 프랑스의 여론은 극도로 국가주의, 국수주의 애국주의 성향이 강해졌다.[4]
    • 이 과정에서 인종차별적 정서까지 맞물리게 되어 결국 드레퓌스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이 사건을 취재하던 유대인 기자인 테오도르 헤르츨은 유럽에서의 사라질 줄 알았던 유대인 차별에 대한 충격을 깨닫게 되면서 시오니즘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이 전쟁의 여파로 제국주의로 과도하게 팽창된 유럽국가들의 대립 때문에[5] 모든 전쟁을 끝낼 전쟁이라는 별명을 가진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6] 이번에는 독일이 패하게 되면서 베르사유 조약이란 굴욕을 치르고 보불전쟁때 부활한 반 유대주의 정서의 영향으로 독일에서 발생한 음모론인 배후중상설이 떠돌아 다녔으며 나중에는 나치 정권이 이 음모론을 토대로 원동력이 되어 집권에 성공하고 더 나아가 제 2차 세계대전까지 일으켰으며 또 다시 배후중상설로 부풀린 반 유대주의 맞물려 인류 최악의 학살인 유대인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 이런 거대한 유대인 탄압으로 인해 나중에는 시오니즘의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 건국을 추진자는 이론으로[7] 그렇지 않아도 바람 잘 날이 없는 중동에서는 뜬금없이 이스라엘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건국과 그로 인해 생긴 여러가지 분란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여기에 21세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9.11 테러와 그 여파로 또 다른 분란들까지 일어나게 되었고 이 또다른 분란들의 여파 때문에 IS의 전신인 ISIL이 생겨나게 된 간접적인 계기도 되었다. 게다가 ISIL 때문에 유럽 난민 사태가 일어났고 독일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 (나치 망령의 재림이란 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경화의 위험에 빠졌으며 이 사태의 후폭풍으로 영국의 브렉시트까지 일어나게 되고 곧이어 터키에서 쿠데타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 한편 보불전쟁에서 이긴 프로이센은 독일 제국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에 영향을 받은 다른 열강들이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제국주의시대가 열리게 되고, 이후 독일 제국를 위시한 여러 열강들은 식민지 개척을 위해 아시아, 아프리카에 진출해 무굴제국,카자르 왕조, 오스만 제국등이 멸망하게 된다. 게다가 이 제국주의 시대에 드러난 여러 열강들 중 한 나라에서 그 악명높은 레오폴드 2세도 등장하고 콩고를 지배하게 되면서 이 점령을 계기로 아프리카에서도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가속되고 있다. 또한 식민지 쟁탈을 하면서 동시에 아프리카에 개신교, 가톨릭 선교사들이 많이 파견했고 중국 등의 아시아에도 파견을 했다.
    • 하지만 이 파견된 선교사들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또 하나의 나비효과를 생기게 되는데 바로 1897년 11월 1일에 산둥성 서부의 거야현(현재의 허쩌 시)에서 독일인 선교사 두 명이 살해당하는 사건(거야 사건)이다. 이때 마침 아시아에 영향력을 넓혀보고 싶었던 당시 독일 제국의 통치자 빌헬름 2세는 이 사건을 구실로 같은 해 11월 14일에 청의 산둥반도를 공격해서 점거하고 협상을 통해서 칭다오를 조차지로 획득하게 하게 된다. 이 사건만으로 칭따오 맥주탄생 배경이 되고 (2016년 현재 한국의 배우 정상훈이 오랜 무명생활을 끝내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결과까지 낳으며) 현재의 우리 일상에 영향을 주지만,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영향을 받은 러시아 제국의 군부 강경파는 삼국간섭을 통해서 일본을 압박해서 청에게 돌려주게 만들었던 바로 그 뤼순다롄을 1898년 조차지로 얻어낸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청, 일본, 영국, 미국 등이 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의 확장을 합동으로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마치 비스마르크가 프랑스왕따시키는 것 처럼) 러시아는 국제적 왕따로 전락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적 입지 변화는 당시 조선을 두고 일본과 대립하고 있던 러시아의 태도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단적으로 삼국간섭 직후의 베베르-고무라 각서나 야마가타-로마노프 의정서에서는 조선을 중립국으로 두는 형태로 협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왕따가 된 이후에 체결된 니시-로젠 협정에서는 러시아는 만주를 가지고, 일본은 조선을 확보한다는 형태로 점점 일본의 주도권이 커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 이런 상황은 러시아 군부나 황실로서는 뭔가 타개책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고, 일본의 군부에게는 자신감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영국과 미국 등에게는 일본을 통해서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주게 되었고, 이런 상황의 결과가 바로 세 제국의 운명을 결정할 러일전쟁이다. 이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로 로마노프 왕조 통치하의 러시아 제국이 러시아 혁명으로 몰락하여 멸망하고 또 뒤 이어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의 건국이 되는 간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일본의 승리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확정된다.
    • 또한 위에 나온 제국주의 사상에 1914년 6월 28일에 한 청년이 어떤 유명한 부부에게 총을 쏜 사건으로 기폭제가 되어 제 1차 세계대전이 터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전쟁 결과 생긴 존슨 대통령의 민족자결권 발언으로, 3.1 운동이 일어나고, 결국 일본은 통치 방식을 바꾸게 된다. 또 이 때를 기점으로 친일파친일반민족행위자가 많이 생긴다. 게다가 이 전쟁 여파로 제2차 대전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세계 대공황까지 덮치게 되었고 이 세계사에서 유래없는 미스터리한 대공황 때문에 (1차대전 전후에 전쟁의 재발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연맹의 해체가 앞당겨져 결국 (협정계의 재앙인) 뮌헨 협정이란 병크로 결정타를 날리게 되면서 설립목적을 제대로 상실하게 되며 연맹의 해체와 동시에 2차 대전의 개전이 거의 확정이 되었다.[8]
    • 한편 러일전쟁제1차 세계 대전의 승리로 자신감이 생긴 일본 제국은 중일전쟁태평양 전쟁[9]이 시작되고 그 결과 일본은 원자폭탄을 맞고, 소련에게도 탈탈 털리게 된다. 결국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소련미국에게 항복했다. 이후 미국소련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선봉이 되었고, 결국 약 40년간 냉전이 지속되게 되었다.
      • 이 40년간의 냉전 중에서 최악의 배드 엔딩을 맞이할 뻔한 적도 있었다. 1983년 9월 26일 0시, 돌연 소련의 핵전쟁 관제센터에서 비상경보가 울렸다. 소련의 위성 감시망에 미국에서 발사한 ICBM의 신호가 포착된 것이다. 그 숫자는 이윽고 5개로 늘어났고, 이것을 미국의 선제 핵공격으로 인식한 관제센터는 대 패닉에 빠졌다. 즉시 소련이 당장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핵미사일에 발사 준비 태세 명령이 내려졌고, 당시 관제센터의 당직이었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졸지에 핵전쟁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권한을 떠맡게 되었다. 당장 상황을 보고하라고 악을 쓰는 크렘린의 전화벨 소리와 눈앞에서 깜빡이는 비상버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취소 버튼을 누르고 이렇게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컴퓨터의 오류인 듯하다 .이 짧은 문장으로 인류는 멸망의 운명에서 벗어났다. 당시 상황은 미국-소련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시기였고, 하필이면 그즈음에 나토의 전면적인 핵공격 상황을 상정한 군사훈련이 있을 예정이었다. 한마디로 소련 입장에선 이때 갑자기 핵이 날아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만약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가 역사와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면 인류의 역사는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 시점에서 정지했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 또한 이 보불전쟁을 필두로 일어난 나비효과에서도 최악의 배드 엔딩으로 떨어질 뻔한 사건이 있었다. 1933년 2월 15일, 미국 시카고에 '주세페 장가라'라는 총을 든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 날 총 다섯 발의 총알을 쏴서 시카고 시장을 사살했는데, 문제는 장가라가 흔들의자 위에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의 목표는 시카고 시장이 아니라, 그의 앞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던 당시 새로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만약에 그의 낡은 흔들의자가 때마침 흔들리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가 흔들 의자에 앉지 않았었더라면 사살당한 사람은 시카고 시장이 아니라 루스벨트였을 것이고, 그럼 미국인들은 루스벨트의 부통령이었던 존 낸스 가너를 두고 두고 욕하고 있었을 것이다. 가너의 정치적 이상은 몇몇 법안들을 반대하는 것에서 기초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뉴딜 정책이었다. 그러면 미국은 대공황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뉴딜정책이 대공황을 해결하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부분을 들어볼 수도 있다. 존 낸스 가너는 철저한 불간섭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으며, 히틀러에게 대단히 호의적인 인물이었다.[10] 참고로 대체역사소설의 효시로 꼽히는 필립 K. 딕높은 성의 사나이가 바로 이 시나리오에 기초한 것이다.
    •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일본의 패배로 인해 한반도는 광복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이 딱 5일 남았을 때[11] 광복을 이루는 바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영토 분할에 관여하지 못했고, 결국 미국과 소련이 대한민국을 점령했고, 대한민국도 냉전에 휘말리게 된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론이 존재한다. 한국 광복군에 대한 문서를 참조.
    • 1949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게 된 중화인민공화국과 북한 지방을 점령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국일본을 키우게 되었고, 결국 전범 청산에는 실패하게 되고,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해 일본은 전범 청산을 못 한채 현대로 오게 되었고, 결국 잃어버린 10년동일본 대지진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일본의 우경화독도 분쟁이 터지고 말았다.
    • 또한 1949년 국공내전에 패배하게 된 장제스의 중화민국은 타이완으로 수도를 옮겼고, 이후 중국의 하나의 중국정책으로 인해 양안관계가 민감해졌고 TWICE 쯔위 청천백일만지홍기 논란의 원인이 된다.
    • 제2차 세계대전에서 8월의 폭풍 작전으로 관동군을 패망시킨 소련은 일본군을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한반도의 이북지방을 점령하게 된다. 이 때, 한반도의 공산화를 두려워 한 미국은 소련이 더욱 남하하기 전에 한반도의 이남지방을 점령하게 된다.이로써 한반도에서도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 때 38선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1945년 12월 27일, 한 언론사에서 앞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뒤바꿀 신탁통치에 대한 잘못된 소식 때문에 한반도 내부에서 찬탁과 반탁으로 극심한 분열을 이루게 되었고 결국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미군정소군정으로 분단을 맞게 된다.
    • 게다가 이런 혼란스러운 정국에 시달리는 와중에 1947년 3월 1일 제주도에서 기마 경찰이 어린이를 치고 지나가면서 4.3 사건이 시작 되면서 제주도민들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하필이면 (바로 뒤 이어 벌어질) 동족상잔까지 터지면서 이 기점으로 사건은 더욱 더 증폭되어 악화되었다.
    •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이 기회를 엿본 소군정 이북 출신의 김일성이러한 정세를 제대로(또는 거꾸로) 이용해[14] 남침을 하면서 해방 이후 한반도의 역사상 가장 처참하고 비극적인 동족상잔을 일으키게 된다.
    •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이 나지 않았다. 이 분단과 전쟁 때문에 오늘날의 북한이라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막장 국가가 탄생했고 에서는 불신과 증오로 1.21사태[15]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서해교전, 천안함 피격사건등의 크고 작은 대립들이, 또 양국 내부에서는 이 전쟁으로 인한 외부의 적들을 명분으로 하여금 독재, 감시, 탄압, 숙청에 시달려야 했다.
    • 게다가 당초 청산하고자 했던 친일인사들을 제대로 잡지 못해 나중에 일본어 잔재론주입식 교육 그리고 (한국 맥주의 질적하락에 대한 원인으로 추정되는) 주세같은 일제의 잔재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해 지금까지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이 전쟁과 그로 인한 북한 도발의 여파로 21세기에 폐지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징병제도 강화되어 지금도 이 기나긴 징병제 때문에 한국과 북한의 청년들의 청춘을 군대에 보내야 했으며 또한 이와 이와 관련지어서 일부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등의 여러 공인들이 병역비리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스티브 유MC몽의 사건까지 겹치면서 대체복무의 입지도 크게 줄어들었다.)
    • 덤으로 이 6.25 전쟁 때문에 지리문화적인 영향도 끼쳤는데, 이 분단된 영토 때문에 대한민국과 북한은 사실상 섬이 되어버렸으며 이런 특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대한민국의 문화가 섬나라처럼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대표적인게 외국 문물에 대한 무지와 무조건적인 동경에 외국어 학습의 어려움이라는 것이다.[16]
    • 숙군으로 군에서 방출된 박정희는 6.25 전쟁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 이 전쟁 덕분에 살아남아 출세를 한 그는 나중에 대한민국의 지역감정 중 영호남 지역감정을 조장했으며, 그의 후계자인 전두환은 호남인을 학살함으로써[17] 대구경북전라도의 영호남 지역주의가 크게 심해졌다.
    • 마지막으로, 그렇잖아도 불안정했는데 이 전쟁 때문에 거의 나락 수준으로 피폐해진 국가상태를 원상복구하기 위해서 결국 압축성장이 불가피했으며 이를 극복하려는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압축성장의 폐해가 유난히 심해지는 바람에 부정부패, 정경유착 등의 여러가지 부작용으로[18] 나중에는 사회면에서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더 나아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까지 일어나게 되었고 경제면에서 초유의 경제침체 사태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참고로 이 때 일어난 미스터리한 경제불황 사태 때문에 불량 청소년(일진)의 증가로 이어졌고 최근의 청소년 범죄의 급증과, 학교폭력의 급증하는데 일조를 하게 되고[19] 이외에도 대한민국의 도덕성과 사회상, 청년실업과 출산기피,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폭등한 물가 등의 크나큰 위기가 다가왔으며[20] 이에 대한 여파로 학문 사회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황금만능주의가 대두되고, 국내정치의 부패가 가속되고, 주로 중년층 사이에서 유신독재정권의 재평가를 받는데다가 # 아래의 또 다른 세 가지 나비효과와 또 하나의 거대한 나비효과가 터지게 된다.

2.1.2 초유의 경제사태 이후로 이 만들어낸 인터넷 폭풍[21]

  • 1998년에 7월에 딴지일보가 설립을 하면서 바로 작년에 터진 IMF 사태 직후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적극 반영한 정치풍자, 재벌과 수구언론에 대한 조롱, 엽기적인 체험담 등으로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이트는 조금 뒤에 '독자투고 게시판(이하 독투)'도 만들었는데 이때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는지 당시 기준으로 독설과 욕으로 난무한 입이 가장 거친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사이트야 말로 바로 아래에 언급할 다크호스를 탄생하게 만들어줄 만큼 디시인사이드를 넘어서 진정한 대한민국 막장 커뮤니티 역사의 시발점이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매너가 없거나 막장이 될 때 디시화된다는 표현을 쓰지만 오히려 딴지화라는 표현을 쓰는게 더 적절할 것이다.이 사이트는 당시 디시보다 위상이 높았고 그 당시 디시는 딴지에 비하면 그저 쿠키닷컴아햏햏를 필두로 여러 갤러리들을 설립하면서 커뮤니티 사이트로써 이제 막 급성장하기 시작한 IT계열 디지털 카메라 동호인 사이트에 불과했다.
    • 그런데 이 딴지일보의 독투 출신의 유명인물중에서 씨벌교황이라는 희대의 독설가이자 최초의 악플러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1996년부터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이 악플러는 처음에 두루넷[22] 신상정보동호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거만한 태도와 말투 그리고 저질스런 사진까지 올리며 많은 이들을 괴롭혔고 당연히 두루넷에서는 참다참다 이 악플러를 축출했다. 이 축출에 부당하다고 느낀 악플러는 때 마침 IMF 사태 덕분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최초의 막장 커뮤니티 사이트인 딴지일보에 눈독을 들였고 결국 딴지일보에서도 특유의 필력을 앞세워 듣도 보도 못한 욕서로 게시글을 1500페이지 넘게 도배하고는 딴지일보의 각종 기사들을 삭제하거나 마음대로 편집하는 등의 분란을 크게 저지르게 된다. 결국 딴지일보는 3일간이나 홈페이지 문을 닫고 개편을 했지만 그 분탕의 여파때문인지 이때부터 하락세에 접어들어가기 시작했다. 한편 딴지일보에서 일을 저지르고 떠난 악플러는 새로운 무대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바로 당시에 여러 갤러리를 설립하면서 급성장을 시작하고 있는 디시인사이드였다. 이 신생 커뮤니티인 디시인시아디에도 침투하고 분탕을 저지르면서 악명을 떨치는 바람에 덩달아 그 악플러르 추종하는 막장 종자들까지 유입되었다.[23] 결국 이 악플러와 추종자들을 막기 위해 김유식은 이에 대항하려는 목적으로 욕설과 반말을 허용하는 특단의 조치이자 악수를 두었고[24] 그렇게 해서 디시인사이드는 특유의 문화인 아햏햏하오체가 박살나버려진 반말과 욕설이 난무하게 되었다.
    • 그리고 이 악플러 때문에 막장화된 디시인사이드를 청소하기 위해 김유식의 주도하에 '가스실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막장 갤러리의 개설을 필두로[25] 사실상 이 놈 한명과 김유식의 악수 때문에 대한민국과 해외[26]막장 커뮤니티의 역사를 쓰게 되면서 인터넷의 판도와 패러다임바꾸기 시작했고, 그 악플러가 가지고 있는 여혐성향까지 퍼트리는 바람에[27] 이후 바로 아래의 일베저장소 탄생과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까지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 물론 이 악플러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인터넷의 역사가 제대로 뒤바뀔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한편으로는 만약에 딴지일보 처럼 거물급 악플러가 서식하거나 터를 잡기에 딱좋은 환경자체가 없다면 아무리 씨벌교황 같은 악플러가 등장해도 분탕을 쳤다가는 두루넷 시절처럼 바로 축출될 것이고 또한 커뮤니티가 분탕치는 악플러의 손아귀에 넘어가지는 일 자체도 없을 것이며 이와 동시에 그런 막장환경을 가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씨벌교황이 아니더라도 씨벌교황 급의 또다른 악플러들이 자생적으로 탄생할 가능성도 거의 막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결론적으로 초유의 경제사태가 엉뚱하게도 대한민국과 해외인터넷막장으로 오염되었다흠좀무스러운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 2009년 10월 24일, 바로 그해에 열린 한국시리즈의 7차전에서 나지완끝내기 홈런을 치면서 KIA 타이거즈12년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전부터 벌어진 기아팬들의 준동과 그 틈을 파고든 정사갤의 공격으로 야갤은 조금씩 반기아 정서가 퍼지기 시작한 차에 기아의 우승으로 본격적으로 폭발했다. 이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디씨 전체가 보수화되고, 석연찮은 판정논란으로 인해 야갤에서의 반기아 정서는 반호남 정서로 점점 확장되었다. 나중에 타어강으로까지 욕을 먹어서 하도 시달린 탓에 오죽하면 어떤 기아팬은 차라리 똑같이 욕먹을거라면 아예 우승을 하지 말걸 그랬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 고인드립, 호성드립, 노란엽서 테러사건과 같은 사고와 온갖 지역드립이 생겨난 것은 덤. 그즈음 친목질로 망하자 이주해온 코갤러까지 난입하면서 점점 엉망이 되었고, 야갤마저 개판이 되자 일부는 사람들이 많은 네이버 뉴스로 흘러들어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었고[28] 일부는 당시에 디시의 코갤, 막갤, 스갤처럼 일베글이 많이 삭제되는 갤러리들의 '일간베스트' 게시물을 복구하고 모아서 저장할 목적으로 설립된 일종의 마토메 사이트인 일베저장소로 몰려들어갔고 이들이 저지른 사건들이 커지게 된다.
    • 참고로 원래 이 시기의 일베저장소는 당시 일간 베스트의 글을 모아놓을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당시 성향은 현재의 일베와 다르게 정치성향 그런거 없이 진지함이라곤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는 거침없이 전형적인 막장스러운, 일종의 아나키즘이 곁들여진 모두 까기를 지향하는 막장 유머 사이트로 등장했으나, 하필 사이트 설립시기가 최악이었는데 이전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으로 정사갤등지에서 보수화가 진행되더니 때 마침 나지완의 홈런으로 기아가 우승하는 바람에 그 반호남 우파정서가 증폭됬고 다음해에 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 도발로 결정타를 날리게 되면서 오늘날의 극우성향 사이트로써 일베저장소는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이트가 저지른 사건들 중에서 자기네 자료들이 다른 사이트에 불펌이 일어나자 이를 막을겸 엿도 먹이자는 취지로 작은 장난을 시작했는데 그 장난의 여파도 공중파까지 퍼지게 되었다.
      • 이와는 별개로 일베의 홍어드립이 심해지는 나머지 갑자기 일베에 대항하여 일베의 원산지인 대구를(물론 터무니없는 소리지만) 비하하는 통구이드립이 야갤에 퍼지게 되었다.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의 정치성향 문제가 커져 반영남정서가 생겨버렸으니 그야말로 점입가경인 셈.
    • 게다가 이 사이트가 본격적으로 여혐성향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바람에 (앞서 상술한 희대의 악플러와 더불어) 바로 아래의 그런 여혐에 반감을 가져 대항하는 남혐사이트들이 탄생하게되는 근본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29] 나지완의 홈런 vs. 노홍철 음주운전
  • 노홍철이 2014년 11월 8일에 음주운전을 한 것 때문에[30][31] 무한도전에서 하차하게 되고, 새로운 멤버의 필요성을 느낀 무한도전에서 시작한 프로젝트 무한도전 식스맨 : 시크릿 멤버를 시작한다.
    • 이 때 출연한 장동민의 과거 여성비하 문제로 여성시대라는 커뮤니티가 두각을 나타냈고 그 여성시대는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여성대표라도 되는 양 조금의 여성비하가 나와도 그 사람을 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때 마침 레진코믹스에서 레바툰을 연재중인 레바가 '아몰랑' 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였는데, 이런 이유로 레바가 만화가를 그만둬야한다는 의견을 내보였다.[32] 이 또한 식스맨 장동민 사건으로 인해 주목받고 있던 지라 이곳저곳에 소문이 퍼져나갔고 그런 의견들을 보며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시대가 막나간다고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을 굽히지 않는 여성시대는 오히려 자신들을 욕하는 사람들을 일베충으로 여겼다. 그래서 생긴 파장은 여성시대,여성시대/사건 및 사고,여성시대/문제점,여성시대 해명글 조작 사태, 그리고 나중에 5월 23일 여성시대 역고발 사태로 퍼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나무위키가 본의 아니게 인지도와 세력이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에는 피난처로 삼기위해 메르스 갤러리여성시대 유저들이 유입되면서 막장화 되고 그 여파로 메갈리아가 탄생한다. 이후 5월 9일 즈음 화력이 슬슬 떨어져 갈 때쯤에 SLR클럽에 베타테스터로 여성시대 회원에게 혜택을 주고 탑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 SLR 회원들이 대거 다른 커뮤니티로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오늘의 유머는 여성시대 유저를 차단할 것을 공지로 세웠다. 이후 메갈리아 내부에서 대립이 벌어지면서 일부 세력들이 떨어져나가 워마드를 만들었고 이들은 때 마침 일어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매개체로 본격적인 남혐성향을 확장하고 있다.[33]
    • 그리고 위의 사건으로 탄생한 메갈리아와 연계되는 일로 이 일이 전국적인 논란으로 확대되면서 다시 한번 들썩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웹툰작가가 논란으로 작가의 작품까지 몰락하고 박지은 외의 몇몇 작가들도 이 일에 연루되었다.[34] 또 위 사건과 또 연계되는 일로 위의 성우를 옹호한 사람들 중에 레진코믹스 소속 작가들이 많이 있었는데, 독자들은 처음에는 작가들을 만류하며 불똥이 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작가들이 되려 독자들을 비난하고 모욕하면서 레진코믹스 소속 작가들의 병폐가 드러났고 이에 물밀듯이 레진코믹스를 탈퇴하고 있고 아예 레진은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사람들도 어마어마한 상황. 더 나아가 청강대와 레진 까지의 메갈리아3중으로 서로 연결된 부적절한 커넥션까지 수면위로 오르는 바람에 청강대에서도 곤혹을 치르는 중이다. 이에 멀쩡히 연재하다가 엉뚱하게 피해를 입은 작가도 나왔다.
    • 시작은 노홍철의 음주 문제 였는데 엉뚱하게도 남녀대립으로 커지게 되었고, 또 분명히 시작은 성우의 문제였는데 희한하게도 대한민국 웹툰계의 기반, 더 나아가 서브컬쳐계 전부가 풍비박산나게 생겼다.[35][36] 정치계까지 불똥이 튄 것과 한 채널의 오보에 가까운 편파 보도는 덤. 게다가 덕분에 어떤 언론사가 본의 아니게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 이 문제로 인해서 국내의 온리전들이 웹툰 갤러리 유저들의 공격을 받아 경찰서 등에 고소고발당하는 일이 생겨났으며 온리전 대부분은 웹갤의 공격을 받으면서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급기야는 온리전을 넘어 코믹월드, 디 페스타, 케이크스퀘어, 코믹아일랜드 등 기업이 운영하는 동인행사들도 잇따른 공격과 위협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케이크스퀘어 대표가 JTBC 뉴스룸의 보도를 허용하면서 동인계가 JTBC 뉴스룸을 비난하였다. 특히 사장인 손석희의 신뢰를 믿어왔던 입장에서 JTBC의 이같은 행동은 가히 충격적이라 멘붕과 허탈도 심하였고 손석희만을 믿어가며 JTBC를 믿었던 동인계나 시청자들도 하나둘 등을 돌려버렸다. 어째 이 방송사는 안 좋은 짓만 골라 끼는 느낌인데. 그리고 JTBC의 취재를 허용한 케이크스퀘어에 대한 불신도 커지게 되었다. 코믹월드의 독점을 막고 대항마로 거듭나려는 평가를 받으며 좋은 이미지를 가졌던 행사였기에 이번 일로 여성향 동인계의 신뢰를 추락시켰던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코믹월드는 결국 개최 17년만에 처음으로 19세 이상 동인지 전시판매를 금지하고 19세 이상 동인지 동아리의 참가도 불허하였다. 덕분에 동인행사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JTBC발이라고 욕하는 중 반면에 이를 계기로 케이크스퀘어 등에 가려졌던 디 페스타는 웹갤의 행동에 적극적인 대응을 천명하였고 논란의 주인공인 성우 김자연을 고정성우로 투입하면서 케이크스퀘어에 불신을 가지게 된 여성향 동인들을 감동하게 만들며 그들만의 마지막 보루로 남게 되었다.
    • 이후 진보정당에 대한 탈당 러쉬도 일어났고[37], 또한 정치계 폭풍의 주범인 신좌파는 몰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말이지 만약 노홍철이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우린 이 대체역사를 어떻게 새로 써나가야할까?[38] 현재 대한민국의 인터넷을 대표하는 거대한 나비효과의 예시가 아닐 수가 없다. 블로그에 정리된 요약글 --유튜브에 정리된 영상--[39] 그리고 레바오늘의 유머는 (좁게 말해서, 노홍철로 시작된) 이 거대한 나비효과 흐름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 또 이에 대한 부차적인 나비효과가 있는데, 바로 강된장남이라 불리는 34살 남성의 연애 고백 상담[40]라는 글이 남연갤에 올라왔고 이에 험한 댓글들이 올라왔는데 발끈한 글쓴이는 "배용준도 13살 어린 박수진과 결혼한다, 고백을 위해 20만 원짜리 아이크림도 준비했다, 결혼하면 생활비로 150만 원을 줄 것이다, 나는 정력도 세다, 그녀는 이미 나에게 호감이 있을 것이며, 내 아이를 낳아 주고 나만 보며 살 것이다."라는 항변하다가 결국 욕을 먹고 “너희들은 돈 주고도 안 X먹는다”는 저주를 남기고 그 갤을 떠났다. 그 뒤에 거기에 분노한 남연갤 유저들은 막 새로 생긴 메르스 갤러리를 털게 된다. 하지만 위의 여성시대 논란이랑 겹쳐서 더 규모가 커져버리고, 그래서 태어난 게 바로 메갈리아다.
      • 위의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사건에서 옹호한 작가들 중에 용이 산다를 연재하던 작가도 있었다. 이 작가는 트위터로 이전부터 천단위 팔로어 달성때마다 소소한 이벤트를 했는데, 이번에는 1만 번째 팔로어에게 사인본을 보내거나 밥을 사기로 하는 이벤트를 개최했다. 문제는 이벤트를 개최하고 이틀 뒤에 당첨된 1만 번째 팔로워가 웹툰 갤러리에서 용이 산다의 야짤을 만들어 올리던 디시인사이드 측 유저였던 것. 그렇지 않아도 이전부터 웹툰 갤러리에서 게시된 어그로성 성희롱 글(아카이브)때문에 초 작가는 웹툰 갤러리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는데[41] 하필 1만 번째 팔로어가 잘못 당첨되는 바람에 일이 꼬이게 되면서 눈덩이처럼 커져버렸다. 게다가 이 사건의 여파로 네이버 웹툰의 작가들이 웹툰 갤러리에 방문해서 소통하는 일이 한 동안 뚝 끊기게 되었다. 만약에 당첨자가 위에 언급한 문제의 디시유저만 아니었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것이며 또 이 사건을 이후로 초의 트위터 행보는 매우 과격해졌으며 그 여파로 훗날 트위터에서 레진 코믹스의 '속죄캠프'를 저격하고 심쿵기원 논쟁, 오버워치 움짤, 그리고 더 나아가 김자연 성우 옹호하는 등트인낭 구설수까지 없었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그 이벤트가 잘못 당첨되지 않았다면 여태까지 구설수가 없거나[42]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을 필두로 잠깐동안 구설수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 또 위의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사건에서 옹호한 작가들 중 이자혜 작가는 이 사건 전에 인지도가 적었는데, 독자에게 한 막말 등으로 인지도가 급증했다. 덕분에 그녀를 추앙하는 자칭 페미니즘 세력들이 증가했고, 그녀의 출판물이었던 미지의 세계 또한 인지도가 급증했다. 하지만 지나친 어그로로 인해 그만큼 반감을 얻은 인물 중 하나가 되버렸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녀를 페미니즘의 대표주자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트위터에서 #오타쿠_내_성폭력 이라는 해쉬운동 중에서 트위트 중 하나가 그녀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이익 성폭행 및 이자혜 사주 논란을 참조. 그로 인해 국내 페미니즘을 지지하던 사람이나 단체들은 예상치 못한 대형 사고로 인해 경악을 하고, 이자혜 작가를 기록 말살형에 처했다. 근데 이런 대형 인물이 걸리다 보니 이 해쉬태그 운동은 가속되었고, 2016년 문화계 성추문 폭로 사건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음주운전 하나가 서브컬쳐 뿐만 아니라 컬쳐 자체도 말아먹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43]

파일:나비효과.jpg
나지완노홍철의 나비효과를 비교한 사진, 둘 다 파장이 엄청나다. 다만 메갈리아의 탄생 배경에는 일간베스트의 간접적인 계기도 있다.

그러니까 요약을 하자면 1870년 7월경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주작으로 인해 전 세계가 대형 전쟁홀로코스트를 위시한 학살에 휩싸이게 되고 그 여파로 냉전까지 겪게 되고, 그 거대한 전쟁차가운 전쟁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하마터면 전 세계가 추축국의 손아귀에 빠질 뻔하거나 핵무기의 손아귀에 빠질 뻔한 적이 있으며 유럽에는 유럽 난민 사태와 그로 인한 브렉시트, 중동에는 반유대주의로 인해 생긴 시오니즘과 그로 인한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슬람 극단주의, 다에쉬를 아프리카에는 말리 내전, 르완다 내전, 리비아 내전 등을 중국에는 국공내전, 양안관계, TWICE 쯔위 청천백일만지홍기 논란을 대한민국에는 초대형 오보와 그로 인한 동족상잔북한의 도발과 영호남 지역주의,성수대교 붕괴사고,세월호 참사, 대한민국 초유의 경제불황 또 그로 인한 전 세계 규모로 일어난[44] 극단주의 사이트들의 탄생과 후술할 연달아 일어나는 법조비리, 그리고 최악의 정치 스캔들 등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다가 된다.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세계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현세대인들에게 가장 체감할 수 있는, 한 명미시적인 거사로 인해 전 세계에 본의 아니게 거시적인 영향을 준 나비효과의 대표적인 예시다. 그래서 대부분 대체역사 호사가들은 "만약 애초에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주작이 없었거나,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이겼으면,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위에 나온 나비효과의 시발점이 안 일어났을때의 세계에선 훨씬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

2.1.3 법조비리 나비효과

박근혜정부 법조비리 나비효과
동남아에서 "정킷방"을 운영하던
범서방파 구속 기소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총 재산 1위 우병우,
재산 증가폭 1위 진경준)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임창용, 윤성환,
안지만, 오승환)
정운호 게이트
(정운호, 홍만표, 최유정, 김수천)
롯데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신영자, 신동빈,
서미경, 이인원)
우병우넥슨 게이트
(진경준, 김정주)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산업은행, 대우조선해양,
강만수, 최경환, 안종범)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불화

(조선일보, 이석수, 송희영)
박수환 게이트
(남상태, 박수환, 송희영)
성주 롯데골프장
THAAD 배치 확정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최순실, 박근혜, 청와대,
전국경제인연합회, 이대 정유라 특혜)
이대 미래라이프대
반대 시위

(최경희)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과관계의 직·간접적 연결고리만 간단히 기록됨.
전반적인 부분은 문서 참고.

2.1.4 그 외

  • 1526년 이미 2년 전에 남미탐험에 실패한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새로운 총독에 부임하자 허가를 얻어내고 두번째 남미 원정에 나선다. 하지만 원정의 결과는 2년전과 마찬가지. 그럼에도 그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땅에 선을 긋고, "나와 함께할 사람은 이 섬 안에서 남아라!"라고 선언하고 13명이 남는다. 덕분에 파나마에서도 어쩔 수 없이 원정이 계속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고, 지원군이 도착한다. 그리고 훗날 남미 정복에 성공해서 신대륙 식민지에서 엄청난 양의 은이 채굴되고 유럽 경제와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며 전 지구적 변화가 생겼다. 만약에 원정 초기에 피사로가 용감한 13인 사건을 통해 원정을 계속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이 항목을 참조.
  • 1930년대에 미국이 사회의 혼란을 막자는 취지로 금주법을 선포했는데, 세상은 안정은 커녕 오히려 혼란에 더욱 빠졌고 급기야 전 세계를 대표하는 3대 범죄조직 중 하나인 마피아가 탄생하게 된다.[45]
  • 1932년 우크라이나에서 소련의 계획적인 탄압으로 추정되는 수탈로 인해 사상초유의 대기근이 일어났다. 훗날 우크라이나 출신의 흐루쇼프는 이 대기근으로 반소감정이 극에 달한 우크라이나를 회유하기 위해 크림 반도 영토를 우크라이나에게 넘겨주고 이 외에도 노골적으로도 우대를 해준 덕분에 반소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문제는 당시 기준으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먼 훗날 소련이 붕괴되고 우크라이나도 독립하는 바람에 2014년 2월부터 격렬하게 불타오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민족 갈등의 불씨를 심는 계기가 되었다.
  • 1955년 3월 2일, 한 어린 흑인 여자애가 체포당했다. 그녀의 이름은 클로뎃 콜빈(Claudette Colvin). 체포 이유는 백인에게 버스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것. 당연히 당시 시민운동가들과 지유인권협회는 그녀의 편에 섰다.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의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의 상징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그녀는 15살로 미혼에 임신중이었고, 이 임신이라는 것이 문제가 됐다. 그들은 그녀가 최적의 얼굴 마담으로는 부적합하다고 판정을 내렸고, 결국 조용히 뒤로 빠지기로 했다. 그리고 8개월 동안, 어느 카리스마 있고 젊은 목사가 사회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때 마침 로자 파크스 사건이 터지자 그들은 그 목사를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이끌 사람으로 선택했다. 만약에 클로뎃 콜빈이 한 순간의 피임 실수로 임신을 하지 않았더라면, 보이콧 운동은 8개월 뒤가 아닌 그 해 봄에 시작되었을 것이고 그럼 마틴 루터 킹은 지금쯤 몽고메리의 별 볼일 없는 목사 중 한 명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 1956년,[46] M1 개런드를 대체할 차기 전투소총을 선정하는 사업에서 아말라이트AR-10은 바로 그 경쟁상대인 M14와 경합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7.62mm 전투소총치고는 지나친 경량화를 추구하다가 총열이 폭발하는 바람에 미군은 결국 그 시대 기준으로도 이미 구시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M14를 채택하고 베트남전을 거치게되면서 결국 다시 소총을 바꿔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 와중에 AR-15를 개발한 아말라이트는 지난번의 실패가 두려워 결국 콜트에 팔아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AR-15가 M-16이란 이름으로 제식채택을 하고 대박을 일으키게 되면서 아말라이트는 제대로 허탈함을 느끼게 되고 AR-18등을 개발하지만 워낙 초대박이었던 탓에 결국 아말라이트는 파산을 맞이하게 되고 게다가 미군의 갑작스런 탄종 변경이라는 통수로 다른 7.62mm 소총을 운용하는 같은 NATO의 유럽국가들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다.[47] 그리고 태생부터 경영에 문제가 있는데다 소총제작 경험에는 전무했다시피한 콜트는 방만한 경영으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1986년에 전국 자동차 노조(United Auto Workers, UAW) 소속이었던 콜트의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조건으로 파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제조능력이 없는 대체인력이 투입되면서 제조 품질이 현저하게 저하된 총기들을 납품하는 초대형 병크를 치고 미군은 군용소총 생산권을 외국계 법인회사인 FN에 넘겨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면서 자부심하면 둘째가로 서러워할 미군의 제식소총을 외국이 만드는 굴욕을 맞이하게 되었다.[48][49] 하지만 이후로 FN은 소총을 최상급의 내구성과 품질로 만들게 되어 덕분에 오늘날 미군은 콜트보다 싼 가격에[50] 최고의 품질을 가진 소총을 쥐게되면서 결과적으로 큰 이득을 얻게 되었다. 밀리터리 역사에서 좀 유명한 나비효과 사례중 하나다.
  • 1970년대에 일어난 오일쇼크 때문에 일본의 급격한 경제성장의 두려움을 느낀 미국 등의 여러 나라에서는 플라자 합의를 진행했고 이 때부터 일본은 경제강국에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있다. 현재는 이 설에 대해서 반론이 존재한다.
  • 1986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150만개의 풍선을 날렸다. 그런데 그 행사 때문에 수 많은 비극을 낳아버렸다.
  • 1987년 일본의 한 동인집단인 DAICON FILM의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오사카에서 도쿄로 상경하여 어떤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바로 해산될 예정이었던 애니 제작사가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 애니의 흥행에 실패를 하는 바람에 산더미로 쌓인 빚을 갚느라 이후 여러 애니메이션들을 만들면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같은 여러 명작들이 탄생하게 되고, 훗날 이 애니 제작사의 영향을 받거나 이 회사의 출신인물들 세운 또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곤조, 스튜디오 카라, 트리거'라는 새로운 애니 제작사를 세우게 된다. 이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정체는 바로 가이낙스. 이 회사가 만든 애니메이션들의 영향력과 파장을 생각해볼때, 만약에 이들이 처음 만든 극장용 애니가 성공하게 된다면 이후의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앞서 언급한 파생회사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51][52]
  • 1995년 미쓰비시 자동차의 미국 지사에서 성희롱 사건이 터졌다. 일본에서 하던 성적 농담과 18금 달력을 직장 내에 걸어놓거나 하는 식의 짓거리를 미국인 여직원들에게도 하다가 300명에게 고소당한 것이다. 이때 소송 금액은 1인당 30만 달러(약 3억)로 피해보상요구금액 총액이 무려 9,000만 달러(2015년 현재 기준으로 약 1000억). 미쓰비시 자동차에서는 '일본 내에서는 그 정도는 관례적인 일이다.'라는 드립을 쳤으나 소송의 나라 미국에서, 더구나 일본 기업이 저지른 여성 성희롱 문제가 그렇게 가볍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나중에는 대선용으로 빌 클린턴 행정부까지 나서고 미쓰비시 자동차에 대한 불매 운동까지 대대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으로 진행되었다. 이 짓을 4년 동안 한 결과 미쓰비시 자동차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결국 3,400만 지불 명령이 나왔으며 미쓰비시 자동차 미국 현지 법인 회장은 사임했다. 일본 내에는 세쿠하라(セクハラ = sex harassment)라는 용어[53]와 함께 AIU 일본 지사는 성희롱 소송 대비 보험을 내놓았으며 유사상품들이 이후 유행하게 되었다. 이런 전개가 한국에도 알려지면서 성희롱이란 단어가 사회적으로 유행하게 되었고 이는 여성가족부의 전신인 여성부를 만드는 핑계거리로 사용된다. 미쓰비시의 소송 시작이 1995년이고, 패소가 확정된 것이 1998년 6월이며, 여성부가 탄생한 것이 미쓰비시의 패소가 확실시 되어가던 1998년 2월이다[54].
  • 2005년 미국의 한 학교에서 한 아이의 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이 사고 때문에 아이를 간병하려 잠시 자신이 안전감독원 다니던 회사를 빠졌고, 그날 그가 다녔던 정유공장에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발생해 14명이 사망하고 국제 유가가 치솟는 사태가 벌어졌다.[55]
  • 2007년, 이 해에는 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가 한 꺼번에 데뷔를 해서[56] 훗날 우리나라에 걸그룹 열풍을 몰게 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같은 해에 데뷔를 할 예정이었던 비운의 걸그룹 오소녀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걸그룹은 재정적인 문제로 데뷔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만약에 이들이 데뷔를 제대로 성공했다면 이 문서를 참조.
  • 2008년, 한미 FTA 관련 쇠고기 통상 협상에서 광우병에 대한 여러 의혹 때문에 2008년 촛불집회가 일어나고 그 여파로 인터넷 여론은 진보좌파와 보수우파 둘로 갈라지게 되었으며[57] 또 이 집회때문에 한 방송사막장화 되는 간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한 여성 코미디언이 이 집회를 비꼰 것 때문에 수 많은 죽음을 초래했다.
  • 2008년에 대한민국의 리듬 게임회사 펜타비전에서 메트로 프로젝트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변수 게등위의 심사 때문에 출시일이 연기가 되어 모든 게 꼬여갔다. 이로 인해 출시된 게임들에는 버그와 렉이 난무했고 이 프로젝트는 훗날 펜타비전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만약에 이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제대로 성공했다면, 야심차게 내놓은 게임기의 특허로 경쟁사 코나미에서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리플렉 비트사운드 볼텍스의 유사성[58]으로 최소한 위기에 빠지거나 잘못하면 표절문제의 시비로 몰락할 여지가 있으며 나중에는 일본의 코나미에서 대한민국 펜타비전으로 리듬게임의 패권을 넘겨받게 되고, 침체되어가던 리듬게임의 장르의 판도가 뒤바뀌어 다시 활성화 될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대다수다.[59]
  • 2010년,[60] 성남고 특급 유격수 박경수에 눈독을 들인 두산은 박경수의 1년 선배이자, 성남고에서 함께 키스톤 콤비를 이루고 있던 2루수 고영민을 먼저 영입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두산은 박경수를 5천만원 차이로 놓치게 되고, 하는 수 없이 차선책으로 노리던 노경은을 1차 지명으로 영입하게 된다.[61] 이 와중에 손시헌은 그 해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고, LG에서 먼저 정식선수로 계약을 제시하였으나 LG는 대형 유격수인 박경수를 키우는데 주력하고 자신에게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여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한다. 같은 해, 두산은 작년에 박경수를 영입하지 못했으므로 내야보강을 위해 나주환김재호를 지명. 나주환은 쏠쏠한 활약을 보이다가 SK로 트레이드되어 주전 유격수로 활약한다. 한편, 손시헌의 친구인 이종욱은 현대 소속이었는데 방출을 당하면서 백수 신세가 되어, 손시헌에게 헬프를 치고, 손시헌의 "발이 빠르고 수비를 잘한다"는 소개로 두산에 입단하게 된다.관련기사 이 사단 이후,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한 고교생 김현수는 신고선수 출신 이종욱의 성공스토리를 보며 그를 따라 두산에 입단하게 된다. 박경수가 LG로 가면서 두산은 KBO 리그 최정상급 교타자, 국대 중견수, 두 명의 국대 유격수, 08년도 국대 2루수, 12-13년도 토종 1선발, 그리고 또다른 뛰어난 유격수를 영입하게 되었다.
  • 전면 무상급식 투표를 했더니... 그 결과가...
  • 2011년 3월 20일, 한 네티즌 수사대서태지의 앨범 사인에 흔적을 찾아내서 서태지의 신비주의가 사리지는 동시에 또 다른 연예인네티즌들이 유일하게 과거를 밝히지 못하는 연예인의 타이틀도 잃어버리게 되면서 연예계가 발칵 뒤집히게 되었다.
  • 슈퍼스타K3가 진행되는 중에 제작진과 갈등을 일으키다 무단이탈 사건을 일으킨 예리밴드는 곧 자진하차 의사를 내비췄고, 그 공석을 메꾸기 위해 한 밴드가 2011년 9월 30일 방송분량에 보결로 추가합격 되었다. 그 후 이 밴드는 준우승을 거뒀고 그들이 가요계에 남긴 영향력은...
  • 2011년 워너브라더스에서는 경쟁사의 MCU에 대항하기 위해 DC코믹스를 토대로 제작한 DCEU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각본이 유출되고 부랴부랴 새 각본을 만들면서 완성을 했지만[62] 평가는 반지닦이라는 혹평이 있을정도로 스토리에도 흥행도 대실패를 하는 바람에 플래시저스티스 리그의 실사영화 계획마저 무산되면서 2년후 맨 오브 스틸을 개봉할 때 까지 DCEU의 계획은 2년동안 늦추었다. 그 와중에 MCU는 토르퍼스트 어벤저, 그리고 올스타 무비 어벤저스를 연속으로 성공시켰는데 DCEU측은 이에 자극을 받아 너무 성급하게 프로젝트를 진행시켰고 정의닦이라는 또다른 재앙을 낳으면서 다시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 배대슈의 실패 때문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그리고 원래는 배대슈와 같이 경쟁해야 했던)[63] 시빌 워가 링 위의 홀로남은 승리자가 되어 졸지에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이 사실상 이런 늦어버린 재시작으로 성급해지면서 정의닦이가 탄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DC의 가장 뼈아픈 패착으로 남은 망작인 셈이다. 그리고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독주체제의 위험성을 나타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2011년 7월 30일, 톰 밀러는 이청용을 태클했고, 그래서... ###
  • 2011년 초반,[64] 미국의 한 수학 시험에 출제된 연산문제 때문에 전 세계 커뮤니티와 수학관련 학계까지 큰 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 2012년 8월 23일 모모이 하루코의 트위터에 자기의 꿈에 관한 트윗에 오프닝 곡 작곡가인 eufonius의 키쿠치 하지메가 하찮다라고 트윗을 남겼고 그 충격으로 모모이 하루코는 이 충격으로 트위터를 중단했다. 당연히 이에 빡친 네티즌들은 키쿠치의 이전 행적을 추적하다가 하트 커넥트 성우 낚시 사건까지 저질렀다는걸 알게되고 또 이 사건을 널리 퍼지게된 계기가 되었다. 더군다나 한달 전 7월에 발생한 치바현 중학생 이지메 자살사건의 충격 때문에 2개월이 지난 9월 초에도 방송에서 연일 이지메에 관한 내용을 방영 중이었고 그런 타이밍에 이 일이 터지는 바람에 이시하라 신타로에게 찍혀서 하마터면 일본 본토에서 성우라는 직업 자체와 더 나아가 애니만화등의 서브컬쳐가 싹 사라질 뻔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잘못된 트인낭 때문에 일본을 대표하던 문화산업을 말아먹을 뻔했던 것이다. [65]
  • 2013년에 2월에 어떤 여성게이머가 내놓은 쓰레기 게임 때문에 북미 인터넷 커뮤니티가 둘로 쪼개지면서 분열된 적도 있었다.
  • 2015년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는 누군가가 위키피디아네버랜드를 번역해서 리그베다 위키에 게재함으로써 발단이 되어 결과적으로 리그베다 위키는 몰락하고 나무위키, 리브레위키, 오리위키, 디시위키 등 각종 위키들이 생기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2015년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참조.[66]
  • 2015년 12월 12일에 인천에서 한 11세 소녀가 가스배관을 타고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탈출해서 주위의 상점으로 가다가 상점 주인이 아이가 음식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과 깡마른 모습을 보고 수상하게 여겨서 음료수와 음식을 주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아버지가 딸을 학대한 충격적인 사건이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소녀의 아버지는 인천으로 이사 가고 난 2학년 1학기 이후에는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게 알려져 결국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 더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아동학대와 관련된 한국 사회의 인식 변화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 2015년 2월 27일에 인터넷에 올라온 한 드레스 사진 때문에 또 다시 전 세계 커뮤니티에서 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 2016년 10월 14일 대도서관윰댕이 게스트 시노자키 아이를 출연시켜 함께 방송했으나 아프리카TV가 시노자키 아이 출연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단 이유로, 컨텐츠 크리에이터 대도서관과 10년차 BJ 윰댕에게 7일 정지를 먹인 일로 불거져 아프리카TV 갑질 논란이 발생하였고 이 논란으로 대도서관과 윰댕은 아프리카TV와 결별 선언하고 유튜브로 이동하였다.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밴쯔, 울산큰고래, 풍월량등 많은 BJ들이 아프리카TV와의 결별 선언하고 타 플랫폼으로 이동하였다. 거기다가 똘킹에 의해 아프리카TV와 타 플랫폼 동시 송출이 금지되었다는게 알려지자 아프리카TV에서 무려 9년 6개월동안 방송을 해왔던 양띵이 아프리카TV와의 결별 선언하고 자신의 멤버들과 함께 동시 송출이 가능한 트위치TV로 이동하였다.

2.2 창작 예시

  • 영화 나비효과는 제목부터가 이 현상에 대한 줄거리로 진행된다.
  • 골 D. 로저가 처형당하기 직전에 이를 지켜보던 군중들 중 한 남자가 보물의 위치를 물었다. 그로 인해 세계는 대해적시대의 막을 올린다.
  • 우미노 이루카우즈마키 나루토를 도와줘서 이 세상을 구했다.
  • 제리드 메사카미유 비단에게 여자이름 같다고 놀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창작물에서 대표가 되는 나비효과의 예시다.
  • 블랙옵스2에서 큰 활약을 한 어떤 군인이 있다. 하지만 그의 작지만 큰 실수 때문에 세상은 오히려 지옥이 되어버렸다.
  • 한 고등학생이 같은 반 여학생에게 관심을 받게 되고 멋진 남자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멋져지기 위해 처음 구입한 패딩이 짝퉁이라는게 밝혀지면서 놀림감이 되고 만다. 그 후 패딩을 태워버리며 반드시 멋져지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리고 그 계기로 그 고등학생의 인생이 꼬이게 된다.
  • 어떤 여학생은 어린 시절에 자기가 애지중지 기른 닭을 부모에 의해 잡아먹는 바람에 이것때문에 초등학교 5학년 때에 "키우던 닭 잡어먹은 애"라고 놀림을 받아 눈이 사시로 변했고 따돌림은 중학교까지 지속되어서 결국 탈선을 하게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비록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가정환경이 여간 막장이 아니기 때문에 탈선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는 없다.)
  • 영화에서도 대표적인 나비효과가 있는데 MCU에서 토니 스타크와 적대적인 오베디아 스탠은 이전부터 그 동안 불법 밀거래로 텐링즈에게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무기를 팔았다. 하지만 정작 욕은 토니 스타크가 전부 먹어야 했었고 스탠이 팔았던 무기중에서 소코비아 까지 퍼져서 막시모프 남매가 불발탄에 적힌 "스타크 인더스트리"라는 문구를 보고 토니에게 원한을 갖게 된다.[67] 그 복수 과정에서 스칼렛 위치는 토니 스타크에게 환각을 보여줘 울트론을 만들게 되는 간접적 계기를 제공했으며, 이로 인해 탄생한 울트론으로 인해 어벤저스가 붕괴 직전까지 가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 울트론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한 남자복수를 위한 음모를 계획해서 어벤저스가 해체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오베디아 스탠이야 말로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시작과 더 나아가 시빌 워까지 일으키게 되는 되는 만악의 근원인 셈이다.
  • MCU에서 또 하나의 나비효과도 있는데 우주종족인 크리 족의 일부 급진파가 몇몇 행성에서 전쟁에 사용될 생물병기를 만들었는데 그 중 지구에서만 성공을 했는데 이 실험체들이 바로 인휴먼스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중에서 다른 인휴먼들보다 더 강력하지만 동시에 실패작이기도 한 인휴먼도 만들어졌는데 이 인휴먼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결국 모노리스로 추방을 했지만,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수의 세력이 그를 데려오기 위해 바로 하이드라를 설립하게 된다.
  •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에서 지구 집정 연합이 처음 상륙한 곳에 가스가 없었다. 그래서 어찌 해야 할지 몰랐던 와중에 사미르 듀란이라는 연합 소속 중위가 가스 기지 제공으로 원정함대에 가입한다. 이후 행적은 사미르 듀란에밀 나루드 항목 참고. 모르는 위키러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자원이 없는 곳에 착륙한 것 때문에 온 우주가 위험에 빠졌다. 창작물에서 제법 유명하면서도 찾기 힘든 나비효과의 예시.
  • 심심한 마왕에서 마계의 마왕 베르제뷔트는 단지 심심하다는 이유로 중간계의 공주를 납치하였는데, 이 사건의 여파로 세계관의 모든 단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이 커졌다.
  •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에선 대놓고 나비효과와 관련된 게임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실제로 나비때문에 소용돌이가 생겨버렸다.
  • 한 강도가 어떤 를 상대로 강도질을 하면서 살해했다. 덕분에 그 부부의 아들전설로 각성하게 되었다.
  •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대표적인 나비효과도 있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자기 자신만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몰래 탁자에다 황금사과를 놓고는 가버렸다. 그리고 그 황금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새겨져있고 이는 이 대립을 하면서 나중에 어떤 큰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 히어로메이커의 대부분의 개그신은 이것과 관련이 있다.
  • 개구리 중사 케로로 애니메이션 판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케로로가 돌뿌리에 넘어진 덕분에 지구 자기장 변화 등의 수많은 우연을 거쳐서 우연의 산물인 포탈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 내용이 무슨 에피소드 인지 추가바람.

2.2.1 시간여행으로 인한 창작물 속 나비 효과

나비효과는 시간여행을 절대 해선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로도 손꼽히는데, 해당 문서에 있는 예시들 중 하나로 조금 억지스럽긴 해도 이런 게 있다.

  • 제1차 세계대전 중, 시간여행자가 남긴 발자국을 발견한 연합군 지휘관이 생각했다. "내가 아침에 낯선 발자국을 봤는데, 생각해보니까 보병 하나 죽어도 전세는 안 바뀌는 거 같아. 그러니 소규모 공습을 한 번 더 벌여볼까?" 그리하여 독일군 방어선을 지키던 병사 아돌프 히틀러는 전사했다.[68] 아니 이건 시간여행을 해야 되는 이유잖아[69] 사실 스탈린이 그 후 2차 대전을 일으켰다.
  • 백 투 더 퓨쳐 2에서 마티 맥플라이2015년으로 와 1950년대부터 현재(2015년)까지의 스포츠 우승 기록이 담긴 잡지를 사지만 브라운 박사가 잘못하면 역사가 뒤바뀐다며 잡지를 버린다. 하지만 이를 몰래 엿들은 노인 비프 태넌이 몰래 드로리안을 타고 1955년의 자신에게 잡지를 준다. 잡지를 받은 비프 태넌은 모든 토토에서 우승하기 시작하고 돈을 끌어모으면서 로비를 통해 모든 도박을 합법화 하고 정치계에 까지 손을 데고 힐스 베리가 마계로 바뀐다.
  • 티미의 못말리는 수호천사에서 티미 터너가 실수로 아빠가 받은 마라톤 우승 트로피를 녹여버렸고,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우승을 못하게 하면 트로피 자체가" 없어지니 없는 일이 된다." 는 정신 나간 생각을 해낸뒤 과거로 가서 아빠의 우승을 막는다. 문제는 아빠가 마라톤에서 꼴찌를 하면서 강제로 독재자 양성 학교로 끌려가고 결국 티미가 사는 마을이 독재자가 된 아빠가 지배하는 곳으로 바뀐다.

3 기타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렇고, 인류 역사는 지금까지 거창한 뭔가가 엄청난 시대의 격변을 몰고 왔던 것이 아니라, 정말로 별 볼일 없는 사건 하나, 사소한 계기 하나가 한 국가의 존망을 뒤엎고 수 억 명의 운명을 결정지었으며 유지 되어왔던 거대한 체제를 허물거나, 역사에 길이 남을 발견이나 발명을 해내거나, 새로운 시대를 도래시켜왔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건담 세계관 본국 멸망 1등공신
  1. 영상의 작화는 Kaizo Trap과 같은 작가인 Guy Collins Animation이고 제목답게 사람들 표정이 죄다 Rage Guy이다. 참고로 영상 속 배경은 11초 쯤에 나오는데, 1933년 → 2012년. 그리고 마지막에 신 위에 있는 특수효과를 클릭하면...
  2. 대충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선거 결과가 나온다. → 중생대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 여행사의 프로그램을 실제 상황으로 착각해서 넘어가면 안 되는 선을 넘어가서 땅을 밟게 된다.→ 이 상황에서 원래 시대로 귀환 → 변한 게 없어서 그냥저냥 있는데 선거결과가 변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왜 그런가 고민하다가 보니 흙을 밟은 신발에 나비 한마리가 붙어 있더라. 라는 짧은 단편이다.
  3. 혈통부터가 독일계인데다가 유년기에 부친을 잃고 집안이 몰락해서 여기저기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프리드리히 대왕이 거둬줘서 12세까지 베를린 근처 포츠담 궁정에서 살게 되었다.
  4. 이 때 국수주의 성향이 얼마나 강했는지 이중에는 프랑스어의 r 발음까지 라틴어 방식으로 바꾸자는 복고운동이 일어났다.
  5. 후술할 사라예보 사건 때문에 터진 제 1차 세계 대전의 근본적인 원인이 '과도하게 팽창되어 있던 유럽 자체'라는 것을 생각해볼때 애초에 새로 급부상한 신흥 강대국인 독일제국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런 제국주의의 과도한 경쟁자체부터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비스마르크는 어디까지나 자국의 번영과 무엇보다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세력 균형을 주도했지만 그의 결정적인 또 다른 실수는 훗날 예상치 못한 변수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6. 특히 이 제1차 세계대전이 제2차 보불전쟁이라는 표현이 있을정도였고 앙리 필리프 페탱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제3차 보불전쟁으로 여겼다. #
  7. 단 이 선언자체는 1차 대전이 일어나는 와중인 1917년에 발표되었다. 문제는 영국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가지고 여기저기에 사기행각을 벌려서 문제를 더 꼬여버렸다는 점이다.
  8. 게다가 이 협정만 아니었어면 못해도 여러국가들의 피해가 줄어들거나 잘하면 제 2차 세계대전 자체까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9. 그런데 사실 앞에 나온 전쟁은 훈련중에, 한 병사가 설사로 인해 볼일 보러 다른 곳으로 잠깐 나가는 바람에 일어난 것이다.
  10. 이 때문에 주세페 장가라가 바로 그 해에 이제 막 집권을 하기 시작한 나치당에서 위험인물로 판단되는 루스벨트를 미리 암살하기 위해 보낸 스파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11. 원래는 1945년 8월 20일로 예정되었다.
  12. 본방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현장 스케치 과정 또는 다음 팟 생방송 녹화영상 캡쳐본으로 보인다.
  13. 엄밀히 말하면 쯔위에 대한 관심이 높은 대만 언론이 해당 사진을 신문지상에 보도하였으며, 애국적 행위를 했다는 뉘앙스의 기사로 활용된 것이다.
  14. 이 오보사건이 워낙 기가 막혀서인지, 누군가 배후에서 고의적으로 일으켰다는 음모론도 있는데 흔히 크게 좌파/소련설과 우파/미국설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15. 특히 이 사태의 여파로 먼 훗날에 신상털이등의 주요 원인이 되는 주민등록번호가 탄생하게 되고, 7~80년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련실습이 실시되었으며, 군사쪽에서는 예비군5분대기조, 육군3사관학교등이 창설하게 되었다.
  16. 그런데 사실 외국어 학습의 문제는 (주변국의 유사한 언어특성이 없는) 한국어의 언어계통학적인 고립어 특성과, 일본의 문법 번역식 교수법이 더 큰 원인이다. 그런데 결국 문법 번역식 교수법도 그것대로 일제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17. 게다가 이 과정의 여파로 고등학생 계층의 반발을 막아내기 위해 야간자율학습까지 탄생하게 된다.
  18. 이는 급속성장 시기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도 그 때 개발도상국이였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많이 터진 것이었다.
  19.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일제의 잔재로 남겨진 주입식 교육과 전두환이 만든 야간자율학습때문에 막장화된 입시위주교육의 환경이다.
  20. 여담으로 좀비왕이 연재하고 있는 좀비왕 게임 일상에 따르면 이런 암울한 현실과 치열한 경쟁사회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대한민국 게임에서 지나친 캐시템과 현질이 난무하는데에 한 몫을 했다 주장되었다. #
  21. 신기하게도 세 가지 나비효과 모두 다 근본적인 원인은 있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모두 엉뚱한 데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애초에 나비효과의 개념이 바로 이런 생각하지 못한 사소한 요소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걸 감안해도 이 큰 하나의 흐름에 세 가지 모두 엉뚱한 계기로 연달아 일어난다.
  22. 1996년 창립된 한국 최초의 초고속인터넷 통신망이다. 그러니까 이 작자는 두루넷이 처음 탄생할 때부터 분란을 저질렀다는 경악스러운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23. 사실 이 악플러의 추종자들은 1996년 두루넷 시절부터 존재했다. 게시글을 도배하는데에 추종자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설이 나돌 정도다.
  24. 포지션으로 대응하며 따지면 막장화의 계기를 준 워너브라더스가 씨벌교황이고 최종적인 잘못을 저지른 아타리가 김유식인 격이다.
  25. 요약하자면 막갤코갤야갤일베메갈(안티테제, 미러링)
  26. 심지어 2ch4chan이 막장화 된 것도 씨벌교황의 개입이 있었다는 음모론급 가설이 있다. (특히 4chan을 대표하는 b 게시판의 설립과정에도 씨벌교황이 관여했다는 음모론도 있다.) 이와 관련지어서 그가 이간질로 저질렀다고 알려진 갑신왜란 때문에 넷 우익세력이 좀 더 일찍 출몰했고 2011년 이후의 일본 우경화와 더 나아가 위안부 협상의 이상하리만큼 순조로운 타결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가설까지 있다. #
  27. 이 악플러가 쓴 글 중에 만나면 안되는 여친에 대한 내용도 있다.
  28. 안 그래도 이전부터 질이 썩 좋지는 않았던 네이버 뉴스의 여론이 야갤러의 유입으로 완전히 진흙탕이 되어버렸다.
  29. 자세한 것은 이 링크들을 참조 ##
  30.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의 음주운전도 식스맨 사태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한다. 차라리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도덕적인 본보기로 길을 하차시키는 일이 없다면 (그러나 얼마 뒤에 일으킨 병크때문에 이런 조치가 무의미하게 되었지만) 설마 노홍철이 음주운전을 하더라도 얼마동안 자숙하다가 복귀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식스맨 프로젝트 자체도 계획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31. 그런데 일부에서는 홍철아 장가가자 특집이 본의 아니게 여혐을 조장했다고 해서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이 특집과 연관을 지어서 장윤정의 어머니가 장윤정 친족 재산탕진 논란이 재앙의 근본적인 씨앗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등장했다.
  32. 참고로 여기서 장동민 논란과 레바 논란 사이의 연계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네티즌들이 있는데, 사실 레바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이 사건에 대한 논란은 이미 과열되었다.#
  33. 만약 노홍철이 음주운전을 하지만 않았어도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유영철 연쇄 살인 사건이나 조두순 사건, 아니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흑산도 집단 성폭행 사건과 비슷하게 되었을 것이다.
  34. 이 사건 때문에 웹툰 갤러리는 발칵 뒤집어 '구 웹갤'과 '신 웹갤'로 나뉘어지고 구 웹갤 출신의 갤러들은 뷰티풀 군바리 마이너 갤러리로 이주하게 된다.
  35. 일부 디시 유저들이 이런 희한한 상황에 대한 원인의 분석글을 썼다. ## 슬픈 이야기지만, 이 사건을 들먹이며 오타쿠왕따를 배척해야한다면서 학교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부 악질들도 등장했다.
  36. 게다가 2010년대 초창기에 유행했던 숫자 4의미상징도 2010년대 중반기에 바뀌게 되었다.
  37. 이를 두고 대한민국의 문화부터 정치까지 전체가 다시 보수화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를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디시인사이드의 어떤 갤러가 노홍철이 혹시 새누리당 프락치가 아니냐는 농담성이 짙은 추측도 했다.
  38. 덕분에 트위터등에서 "노홍철음주운전을 하지 않은 평행세계세계선궁금하다"라는 의견이 꽤나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후진 하나가 대한민국 전체를 바꿔버린 셈이다.
  39. 현재는 블라인드 처리로 더 이상 영상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영상에서는 어째서인지 강남역 시위 충돌 사건이 빠져있다. 아마도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사건에 치중한 듯 하다.
  40. 나는 월급 350만원을 받는 34세 과장인데 20세 신입 여직원을 마음에 들어서 고백을 하려고 하는데 어떨 것 같냐.
  41. 정작 그 글의 반응은 당연히 부정적이었고 게다가 야짤을 그리던 디시 유저는 미애갤이 본진이었다.
  42. 다만 초 작가가 평소에 트위터를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이 예상은 장담하기 어렵다.
  43. 다만 성추행은 엄연한 성범죄이니 처벌은 당연하다
  44. 전술했다시피 2ch4chan의 탄생에 씨벌교황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있다는 음모론이 있다.
  45. 오죽했으면 이 금주법이 아니었다면 마피아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을정도다.
  46. 정확한 년도는 추가바람.
  47. 게다가 이 과정에서 M60이 탄약 호환성의 불일치로 보급면에서 피해를 입게 되었고 20세기를 대표했던 최악의 소총인 SA80의 탄생에 크게 일조를 하게 되었다.
  48. 더 재미있는건 처음에 M14가 제식채용하기 직전에 최종적으로 FN의 FAL과 경합을 벌였는데 당시 미군은 "왜 미군이 외국산 소총을 사용해야만 되냐?"라고 반박을 했었다.
  49. 이후에 2012년에 M4A1생산권을 두고 자국 회사인 콜트레밍턴 두 회사가 경합을 벌이게 되었는데 콜트가 방해공작을 하는 바람에 콜트는 생산권 박탈 및 추가생산 금지 조치를 받고 결과는 엉뚱하게도 최종 생산권은 FN이 쥐게 되었다. 덕분에 레밍턴은 단단히 화를 내면서 콜트에게 소송을 하게 되었다. # 그만큼 미군이 FN을 크게 신뢰하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일 수도 있다.
  50. 콜트가 제시한 납품가가 1,200달러인 반면 FN이 제시한 납품가는 642달러.
  51. 그러나 최근에 밝혀진 이야기에 따르면, 왕립우주군의 감독이자 현 가이낙스의 대표이사인 야마가 히로유키는 왕립우주군 제작 과정에서 생긴 빚보다 제작에 관여한 스태프들 중 일부가 아무리 작품이 성공을 해도 해산을 하면 다른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없어질까봐 그대로 존속하는 것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국판 뉴타입에서 밝힌 바 있다.
  52. 왕립우주군이 끝난 후 사무실에 모였는데 스탭들이 다음달은 어떡할까요? 라고 물어와서 우리 해산하는거 아니었어? 라고 되물었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고 당시의 사장 오카다 토시오는 회상했다.
  53. 이 때문에 일본에서 저 용어는 광의의 성추행이나 성희롱이라는 의미보다는 직장 내 상사에 의한 성희롱이란 협의로 주로 사용된다.
  54. 97년에 IMF 사건이 터지고,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정부구상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IMF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도 여기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55. 출처: 사상 최악의 참사.
  56. 단 카라는 2년 후에 뜨게 된다.
  57. 그 중에 네이버가 보수진영쪽에 들어가는 바람에 이때 부터 검색어 조작 순위 의혹에 휘말리게 되고 나중에는 오늘의 유머가 N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간접적인 계기가 된다.
  58. 리플렉 비트는 테크니카와의 유사성으로, 사운드 볼텍스는 DJMAX Portable 3리믹스 모드의 유사성으로. 단 이 두 게임은 정확히 말하자면 펜타비전에게 특허권을 구입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특허괴물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던 코나미는 특허 영향력이 약화되었으며, 그 만큼 펜타비전이 우세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59. 오죽하면 이 프로젝트의 실패에 크게 안타까워 하는 일부 유저들은 만약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성공했다면 2010년대 초중반 부터 나올 리듬게임들이 2000년대 후반에 더 일찍 나왔을 것이라며 한탄했다.
  60. 정확한 년도는 추가바람.
  61. 이 영입 과정이 말이 많은데, 당시 LG에서 "두산 제시액 받고 5천 더"를 제시했다고 한다... 요컨대, 두산의 영입을 깨고 영입한 것.
  62. 그러나 최근에 나온 DCEU의 영화들의 평가를 볼 때 각본유출이 문제점이 아니라 스토리 전개와 개연성과 원작파괴 등의 문제 때문이라는 얘기가 떠오르고 있다.
  63. 한국 기준으로 시빌 워가 4월 27일에 개봉하자 마자 배대슈가 바로 박스오피스에서 두 달된 영화처럼 사라져버렸다.
  64. 일부 언론에서는 4월 12일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65. 문제는 4년 후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트인낭으로 거의 비슷한 재앙이 진짜로 일어나버렸다.
  66. 게다가 이 사태로 위키 갤러리가 설립되고 이 과정에서 나무위키와 디시인사이드 사이의 큰 대립이 생겨 결국엔 디시쪽에서 좆무위키라는 비칭까지 생겼다.
  67. 정작 그 폭탄에 당한 피해자는 토니 스타크 본인도 포함된다.
  68. 정확히 말하자면 슐리펜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운 좋게 살아남은 영국 장군이 공격을 계속해서 히틀러가 죽을 수도 있는 가정이다.
  69. 허나 오히려 히틀러가 죽으면 더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역설을 제기한 네티즌의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