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현재의 예명은 屍忌蛇('시이쟈'라고 읽는다).
일본의 기타리스트, AV배우, 망나니이자 키보드 워리어, 그리고 알콜 중독자. 본명은 쿠로이와 야스시(黒岩 靖).
일명 일본의 마이클 쉥커, 알콜중독 아저씨로 불린다.
트위터 : [1] - 그래도 술 안 먹었을 때 만큼은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뭐라고? 가끔씩 올라오는 일상 사진만은 정상적인 편.
2 경력
1993년, 메탈 밴드 Gargoyle(가고일)[1]로 메이저 데뷔. 차세대 일본 메탈계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나 얼마 안 가 탈퇴한다.
이후 인디즈, 세션, 기타 레슨 등을 전전했으며[2] 그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계기는 1997년 ANIMETAL 프로젝트 참가. 이때부터 주목받는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2002년까지 애니메탈에서 활동했으며, 애니메탈 휴식기에는 VOLCANO[3]를 재결성하여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7년 자신의 밴드인 VATHOKIJA(바소키야)를 재결성해서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활동중이며, 2013년에는 애니메탈에서 함께했던 사카모토 에이조와 함께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메탈로 편곡하는 프로젝트 '아이센시(哀旋士)'를 결성해 앨범 한 장과 싱글 한 장을 발매했다.
3 애니메탈 탈퇴와 그 전말
2002년, 시이쟈가 애니메탈을 탈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그 후임으로 차세대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던 가르네리우스의 syu가 가입했다.
그런데…
4년 후인 2006년 12월 28일, 시이쟈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애니메탈의 프로듀서 히사타케 요리마사가 syu와 짜고 자신을 내쳤다는 내용의 근거 없는 글을 올린다.
TV에서 히사타케가 나올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 죽어라 히사타케.가르네리우스 따위가 뭔데? syu? 그놈에게는 화가 치밀거든?
이렇게 히사타케 요리마사와 syu를 직접 거론하며 욕설 섞인 비난까지 퍼부었다.
시이쟈는 그 실력과 별개로, 주사가 심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라이브 직전에 술을 마시고 취해서 연주를 망치거나, 인터넷에서 팬들에게 "비판은 2ch에서나 하라"고 욕을 퍼붓는 건 예사였다. 평소에는 그나마 친절한 편인데 술 마시면 남 욕밖에 할 줄 모른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기피대상이 되어갔다.
심지어 레코드사가 주최한 디너 파티에서까지 만취해서 난동을 부리고, 주사 때문에 시이쟈 개인의 사생활뿐 아니라 프로젝트도 엉망이 되기 시작하자 프로듀서인 히사타케 요리마사가 참다 못해 그를 해고한 것.[4]
결국 히사타케와는 완전히 원수지간이 되었고, 별 상관도 없었던 후배인 syu와도 사이가 틀어졌다. 아직도 시이쟈는 히사타케를 씹고 다니며, 이는 고스란히 그에게 악재가 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히사타케 요리마사는 사이가 나빠진 후에도 시이쟈가 소속된 밴드의 프로듀스를 맡아, 업계의 프로페셔널로 불리고 있다.
4 술버릇
심한 주사 때문에 애니메탈에서도 해고당하고, 그 후에도 자기 커리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다.
시이쟈의 주사는 예전보다도 오히려 심해진 것 같다.
아래는 대표적인 일화.
- 만취상태에서 트위터에 사이퍼(D'ERLANGER)를 욕했다.
- 만취상태에서 키츠타카 후미히코(근육소녀대)에게 "사내놈이 술도 못 마시고… 내가 훨씬 기타 잘 친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참고로 키츠타카 후미히코가 한 살 연상.
- 만취상태에서 선배 기타리스트 요코제키 아츠시[6]에게 "플레이에 화려함이 없다"고 비난했다. 후에 요코제키 아츠시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는 비주얼계 애송이, 애니메탈의 기타리스트, 가고일의 전 기타리스트, 볼케이노의 기타리스트, 쿠로이와 쉥커다"라며 시이쟈를 대차게 까버렸다.[7]
- 만취상태에서 세이키마츠의 기타리스트 루크 타카무라에게 "내가 이 놈에게 기타를 가르쳤는데 아직도 서투르다"고 비난헸다. 루크가 두 살 연상.
- 만취상태에서 온묘자에게 "너네는 코믹밴드일 뿐"이라고 폭언했다.
- 만취상태에서 후배인 Hiro(La'cryma Christi)를 걷어차 목뼈를 부러뜨릴 뻔했다.
- 만취상태에서 교제중이던 여성의 알몸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다.
- 만취상태에서 다른 밴드의 팬을 아줌마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렸다.
만취상태에서 까도 까도 끝이 없다. 이쯤 되면 술 탓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
5 AV 출연
2010년에 갑자기 AV배우로 데뷔해서 팬들을 경악시킨다.
그러나 별로 화제도 되지 않았고 얼마 팔리지도 않았다고 하니 그저 안습.
6 아이센시
2013년 사카모토 에이조와 아이센시를 결성하였는데, 하필 이런 인간과 팀을 만드냐며 사카모토 에이조에게 비난이 폭주하자 결국 사카모토 에이조가 트위터를 탈퇴한다. 시이쟈의 행동은 아이센시 초반부터 민폐였던 것.
일본 록/메탈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시이쟈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에이조에게 자파메탈 관계자와 팬들이 실망했다는 반응을 드러내고 극단적으로는 역적 취급까지 하는 등, 아이센시 하나 때문에 사카모토 에이조의 커리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아이센시의 드럼 세션에 ANTHEM의 드러머인 혼마 히로츠구도 참가했는데, 이런 행보에 'ANTHEM에 집중하지 않는 개인 활동으로도 모자라 이제 팀까지 깨려고 드냐'고 생각한 시미즈 아키오와의 갈등이 커져서 감정대립으로 이어졌다고. 결국 리더인 시바타 나오토와도 문제가 생겨 탈퇴에 이른다.
그래도 애니메탈 오리지날 멤버 두 명이, 다시 한번 애수의 선율을 연주하고 아니메송을 세계에 전하기 위해 손을 잡은 것까진 좋았으나… 애니메이션 곡을 메탈로 연주한다는 컨텐츠 자체가 이미 한물 간 상황이라 나쁜 쪽으로만 화제가 되었고, 심지어 에이조의 팬이 가장 많은 남미에서까지 음반 반품 요청이 나오는 초 악재.
아이센시 프로젝트로 인해 사카모토 에이조는 자파메탈 계열에서 반쯤 내쫒긴 상황이라, 다시 자파메탈계에서 그를 보기는 힘들 듯하다. 시이쟈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센시는 이제 겨우 앨범 한 장 싱글 한 장 냈는데 벌써 흑역사가 되어가는 중.
7 금주 선언
2014년 4월 25일 소주를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하게도 못 믿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며, 금주 선언이 아니라 소주는 마시진 않아도 맥주는 마시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해 5월 2일, 정확히 1주일 만에 소주를 안 마신다는 선언을 철회했다.개가 똥을 끊지.
8 평가
술버릇과 성격은 너무 더럽지만, 기타 실력은 무척이나 좋다. 그래서 일본의 마이클 쉥커나 쿠로이와 쉥커라는 별명이 꽤 유명하다. 깁슨 플라잉브이를 애용하고,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지고 있다. 마이클 쉥커가 인기있는 일본에서는 플라잉브이도 매우 인기가 좋다. 이 기타를 메인으로 쓰는 기타리스트가 매우 많다. 근육소녀대 키츠타카 후미히코도 대표적인 플라잉브이 사용자이며, 타카사키 아키라도 LAZY에서 몸담았을 때는 플라잉브이를 사용했다. 애수를 느끼게 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멜로디컬한 프레이즈가 특징. 기타 실력은 정말로 좋지만, 그 술버릇이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 1987년에 결성됨. 초기 비주얼계로 분류되기도 하나, 닌겐이스(人間椅子) 등과 함께 '화풍(일본풍) 메탈'의 선구자로 불리는 밴드다. 이 화풍 메탈의 다음 세대가 바로 온묘자.
- ↑ 대략 1993년~1997년 사이로 추정되는 이 시기는 일본 메탈 암흑기(정확히는 1990년대 거의 전체)로 불리는 시기로, 수많은 메이저 그룹들이 해체하는 등 헤비메탈 그룹들이 대놓고 외면당하던 시대였다.(라이브 하우스마저도 헤비메탈 밴드라고 하면 바로 쫓아보냈다고 한다.) 이 지옥같았던 메탈 암흑기를 끝낸 그룹 중 하나가 바로 애니메탈.(다른 하나는 섹스 머신건즈)
- ↑ 1994년에 결성한 밴드.
- ↑ 이후 히사타케는 자신이 출연한 방송 '헤비메타 씨(ヘビメタさん)'에서, "술에 취한 채로 헤비메탈 연주는 불가능하고, 록스타가 공연중에 마시는 위스키 병에는 홍차가 들어있다."고 발언하며 시이쟈를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 ↑ 켈리 사이먼즈는 이전부터 비싼 레슨비나 기타 강매 등으로 제자들을 등쳐먹는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직접 거론하면서 비난하는 것은 경솔한 처사. 원문은 俺が日本のギタリストで嫌いな奴、島、しゅう、ケリー、大村、全員イングヴェィキッズ、死ね(내가 일본 기타리스트 중에서 싫어하는 놈은, 시마 노리후미, syu, 켈리 사이먼즈, 오오무라 타카요시. 모두 잉베이 키즈. 죽어). 순전히 잉베이 말름스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기타리스트를 부정적으로 보는 자신의 개인적 취향 때문에, 잉베이에게 영향받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죽으라는 악담을 퍼부었다.
- ↑ 1983년 메이저 데뷔 이후, 풍부한 상상력이 가미된 연주와 화려한 프레이즈로 '제트 핑거'라는 별명을 얻은 슈퍼 기타리스트.
- ↑ 예전 버전에는 비주얼계 애송이가 X JAPAN의 Yoshiki를 의미한다는 둥 엉뚱한 서술이 붙어있었으나 전부 시이쟈를 의미하는 것이 맞다. 비주얼계라는 명칭이 생긴것은 후대의 일이지만, 현대에는 비쥬얼계의 의미가 확장되어 정통 헤비메탈 밴드였던 44매그넘(1977년 데뷔) 정도까지 비주얼계로 지칭하기도 한다. 애초에 항목 대문의 사진부터 보라.
- ↑ 타카사키 아키라 항목을 보면 알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꽤 유명한 주먹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대드니까 저런 망신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