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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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대 모든 일본 걸그룹들의 롤모델. 전설

1 개요

일본1990년대를 풍미했던 4인조 아이돌 그룹.
멤버는 이마이 에리코, 아라카키 히토에, 우에하라 타카코, 시마부쿠로 히로코.[1]

멤버 전원이 오키나와 출신이라는 특징이 있다. 2011년 현재까지 1,963만 장이라는 경이적인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준높은 댄스 실력과 보컬 히로와 에리코의 뛰어난 고음과 가창력.R&B와 힙합을 기반으로 J-POP을 믹스시킨 악곡. 또래에게 어필하는 공감할 수있는 가사등으로 크게 히트를 쳤다. 실제로 남성팬보다도 또래팬들. 특히 여학생팬들이 굉장히 많았다. 특히 히로와 에리코의 가창력은 요즘으로 치면 아이유의 3단 고음 수준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크게 주목 받았다. 둘다 고음을 크게 내지르는 창법이다 보니 마치 서로 경쟁하는 듯한 모습처럼 느껴졌고, 이 때문에 스피드의 해체 원인은 둘의 경쟁심리와 불화가 아니었냐? 라는 루머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물론 재결성과 둘만의 유닛까지 나오는 현재엔 완전히 부정된 루머. 노래에도 둘의 이러한 관계가 반영되어 'Body & Soul'의 클라이막스 후반부에서는 정말로 서로 경쟁하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도 하였다.

2 활동

2.1 결성과 데뷔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의 최정예 학생들을 모아놓은 일종의 특별반인 BBWAVES.

본래 아무로 나미에, MAX 등을 배출한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 출신의 7명으로 구성되었던 팀으로 본래 팀명은 'BRAND-NEW KIDS'. SPEED의 전 멤버들은 데뷔전부터 그 쟁쟁하기로 손꼽히는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의 최정예 그룹. 일명 BBWAVES[2] 라는 그룹에 속했던걸로 알려져 있다.[3]

당시 인기 티비프로그램이었던 THE요루모힛빠레.(영상은 데뷔이후의 모습이다.)

그러나 데뷔전에 3명이 탈퇴를 하였고, 최종적으로 4명만이 데뷔를 하게 된다.[4] 정식데뷔이전에 이 당시 인기 심야프로그램 이었던 'THE 요루모힛빠레' 라는 프로그램에 1995년 11월 11일 처음 등장. 12월 2일에 그룹명을 공모받는 다는 소식을 알렸다. 참고로 이 당시 '류큐 걸즈'. '허브와 몽구스', '오키나와 챠키챠키 무스메'(...) 같은 괴랄한 닉네임이 추천되기도 했는데,[5] 거의 유일하게 괜찮은 이름이었던 SPEED를 골랐다고.

그렇게 4명의 소녀들은 1996년 8월 5일 이지치 히로마사[6]가 프로듀싱한 'Body & Soul' 싱글로 데뷔한다. 그리고 데뷔와 함께 인기를 끌어서, 당시 일본 여성 아이돌씬의 암흑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2 전성기

이후 STEADY, Go! Go! heaven를 차례대로 발표하고 모조리 밀리언셀러를 돌파하며 대성공을 거둔다. 3번째 싱글인 Go! Go! heaven은 SPEED이 첫 오리콘 주간 챠트 1위를 한 곡으로 선배인 B'z의 마츠모토 타카히로가 이 노래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심지어 97년 자신의 무대의 라이브 제목으로 인용도 했을정도.

일본 도쿄 오다이바 야외 공연장에서 열린 스피드의 첫 라이브 공연.

이듬해 5월. 1집 Starting over를 발매한다. 이 앨범은 레코드협회 기준 25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것으로 여겨지며, 골드 인증을 받았다. 워낙 싱글들이 대히트를 했기때문에 판매에도 호조. 도쿄 오다이바에서 치뤄진 야외공연은 무려 2만여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 티켓 판매 개시 1시간만에 매진되는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1997.12.23. Pop Jam에서의 White love 라이브

뮤직스테이션 스페셜 라이브에서 처음 선보인 Christmas Stand 버젼. 웅장한 현악 편곡이 특징으로 원곡 못지않게 인기가 많은 버전이다.

그리고 97년 10월 15일. 스피드 불후의 명곡으로 통하는 'White Love'가 발매된다. 무려 2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이 노래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 해 최고의 히트곡으로 지금도 겨울하면 떠오르는 캐롤송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 노래로 처음 홍백가합전에 출전도 하고 지금도 Body & Soul과 함께 스피드의 메들리에 꼭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로 들어갈정도로 인기가 많다. 지금도 각종 앙케이트지에서 '겨울에 듣고 싶은 캐롤송은?' 이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하면 반드시 열 손가락 안에는 무조건 드는 일본의 대표적인 겨울 명곡.

일본의 대표적인 졸업시즌송인 my graduation.

기세를 이어가 98년에 발표한 my graduation 역시 큰 인기를 누리며 승승장구. 일본의 대표적인 졸업송으로 꼽히며 많은 학교에서는 졸업식 시즌이 다가오면 길거리에서 쉽게 들을수 있는 곡으로 졸업합창으로도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곡이다. SPEED의 대표적인 앵콜곡으로 평소 조용히 경청하는 걸로 유명한 일본 관객들조차 이 노래가 나오면 단체로 후렴구를 합창하는걸로 유명. 여담으로 멤버들이 싱글자켓과 PV에서 걸고 나온 목걸이가 이뻐서 어디제품이냐고 묻는 전화가 쇄도 했다고 한다. 사실은 SPEED의 코디가 자체제작한 아이템으로 팬클럽 한정으로 판매했다고. [7]

98년 4월에 발매한 2집앨범 RISE는 최초 출하량만 300만장이 넘어 신문에서도 다뤄질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집계된 판매량만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 큰 반향을 일으켰다. 7월에는 싱글 ALIVE를 발매. 이 곡으로 그해 일본 레코드 대상에도 출전하고, 132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덧붙여 3연속 밀리언 셀러 싱글.

SPEED 최초 돔투어.

ALIVE의 발매에 맞춰 7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되었던 전국 투어는 도쿄돔을 포함한 일본의 4개의 돔을 투어하면서 걸그룹 유일, 최초 돔투어, 최연소 4대돔 순회 공연 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또한 이 콘서트를 통해 20회차 공연에 30만명 동원이라는 대성공을 거두며 승승장구 한다. 여담으로 최연소 돔투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는 커리어이며, 걸그룹 유일 돔투어 성공은 한 동안 깨지지 않다가 AKB48가 돔투어를 성공한 그제서야 겨우 깨졌다.

10월에 발매한 ALL MY TRUE LOVE는 자신의 최고 초동 기록. 거기에 스피드는 출하량과 판매량 양쪽 모두 4싱글 연속 밀리언 셀러라는 진기록을 세운다.어째 뭐만 하면 다 기록이 되는 느낌이다. 마이더스의 손?? 12월에 발매한 베스트 앨범 'MOMENT' 는 그룹 자체 최고 초동, 누계 판매량을 기록. 첫주에만 125만장이 넘는 판매고에 231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한다.[8] 그야말로 스피드 최전성기이자 정점.

2.3 판매량 하락, 개인활동의 시작

2월과 5월에는 Preious Time와 Breakin' out to the morning을 발표. 처음으로 다카코와 히토에의 파트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때부터 판매량이 60만장대로 확 꺾이기 시작. 순위도 조금씩 밀려나 주간2위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다만 객관적으로 성적과 인기가 나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실제로 두 곡은 각각 그 해 연간차트 32위, 36위로 그 당시 결코 나쁜 인기가 아니었다. 다만 이전 성적들이 너무 좋아서 상대적으로 더 낮아보이는 느낌이 많이 든다.

99년부터는 각자 개인활동을 시작한다. 사실 ALL MY TRUE LOVE때도 메인보컬 두명의 솔로곡이 수록되어 있었고, 라이브로도 선보인바 있어 개인활동 수순이 예상되고는 있기는 했다. 멤버들이 각자 드라마, 영화에 출연하거나 솔로데뷔를 하는 등 개인활동도 활발. 그룹뿐만 아니라 솔로활동 역시 많은 지지를 받았다. 히로, 다카코, 에리코는 높은 판매량과 나온 싱글들도 나름대로 히트하였고 히토에는 R&B/힙합 성격의 'Inori'로 활동하면서 매니아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단, 다카코는 솔로활동 초기에 부실한 보컬/라이브 실력이 드러나기도 하였다[9].

2.4 그룹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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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돌연 해산을 발표한다. 소속사 사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실은 SPEED 자체가 솔로 데뷔하기엔 어린 멤버들을 위한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이었고, 다만 생각보다 그룹이 초대박이 나는 바람에 오히려 더 길게 활동하게 된것이라고 한다. 본래는 1997년 즈음엔 이듬해 해산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이미 최전성기였던 2집시절부터 멤버들간의 그룹해산이 논의되고 있었으며, 해산발표 한달전쯤 가서야 결정이 되었다고. [10]

갑작스러운 해산이라 많은 추측들이 난무했다 가장 많은 추측은 멤버간의 불화설이었는데 그룹내 메인보컬이었던 시마부쿠로 히로코와 이마이 에리코 간의 불화설이 가장 많은 의혹을 샀다. 메인보컬이 두명이다 보니 파트배분문제에 있어 서로 갈등이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 하지만 몇년뒤 이벤트성 싱글을 내기도 하고 콘서트 투어도 여는 모습을 보아 이런 의혹을 믿는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게다가 요즘엔 둘이 유닛싱글도 내는데 불화일리가(...)

11월에는 아키히토 일왕 즉위 10년 기념식에 초청되어 참석한다. 각계 각층에서 공로와 활약을 인정받은 이들이 초청되었으며, 연예인으로는 우리에게도 알려진 아무로 나미에. 쿠로키 히토미, GLAY 같은 유명인들과 함께 자리에 초청되는 영광을 얻었다. 참고로 여가수중에서는 아무로 나미에SPEED가 유일하게 초청받았으며, SPEED는 전체 참석자 중에서 최연소 참석자였다고.

SPEED의 마지막 돔투어

연말에는 스피드의 마지막 돔투어를 개최하고, 3집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을 마무리 한다.[11] 홍백가합전에도 출전하였는데, 그 당시 스피드 해체 소식 등과 맞물려 화제성이 높았다. 덕분에 홍백 1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해산 바로 직전, 에리코가 가장 늦게 솔로데뷔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3월 31일 정식으로 해산하게 되었다. .

2.5 해산 이후

히토에는 TLC같은 본토 흑인풍 블랙뮤직을 선보였던 그룹때의 모습을 이어갔고 히로는 Coco d´Or 라는 명의로 발매한 팝,재즈 풍의 편집 음반이 히트 하는등 보컬리스트 로써의 역량을 한껏 보여줬다. 특히 히토에는 첫 솔로싱글인 inori와 두번째 싱글인 I got you때 완전히 다른사람 수준으로 보컬이 급성장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히토에는 첫 싱글 이후 미국 유학 등으로 공백기가 상당히 길었고, 좋은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음반판매량은 매우 저조했다. 활동량도 매우 적어서,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음악방송이나 단독투어 등도 없었다. 우에하라 타카코는 도망자 Plan.B에도 출연했었다.

2.6 재결성, 현재

2008년 거의 10년만에 재결성하여 솔로 활동과 병행하며 활동했다. 그러나 2013년에 아라카키 히토에가 결혼하면서 소속사와의 계약을 종료한 사실이 이듬해 밝혀졌고 , 이마이 에리코와 시마부쿠로 히로코가 "히토에가 없는 SPEED의 부활은 있을 수 없다"라고 공언하면서 SPEED는 다시 한 번 해체한 셈이 됐다. 다만 소속사에서는 공식적으로 해체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2015년 7월 소속사에서 멤버인 히로와 에리코가 'ERIHIRO'라는 이름의 유닛을 결성할 것을 발표하였다. 8월 26일에 발매된 데뷔 싱글의 제목은 'Stars'. 이미 전성기를 훨씬 지난 그룹이다보니 챠트성적이나 판매량은 굉장히 저조했지만 팬들도 그렇고 본인들도 계속적으로 음악활동을 한다는것에 의미를 두고 있기에 개의치 않는 모습.

3 멤버

3.1 아라카키 히토에 (新垣仁絵)

SPEED의 리더이자 댄스, 코러스 담당. 1981년 4월 7일생으로 최연장자이다.
SPEED 멤버 중에서 춤 실력이 가장 출중하다. SPEED 해체시에 다른 멤버들처럼 솔로활동도 했지만, 연예계 활동보다는 미국에서 유학하며 미술 쪽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방송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고 전시회도 연 적이 있다.
SNS는 다른 멤버들에 비하면 잘 안 하는 편이다. 한때 HITOE 명의로 트위터를 했었으나 닫은 적도 있었다.
2013년에 일반인과 결혼하면서 연예계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얼마 후 트위터도 다시 열었다.

3.2 우에하라 타카코 (上原多香子)

코러스, 댄스 담당 멤버. 그룹의 비주얼과 엉뚱함을 책임졌다. 1983년 1월 14일생으로 에리코와 동갑이지만 빠른년생이다.
SPEED 해체 직전에 멤버들이 각자 솔로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녀도 솔로 가수로 데뷔했었다. 초기에는 카와무라 류이치가 프로듀싱하여 달달하고 소녀다운 러브송을 주로 불렀으나, 부족한 가창력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했다. SPEED 해체 이후에 프로듀서를 바꾸고 계속 솔로활동을 했으나, 드라마, 연극, CF 방면의 활동에 더욱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2012년 3월 힙합그룹 ET-KING의 멤버 TENN과 약혼, 같은 해 8월에 결혼했다. 그러나 2년 뒤인 2014년 9월에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로부터 한동안 일체의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가[12], 2015년 10월에 무대 활동을 재개하며 연예계에 복귀했다.

3.3 이마이 에리코 (今井絵里子)

메인보컬. 1983년 9월 22일생.
1999년 Eriko with Crunch 명의로 솔로활동을 시작했고, SPEED 해체 이후에는 본명으로 활동했다. 2000년대에는 파워풀한 댄스음악 위주의 음반을 주로 내놓았으나, 2010년대에는 다소 말랑말랑한 음악을 내놓았다.
2004년에 175R의 보컬 쇼고와 속도위반 결혼, 몇 달 후 득남했다. 지금은 쇼고와 이혼하고 아들과 단둘이 사는 중. 다만 전남편과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지 가끔 만나곤 한다. 아들은 청각장애인으로 이 때문에 에리코는 수화를 배웠으며, 수화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히로코와 ERIHIRO라는 이름의 듀엣을 결성하여, 데뷔싱글 Stars를 발매하였다.

3.3.1 정치 활동

2016년 2월 9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마이 에리코가 일본 자민당의 여름 참의원 선거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된 것이 발표되었다. 청각장애인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이자 인기있던 연예인으로서, 자민당의 이미지 쇄신과 오키나와 표심을 잡는데에 적격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당선되더라도 가수활동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현지 팬들은 실망스럽고 충격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데뷔 20주년 완전체 컴백은 안드로메다로 그보다 오키나와 출신이라면서 왜 중도우파 정당에....



입후보 의견 표명 영상. 과연 연예인 출신 아니랄까봐 수화를 곁들이는 놀라운 퍼포먼스력을 보여주었다.

보수 언론사인 산케이신문에서는 '오키나와에서 죽을 쒀온 자민당의 구세주가 될 것인가'라는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당내에서는 이마이 에리코의 집표력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시선도 있는데, SPEED의 전성기를 체감한 2~30대의 투표율이 낮기 때문이란다.

이마이 에리코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남성이 불법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남성은 업소를 캬바쿠라라고 말했지만, 실제 종업원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 성행위까지도 갔다고. 출마를 선언한 에리코를 겨냥한 기사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선거에서 자민당 비례대표로 당선이 확정,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다.

3.4 시마부쿠로 히로코 (島袋寛子)

메인보컬. 1984년생으로 팀에서 막내다. 데뷔했을 때 무려 초등학교 6학년. 나이대비 짬밥이 아역 출신 배우급 생일은 히토에와 같은 4월 7일이다.
99년 hiro 명의로 솔로활동을 시작했다. 에리코와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SPEED의 프로듀서 이지치 히로마사가 곡을 제공했으나, 점점 하야마 히로아키[13] 등 다른 제작자의 곡도 제공받기 시작했다. Coco d'Or라는 프로젝트 그룹 명의로 재즈 리메이크 음반을 내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13년에는 코자 미사코의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한 싱글 童神(와라비가미)와, 여러 오키나와 출신 가수들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앨범 私のオキナワ(나의 오키나와)를 내기도 했다. 현재는 뮤지컬 위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에리코와 함께 ERIHIRO를 결성했다. 하지만 에리코가 정계진출에 성공하면 에리히로의 미래는...

4 이야기거리

  • 일본 가요계에서 정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SPEED 앞에선 모닝구 무스메, 퍼퓸, AKB48닥치고 고개부터 숙인다. 단순히 대선배라서가 아니라, 현재 메이저 걸그룹의 멤버 다수가 SPEED를 동경해 연예계에 입문한 사람들이다. 퍼퓸같은 경우만 해도 결성동기가 'SPEED'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서였다.[14] 다들 SPEED와 방송이라도 같이 출연하면 팬심을 주체 못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 한 예로, 시마부쿠로 히로코를 동경하던 AKB48의 전 멤버 카사이 토모미는 솔로 데뷔 당시 시마부쿠로가 축하의 편지를 써 주자 기쁨에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영상 링크
  • 최고 인기곡이자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곡 'White Love'는 지금도 겨울을 대표하는 J-POP 명곡으로 손꼽힌다.
  • 댄스 가수 지망생들에게는 가장 대표적인 동경의 대상으로 2011년 현재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Perfume은 원래 SPEED를 동경해서 연예계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신들도 SPEED처럼 아이돌이긴 한데 아티스트같기도 한 절묘한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 원래 SPEED 데뷔시에 당시 유행하는 유로비트팝에 카우보이 모자 치마의상을 입고 데뷔할려고 했으나, SPEED의 멤버가 TLC의 광팬이었기 때문에 프로듀서에게 이런 그룹이 되고 싶다라고 해서 스트릿 패션, 힙합의상의 댄스그룹으로 데뷔한 팀이다.
  • 일본에서는 SPEED 해체이후로 한동안 SPEED의 아류격인 그룹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하지만 대부분 이렇다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후로 몇년간은 '춤과 노래에 능한 소녀' 컨셉의 가수는 한동안 등장하지 않았다가[15], 00년대초반 보아가 그 빈자리를 적절히 파고들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1세대 걸그룹들에게도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친 그룹. 지금은 흔한 얼굴마담/춤담당/메인보컬/리드보컬 구성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실제로 티티마를 비롯한 몇몇 그룹들은 아예 대놓고 스피드를 표방했음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수만 사장은 과거 S.E.S. 제작 과정에서 일본과 미국의 유수 걸그룹들을 벤치마킹 하였다.고 밝힌적도 있고, 대다수 이들은 일본의 걸그룹 중 SPEED를 벤치마킹 한게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S.E.S.는 일본진출 당시 일본기획사측의 주도로 '한국의 SPEED'라는 표제를 달고 진출하기도. 물론 아시다시피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16]
  • 한국 최대의 연예 커뮤니티 베스티즈가 원래 이 그룹의 팬사이트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재 베티에 있었던 SPEED 팬들은 멀티레모니아 등으로 옮겨갔지만 현재는 그 사이트도 잠정 중단. 이미 연차가 오래된 걸그룹이고 본국에서도 활동이 뜸한 그룹이라 AKB48같이 현세대에 핫한 걸그룹들 처럼 활발히 팬활동을 하는 이들은 없다.

4.1 싱글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수록 앨범비고
1996.08.05Body & Soul4위637,880장Starting Over
1996.11.18STEADY2위1,278,660장
1997.03.26Go! Go! Heaven1위664,940장
1997.08.06Wake Me UP!2위671,280장RISE
1997.10.15White Love1위1,844,790장[18]
1998.02.18my graduation1위1,474,700장
1998.07.01ALIVE1위965,000장MOMENT
1998.10.28ALL MY TRUE LOVE1위1,221,090장
1999.02.17Precious Time[19]2위622,580장Carry On my way
1999.05.19Breaking' out to the morning2위579,680장
1999.11.03Long Way Home2위613,360장
2001.12.12ONE MORE DREAM5위136,310장미수록일시 재결성
2003.08.27Be My Love2위126,147장BRIDGE
2003.11.27Walking In The Rain
/Stars To Shine Again
13위29,378장리컷 싱글
2008.11.12あしたの空3위75,223장SPEEDLAND
2009.05.27S.P.D.8위28,900장4 Colors
2010.04.21ヒマワリ-Growing Sunflower-9위20,630장
2010.09.01指環10위14,757장
2010.11.10Let's Heat Up!15위13,778장
2011.08.10リトルダンサー18위10,498장

4.2 앨범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비고
1997.05.21Starting Over1위1,925,500장
1998.04.29RISE1위2,048,270장
1999.12.22Carry On my way1위884,980장
2003.11.27BRIDGE9위98,242장
2012.11.144 Colors16위9,343장

4.3 베스트 앨범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비고
1998.12.16MOMENT1위2,318,970장
2000.03.29Dear Friends 14위505,610장
2000.03.29Dear Friends 23위522,470장
2009.08.05SPEEDLAND -The Premium Best Re Tracks-2위107,307장리메이크 앨범
  1. 메인보컬은 이마이, 시마부쿠로 둘이 맡았고, 댄스와 코러스 담당은 우에하라와 아라카키가 맡았다.
  2. Beautiful Beat Waves의 약자로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비트의 물결이 세상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3. 이 그룹에는 지금들어봐도 유명한 연예인들이 굉장히 많다. 현재도 배우로 활발히 활동하는 야마다 유, 쿠로키 메이사를 비롯, DA PUMP, day after tomorrow의 보컬이자 코다 쿠미의 동생인 코다 미소노. SKE48의 멤버인 사이토 마키코 등이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대표적인 BBWAVES 출신들.
  4. 참고로 이 당시 탈퇴했던 3명중에 한명은 '센다 아이'라는 연예인으로 현재 대만과 일본에서 연예계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5. 멤버들이 전부 오키나와 출신이다. 그래서 거의 반장난식으로 추천하는 닉네임이 많았다고
  6. 일본의 유명 음악 프로듀서이다.
  7. 참고로 원래 이 곡으로 그 해 일본 레코드 대상에 출전할 예정이었는데, 당일날 자신들의 주연영화 주제가였던 ALIVE로 선곡을 바꿨다고 한다.
  8. 오리콘 기준
  9. 사실상 다카코는 비주얼 담당 멤버였기 때문에, 가수로서보다는 배우 겸 모델로서 활동이 더 활발했다.
  10. 여담으로 주간지 FOCUS의 보도에 의하면 직접적인 원인은 시마부쿠로 히로코의 남자 관계라고 하는데, 일본 주간지의 신뢰도는...
  11. 스피드의 싱글/앨범 통틀어 마지막 주간1위 작품
  12. 연예계 활동은 물론 이듬해 6월까지 블로그와 SNS도 접었다.
  13. 주로 w-inds 등 아이돌 그룹에 곡을 제공하던 송라이터. 3인조 유닛 Tourbillon의 리더이기도 하다.
  14. 한국도 비슷한 예가 많다. 90년대 중후반의 이른바 1세대 아이돌의 팬이었다가 이후 2-3세대 아이돌로 데뷔한다던지.
  15. 이같은 아이돌 침체기를 '아이돌 빙하기'라고 한다. 그 침체기에 모닝구 무스메1999년 LOVEマシーン으로 일약 대박을 터뜨린다. 하지만 실력은...
  16.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 최신 유행곡들을 가수들이 나와 직접 부르는 '요루모 힛빠레'라는 프로의 단골 게스트로 자주 나왔었다. SPEED와 듀엣도 하고 모닝구 무스메, MAX같은 당시 잘나가던 타 가수들의 여러히트곡들을 부르기도 하였다.
  17. 일본위키가 출처인듯 보이나 정민철의 일본진출시기는 스피드 해체후인 2000년이므로 신뢰도는 낮다. 다만 97년말부터 몇년동안 대전지역 케이블 방송에서 채널V나 Vibe(MTV Japan)를 송출하였으므로 일본진출전 스피드의 PV를 손쉽게 접할 여지는 있었다.
  18. 역대 일본 여자 아이돌 싱글 판매량 1위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나 2013년 AKB48さよならクロール로 인해 깨졌다. 하지만 AKB48의 경우 악수회로 인한 판매가 대부분일뿐더러 기록을 깼던 さよならクロール의 경우 총선거 투표권 싱글이다...
  19. 수록곡인 季節がいく時가 1999년에 개봉한 도라에몽 극장판인 노비타의 우주표류기 엔딩곡으로 타이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