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상가 FC

(교토 상가에서 넘어옴)
?width=220 (2017 참가구단)
나고야쇼난후쿠오카에히메오카야마기후
오이타미토지바사누키야마가타야마구치
구마모토교토군마도쿄 베르디나가사키도쿠시마
50px
마쓰모토요코하마 FC마치다가나자와
교토 상가 FC
Kyoto Sanga FC
정식 명칭京都サンガFC
Kyoto Sanga Football Club
창단1922년
소속리그일본 J2리그
구단 형태기업구단
모기업교세라, 닌텐도, 와코루
연고지교토부 (京都府)
홈 구장니시쿄고쿠 육상경기장 (Nishikyogoku Athletic Stadium)
(20,389명 수용)
구단주이마이 히로시 (Imai Hiroshi)
감독와다 마사히로 (Wada Masahiro)
애칭Sanga
공식 홈페이지[1]

1 개요

1922년에 설립된 교토 시코 사커 클럽(京都紫光サッカークラ, Kyoto Shiko Soccer Club)이 전신이다, 1993년에 일반 공모에서 교토 퍼플 상가(상가(サンガ)는 산스크리트어의 "sangha"에서 온 말로 동료라는 뜻이다. 불교 도시 교토를 상징한다.)라는 이름이 채택되었다. 프로화 후 1996년에 J리그에 가입하였다. 2007년에 현재의 클럽 이름이 되는 교토 상가 FC로 개칭하였다. 운영 회사는 주식회사 교토 퍼플 상가이다.
연고지는 2010년 8월까지는 교토부 교토 1개 시만 포함하였다. 2010년 8 월부터 우지시, 죠요시, 무코시, 나가오카쿄시, 교타나베시의 5개 시로 확대되었다. 2012년 4월부터 기즈가와시가 연고지에 추가되었다. 또한, 죠요시 등으로 광역화 될 때 클럽 측은 '더 연고지 축구붐을 활성화시키려면 경기장이 있는 교토와 클럽하우스가 있는 죠요시를 포함 교토부 남부 마을의 연계가 필수'라고 말하고 있다.
홈구장은 교토 니시쿄고쿠 육상경기장이다. 클럽 마스코트는 1995년에 탄생한 파서 군과 2003년에 탄생한 여자친구 코토 짱이며, 모두 「봉황」과 「불사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2 우승

3 역사

1995년 JFL 준우승으로 1부리그로 처음 승격하였다. 하지만 2000년 15위로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박지성 선수의 활약으로 1년만에 1부리그로 복귀하였으나 2003년 16위를 기록하며 다시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2005년 2부리그 우승으로 1부리그로 복귀하였지만 1년만에 18위로 강등 당하였고, 2007년 리그 교체전으로 재승격을 이뤘으나 2010년 17위로 다시 2부리그로 강등당하였다. 2012년 승격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오이타 트리니타에 패하며 승격이 좌절되었다.

4 2013 시즌

슬로건을 필승(必昇, 반드시 승격하자)으로 잡고, J2리그 3위를 기록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준결승에서 6위를 차지한 V-바렌 나가사키에 0:0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무승부규정에 따라 리그성적이 상위였으므로 결승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도쿠시마 보르티스에게 0:2로 패하며 1부리그 승격이 좌절되었다.

5 여담

과거 이 팀을 거친 유명 선수로 고종수, 박지성, 최용수, 곽태휘, 황대성, 오승훈이 있다. 특히 박지성은 2001년 J2리그에서 팀을 우승시키고 1부리그로 올려놓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2002년 1부리그에 올라와서는 일왕배에서 소속팀을 우승시키며 팀의 최전성기를 열었다. 박지성은 축구 팬들이 잘 아는 대로, 2003년 1월에 네덜란드에서 거스 히딩크가 감독을 하던 PSV 아인트호벤으로의 이적이 확정된 상태임은 물론 2002년 말을 끝으로 계약 기간이 끝난 상태였지만 2003년 1월 1일 열린 결승전을 무보수(!)로 뛰어 1-0으로 뒤지던 팀의 동점골을 넣고 역전골을 어시스트하여 우승을 이끌어내 교토 팬들의 영웅이 되었고, 물론 경기 이후에 구단에서 급료를 지급했으며 보너스도 두둑히 챙겨주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진출하고 아시아 최고의 선수가 되어서도 교토의 자랑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구단 측에서는 박지성은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와도 받아준다고 했을 정도이다. 또 과거에 이 팀에서 뛰었던 오승훈은 2013년 5월 월간 MVP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90년대 한국 유명 선수의 J리그 진출 붐이 있을 때 그 희한한 이름이 널리 알려져서 많은 동네 축구 팀들이 요상한 이름을 짓는 데 한 몫 하기도 했다. 가령 'FC ㅇㅇ동 중심상가'라든가...

2015년 시즌 김남일황진성이 뛰게 되었다. 김남일은 지도자 자격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이적했다고 한다. # 박지성의 첫 프로 팀인데 김남일에게는 선수 커리어 마지막 팀이 되었다.[1]

그 후 2015년 8월 황진성이 파지아노 오카야마를 거쳐 성남 FC로 떠났고, 2015 시즌이 끝난 후에는 김남일이 계약 만료로 떠난 대신 이용재가 이 팀에 오게 되었다.

  1. 박지성은 명지대 졸업 후 교토에서 프로 데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