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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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권준헌(權準憲)
생년월일1971년 12월 1일(음력)
출신지서울특별시 금천구
학력백산초-신월중-광영고
포지션3루수, 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0년 태평양 돌핀스 연습생
소속팀태평양 돌핀스(1990~1995)
현대 유니콘스(1996~2003)
한화 이글스(2004~2008)

1 개요

한국프로야구 선수로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한 야구 선수. 태평양 돌핀스 최후의 3할 타자이자, 현대 유니콘스 전성기의 준수한 셋업맨이었다. 그러니까 한국프로야구 역사에서 흔치 않은 야수에서 투수로 전향에 성공한 선수라는 사실. 타율 3할과 10세이브를 유일하게 이뤄 낸 선수였다. 진실 야구천재 3할과 10승은 김성한이 했지만 이쪽은 권준헌이 처음이고 앞으로도 달성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서 오타니 쇼헤이가 10세이브를 달성한다면 어떨까?

2 선수 생활

2.1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시절

그가 졸업한 광영고등학교는 1986년에 창단해서 1994년에 해체할 때까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팀이었다. 권준헌은 모든 대학과 프로 팀에서 외면당한 탓에 1990년 광영고 졸업과 함께 태평양 돌핀스연습생으로 입단했다.[1] 이대로 사라질 뻔했던 권준헌은 2군에서 구르고 구른 끝에 1992년부터 1군 무대 백업으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내밀기 시작했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백업 선수로 뛰던 권준헌은 1995년에 처음으로 주전 3루수 자리를 차지하여 110경기에 출전해 0.306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태평양의 중심 타자로 도약했다. 타선이 징그러울 정도로 약했던 태평양은 3할 타자 자체가 희귀했는데, 1995년을 끝으로 태평양이 현대에 인수되어 사라지면서 이 해 유일하게 팀 내 3할 타자였던 권준헌은 최후의 태평양 3할 타자로 이름을 남겼다. 1995년의 맹활약 속에 홍현우가 사고를 치면서 빈 올스타 자리에 선발되기도 했지만, 그날 컨디션이 미쳤던 올스타전 MVP 정경훈에 밀려 출전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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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돌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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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찾아보기 힘든 그의 타자시절

그러나 타자로서의 전성기는 1군 경기에 가장 많이 출장했던 1995년이 마지막이었다. 애당초 수비가 썩 좋지 않았던[2] 권준헌은 1996년 소속팀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뀐 첫 시즌에 김원형의 투구에 손가락을 맞아 손가락이 부러지면서 그나마 낫던 공격력마저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타율 0.206을 기록한 후 1997년부터는 준주전으로 내려갔고, 1998년 외국인 3루수 스캇 쿨바가 입단한 후에는 아예 백업으로 완전히 밀렸다. 그래도 1998년 한국시리즈에 대타로 나와서 우승 반지는 끼웠다. 여기에 손가락과 팔 부상을 당해 야수로서의 가치가 바닥이 된 상황에서, 그간 권준헌의 강한 어깨를 눈여겨본 코치진의 제안으로 1999 시즌 종료 후 투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구단은 권준헌이 투수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3년간 그의 연봉을 동결시켜 줬다.

2.2 투수 전향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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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전향 후 첫 시즌이었던 2000년에는 1군 3경기에 등판하여 승패 없이 평균자책 10.13으로 별 실적이 없었지만, 2001년 계투로서 1군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1년 1군 32경기에 등판하여 2승 2패 4홀드 평균자책 3.43으로 준수한 출발을 한 권준헌은 2002년 평균자책 3.05, 5승 2패 1세이브 12홀드로 조용준 앞의 셋업맨으로 역할을 다 했다. 2003년에는 그간의 활약을 더해 평균자책 3.19 8승 4패 9세이브 10홀드로 조용준이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는 마무리로서 제 역할을 다 했고, 조용준이 돌아왔을 때는 필승 셋업맨으로 신철인과 함께 현대의 막강한 불펜을 만들면서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 투수와 타자로서 모두 우승 반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최고구속 150km/h대를 뿌리는[3] 강한 속구와 슬라이더의 단순한 투피치 투수였지만, 애당초 마무리 투수에게는 다양한 구종보다는 위력적인 1~2가지의 구종이 더 유용하다는 점을 볼 때 권준헌은 분명 매력적인 투수였고, 상대적으로 늦은 투수 전향은 오히려 어깨가 싱싱하다는 장점으로 비춰졌다.[4] 2000년 이후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구대성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해 애를 먹고 있던 한화 이글스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코치진과 불화가 있고, 부상으로 당해 시즌을 망쳤던 송지만과 1:1 맞트레이드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2.3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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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2004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여 팀의 마무리로 활약하면서[5] 평균자책 2.11에 17세이브를 기록할 때만 해도, 비록 송지만이 현대로 건너가서 20홈런을 넘게 치면서 살아나기는 했지만 한화의 입장에서 권준헌의 영입은 전혀 아깝지 않은 장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2004 시즌 종료 후 2005년 6월에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투수 권준헌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팔꿈치 부상으로 2005년을 통째로 날린 후, 수술의 후유증으로 인해 역대 최고의 투고타저 시즌이었던 2006년에 평균자책 5점대로 부진했던 것이다.

다행히 2006년 시즌 후 계약기간 2년에 옵션을 포함하여 총액 5억 원에 FA 계약을 맺고 한화 이글스에 잔류하였다. 2007년중간계투 자리에서 1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다시 살아나는가 싶었지만, 김인식 감독 하에서의 무리한 등판으로 인해 다시 부상을 입으면서 전력에서 이탈했고 결국 2008년을 끝으로 한화에서 방출당하며 은퇴하기에 이르렀다. 한화 시절에 그가 남긴 인상이라고는 공두오라는 참으로 안습한 전과뿐이다. 현대 시절의 활약은 이 영 좋지 못했던 한화 시절의 모습으로 인해 묻히고 말았다.

3 여담

나이스게임TV 캐스터인 김의중이 대학교 때 권준헌과 친했다고 한다. 본인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PC방에 모델 후배와 자주 와서 디아블로를 했는데, 항상 와서 20만원어치씩 음식을 시켜 먹고, 야구를 좋아하던 PC방 사장에게 고가의 야구 장비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연락을 안 한다고.

현재는 인천에서 사회인야구 강습을 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 2013년에는 한 사회인 야구팀에서 타자로 출전하기도 하였다 #

4 연도별 주요 성적

  • 타격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삼진병살타장타율
1990태평양 돌핀스540.00000000000100.000
1991780.12511001000100.250
1992461020.2652761111101000.373
1993471350.222306031313253860.333
1994541110.297337011514183230.387
19951103950.3061211636344014186390.408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삼진병살타장타율
1996현대 유니콘스842530.20652130223154234450.281
1997752120.24552702251911935130.307
199825500.26013212108141110.460
199922520.173910057261000.192
KBO 통산(10시즌)47513220.256338595171271272584235370.346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0현대 유니콘스35⅓00000.00010.1310224862.063
20013244⅔22040.5003.43394162918171.209
2002396252112
(3위)
0.7143.05694174422211.371
20036693849100.6673.19859276737331.161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4한화 이글스3542⅔111710.5002.11342132410101.102
20051군 기록 없음
20063742⅓111120.5005.10415123224241.252
20072327⅓21110.6671.98244917861.171
200832⅓00000.0003.863001111.286
KBO 통산(9시즌)238319⅔191129400.6333.3230530962181281181.229
  1. 반면 그의 광영고 동기인 김한수최동수는 나란히 중앙대학교로 진학했고, 뒤에 각각 삼성LG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게 된다.
  2. 전지훈련에서 상대하는 외국 팀 코치들이 권준헌의 송구를 보면서 모두 어떤 선수인지 물었지만, 공을 잡는 자세를 보고는 다시는 선수에 대해 묻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3. 한화 시절 팔꿈치 수술 이후에도 최고 153km/h까지 뿌렸을 정도로 강견을 타고났다.
  4. 사실 이건 잘못된 상식인데, 투수와 타자는 주로 쓰는 근육이 달라 부상의 위험이 크다. 후술되는 바와 같이 실제로 권준헌은 이후 부상으로 신음하다 결국 은퇴하게 된다.
  5. 당시 한화는 구대성일본에서 뛰던 시절이었고, 마무리 투수 문제가 심각했다. 결국 38세의 고령인 송진우가 선발, 마무리 투잡을 뛰는 상황이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