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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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신철인(申喆仁 / Chul-in Shin)
생년월일1977년 5월 22일
국적대한민국
출신학교청원초 - 청원중 - 경동고 - 제주관광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0년 드래프트 2차 10라운드 전체 76번
소속팀현대 유니콘스(2000~2007)
넥센 히어로즈(2008~2010)

1 소개

현대 유니콘스에서 2000년대 한 시대를 풍미한 중간 계투 투수이다. 별명은 철인 23호. 그의 이름과 등번호를 합성하자 근사한 별명이 나왔다.[1][2]

지금은 종속이론이 개소리란게 왠만한 야구팬들에게 다 알려졌지만, 한창 종속이론이 지배할 때[3] 종속이 좋다는 소리를 들었던 투수이다. 정확히 설명하면 빠른 공이 일반적인 투수에 비해 낙차폭이 적은, 즉 종무브먼트가 우수한 투수였다.

빠른 공의 무브먼트가 매우 좋았던 덕에 130km 후반까지 구속이 떨어졌음에도 k/9는 끝까지 9를 넘겼던 투수이다.

혹사도 많이 당한 편이다. 2001년 무려 6연투를 했다.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경동고등학교 재학 시절만 해도 실책을 남발하는 3루수에 불과했다. 2학년 겨울 방학때 허리를 다쳐 유급을 하여 고등학교를 4년째 다니고 있었음에도 그는 어떠한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하였다. 감독은 그에게 투수 전향을 권유하였고, 5일 후청룡기 첫 경기 선발로 나서 2피안타 완봉승을 거뒀고, 그 후 준결승전에서도 7이닝 2실점으로 막고 승리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오라는 대학과 프로 팀이 아무 곳도 없었고, 삼성과 현대에 연습생 신청을 했지만 그것도 다 떨어졌다. 해태 타이거즈에 연습생으로 겨우 입단하였지만 배팅볼만 던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 2년제 전문대학인 제주관광대학 감독에게 입학 제의가 왔고, 그는 제주특별자치도로 건너간다.

그 후 기량이 발전하여 전국 체전에서 145km/h가 넘는 속구를 던지며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 프로 선수 시절

그러나, 175cm/75kg이라는 빈약한 신체조건 때문인지 현대 유니콘스에 2000년 2차 10라운드(전체 77순위) 지명을 받아 순위도 거의 맨아래급... 그래도 계약금 2,000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입단하였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경동고등학교 시절에 비하면 상당히 나아졌지만 후순위로 지명을 받은 탓에 아직도 미지수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전지훈련부터 빼어난 빠른 공과 슬라이더를 앞세워 코치진의 신임을 받더니, 입단 첫 해인 2000년 5월 19일 스코어 16:2로 현대가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데뷔 첫 등판을 하였고, 3이닝 7탈삼진으로 생애 첫 등판에서 세이브를 올렸다. 그 후에도 그 해 91승을 올린 막강 현대 유니콘스에서 임시 선발과 필승 계투를 오가는 스윙맨 역할을 하면서 31경기 75.2이닝 6승 4패 1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4.28이란 성적을 남겼다. 과거 현대 신고선수 테스트에서도 떨어지고, 어찌어찌 하위픽으로 겨우 입단했다만, 첫해부터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우승반지까지 낀걸보면, 이 선수가 어떤활약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안그래도 해태 수뇌부들이 신철인에게 빅 엿 먹이려다가 오히려 된 통 당했다. ㅉㅉ

그리고 2001년부터는 완전히 계투로 자리잡으면서 맹활약했다. 2001년 필승조에서 뛰다가 주전 마무리 위재영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마무리로 전환, 대신 그가 마무리로 나올 때는 뒤에 있는 송신영이나 권준헌이 셋업으로 받쳐주었다. 57경기 96.1이닝 6승 6패 13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점 2.80을 기록하였다. 그는 팀 내 연봉 고과 1위 투수가 됐다.

하지만 주전 마무리로 낙점되나 싶었던 2002년에 그는 등판할 때마다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입단한 조용준이 엄청난 활약을 하면서 주전 마무리를 조용준에게 뺏겼다. 대신 패전처리 계투로서 제 몫을 했다. 원래 마무리는 베라스 라는 용병을 뽑았는데 막상 개막 시작 후 인데... 주무기가 없고 맨날 직구만 주구장창 던지다가 6세이브라도 건졌지 나오는 날 탈탈 털리면서 방어율이 8점대 까지 솟아오르는 먹튀 행각을 보여줬다 2군도 안뛴다고 해서 바로 프런트가 퇴출했다. 이 후 조용준이 신인상을 탓지만 이 혹사로 인해 이듬해 조용준이 성적이 나빠졌지만 반대로 신철인은 다시 좋은 성적을 보여줬다. 근데 또 이듬해는 조용준이 돌아오니 신철인이 망가졌다. 이쯤되면 극과극이 통하지 않는가 보다.

2003년에도 개막 엔트리에서도 빠지는 등 위기를 겪었으나 그 후 필승조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 52경기 76.1이닝 3승 2패 1세이브 10홀드, 평균자책점 3.07을 기록하였다.[4][5]

문제는 팔꿈치였다. 여러 차례 팔꿈치 부상을 당하면서 2004년에도 시즌 후반기에 복귀했으며 2005년에 사실상 시즌 아웃되었다.

부상을 어느정도 회복한 2006년에 박준수의 앞에서 셋업맨 역할을 하며 전성기를 맞게 된다.


신철인의 활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상.

65경기에 등판하여 77이닝을 소화했고, 2승 3패 1세이브 17홀드, 방어율 2.22를 기록하였다. 2006년 때 신철인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는데, 당시 현대 유니콘스 불펜에서 중요한 시점에 항상 나오는 '소방수' 역할을 했었다. 2006년 시즌 현대 유니콘스가 정규 시즌 2위[6] 이끄는데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한 셈.

그런 활약을 바탕으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제대로 던질 몸 상태가 아니었고, 대표팀도 도하의 비극을 연출하며 동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신철인은 이미 팔꿈치 인대가 나갔고, 도하 아시안 게임이 끝나자마자 바로 공익 근무를 하러 갔는데.. 이게 왠일? 병무청에서 귀가통보를 내렸다. 사유는 팔꿈치 인대가 배영수 마냥 작살난거다. 그렇게 그는 면제를 받게 되었고, 2007년에는 아예 던질 수 없는 상태에 1군에서 말소 되었고 현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팀 히어로즈가 창단된 2008년에도 역시나 기약없는 재활에 쏟아부었다.

2008년 시즌이 끝나고 히어로즈로 바뀐 팀에선 그를 방출하려고 했지만, 신임투코로 온 정민태 투수코치가 말려서 남게 되었다.

2009년 초반 마무리로 낙점 기용 까지 있었다. 전년도 마무리로 뛰던 황두성이 2군에서 몸을 만들 때 까지 조용준과 더블 스토퍼로 기적적으로 돌아와 이상열과 함께 부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팀 투수진이 무너지며 무리한 연투로 방전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시즌 초반의 모습은 마지막 불꽃이 되었고 2승 4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6.42로 결국 시즌을 마쳤다. [7] 히어로즈는 이 해에만 여러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세이브를 달성해야만 했다. 전유수, 전준호, 이보근, 조용준, 송신영, 황두성[8] 등 여러 투수들이 세이브를 해야되는 악조건을 해야 되었다.[9] 안그래도 2016년 시작시의 넥센 투수팜에 대한 평가는 처참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여서..다행히 시즌들어서는 1,2군 오가면서 실력이 살아나고 있는 유망주들 그리고 노망주들 이 있기에 다행이지만, 마정길이 1이닝 20구 제한 3연투금지만 지키는 선에서 거의 항상 등판하고 이보근이 불안해도 나름 제몫을 하는 이 상황이 황두성이나 신철인이 활약하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는 팬들도 있다.[10]

그리고 2010년 스프링 캠프 도중 조용준과 함께 부상으로 조기 귀국햇고, 이후 재활을 거듭하다가 시즌 후 조용준과 함께 방출되었다.

여러모로 현대 유니콘스 팬들에게는 아쉬운 존재. 간신히 후순위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했지만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반전 신화를 쓴 주인공이었다. 또 팀의 위기 때마다 마운드에서 승리를 지켰던 것은 신철인이었다.[11] 그리고 재활을 견뎌내고 2009년 시즌 초 잠시 부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더더욱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12] 더군다나 현재 싸융짱문오로 대표되는 히어로즈의 엿같은 투수진도 올드팬들이 그를 더욱 그립게 한다.

한국프로야구 내에서도 상당히 활약한 필승계투 투수였지만 전성기로 활약한 시기가 한국프로야구의 암흑기라 불리는 시기였고, 최전성기인 2006년에는 그 해 32홀드를 기록한 홀드왕 권오준이 너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또 현대 유니콘스의 팬이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구마구프로야구 매니저 같은 대부분의 야구 게임에서 상당히 저평가되었다.[13] 그래서 은근히 묻힌다. 안습...

그리고 야구 게임에서 이호성이나 이상훈 등이 어른의 사정으로 신영수, 신철수 등으로 가명 등장하면서 이 신철인조차 가명 선수 취급을 당하고 있다.

4 지도자 시절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2016년 현재 청원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동 중이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0현대 유니콘스3175⅔64124.28664492
20015796⅓661352.80883991
20024055⅔21154.53602154
20035276⅓321103.07594488
2004292910012.48241330
200521⅓00000.00101
2006657723117
(4위)
2.22563885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8우리 히어로즈131000023.60968
2009히어로즈4647⅔24666.42461650
통산335469222023483.55409221499
  1. 그의 팬까페의 이름이기도 하다
  2. 그런데 2008년 한정으로 28번을 달아서 진짜 철인 28호가 되기도 했다.
  3. 빠른 공에도 무브먼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으나 무브먼트 차이를 측정하는 방식이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이라 명확한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완전히 헛다리 짚었지만 초속-종속의 차이가 덜하단 개념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4. 피안타율은 .208, 탈삼진은 88개를 잡아내며 우수한 구위를 보여주었다.
  5. 신철인은 통산 K/9가 9를 넘어가는 선수 중 한명이다. 469이닝 499삼진을 기록하였다.
  6. 당시 1위도 넘볼 수 있는 급이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 패하고 만다.
  7. 그 이상열도 09시즌 끝나고 방출됐다....
  8. 팀내 최다 세이브 1위 9개...
  9. 이와 같이 전신격인 팀인 현대 유니콘스도 10년 전 이렇게 했었다. 거기에 에이스 정민태, 정명원, 김수경(야구) 등등 10명이서 세이브를 했었는데 그게 10년 뒤 정확하게 돌아왔다.
  10. 물론 16년 투수진은 이때와는 다르게 확고한 마무리인 김세현과 돌아가면서 보는 셋업맨들인 김상수/이보근에 사이드암 요원인 마정길, 상황에 따라 올라가는 좌완요원 오주원,5선발 겸 스윙맨이였던 박주현(최후반엔 황덕균이 사실상 스윙맨으로 교체)까지 상당히 많은 부분의 보직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시작했고 그게 잘 지켜졌다.
  11. 특히 포스트 시즌에서 잘 던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평균자책점 0.84로 포스트시즌에서 3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중에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이다. 참고로 조용준은 18.2이닝 평균자책점 0.98.
  12. 한편 조용준은 불성실하게 재활을 하여 팬들이 많이 실망하였었다.
  13. 특히 프로야구 매니저에서 심각한 저평가되었다. 신철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현대 필승조(특히 2003년)들이 저평가를 당하여 실제로는 수준 높은 불펜을 보여준 2003~2004년 현대가 불펜 막장덱이 돼버렸다. 그나마 재평가를 통해서 명예를 회복한것은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