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width=120(현재 감독)
파일:Attachment/doosan bears s.png김태형
(두산 베어스)
파일:Attachment/nc dinos s.png김경문
(NC 다이노스)
파일:Attachment/nexen heros s.png장정석
(넥센 히어로즈)
양상문
(LG 트윈스)
width=58김기태
(KIA 타이거즈)
파일:Attachment/sk wyverns s.png트레이 힐만
(SK 와이번스)
파일:Attachment/hanwha eagles s.png김성근
(한화 이글스)
파일:Attachment/lotte giants s.png조원우
(롯데 자이언츠)
파일:Attachment/samsung lions s.png김한수
(삼성 라이온즈)
파일:Attachment/KT Wiz s.png김진욱
(kt w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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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현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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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시절


감독 취임식에서. 혹시 대기업 사장님? 이재용이 잠깐 겹쳐보이는데 눈의 착각이겠지... 그런데 선수 시절에 비해서 얼굴이 하나도 안 늙었다 오오 동안

삼성 라이온즈 No.86
김한수(金翰秀/KIM han soo)
생년월일1971년 10월 30일
출신지서울특별시[1]
학력강남초 - 신월중 - 광영고 - 중앙대
포지션3루수, 1루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4년 2차지명 1라운드(전체 8순위)
소속팀삼성 라이온즈 (1994~2007)
응원가실로암[2]
지도자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08)
삼성 라이온즈 2군 수비코치 (2010)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2011~2016)
삼성 라이온즈 1군 감독 (2017~)
수상 기록

1998년, 1999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한국프로야구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2002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0번
박철수(1992~1993)김한수(1994~1995)박근영(199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5번
김종국(1993~1995)김한수(1996)양용모(1997~199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번
김성래(1984~1996)김한수(1997~2008)조동찬(2009~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6번
한대화(2004~2009)김한수(2010~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김태균
(2001)
김한수
(2002~2003)
진갑용
(2004~2008)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류중일
(2011~2016)
김한수
(2017~)

1 소개

라이온즈의 원조 소리없는 강자[3]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1994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2007년에 은퇴할 때까지 줄곧 삼성 라이온즈에서 뛴 프랜차이즈 선수다. 주 포지션은 3루수. 2008년 4월 30일 은퇴식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2008년에는 2군 코치로 활동했다. 등번호는 50번-25번-5번 순이며 코치 시절에도 1년간 5번을 달았지만[4],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2010 시즌에는 86번으로 등번호를 바꾸게 된다.

2016년 10월 15일 자로 류중일 감독의 뒤를 이어 삼성 라이온즈의 제14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삼갤, 엠팍 등에서는 류중일 감독의 재계약 불발에 아쉬워하면서도 다른 감독보단 차라리 김한수가 제일 낫다는 평가. 사사방에서는 1군 감독이기 때문에 깔 예정 여담으로 찬물옹이라는 별명에 따라 감독으로서의 별명은 냉동님, 찬동님이 되었다.

류중일도 그렇지만, 김한수 역시 삼성 원클럽맨으로 활동한 삼성의 성골 프랜차이즈 되시겠다. 게다가 둘 다 내야수 출신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출신지몸담은 팀의 연고지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현역 선수 시절의 우승 경력 정도로, 류중일은 현역 시절 우승 반지를 껴보지도 못하다가 코치가 되고 나서 첫 우승반지를 껴봤고, 김한수는 선수 시절 3 우승을 경험하고 코치가 되고 나서 3 더 경험해봤다.

2 선수 시절

김진영삼미 슈퍼스타즈 감독과 김경기 SK 와이번스 2군 감독 부자(父子)와 더불어 KBO 리그의 대표적인 부자 야구스타로 유명했다. 김한수의 아버지인 故 김영복 前 농협 야구단 감독은 1950년대 등번호 5번을 달고 실업야구를 주름잡았던 명 3루수 출신의 야구인이었다.[5] 아들인 김한수도 대를 이어 3루수를 맡았고 현역 시절 등번호도 아버지와 같은 5번을 달았다.[6]

강남초등학교 5학년 때에 야구를 시작했으며, 장종훈을 존경했다고 한다. 또한 양준혁과 마찬가지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할 뻔한 에피소드가 있었다.[7]

핫 코너의 본좌, 김성래 - 김한수라는 삼성의 5번라인 중 한 명. 한때 김종훈과 함께 삼성 가을야구의 쌍두마차로 역임을 했다.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안경현 - 장원진에 뒤쳐지지 않는 최강의 쌍두마차로 꼽히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1995년 유니폼의 전성 시대를 이끌었던 3김 타자 중 한 명이다.[8] 단 나이로 보나 커리어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이쪽이 한 수 위.

주전 3루수였던 김용국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 되자, 우용득 감독은 3루수 후보로 그를 낙점시켰다. 또한 그 뒤를 받칠 김태룡이 수비로는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워낙에 타격이 빈약했던지라 그는 신인시절부터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1995년과 1996년 사이 방위병으로 복무하게 되여 반쪽자리 선수가 되었고,[9]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쉬기도 했다. 1997년 방위병에서 소집이 해제 된 후 백인천 감독 아래에서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나는데, 당시 이승엽-정경배-김태균-김한수로 이어지는 삼성의 철벽 내야진 라인업으로 종횡무진하며 맹활약 하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트레이드 떡밥이 나돌던 선수. 원래는 조계현과 현금이아닌 김한수가 트레이드 될뻔했다는 설이 있고..[10] 2000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최대어로 떠올랐던 홍현우가 만약 삼성으로 갔었으면 김한수는 벤치워머 신세 내지는 자동적으로 팀 이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지만 삼성 프런트진들은 김한수를 믿고 홍현우를 포기했다는 일설이 있다는데 1999시즌은 김한수 개인적인 커리어 하이였지만 99시즌은 역대급 타신투병 시즌이였는데다가[11] 김한수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게 방위 끝나고 98년도부터로 이 당시에는 별로 보여준게 없었다. 그래서 2000년에 상당히 부진했을때 만약 FA로 풀렸던 홍현우가 왔으면 벤치워머가 될 수도 있었다. 어쨋든 3루수 홍현우의 공격력이 워낙 좋았는데다가 홍현우는 1990년대 누적 WAR 1위를 할 정도로 보여준게 있었으니까. 그러나 밀리긴 밀리더라도 2루 정경배가 먼저 밀렸을 가능성이 높다. 정경배가 나름 꾸준한 활약을 이어줬다고 하나 꾸준히 선발출장해주는 수준이였지 2루 홍현우랑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의 공격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홍현우가 2루로 간다고 해도 정경배가 밀릴 가능성이 높았다.[12] 게다가 홍현우는 이종범이 일본으로 간 뒤로 정성철이 유격수 보는 대신 가끔 유격수로도 뛰었다. 즉, 내야 아무 포지션이나 뛸수 있는 선수가 수비, 타격 그리고 주루 역시 수준급이였기 때문에 대려왔으면 어떻게든 쓰일수 있었지만, 그냥 삼성이 FA로 영입을 안 했고 이건 신의 한수가 되었다.[13] 그리고 홍현우는 당시 삼성 못지않게 FA에 돈을 많이 투자하던 모 팀으로 갔다. 그리고 망했어요... 이후에는 롯데와 KIA에 요청으로 트레이드 될 뻔했던 일화도 있었다. 하지만 김한수의 경우 수비가 괜찮은 수준이였고 2000년 한 해만 폭망했지 한 5년간 WAR 2~4 정도 찍어줫을 정도로 준수했기 때문에[14] 은퇴할 때 까지 삼성이 붙잡고 있다가 명백하게 성적이 떨어진 2006년을 기점으로 밀려난다.[15]

2004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고, 한 때 삼성과 협상이 결렬되어 팀을 떠날 위기에 처했으나, 우선 협상 마지막 날 4년 총 28억(계약금 10억, 연봉 4억, 옵션 2억)에 삼성과 계약하였다.

이후 2005년 선동열 감독이 부임한 뒤 골든글러브 유격수 출신 박진만이 FA로 합류하고 전년도 유격수를 맡던 조동찬이 3루수로 가게 되었고 이미 30대 중반에 나이에 접어선 김한수는 자동적으로 1루수로 전향하며 10년간 정들었던 3루수를 포기하게 된다. 1루수 전향 첫 해인 2005년에는 타율 0.298에 15홈런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으나 2006년부터 노쇠화가 시작되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한 때 KIA 타이거즈와 트레이드설도 있었다. 결국 2007 시즌 후 은퇴, FA 계약기간이 1년 남아 있던 2008년에는 마이너스 옵션 5천만원을 삭감한 금액인 3억 5000만원의 잔여연봉을 받으며 2군 플레잉코치로 뛰었다. 은퇴식은 3월 30일 대구 KIA전에서 열렸으며, 삼성 선수 출신 은퇴식은 류중일-김현욱 이후 3번째였다.

현역으로 뛰던 당시 수비만은 국내 정상급의 3루수였으며 언제나 안정된 수비로 김태균, 김재걸과 더불어 삼성의 철벽 내야진 구축에 일조했다. 그의 폭풍간지같은 수비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일품이다.[16]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경쟁에서 김동주가 밀렸으나[17] 이는 실력과 성적으로 보면 공평한 평가라고 보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프로야구 3루수 골든 글러브의 계보는 한대화-홍현우-김한수,김동주-최정으로 볼 수가 있으나 성적으로 보면 김한수는 저기에 끼일 선수가 아니다. 김동주 입장에선 매우 억울할만도 한게 김동주 커리어내내 김한수의 타격을 압도 했으며 홈런은 모든 시즌에서 우위에 있었다. 타격성적만으로 골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는데 근데 수비 하나로 눌렀다기에는 논란이 많은 수상기록이다. 물론 수비실력이야 김한수가 약간 우위였어도 대부분 타격성적이 김동주가 넘사벽이였며, 수비에서도 김동주는 국대에서 3루수를 볼만큼 돌글러브도 아니다. 삼성의 호성적과 김동주가 데뷔 초부터 잦은 부상과 사생활 문제로 인한 논란을 일으키면서 김한수가 혜택을 받았다는 게 정설. 또 김동주의 경우 2000대 초반에 부상으로 지명타자로 나오기도 했었지만 대부분 3루수였다. 반대예로 장종훈에게 밀린 류중일이 있고 하나 이건 사실이 아니다. 일단 둘의 데뷔시절인 1987년정도를 제외하면 수비지표는 비슷한 수준이였고 1987년 류중일이 장종훈보다 wRC+(공격력)가 떨어졌으나 수비덕분에 WAR이 약간 더 높았던 1987년에는 류중일이 골든글러브를 받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WAR이나 wRC+에 거의 맞아 떨어지게 받았다. 아마 90년 골든글러브를 말하는 것 같은데 wRC+ 131.2 OPS 0.823으로 류중일의 개인적인 커리어 하이 시즌[18]이였으나 그 해 장종훈은 wRC+ 165.1 OPS 0.946으로 류중일보다 훨씬 더 잘했다. 즉, 당시에 류중일은 장종훈과 비교해서 골든글러브를 받을 성적이 안 됐으니까 못 받은거다. OPS가 1할 가량차이났는데 류중일이 골든글러브 타면 그거야 말로 사기지.

팀의 가을야구 진출, 2002년, 2005년, 2006년 한국시리즈의 우승 주역으로 활동했으며 2002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 할 때에는 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별명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봤자 별명제조기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소리없이 강한 남자, 한수옹, 찬물옹찬물이란 별명은 현재 박용택이 이어받았다. 뭔가 다른 이유로 (...)[19] 등등 여려별명이 있었다. 특히 현역 시절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같은데 찬스에선 유감없이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었고 수비에서도 공헌도가 높아 팬들은 김한수를 소리없이 강한 남자 라고 입을 모아 칭송하기도.

등번호인 5번과 '달려라 김한수~'와 '날려라 김한수~'로 시작하는 응원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20][21][22] 그의 등번호는 조동찬이 물려받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 연수를 받기도 했다. 사진으로 보자면 안경을 쓰고 있는데 혹시 동일인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 현역 시절 사진도 안경을 쓰는 사진이 보이는데 일상 생활 때는 안경을 쓰는 듯 하다.

선해 보이는 외모에 걸맞게 대인배로 유명하며, 성실함과 인성을 모두 갖춘 선수로도 알려져있다. 방위복무 때 원정 때면 경산에 찾아가 연습을 할 정도. 특히 요미우리 코치로 연수 중이던 도중에 일본 코치와 이야기를 나눠주기도 한다. 2016년 롯데 자이언츠의 수석코치이자 한때 같은 팀의 동갑내기인 김태균과 친한 사이라고 한다.[23][24]

등번호 5번의 전 주인인 김성래의 기[25]를 이어받았는지 몰라도[26] 김성래차럼 어정쩡한 스텟이다. 게다가 김한수가 활약하더 시기는 우동주 트리오로 대표되는 극악의 타고투저시대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통산 1497경기 출장[27]에 통산타율 0.289 149홈런, 1514안타, 782타점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6회수상[28] 최다 사구 2위, 최다 끝내기 안타 1위한 시즌 최다 병살타(2004년 23개) 홍성흔이 갖고있을줄 알았는데 괜히 소리 없이 강한 남자 겠는가? 꺼꾸로 생각해보면 그 만큼 임팩트 있는 시즌이 없었다. 1999년이 커리어 하이인데 3루에서 최강의 임팩트를 보여준 홍현우, 김동주, 최정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심지어 박석민, 황재균보다 임팩트가 떨어지던 시즌이였다. 꾸준하게 뛰어난 수비와 적당한 스텟은 찍어줬으나 00년대 삼성 우승에 공헌한바가 있으므로 "소리 없이 강한 남자"는 그에게 적당한 별명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강석천하고 굉장한 비슷한 케이스. 통산 WAR도 비슷하다

특히 초구에 강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김한수의 타격론으로는 경기 말 찬스 상황에서는 투수가 수세에 설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구를 집중적으로 노리는게 타자 입장에서는 유리하다고.주처가 마음에 새겨야 할 구절

2.1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장타율출루율
1994삼성 라이온즈103279.272761321031416.441.313
19953492.3042840213173.413.330
19963054.18510000171.185.241
1997124466.292136271968579.412.350
1998126463.3001392411580655.454.332
1999128497.340
(4위)
169
(4위)
36
(3위)
11888877.525.391
2000126464.263122261757548.369.322
2001117427.3111332921361593.480.366
2002127486.311151
(5위)
2311776694.467.371
2003131478.2951412311770675.454.354
2004133498.27113530
(3위)
11684601.432.335
2005114406.2931191801573551.448.372
2006103343.25487150754416.359.340
2007101289.23568111326250.319.283
통산14975242.28915142791214978270459.432.346

3 지도자 시절

2010년 시즌 후 1군 코치로 승격했다. 기존 1군 타격코치였던 타네다 히토시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로 옮겼다.대신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내야수 선배가 들어왔다.

팬들 가운데에서는 김태한[29], 김재걸과 함께 3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물론 아주아주 안 좋은 의미로. 2011년에 류중일 감독이 공격야구를 시도하려 했으나 정작 원래 잘하던 최형우와 각성한 배영섭, 김상수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타자들이 전년대비 성적이 폭락했고,[30] 이렇게 침체된 타자들에게 김한수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바람에 류중일 감독이 할 수 없이 기존의 공격야구를 하겠다는 계획을 전면 수정해 출루와 도루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야만 했다. 이 후 2012년에는 타격감이 올라오긴 했으나 코치진의 효과가 아닌 이승엽 효과 덕분이라는게 중론. 거기에 타격 스탯에서 최상위권을 찍었던 2012년에도 타선이 롤러코스터를 탈 때 극복에 도움을 별로 주지 못했으며, 이 문제는 고질병이 되어 2013년에도 삼성이 선두 싸움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배영섭, 조동찬, 이승엽, 박한이, 박석민 등이 부진할 때 이를 전혀 극복하지 못하면서 김한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사실 호불호가 갈리는 가장 큰 요인은 컨택에 집중하는 특유의 코칭의 스킬 때문. 공을 끝까지 보며 볼넷을 노리거나 풀스윙으로 휘들러 장타를 생산하기보단 어떻게든 맞추는 컨택에 집중한다는 점. 삼성에 장타자야 여럿 있지만 본래부터 장타자였던 이승엽, 최형우, 박석민, 나바로 같은 선수들을 제외한 어린 야수들은 풀스윙을 자제하고 툭 갖다 맞추는데 최대한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때문에 2012년부터 팀 타율은 크게 올랐지만 볼넷은 줄었고 어린 야수들 중 장타에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가 안 보인다.

이런 코칭은 타율을 올릴 수 있지만 볼넷과 장타가 줄어들기 때문에 타자의 기여도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OPS가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인지 2014년 이후로 삼성 타선이 알게 모르게 뻥야구에 의존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라는 주장과는 달리 2012~2015까지 팀OPS 1,2위권이었음. 즉 홈런이 나오면서 타선이 터지는 날은 상대투수를 복날 개패듯 잡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대 투수의 투구수만 줄여주는 답답한 타선이 되는 것. 삼성 팬들의 비판도 이러한 점에서 나온 듯 하다. 다만 팀 타격 스탯 자체는 괜찮다는 이유와, 위에서 주장한 것과 별개로 팀 출루율 순위는 꾸준히 상위권에 들었다는 점, 그리고 한 번 터질 때는 그야말로 살벌하게 분위기를 타고 연달아 터진다는 점 때문에 옹호하는 의견 역시 존재해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장타 포텐 있는 젊은 타자가 없다는 것도 선동열 시절에 발빠른 똑딱이 야수들만 주구장창 긁어 모았다는 점도 있고.[31][32]

사자 사랑방에서는 확실하게 평가가 안좋으며,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의견이 다소 분분하나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여론이 주류이며, 네이버 뉴스 댓글에서는 평가가 호의적인 편.삼갤 의견 #1#2#3

2014년부터 2015년까지 2년 연속 팀타율 1위를 해냈다.

3.1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16년 10월 15일 류중일삼성 라이온즈 감독의 뒤를 이어서 1군 감독이 되었다. 계약 조건은 3년 총 9억원(계약금 3억원, 연봉 2억원).

3.1.1 2017 시즌

과연 무너진 왕조를 일으킬 수 있을지?

김한수/2017년 항목 참고.

4 여담

덧붙여 前 LG 트윈스 선수인 최동수, 前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한화 이글스 선수인 권준헌과는 광영고등학교 동기이며, 최동수와는 대학도 동기다.#

변함없는 동안외모 탓인지 한때 같은 팀에서 선수로 뛰었던 현재윤 해설위원과 제법 닮은 편이다.

은퇴 이후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 와인바를 열었으며#, 2010년까지는 영업을 한 것으로 추정되나 이후엔 별다른 소식이 없다.

자신의 팬카페를 통해 매년 야구용품 자선경매를 열고 있다. 야구용품은 주변 동료코치나 선수들에게 기증받는듯.

5 역대 감독 성적

역대 감독 전적
연도소속팀경기수정규리그포스트시즌
2017삼성 라이온즈144000-위-
2018144000-위-
2019144000-위-
­통산0000
  1. 선수 활동 시절에도 대구 출신으로 오해받곤 했다. 데뷔 초 선수시절에는 삼성의 나이 많은 팬분에게 "니는 경고 아가? 상고 아가?" 라는 소리를 그렇게 많이 들었다고 한다(...).
  2. 날려라~ 김한수 날려라~ 김한수 날려라~날려라~ 김한수
  3. 지금은 박한이가 김한수의 기믹을 물려받았다.심지어 FA 총액마저도 28억으로 같다...
  4. 김한수는 2004년 말 FA로 4년 계약한 뒤 계약 3년차였던 2007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정확하게 따지자면 2008년에는 FA 계약기간이 1년이 남아 있던 탓에 플레잉 코치 신분이었기에 등번호와 연봉을 그대로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후 (선수 생활이였으면 정상적으로 끝났을) 4년 간의 FA 계약이 끝나자마자 바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코치 연수를 갔으며, 등번호 5번은 조동찬으로 이어지게 된다.
  5.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김진영 前 감독과는 인천고등학교 야구부 동문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뛰었고 국가대표에도 함께 선발될 정도로 실력이 서로 뛰어났다.
  6. 김영복 씨는 막내아들이었던 김한수의 결혼식 전날에 급정거하는 버스 안에서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고 2달 동안 사경을 헤메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7. 중앙대 시절에 그닥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던 김한수를 당시 신생 팀이었던 쌍방울이 그를 지명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김한수 본인도 쌍방울이 그를 지명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정작 삼성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자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8. 나머지는 김종훈, 김재걸.
  9. 그 시기에 이동수가 신인왕을 탔고, 홍현우가 3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10. 김한수가 1998년 해태 3루에서 그정도 했으면 해태는 4강이 아니라 2위도 넘볼 수 있을만큼 2위와 5위의 차이가 몇경기 안났다.게다가 김재걸이 계속 주전으로 뛰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김한수와 포지션이 겹치는 홍현우야 2루로 가면 되니깐.
  11. 한국프로야구/1999년에 잘 나와 있다.
  12. 2루수 홍현우는 한마디로 서건창급이였고 3루수 홍현우는 김동주급이였다.
  13. 삼성이 홍현우와 계약을 하는 조건으로 엄청난 옵션 달성을 걸어서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말이 있다.
  14. 특히 2002년은 제 2의 커리어 하이였다.
  15. 일례로 2000년대 초반 두산에서 연봉 문제로 갈등이 있던 골든 글러브 경쟁자 김동주를 삼성이 김한수와 맞트레이드로 영입하려는 시도를 실제로 했었지만, 두산에서 추가금을 요구하는 바람에 그냥 트레이드를 안 하고 넘어갔다는 비화도 기사로 나온 바가 있다. 그리고 두산이 추가금을 요구한게 당연했다. 당시 두산그룹 사정과 이미 2000년대 초반 시점에서 김동주는 20대 초반나이로 OPS 9~10할을 넘기를 밥먹듯이 하던 낸 슈퍼루키였는데, 김한수는 홍현우보다도 한 살이 많은데다가 김동주에 비해서 공격력이 좋지 않았다.
  16. 그러나 잘 알려져 있는 1999년 한 시즌 무실책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1999년 김한수의 실책은 12개.
  17. 김한수 6회 수상, 김동주 3회 수상.
  18. 당시 삼성이 핫한 팀이였던 빙그레/한화를 준플에서 물리치고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으나 결과는...전승준
  19. ...라지만 사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7년에선 정말로 찬스 때마다 찬물을 끼얹곤 했다. 다만 2007년 삼성의 타선이 김한수뿐만 아니라 조평신 브라더스, 김대익, 김종훈 등등 여러 선수들이 단체로 삽질을 하던 때인지라 상대적으로 덜 언급이 되는 편이지만......
  20. 그전 주인은 김성래.
  21. 논산 육군훈련소 기독교 종교행사의 공식 주제곡 실로암을 따왔다.
  22. 대구구장 장내 아나운서 경력의 김제동의 증언에 따르면 어째선지 이 노래가 경기장을 한바퀴 돌고나면 '달려라 이만수~'로 변질되었던 적도 있었댄다.
  23. 같은 1971년생 동갑에, 중앙대학교 출신에, 1994년에 삼성에 입단한 동기에, 비슷한 시기에 군복무를 마치고 백골프의 총애를 받아 주전 3루수와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은 것, 그리고 각각 김성래강기웅의 등번호를 물러 받은 것 까지 둘의 공통점은 많은 편이다. 사실 위에 언급된 김종훈보다는 오히려 이 쪽이 쌍두마차의 성격이 더 강한 편이었다. 비록 김태균이 2002년 시즌 초 롯데로 이적하고, 그 이후에 삼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여러번 하기 시작하면서 묻혀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24. 참고로 김한수-김태균의 관계는 2002년 입단 동기인 조동찬-손주인이 2009년 이후에 이어받게 된다(조동찬은 2009년에 5번을, 손주인은 2010년에 6번을 달게 된다는 점, 그리고 둘 다 주전으로서의 활약을 상대적으로 못 보여줬다는 것(물론 조동찬은 2010년 군대로이드로 인해 각성하게 되지만)등이 김한수-김태균 관계와는 다른 편이긴 하다). 물론 이 쪽도 2012년 시즌 후 손주인이 LG로 이적함에 따라 지금은 깨진 상태이다. 역시 2호기1호기랑 붙어야 제맛. 근데 이쪽도 이미 깨진 상태인 건 마찬가지
  25. 다만 김성래는 3루수가 아니라 2루수였다.
  26. 그리고 김성래 87, 88성적이야 역대급이지만, 그 이후 2루수로써 급격하게 .이게 다 당시에 무리한 훈련을 강요한 김성근 때문이다
  27. 본인은 1500경기 출장 못한 게 아쉽다고.
  28. 역시 위의 논란대로 그가 받은 대부분의 골든글러브는 실력대로 받은게 아니라 우승프리미엄등으로 받았다는게 중평이다.
  29. 김태한 대신 김성래를 넣는 사람도 있다.
  30. 특히 박석민은 2009년부터 20홈런 아니면 3할 둘 중 하나는 무조건 기록했는데 2011년엔 둘 다 못했다.
  31. 수비나 컨택툴은 프로에서 다듬어 개선시킬 수 있지만 파워툴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타고나야 한다.
  32. 류중일도 선동열과 마찬가지로 똑딱이 야수만 뽑는다는 소리도 있지만, 2012년 이동훈, 2015년 김기환, 2016년 황선도 등 장타 포텐이 있는 선수들도 뽑는다. 아직 프로에서 보여준 게 없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