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동(성남)


밑줄은 구청 소재지.

x30px 중원구 법정동
법정동성남동금광동은행동
상대원동여수동도촌동
갈현동하대원동중앙동

金光洞 / Geumgwang-dong

금광동
金光洞 / Geumgwang-dong

국가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경기도
기초자치단체성남시
면적1.71㎢
인구22,368명(금광1동)[1]
29,032명(금광2동)[2]
세대수9,656가구[3]
12,224가구[4]
금광1동 홈페이지
금광2동 홈페이지

1 개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동북부에 위치한 법정동.

2 지명 유래

고려 말에 김약시(金若時)가 은거하여 살다 별세하였는데 그 자손이 벼슬에 오르고 집성촌을 이루어 세상 사람들이 광산 김씨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금광리라 칭하였다. 출처

3 역사

조선 시대에는 광주군 세촌면 단대동(丹垈洞)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단대리라 하였다.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성남시에 편입되어 단대동이 되었다. 1976년 10월 단대1동, 단대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단대2동은 1980년 9월 다시 단대2동, 단대3동으로 분동 되었다. 그 후 1989년 5월 중원구 출범에 따라 단대2동은 금광1동, 단대3동은 금광2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출처

4 교통

4.1 버스교통

4.2 철도교통

5 상권

6 교육

6.1 금광1동

  • 초등학교 - 금상초등학교 하원초등학교 단남초등학교
  • 중학교 - 금광중학교 대원중학교

6.2 금광2동

7 환경

8 주변 시설

  • 성남중원경찰서

9 하위 행정동

9.1 금광1동

20여년전 그때의 본시가지 모습을 지금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동네.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황송공원과 성남중원경찰서가 자리잡고 있으며 대성운수 차고지가 있었다. 대성운수 차고지는 지금은 송파공영차고지로 옮겨갔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당시 차고지로 인해 여러 편의가 생긴 만큼 그 이상의 불편함도 분명 혼재했었다. 삼익아파트를 위시한 수많은 주택에 거주하는 인구들은 소음, 매연 등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었고, 바로 지척에 있는 여러 학교[5]의 학생들 또한 이로 인해 여러 안전상, 건강상의 위협에 노출되어야 했다.[6] 차고지가 없어짐으로 인해 여러 교통상의 문제가 발생했고,[7] 주민들의 요구가 조금 볼썽 사나웠던 부분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어차피 성남시의 2단계 재개발 사업 등으로 인해 금광동 차고지는 한번쯤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8] 이 차고지가 있던 자리에는 2016년 현재 농민마트가 건설되어 있다. 이 때문에 근처의 마트가 죄다 폐점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9.2 금광2동

신구대학이 있다. 후룹라이드를 연상시킬 정도의(...) 오르막길을 지나 오복슈퍼 인근부터 빌라촌이 형성되어 있다. 20여년전 그때의 본시가지 모습을 지금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매우 고풍적인(...) 동네.

10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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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년 11월 30일 기준
  2. 2014년 11월 30일 기준
  3. 2014년 11월 30일 기준
  4. 2014년 11월 30일 기준
  5. 하원초등학교, 금광중학교, 대원여중.
  6. 당시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차고지와 인근 통학로의 모습은 미관상으로라도 보기 좋지 않았다.
  7. 가장 대표적 케이스가 신구대 방면에서 바로 구 성남시청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사라졌다는 것. 덕분에 성남서중학교의 통학생들은 단대오거리역 앞까지 버스를 탄 다음 희망대공원 근처의 오르막길을 쭉 걸어서 올라가야 성남서중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저 안습.
  8. 사족을 달자면, 이 2단계 재개발 사업(이라 쓰고 희망고문이라 읽는다)으로 인해, 거의 토착민 수준으로 오랜기간 거주하던 주민들은 현재 대부분이 뿔뿔히 이주했다. 다만 재개발 지역 주민에게 지급되는 아파트의 평수가 사람에 따라 좁을 수 있어 논란거리로 남는다. 대부분의 인구가 독거노인이기 때문에 재개발 지역 주민에게 주어지는 아파트가 1인 가구를 상정하고 건설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