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시대의 문신
1570 ~ 1652
서울 출생. 김극효와 정경부인 동래정씨[1][2]의 넷째아들[3]이다.[4]
광해군 ~ 인조 시기의 정치인으로 서인 내에서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로 인조 시절 반정 실세들이 실리를 우선시하던 노선과 달리 명분 우선, 선악의 명백함을 주장하던 인물이였다.
김상헌은 청과의 외교에서 타협을 거부하는 강경파였으며 화친파인 최명길과는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다. 병자호란 당시에도 출성 항복을 하면 나라가 보존된 예가 없다고 하면서 최후까지 반대했으며 항복이 결정되자 목을 매 자살시도를 했지만 군량을 관리하던 나만갑이 억지로 구해서 간신히 살아남았으며 호란이 끝난 다음에도 청을 도와 명을 공격하는 출병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으며 이 때문에 청나라에 압송되어 최명길과 함께 심문을 받기도 했다. 야사에 의하면 둘은 심양의 감방에서 정 반대의 시야를 가지고 있던 서로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청나라에서 항복 조건으로 척화신 세사람을 보낼 것을 요구하자 이조참판 정온과 함께 오랑캐 진영에 보내 죽게 해달라는 청을 올린다.[5]
병자호란 직후 항복하러 출성하는 왕을 따르지 않고 바로 낙향해버려 반대파에서 두고두고 씹히게 되었다. 김상헌은 이에 대해서 "신하는 군주의 뜻에 충성하는 거지 군주에게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건 내시나 아녀자들의 충성이지 사대부의 충성이 아니라고" 반박했으며[6] 게다가 병자호란이 터졌을 때는 적군이 우글거리는데도 멀리서 자진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간 양반인데 청군 물러가는 판국에 종군 안했다고 까는 것도 구차한지라... 어쨌거나 최명길을 필두로 자살 시도도 정치적 쇼가 아니냐는 비난도 잇달았다. 물론 조정 대신 대부분은 그의 형 김상용과 마찬가지로 그의 충성이야 말로 진실된 것이었다고 김상헌을 매우 강력히 변호하고 옹호했다. 게다가 김상헌은 정작 적들이 남한산성을 포위해서 위험할 때는 몇십리나 달려와 합류하였고 정작 안전해진 삼전도의 굴욕 당시에 낙향한 것이니 까기도 구차하다.
여하튼 그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김상헌은 대사헌 등을 지냈을 정도로 성격이 강직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당대부터 받아왔고 병자호란 이후에도 청을 도와서는 안된다는 상소를 올린 것 때문에 심양으로 끌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물쭈물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에 청나라 관리들도 예사로운 사람은 아니라고 평가했고 나중에 최명길과 같이 풀려날 때 청 황제가 죄를 사해 주었으니 황제가 있는 곳으로 향해 절을 하라고 해서 최명길은 절을 했지만 김상헌은 끝까지 거부하는 등 입만 살아있는 인물은 아니였다. 야사에 의하면 최명길과 김상헌이 심양 감옥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실록에는 별반 기록은 없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찬하는 시를 지은 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형인 김상용도 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민회빈 강씨와 봉림대군과 있었으나 청군이 들이닥치지자 화약으로 자폭해 순절했다 .
80이 넘게 장수했는데 효종이 즉위 한 이후 찾아와 효종에게 인사를 올리기도 했고 김자점이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청의 조선통인 정명수에게 청해 지원을 요청하더 즈음 청의 섭정왕 도르곤은 김상헌이 조정의 반청파를 움직여 김자점을 비롯한 친청파를 숙청하고 반청 정책을 주도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지만 조선 미녀를 아내를 맞이하고 싶어서 벌인 뻘짓이었고 조선에서 미녀를 보내자 금방 태도를 풀고 김자점을 버린다.(...) 이후 정명수도 청나라에서 숙청당한다.
김상헌은 서인 노론의 집권 이후 충절과 절개의 화신으로 남았다. 공교롭게도 김상헌의 손자 김수항은 노론의 영수가 되었고[7], 최명길의 손자 최석정이 소론의 영수가 되어서 두 집안은 다시 대립하게 되었다. 이후 그 후손들은 번창해서 순조 시절부터 권력을 잡게 된다. 그렇다. 바로 세도 정치를 벌인 안동 김씨들이 김상헌의 후손이다. 조상만도 못한 후손들.
묘소는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 있다. 여기에는 김상헌의 묘 뿐만 아니라 김상헌 집안의 조상들도 함께 묻혀 있다.
KBS 드라마 대명에서는 주선태[8]가,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 남한산성에서는 정욱이, JTBC 드라마 꽃들의 전쟁에서는 한인수가, 그리고 MBC 드라마 화정에서는 이재용이 그를 연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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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삼성 라이온즈의 응원단장
김상헌(응원단장)으로.- ↑ 정유길의 딸로서, 김상헌의 이모가 광해군의 장모인 봉원부부인 정씨이다. 즉, 광해군의 왕비인 문성군부인 류씨와 김상헌은 이종사촌간.
- ↑ 그래서인지 광해군의 처남인 유희분이 인조반정으로 역적으로 참수되자 그의 시신을 거두어준 것은 김상헌이었다 모두들 김상헌의 이런 행위를 걱정했지만 역적은 역적이고 친척으로서의 도리는 다해야 한다면서 의연하게 시신을 수습해주고 문상을 했다고 한다.
- ↑ 큰형은 김상용으로서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하였다. 김상용의 외손녀가 효종비 인선왕후 장씨
- ↑ 백부인 김대효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즉 생가 부모는 법적으로 숙부, 숙모가 된다.
- ↑ 정온은 이후 항복이 결정되자 할복을 했으나 죽지 않고 살았다.
- ↑ 사실 간언 등 유교정치는 왕이 최고 권력자라고 해서 신하들이 무조건 왕을 따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생각했을 때 왕이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이에 대해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가르친다. 무조건적인 예스맨은 오히려 간신이거나 진정한 충을 행하지 않는다고 나쁜 평가를 내린다.
- ↑ 백부의 양자로 간 김상헌은 본인도 후사가 없어 생가 친형(법적으로는 사촌형) 김상관의 아들 김광찬을 양자로 들였다. 즉 김상헌의 후손들은 실제로는 김상관의 후손들이다.
- ↑ 배우 주용만씨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