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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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相賢
1904년 00월 00일 ~ 1982년 10월 00일
1904년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태어났다.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앙상공장려관 관장을 역임하였다.
1948년 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신현돈 국회의원이 관선 전라북도지사에 임명되어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다. 이에 1949년 재보궐선거가 치러지자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동청년단 김교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김교중에 설욕하고 당선되었다. 1952년 민우회에 속하였다가 1953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이 3선 개헌 등 독재를 강화하자 이에 반발하였고, 결국 1956년 강승구와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현돈에 밀려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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