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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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昇求
1903년 10월 14일 ~ 1986년 01월 08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03년 한성부 종로 일대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경물리학교(현 도쿄대학 물리학과)를 수료하였다.

8.15 광복 후 대한청년단 양주군 단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양주군 을(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별내면별내동을 제외한 일대 및 구리시, 서울특별시 노원구도봉구 일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국민당 이진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3년 자유당 양주군 당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였고 자유당 이진수 후보에 설욕하였다. 당선 직후 자유당에 복당하였으나 이승만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하여 호헌동지회에 가입하였다. 결국 1956년 자유당을 탈당하고 1957년 민주당에 입당하여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해당 선거구(단 해당 선거에서부터 현재의 별내면, 별내동 지역이 양주군 을 선거구에 편입)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강성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구파가 신민당을 창당할 때 동참하였고 1961년 초 당직 개편으로 신민당 훈련부장에 임명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경기도 의정부시-양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진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윤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