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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 정보
이름 | 김진규(金振圭) |
출생 | 1923년 4월 12일, 충청남도 서천군 |
사망 | 1998년 6월 18일, 서울특별시 |
종교 | 천주교(세례명: 마르티노) |
가족 | 배우자 이민자, 김보애[1], 슬하 3남 3녀 |
수상 | 1986년 제25회 대종상 영화인상 |
2 트리비아
대한민국의 1960년대 전설적인 영화배우. 그의 인기는 1960년대 최고 인기 스타였던 신성일, 최무룡, 신영균과 비교해 뒤지지 않았을 정도.[2] 1950년대 중반 주연으로 올라선 그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지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통해 여성 관객들의 인기를 얻었다. 지금 배우와 비교하자면 박해일이나 한석규와 비슷한 스타일. 특히 대한민국 영화 사상 손가락 안에 드는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범선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1961년작 영화 오발탄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오발탄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를 뽑고 피를 흘리며 택시를 타고 뇌까리는 '가자'는 1960년대 영화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리고 같은 해에 찍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사랑방 손님 역할로도 유명하다. 모르겠으면 옥희 옆에서 느끼한 목소리를 내는 아저씨로 기억하면 된다 1965년에는 벙어리 삼룡이의 주연을 맡으며 최고 전성기를 보냈다. 덕분에 1960년대에 받은 남우주연상만 7개다.(부일 5개, 청룡 2개) 자신이 감독한 영화 '종자돈'의 실패 이후 이혼 등의 가정사로 곤욕을 겪었고 이만희 감독[3]의 마지막 작품인 1975년 삼포 가는 길이 사실상 마지막 히트작이 되었다. 신사적인 이미지와 달리 여자 관계가 무척 복잡했고, 술만 먹으면 개로 변해 폭력을 휘두른다고[4] 그의 2번째 부인인 배우 김보애가 쓴 책에 나온다.[5]
3 여담
여담으로 상당히 이순신을 좋아했는지 1971년에 '성웅 이순신'을 찍고 말아먹은 뒤 1978년 '난중일기'를 또 찍기도 했다.
1987년 '하녀의 방'을 마지막으로 은퇴, 1998년 타계했다.
장녀 김진아[6]도 배우였으며 삼남[7] 김진근[8]도 배우로 활동 중이다. 자녀들도 진자 돌림. 그러나 김진아는 2014년 8월 20일 암으로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 ↑ 이덕화 아내의 언니
- ↑ 다만 1967년 감독을 맡은 영화 '종자돈'의 실패 이후, 1970년대에 접어든 이후에는 신성일이나 최무룡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 반면 김진규는 하락세를 탔고 1970년대 중후반 이후에는 거의 스크린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 ↑ 배우 이혜영(1962년생)의 아버지.
- ↑ 부인과 아들, 그에게 연기를 배우러 찾아온 제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들의 과외 선생 까지 상습적으로 구타했다고 한다.
- ↑ 김진규의 첫 부인은 배우 이민자인데, 생활고와 김진규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이혼했다고 한다.
- ↑ 김진규가 유독 편애하고 아꼈다고 한다.
- ↑ 김진규는 전처 이민자와의 사이에서도 아들 둘을 낳았다.
- ↑ 배우 정애연과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