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Νάνα Μούσχουρη (나나 무스후리)[1]
1 개요
지중해의 요정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여성 아티스트
그리스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가수. 전 세계에서 아테네의 흰 장미, 천상의 목소리 등의 수식어와 함께 극찬을 받았다. 재즈, 샹송, 종교음악 등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다.
본명은 이오안나 무스후리(Ιωάννα Μούσχουρη).
1934년 그리스 크레타에서 태어났으며 3살 때 가족과 함께 아테네로 이주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2] 프랭크 시나트라, 에디트 피아프 등 당대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16살 때 아테네의 음악학교에 입학해 오페라 성악을 전공했으나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3]
재즈에 흥미를 가졌던 무스쿠리는 생계를 위해 재즈 클럽에서 노래를 하면서 대중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던 와중 작곡가 마노스 하지다키스(Μάνος Χατζιδάκις)의 눈에 띄게 되어 1958년 렘베티카를 부르며 음악계에 데뷔했다.
이듬해 그리스 음악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곧 '지중해 음악제'에서도 대상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나나 무스쿠리의 명성은 1960년대부터 그리스를 넘어 유럽 여러 나라들과 미국까지 널리 퍼졌다. 1962년 퀸시 존스의 추천으로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음반을 냈고, 1964년에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가지며 수많은 팬들이 생겼다.
1960년대 후반, 그리스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때문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후, 20년 가까이 해외에서 거주했는데, 60년대 후반 발표한 음반들이 영국과 독일 등지에서 히트를 쳐 1971년에는 당 해 최고의 가수로 선정 되기도 했다. 20년 간 그리스를 떠나 있었으나 1984년 그리스로 귀국한 후 1994년부터 1999년까지 그리스 신민주당 소속으로 유럽의회 의원직을 재임하기도 했다.
1958년에 데뷔한 후 2008년 은퇴를 선언하기 전까지 50년간 4억장에 가까운 음반을 판매한 기록을 세웠다.
검은색 뿔테안경과 단발 생머리는 나나 무스쿠리의 상징이다. 나이 80을 넘긴 지금에 와서는 무색한 말이지만 과거에는 대단한 동안이기도 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도 참가했는데 1963년 대회에 뜬금없이 룩셈부르크 대표로 나왔다. 같은 그리스인인 비키 레안드로스도 68년에 똑같은 나라로 출전한다
한국에서도 7080세대를 중심으로 잘 알려진 가수이기 때문에 한국인 팬들도 많으며, 패티 김, 송창식 등이 무스쿠리의 노래를 번안해 부르기도 했다. 한 때 연하의 한국인 남성과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소문이 있으나, 아직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확인된 사실은 없다. 1988년 88 MBC 서울국제가요제 공연을 위해 내한, 2005년에도 내한 공연을 가졌고 2008년 은퇴를 선언한 후 은퇴 투어 공연중에도 한국을 방문해 고별 공연을 가졌다.[4] 태안 기름 유출 사고때 피해를 입은 어민들을 위해 공연 수익 1만 달러를 기부했다. 은퇴선언 후 성사된 내한공연 당시 측근의 설명에 따르면, 나나 무스쿠리가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2010년에는 그리스 경제 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조국을 위해 연금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SBS의 막장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주제곡 "울게 하소서"를 부르기도 했다.
2 대표곡
- 하얀 손수건(Me T'Aspro Mou Mantili)
-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 되풀이 하여(Over And Over)
-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
- 내게 말했어요(Μίλησε μου)
- Only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