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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명이인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으러 오셨다면 나카무라 타케시(일러스트레이터) 문서 참조.
주니치 드래곤즈 배터리 코치 시절. 남희석?
현 KIA 타이거즈 배터리 코치.
KIA 타이거즈 No.82 | |
나카무라 타케시 (中村 武志 / Takeshi Nakamura) | |
생년월일 | 1967년 3월 17일 |
국적 | 일본 |
한국명 | 강무지 |
출신지 | 일본 교토 |
학력 | 하나조노 고등학교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신장 | 178cm, 85kg |
프로입단 | 1984년 주니치 드래곤즈 1차 지명 |
소속팀 | 주니치 드래곤즈 (1985~2001)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002~2004)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5) |
지도자 경력 |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배터리 코치 (2006~2008) 주니치 드래곤즈 배터리 코치 (2009~2012) 지바 롯데 마린스 배터리 코치 (2013~2014) KIA 타이거즈 배터리 코치 (2015~) |
KIA 타이거즈 등번호 82번 | |||||
차영화(2006~2013) | → | 나카무라 타케시(2015~) | → | 현역 |
1 소개
前 일본프로야구 선수이자 現 KIA 타이거즈 1군 배터리코치. 재일교포 3세로, 한국명은 단무지강무지(姜武志)이다. 강무지라는 이름은 1984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재일동포 팀으로 출장했을 때 알려졌고, 이 당시 대회 타격왕을 차지하면서 재일동포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일본시절 애칭은 타케시.[1]
2 현역 시절
하나조노 고등학교를 졸업 후, 1985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해서 1987년에 포수로써 최고의 수비를 보여준다. 121경기에 출전해서 수비율 0.994, 64번의 도루 시도 중에 33번을 저지하며 0.516의 도루저지율을 달성했다. 그 후 1995년에도 54번의 도루 시도 중에 28번을 잡아내며 0.519의 도루저지율을 달성했다.
타율은 낮지만 상대적으로 출루율이 높은 편이고 한방도 있었던 OPS 히터였다. 통산 기록은 1955경기 6419타석 137홈런 604타점 통산타율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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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선동열 주니치 드래곤스 시절 경기를 봤던 사람은 이 유명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와일드 피치 후에 공을 열심히 쫓아가서 홈 송구를 하는 포수가 바로 강무지이다.[2]
주니치의 프랜차이즈 포수였으나 현 주니치의 감독인 다니시게 모토노부가 2001년 시즌 후 FA를 선언하고 주니치로 이적하면서 보상선수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양팀 주전포수 맞트레이드. 요코하마에서 3년을 보낸 후에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된 2005년 퍼시픽리그의 최하위 두 팀 선수 중에서 오릭스가 먹고 남긴 쩌리들만 주워갈 수 밖에 없었던 라쿠텐에 대한 구제조치로 특별지명이 실시되었을 때 요코하마의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라쿠텐의 지명을 받고 이적했다. 라쿠텐에서는 이미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들은지라 결국 1년밖에 뛰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은퇴했다.
선수시절 눈에 띄는건 어깨가 강한 강견포수였고 리드가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투수들이 항상 '타케시' 덕이라고 칭찬을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2015년 5월 14일 기준 지금까지 일본프로야구사에 있어 2번이상 규정타석을 채우고 도루 저지율 5할을 기록한 포수는 나카무라를 포함한 4명뿐이라고 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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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조금 이상하지만 넘어가자
3 지도자 경력
3.1 2015 시즌
은퇴 후,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주니치 드래곤즈,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배터리 코치를 하다가 2015년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15년 시즌부터 KIA 타이거즈 1군 배터리 코치 보직을 맡게 되었다.
KIA 타이거즈에 있으면서 젊은 두 포수인 백용환과 이홍구의 급속한 성장을 이루며 김상훈의 은퇴로 인한 포수 공백은 거의 느낄 수 없게 되었다. 한화가 본받아야 할 점 여전히 경험이 부족하지만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서 어느 정도 포수 구실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성과를 이뤄냈다. 다만 여전히 나카무라 코치 눈에는 성이 차지 않는지 시즌 마무리 캠프에서 두 영건들에게 지옥훈련이 기다리고 있음을 언급했다(...)
3.2 2016 시즌
2015 시즌이 끝난 후, 이마나카 신지를 투수 인스트럭터로 데려왔다. 주니치 드래곤스 시절 같이 뛴 경험도 있고 해서 오게 됐다고 전해진다.
등록명도 바꿨는데, '나카무라'에서 '타케시'로 변경했다.
스프링 캠프에서 이홍구, 백용환, 신범수를 지도하고 있다.
4 이야깃거리
- 장난스럽게 「원래 착하게 생겼는데, 얼굴이 변형될 정도로 맞았다」라고 말할 만큼 주니치 시절에 감독이던 호시노 센이치의 철권제재의 단골이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경기 중에 덕아웃 뒤에서 호시노에게 맞아서 코뼈가 부러진 적이 있을 정도. 하지만 그것은 호시노가 나카무라를 미워해서라기 보다는 팀의 중심인 주전포수를 갈굼으로써 선수단 전체에
정신차리라는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 실제로 호시노가 나카무라를 감정적으로 미워해서 때렸다는 게 아닌 것을 증명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나카무라가 주니치에 입단한 이후 2년동안 1군에서 기회를 못잡자 1986년 당시 구단 프런트는 나카무라를 정리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새로 감독으로 취임한 호시노 감독이 나카무라를 버리지 않고 계속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팀에 잔류시켰고 호시노식 훈련을 시켰다. 그런데 그 훈련이 너무 힘들어 나카무라는 야구선수로서 자신의 재능에 회의감을 가지고 선수생활을 그만두려고 했었다 한다. 하지만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너 요즘 열심히 하는가 보다. 감독님이 넌 믿을 만한 아들이니, 안심하라고 말씀하시더라」라는 말을 듣고 야구를 포기하려는 생각을 거뒀다고 한다.
선수가족에게만은 정말 따뜻한 감독.. - 이후 나카무라는 10년이상 주니치 드래곤즈 주전포수로 자리 잡았다. 즉, 나카무라에게 호시노는 자신의 프로커리어의 길을 열어준 은사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지 선수시절 호시노에게 그렇게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호시노와의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