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헨리크 아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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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ls Henrik Abel
닐스 헨리크 아벨
1802년 08월 05일 ~ 1829년 04월 06일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수학자.

1 그의 삶

프랑스갈루아와 더불어 천재적인 수학자였으나 인정받지 못한 채 20대 한창 나이로 죽은 비극적인 인물. 아벨의 시대에 가장 오래된 난제 중 하나는 1차부터 4차 방정식 처럼 5차 방정식에도 계수를 이용해 근의 공식을 만들 수 있느냐였다. 아벨 역시 처음엔 대수적으로 풀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증명을 시도하였으나 후에 생각을 바꾸고 풀 수 없음을 증명하였다.[1]

하지만 당시로선 너무 난해하고 추상적이던 아벨의 증명을 누구도 인정하지 않아 자비로 논문을 출판해야 했으며 그나마도 묻혔다. 이 증명은 뒷날 프랑스의 수학자 갈루아에게 영향을 미쳐서, 군을 이용한 고차 방정식의 비가해성으로 확장된다.

당대 수학의 신이라고 불리우던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에게 책을 보냈으나 하도 많이 오는 여러 아마추어 수학자들의 책과 편지에 질려버린 가우스가 무시했다. 코시에게도 논문을 보냈었는데 코시가 논문을 잃어버려서 역시 읽히지 못하였다.

19세에 아버지를 잃고 가난에 허덕이던 그를 그나마 인정하고 알리려던 사람이 독일 수학자 아우구스트 레오폴트 크렐레(August Leopold Crelle ,1780~1855)[2]였는데 그의 노력으로 아벨에게 베를린 대학 수학 교수직을 얻게 해주었다. 그러나 아벨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로 인해 결핵을 얻은 상태라 결국 소꿉친구이자 약혼자였던 크리스티네 켐프(Christine Kemp)의 품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그리고 아벨이 죽고 난 바로 이틀 뒤에 교수 임명서가 도착했다. 반응이 없다는 대학 측 답변에 이상하게 여긴 크렐레는 편지를 보냈는데 '닐스는 이미 죽었답니다' 라고 아벨의 지인이 쓴 답장을 받고서야 뒤늦게 죽은 걸 알게 되었다.[3] 나중에 크렐레는 그의 무덤에 와서 이 천재를 너무나도 빨리 데려갔다면서 슬퍼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붙인 이론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군론에서 어떤 연산 *에 대해 군에 속하는 임의의 두 원소 a, b에 대해 a*b=b*a처럼 교환 법칙이 성립하는 군(group)을 아벨 군(abelian group)이라 한다. 그 외에도 위상수학, 실해석학 등에도 이름이 붙어 있는 이론이 있고 적분에도 아벨 적분이라는 게 있다.

2 아벨상

이 문단은 아벨상(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닐스 헨리크 아벨의 이름을 딴 아벨상이 노르웨이 총리의 주도 하에 2001년에 제정되어 2003년부터 수상자가 나왔다. 이 상은 노르웨이 왕실에서 주관하여, 매년 1명 (또는 많아야 2명)을 수상한다. 수상자의 연령 제한은 없으며, 수상 범위는 순수 수학뿐만 아니라 응용 수학 분야까지 인정된다. 이런 상의 가치를 상금으로 따질 순 없지만, 상금 액수는 필즈상 보다는 높게 책정되어 있다.[4]

공식 홈페이지는 [1] 이다.

많은 부분 필즈상을 참고하였고, 노벨상급의 권위있는 상을 만들려 했지만 현실은 필즈상밀리는 처지다. 필즈상은 4년에 한 번씩 시상하는 데다, 수상자의 연령이 40세 미만이어야 한다는 살벌한 조건 때문에 진짜 천재[5]가 아니라면 받기 힘들다. 다만, 필즈상은 4년마다 최대 4명에게 수상하고, 아벨상은 1년마다 1명[6]이 수상하기에 수상자의 수는 크게 차이나지는 않는다.

아직은 제정된지 얼마 안 된 상이니만큼 그 귀추를 좀 주목해할 필요는 있다. 필즈상은 주로 순수 수학 분야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는 상인데 아벨상은 응용 수학에까지 시상 범위가 미친다는 점도 필즈상과는 다른 점이다. 필즈상보다는 못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필즈상 다음 정도의 권위는 가지고 있다.

2015년 수상자로는 존 내시 와 '루이스 린덴버그'가 선정되었다. 그런데, 존 내시가 아벨상을 수상하고 돌아가는 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6년 수상자로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증명한 공로로 앤드루 와일스가 선정되었다.
  1. 여기서 '대수적으로 방정식을 푼다'의 의미는, 방정식을 근호와 사칙연산을 이용한 유리함수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2. 수학자보단 공학박사로 더 유명해서 건설 및 여러 일에서 진가를 발휘하여 건설부 차관 및 문교부 장관을 역임했다.
  3. 죽은 다음에 장례문제 때문에 제대로 그의 교수임명서를 확인하지 못했다.
  4. € 600,000. 출처는 영어 위키백과
  5. 대표적인 예가 프린스턴대학교 출신의, 현 UCLA 교수인 테렌스 타오와 프린스턴 고등과학연구소 소속의 에드워드 위튼. 위튼쪽은 이미 물리학계의 '신'이나 다름없고, 테렌스 타오는 아이큐가 220이 넘는다고 한다. 이 사람이 수립한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최연소 금메달기록(13세)은 2011년 현재까지 안 깨졌다. 예외로 40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즈상을 받은 사례가 딱 한번 있는데, 바로 앤드루 와일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그 사람이다.
  6. 14번중에 3번은 2명이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