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계엄령

臺灣戒嚴令 / 台灣戒嚴令
대만에서 1940년대 후반부터 내려지기 시작해 1987년에 해제된 계엄령으로 대만의 흑역사.

1 개요

1947년 2월 27일, 타이베이 시 위엔환(圓環) 빌딩 안의 복도에서 과부 노파인 린장마이(林江邁)가 담배노점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대만에서 담배는 정부만 독점으로 파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날 전매국 직원과 경찰이 이 노점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을 항의하면서 시민과 경찰과 충돌해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 천원시(陳文溪)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일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2.28사건이라고 하는데, 이 사건으로 타이베이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이 사건의 영향으로 3월 1일에는 대만의 대부분 지역으로 시위가 확대되었다. 중국 국민당군은 중국대륙에서 국공내전 중이었음에도 국민당은 3월 8일에 증원군을 중국대륙에서 대만으로 보내고 이후 3월 21일까지 대만 전역에서 대대적인 유혈진압이 시작되었다.

1949년 5월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에서 총 호구조사 실시 후 대만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이후 국민당이 보기에는 위험분자로 간주되는 이들이 체포되었다. 그 해 12월에 중국 국민당중화민국 정부가 국공내전에서 패배하면서 중국대륙에서 대만으로 옮겼고, 계엄령 선포 이후 내전을 반대하거나, 국공평화회담을 주장하거나, 평화건설, 민생문제개선, 민주화 등을 요구하면 공산당 간첩이나 용공분자, 혹은 친일-독립분자로 몰렸으며 중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국민당의 일당독재도 시행되었다.

12226072.jpg
(대만 계엄령의 해제를 공식 발표하는 '총통부 공보'(總統府公報). 장징궈 당시 총통의 명의로 되어 있다)

이 계엄령은 장징궈가 총통으로 있던 1987년 7월에 해제되었고, 중국대륙과 가까운 지역(진먼등)[1]은 1992년 11월에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2 계엄령 기간에 있던 사건

3 관련항목

  1. 중국대륙과 가까운 지역은 1948년부터 계엄령 선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