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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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의 로고. 정당의 색깔은 주황색. 하지만 여러모로 흑역사가 되었다.

1 개요

2007년 8월 5일 창당, 새천년민주당 탈당쇼를 벌여 만들어진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또 탈당쇼, 이른바 제2차 탈당쇼를 벌여 만들어진 정당.

민주당계 의원들이 벌인 희대의 뻘짓. 이 정당이 창당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보면 이럴거면 왜 탈당했냐는 소리가 안나올 수가 없다.

먼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김한길파(23명)가 2007년 2월 탈당, 이후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원내 교섭단체)을 구성했다가, 4월 국민중심당 일파였던 신국환 의원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한다. 그러나 이때 김한길파 23명 중 6명이 창당에 반대하여 중도이탈, 신국환 의원에 막바지에 합류한 유필우 의원 등을 더하여 간신히 원내교섭단체 20석을 형성한다. 이후 이인제를 받아들인 민주당(구 새천년민주당)과 함께 6월 말 합당하여 중도통합민주당을 만들었으나, 7월 말 김홍업 등이 탈당하고, 다시 8월 초에는 김한길파가 도로 탈당하면서 중도통합민주당은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바로 탈당 이틀 후인 8월 5일 열린우리당과 중도통합민주당의 탈당파, 손학규 세력 등이 결합하여 창당한 것이 바로 대통합민주신당이다. 보름 후인 8월 20일 자신들이 탈당했던 열린우리당과 도로 합당하며 그야말로 진정한 막장과 콩가루의 진수를 보여준다.

다만 이들도 돌고돌아 결국 다시 모이게 될 걸 알고 이런 거다. 가만히 있는다고 뭐가 바뀔 상황이 아니었기에... 당원의 구성이나 형태가 열린우리당의 후신, 통합민주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이며 실제로 비슷하다.

이 연속 탈당쇼로 인해 초대 한국 민주당의 계파가 부분적으로 2008년 통합민주당에 들어갔다. 족보상 한국 민주당의 계파를 이어받으려고 벌인 일이란 설이 있을 정도로 기이한 연속된 탈당쇼였다고 한다(꼬마 민주당건은 경우가 다르니 논외).

이때 경선과정에서 논란이 있었다. 자세한 건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박스떼기 논란 참고.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예정된 대패로 역대 대선 최대 격차, 민주당계 후보 최소 득표[1] 등의 대기록을 세웠다. 까놓고 말해서 출구조사 발표가 나오는 순간 더 지켜볼 필요도 없이 게임이 끝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 가관인 것은 호남의 투표함이 먼저 열려 몇분동안 정동영이 앞섰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대선처럼 처음 앞선 후보결국 떨어진다는 역사는 반복되었다.(...) 거의 득표율 예상치가 두 배 차이였으니... 그와중에 민주당으로 독자출마한 이인제 후보 역시 득표율 1%도 기록하지 못하며 그야말로 굴욕을 당했다.

그 짧은 기간 동안도 경선갈등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짧게 존속한 여당(6개월)[2] 이다. 신한국당도 2년은 버텼다.

그 와중에도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10월 2일~10월 4일에 있었던 2차 남북정상회담. 당연하겠지만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지지율에만 조금 기여하였다.

2 역대 선거결과

3 관련 항목

  1. 양김이 따로 나온 13대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이 거둔 득표율보다도 낮았다. 당시 김영삼 28.0% 김대중 27.0%, 정동영은 26.1%(...). 이인제가 0.7% 얻은 건 넘어가자 근데 합쳐도 26.8%
  2. 엄연히 말해서 대통령이 입당하지 않았고 또 책임소재를 제거하기 위해 입당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알고보니 열린우리당 당원 명부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