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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방위군(Timor Leste Defence Force).
1 개요
2 역사
동티모르해방군(FALINTIL, Forças Armadas de Libertação de Timor-Leste)이란 반인도네시아 게릴라가 그 모체이다. 2대 동티모르 대통령을 지낸 주제 라무스 오르타(José Ramos-Horta) 등은 과거에 독립시에 군대를 갖지 말자고 주장했지만 1999년에 독립 주민투표 후에 폭력사태 등이 발생하면서 방침을 바꾸었다. 독립 초기에는 약 5천 명의 병력을 유지할 계획이었다.
2000년 중반에 UN지원처(United Nations Transitional Administration in East Timor)는 동티모르군에 세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 3,000-5,000명 정도의 부대 규모.
- 1,500명은 직업군인, 1,500명은 징집병
- 1,500명의 현역, 1,500명의 예비역
동티모르의 경제상황을 감안했을 때 3안이 현실적이었다.
2001년 2월 1일에 동티모르가 독립하면서 동티모르해방군 출신 650명이 3월 29일부터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동티모르해방군 출신 참전용사들.
2006년 1월에는 서부 출신[1] 군인 159명이 동부 출신에 비해 차별받는다고 탄원을 냈다. 이들은 정부측의 반응이 시원찮자 3주 뒤에 무기를 남겨놓고 부대를 이탈했다. 곧 수백명이 합류했다. 당시 지휘관이었던 루아크 준장[2]은 594명을 전역 조치하였다. 군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었다. 4월 24일에 탄원자들과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정부청사에서 시위를 벌였고 4월 28일엔 시위대가 청사를 침입하였다. 총리는 군에 진압을 요청했고 폭동진압 경험이 없던 동티모르군[3]은 미숙한 해산작전을 벌여 3명이 사망하였다. 군이 시위대에게 총을 쏜 걸 본 알프레드 레이나도(Alfredo Reinado, 1968-2008) 헌병대장[4]과 소속 군인들이 군무이탈하였다. 경찰 중에도 일부 인원이 직무이탈하였다. 이들은 반군이 되었고 5월 24일에 정부청사를 공격했는데 해상대 소속의 전함이 포를 쏘면서 패하였다. 작전 기간 동안 군경(軍警)의 관계도 악화되었는데 5월 25일엔 동티모르군 소속의 군인들이 경찰청을 공격하여 9명의 비무장 경찰을 사살하였다.
5월 25일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라고 동티모르 정부는 요구하였다. 5월 동안 37명이 살해되었고 15만 명이 피난을 갔다. 평화유지군이 파병되어 내전은 진압되었고 리더인 가스타오 살시냐는 2008년 체포되어 16년형 선고와 같이 군역에서 강제퇴역당했다. 이 반란자 다수는 잡혀서 수감중이거나 군직에서 쫓겨났으며 일부는 인도네시아로 가서 살지만 인도네시아 측에게는 그다지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3 통수권
- 통수권자: 타우르 마탄 루악(Taur Matan Ruak,[5] 1956-) 대통령
- 국방장관: 시릴루 주제 크리스토바웅(Cirilo José Cristovão)
- 참모총장: 르레 아난 티모르(Lere Anan Timor) 소장
4 구성
보병대대 2곳과 1개 해상대(naval component)와 지원대 등으로 구성된다.
4.1 육군
600명 수준으로 경보병 2개 대대이다.
동티모르군은 호주군과 뉴질랜드군이 각각 훈련을 시켰다. 특히 호주군이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1/2 동티모르 UNPKO에서 호주군이 주도적인 역할과 많은 파병활동을 한바 있기 때문이다.
4.2 해상대
2001년 12월에 포르투갈군 해군으로부터 장비를 일부 인수하면서 창설되었다.
국방계획2020에 따르면 순시선을 늘리고 상륙정을 확보할 계획이다. 아무래도 섬나라이다보니.
중국으로부터 Type 62급 건보트 2척을 인수하며 기존 포르투갈군의 장비를 퇴역시키고, 이후 한국군에서 퇴역한 참수리급 3척을 공여받았다.
미 해군에게 교육을 받는 동티모르 해상대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