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장관

國防長官. Minister of National Defense. 또는 Secretary of Defense.

내각의 일원으로, 국방부의 수장이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보좌한다.

국방 안보를 전담하는 사실상 최고직위로, 언론에 자주 장관동정이 실리곤 한다. 제일 많이 실리는 사람은 기획재정부나 재무부 장관이다. 이 사람들은 예산을 틀어쥐고 있으니까.

이 자리에 어떤 사람이 임명되느냐, 또는 의전 서열이 어떠한가에 따라 해당 국가나 정부가 군사정권인지 군부에 대한 통제는 잘되는지 등의 속성이나 경향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때 군부의 권력이 매우 막강했던 터키의 경우 각료인 국방장관보다 현역군인인 총참모장의 의전서열이 높다.(터키 국가 의전서열에서 총참모장은 5위 국방장관은 11위.)

1 한국에서

대한민국 중앙행정기관장
부총리감사원장,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장관국정원장,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대통령경호실장, 국무조정실장
미래부 장관,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법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행자부 장관, 문체부 장관, 농림부 장관
산업부 장관, 복지부 장관, 환경부 장관, 노동부 장관, 여가부 장관, 국토부 장관, 해수부 장관, 안전처 장관
검찰총장, 방송통신위원회장,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국민권익위원장
차관국무총리비서실장, 법제처장, 인사처장, 식약처장, 보훈처장, 원자력안전위원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관세청장, 조달청장, 기상청장, 병무청장, 방사청장, 산림청장, 문화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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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의 기.

문민통제가 잘 이뤄지지 않는 한국의 정치문화 때문에 대개 전역한 대장이 취임한다. 물론 외국에서도 보통 국방장관은 고위 장성출신이 되는 성향이 강한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그러한 경향이 너무 심해 민간인은 커녕 군 출신이라도 부사관 출신이거나[1] 장교 출신이더라도 위관이나 영관급에서 군 생활을 마친 사람이면 국방장관을 하는건 불가능할 정도. 심지어 장성급도 4성장군이 아니면 꿈도 못꾸고, 아예 장관을 4성장군 출신으로 차관을 3성장군 출신으로 임명하는 관례가 있다.[2] 때문에 말이 문민통제이지 사실상 한국의 국방장관 직위는 제복군인 보직·계급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전역 후 국방장관에 임명되는 시기도 너무 빠르다. 합동참모의장을 맡다가 전역 후 한 시간 만에 장관에 임명된 42대 김태영 장관의 사례도 있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잘되는 나라일수록 국방장관은 군 출신자더라도 군에서 전역한 기간이 적지 않아 사실상 민간인화(化) 된 사람을 임명하려 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한국의 현행 국방장관 임명 방식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인사체계는 북한군과의 대치하는 상황상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의식은 그만큼 한국이 국방에 대한 사회적 무지와 비관심으로 인한 의식일뿐이다. 냉전시대 개전시작과 동시에 전술핵 수백발과 전략핵 수십발이 난무하는 유럽의 최전선인 독일만 하더라도 독일연방군 자체가 철저한 문민통제 우위를 기반으로 국방전략과 정책을 수행하였고 그러한 문민통제때문에 동독군과 소련군 등과 같은 공산권 군대들에 비해서 오히려 전략적 열세나 대치중의 전력열세에 처하는 형국은 없었다. 더욱이 그로 인한 제복 입은 국민의 개념과 의식이 군대에 확실하게 적용되어서 국가속의 국가를 만드는 일도 없었기에 냉전종식후 공산권 군대들이 서방 군대의 복지수준이나 의식수준에 대단히 찬사와 부러움을 나타내야했고 특히 독일의 경우에는 동독군이 자발적으로 독일연방군에 편입을 자처할 정도였다. 한마디로 군부의 핑계와 일반적으로 전쟁과 군대에 관심이 적고 이해가 부족한 병폐라고 보면 되겠다. 더욱 중요한것은 한국과 같은 제1세계 즉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중에는 어느 국가도 한국과 같은 군출신 4성 장군이 전역후 1시간도 안되어서 보직연장하는 형태의 장차관을 하는 경우는 대만 밖에 없다.

한국이 국방개혁을 하는데 있어서 바로 잡아야할 문제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문민통제의 원칙이 제대로 준수되는가 아닌가의 문제다 하겠다. 당장의 병영문화 개선이나 국방개혁이다 할때마다 군부의 외부개입의 간섭이나 사회적 영향을 배제하려는 모습을 종종보거나 봐주기식 혹은 매우 소극적인식의 행보는 바로 이러한 문민통제가 안되는 한국의 국방장관의 존재 때문이라 하겠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민간 출신 국방장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2대 국방장관이었던 신성모 부터가 상선사관 출신이라 사실상 민간인 출신이라고 보아야한다. 그리고 본 문서 하단에 첨부된 역대 국방장관 목록에서도 대한민국 초기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의 존재가 다수 확인된다. 사실 민간인 국방장관이 금기시 되는 것은 2대 신성모 국방장관의 한국전쟁 당시에 일으킨 흑역사들의 교훈 문제와 함께 제2공화국 시절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으로 문민통제를 시도했다가 결국 5.16 군사정변을 막지 못하여 정권이 붕괴된 탓도 크다. 민간인 출신이 국방장관을 맡아 군부 내부사정에 어두워서 변고를 당했다는 인식이 있다보니 되려 이후 정권에선 문민통제를 위해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을 기피하게되는 경향이 생긴 것과 동시에 쿠데타로 인한 군 장성 출신 대통령들의 인사에 있어서도 군 출신을 뽑는 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었다. 특히 12.12때는 하나회와 같은 사조직 형태로까지 국방장관-차관-장성단이 구성되는 현실까지 볼수 밖에 없었던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제 6공화국 출범 이후 각 정권에서는 군부 개혁의 의지를 드러내더라도 국방장관 인선을 비교적 정치력이 약한 해군이나 공군, 또는 육군이지만 힘이 약한 기수에서 뽑는 정도에서 그치는 정도. 결국 문민통제의 실현 가능 여부는 단지 민간인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는 데 달린 게 아니라, 국방장관의 재원이 될 민간 출신의 국방전문가 육성이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지는 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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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한민구 국방장관.

1.1 역대 한국 국방장관

자료출처: 위키백과 한국어판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
국방부 역대장관

1.1.1 제1공화국

1.1.2 제2공화국

1.1.3 제3공화국

1.1.4 제4공화국

1.1.5 제5공화국

1.1.6 제6공화국

노태우 정부

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

  • 천용택: 34대. 예비역 육군소장, 국회의원, 국가정보원장.
  • 조성태: 35대. 육군 제2군사령관.
  • 김동신: 36대. 육군참모총장.
  • 이준: 37대. 육군 제1군사령관.

참여 정부

  • 조영길: 38대. 합참의장.
  • 윤광웅: 39대. 예비역 해군중장, 청와대 국방비서관.
  • 김장수: 40대. 육군참모총장, 국회의원.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1.2 위엄

보통 4성장군 출신이 장관이 되니, 현직 4성장군들은 그저 얌전한 군 후임일 뿐. 직급상 하급자인 것에 더불어, 후임 + 후배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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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안내 내비게이션해군참모총장해야 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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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셔틀은 육군 중장이 해야 제 맛! 다만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한 게, 국회에 설명하러 나가서 국회의원과의 질의응답을 보조하기 위해 나간 중장이 임시로 잡게 된 것 뿐이다. 뒤에 보면 해군대령이 있는 것도 보일 것이다. 해군대령은 차마 질의응답을 위해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갈 직급이 안 되기 때문에 밖에 있는 것. 그러니까 저 안에서 칠판이라도 잡으려면 중장은 되어야 한단 의미다.[9] 어째 죄다 김태영(군인) 장관이다

인사권 등에서 청와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합참의장 출신인 이상희 장관 재직 시절에 청와대에서 참모총장들에게 국방장관에게 보고하지 말고 서울특별시로 오라고 하자 참모총장들이 몰래 유선으로 국방장관에게 보고를 했고 이 일로 국방장관은 엄청 빡돌았다 분개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제외한 대장들은 근무지를 벗어나려면 국방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 관련기사

대한민국 국방장관은 북한의 원색적인 비난을 개인단위로 받을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김관진 前 장관도 그랬고# 한민구 장관도 열심히 받고 있다(....).#

1.3 북한의 경우

북한의 경우엔 인민무력부(人民武力部)가 대한민국의 국방부에 해당되어, 인민무력부장이 국방장관에 상응한다. 1945년 소련군정경찰을 보완하기 위해 군대 창설을 검토했으며, 1948년 2월 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즉, 정부보다 군대가 먼저 생겼다.[10] 역시 선군정치답다 1948년 9월에 민족보위성(民族保衛省)이란 이름으로 내각 국방부서가 설립됐고, 이것이 1972년 12월 제5기 내각 때 인민무력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8년 9월에는 국방위원회 명령으로 인민무력성이 됐다가, 2001년 9월에 다시 인민무력부로 바뀐다. 인민무력부 산하에는 한국군합참에 해당하는 기관은 없으나 육해공 위에 총참모장이 존재한다. 참모총장의 옛 이름인데 육군이 비대한 북한군의 특성상 거의 육군 출신들이 독점한다. 인민무력부장도 현직 육군대장들이 맡는다. 문민통제는 당적인 통제로 이루어지며 총정치국에서 맡는다.

2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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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의 기.

미국의 국방부 장관
강력한 문민통제 원칙 하에 1947년 국방부가 세워진 이래 조지 C. 마셜을 제외한 장관들이 민간 출신이다. 다만 여기서 민간 출신이란 말 그대로 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을 뜻하기도 하지만 군대 출신이었으나 전역한지 오래되어 민간인이나 다름없어진 사람도 포함한다. 군 출신자의 경우 전역한지 최소 7년은[11] 지나야 국방장관이 되는 것이 가능한데 다만 조지 C. 마셜의 경우 종신계급인 원수 출신인데다 당시 미국의 외교안보 상황도 워낙 급박했던지라 예외적으로 군인출신이 임명되었다. 그러나 마셜도 군대에서 나와 국무장관이나 미국 적십자사 총재 등 사실상 민간인인 생활을 했던 상황이었다.

다만 도널드 럼즈펠드처럼 좀 애매한 경우도 있다. 럼즈펠드는 해군 조종사로 3년을 현역근무하였는데 예비군으로 전환하고 진급을 거듭하여 젊은나이에 대령에 이르렀다. 그 상황에서 예비군은 군인이었던 기간으로 치지 않아 민간인이었던 기간이 10년이 넘는 셈이 되었고 동시에 계급도 대령에 이르러 상당히 젊은 나이에 국방장관이 될 수 있었다.(미 역대 국방장관 중 최연소) 애초에 미국의 예비군은 한국의 예비군 같은 것과 다른데다가, 계속 진급했다는 것은 그에 수반되는 관련 군사 교육·활동을 했었다는 것의 반증이라 아예 민간인이라고 보기 애매하다.근데 왜그랬어요 말해봐요

역대 국방장관은 여기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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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현 미 국방장관 애슈턴 카터.

3 일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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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성기다. 2007년 방위청이 방위성으로 승격되면서 방위청장관(防衛廳長官) 역시 방위대신(防衛大臣)방위를 대신 간다는 게 아니다, 한국의 국방장관급으로 승격됐다. 방위청장관 땐 장관이었는데 일본의 장관은 한국의 차관, 청장급이며 대신장관급이다. 다만 방위청장관 시절에도 의 대신과 동급인 국무대신을 임명했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의 장관급이었다.

3.1 역대 일본 방위대신

  • 경찰예비대본부장관
마스하라 게이키치(増原惠吉) 1950. 8. 14-1952. 7. 31
  • 국무대신(경찰예비대상당)
오하시 다케오(大橋武夫) 1951. 12. 26-1952. 7. 31
  • 해상보안청장관(보안청의 과도기)
야나기자와 미요시(柳沢米吉) 1952. 4. 26-1952. 7. 31
  • 국무대신 보안청장관[12]
임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13] 1952. 8. 1-1952. 10. 30 (자유당)
1대 기무라 도쿠타로(木村 篤太郎) 1952. 10. 30 -194. 6. 30
  • 국무대신방위청장관(총리부 외국外局)
1대 기무라 도쿠타로[14] 1954. 7. 1-1954. 12. 10
2대 오무라 세이치(大村 清一) 1954. 12. 10-1955. 3. 19 (일본민주당[15])
3대 스기하라 아라타(杉原 荒太) 1955. 3. 19-1955. 7. 31 (일본민주당)
4대 스나다 시게마치(砂田重政) 1955. 7. 31-1955. 11. 22 (일본민주당)

5-53대는 자민당 소속이다.

5대 후나다 나카(船田中) 1955. 11. 22-1956. 12. 23
대행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 1956. 12. 23-1957. 1. 31
대행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957. 1. 31-1957. 2. 2
6/7대 고다키 아키라(小瀧彬)
8대 쓰시마 주이치(津島壽一) 1957. 2. 2-1957. 7. 10
9대 사토 기센(左藤義詮) 1958. 6. 12-1959. 1. 12
10대 이노 시게지로(伊能繁次郎) 1959. 1. 12-1959. 6. 18
11대 아카기 무네노리(赤城宗徳) 1959. 6. 18-1960. 7. 19
12대 에사키 마츠미(江崎真澄) 1960. 7. 19-1960. 12. 8
13대 니시무라 나오미(西村直己) 1960. 12. 8-1961. 7. 18
14대 후지에타 센스케(藤枝泉介) 1961. 7. 18-1962. 7. 18
15대 시가 겐지로(志賀健次郎) 1962. 7. 18-1963. 7. 18
16/17대 후지타 도쿠야스(福田篤泰) 1963. 7. 18-1964. 7. 18
18/19대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16] 1964. 7. 18-1965. 6. 3
20대 마츠노 라이조(松野頼三) 1965. 6. 3-1966. 8. 1
21대 간바야시야마 에이키치(上林山栄吉) 1966. 8. 1-1966. 12. 3
22/23대 마스다 가와시치(増田甲子七) 1966. 12. 3-1968. 11. 30
24대 아리타 기이치(有田喜一) 1968. 11. 30-1970. 1. 14
25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17] 1970. 1. 14-1971. 7. 5
26대 마스하라 미요시(增原惠吉) 1971. 7. 5-1971. 8. 2[18]
27대 니시무라 나오미(西村直己) 1971. 8. 2-1971. 12. 3[19]
28대 에사키 마츠미(江崎真澄) 1971. 12. 3-1972. 7. 7[20]
29/30대 마스하라 미요시(增原惠吉) 1972. 7. 7-1973. 5. 29[21]
31대 야마나카 사다노리(山中貞則) 1973. 5. 29-1974. 11. 11
32대 우노 소스케(宇野宗佑) 1974. 11. 11-1974. 12. 9
33대 사카타 미치타(坂田道太) 1974. 12. 9-1976. 12. 24
34대 미하라 아사오(三原朝雄) 1976. 12. 24-1977. 11. 28
35대 가네마루 신(金丸信)[22] 1977. 11. 28-1978. 12. 7
36대 야마시타 간리(山下元利)[23] 1978. 12. 7-1979. 11. 9
37대 구보타 엔지(久保田円次)[24] 1979. 11. 9-1980. 2. 4
38대 호소다 기치조(細田吉蔵) 1980. 2. 4-1980. 7. 17
39대 오무라 조지(大村襄治) 1980. 7. 17-1981. 11. 30
40대 이토 소이치로(伊藤宗一郎) 1981. 11. 30-1982. 11. 27
41대 다니카와 가즈오(谷川和穂) 1982. 11. 27-1983. 12. 27
42대 구리하라 유코(栗原祐幸) 1983. 12. 27-1984. 11. 1
43대 가토 고이치(加藤紘一)[25] 1984. 11. 1-1986. 7. 22
44대 구리하라 유코(栗原祐幸)[26] 1986. 7. 22-1987. 11. 6
45대 가와라 츠토무(瓦力) 1987. 11. 6-1988. 8. 24
46대 다자와 기치로(田沢吉郎) 1988. 8. 24-1989. 6. 3
47대 야마자키 타쿠(山崎拓) 1989. 6. 3-1989. 8. 10
48대 마츠모토 주로(松本十郎) 1989. 8. 10. - 1990. 2. 28
49대 이시카와 요조(石川要三) 1990. 2. 28 - 1990. 12. 29
50대 이케다 유키히코(池田行彦) 1990. 12. 29 - 1991. 11. 5
51대 미야시타 소헤이(宮下創平) 1991. 11. 5 - 1992. 12. 12
52대 나카야마 토시오(中山利生) 1992. 12. 12 - 1993. 8. 9

53대와 54대, 54대 대행인 하타 츠토무는 신생당 출신이다.

53대 나카니시 케이스케(中西啓介) 1993. 8. 9 - 1993. 12. 2
54대 아이치 가즈오(愛知和男) 1993. 12. 2 - 1994. 4. 28
대행 하타 쓰토무(羽田孜) 1994. 4. 28[27]

55대인 칸다 아츠시는 민사당 출신이다.

55대 칸다 아츠시(神田厚) 1994. 4. 28 - 1994. 6. 30

56대부터 마지막 방위청장관인 73대까지는 다시 전원이 자유민주당 출신이다.

56대 타마자와 도쿠이치로(玉澤徳一郎) 1994. 6. 30 - 1995. 8. 8
57대 에토 세이시로(衛藤征士郎) 1995. 8. 8 - 1996. 1. 11
58대 우스이 히데오(臼井出男) 1996. 1. 11 - 1996. 11. 7
59대 규마 후미오(久間章生)[28] 1996. 11. 7 - 1998. 7. 30
60대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郎)[29] 1998. 7. 30 - 1998. 11. 20
61대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芳成) 1998. 11. 20 - 1999. 10. 5
62-63대 가와라 츠토무(瓦力)[30] 1999. 10. 5 - 2000. 4. 5 / 2000. 4. 5 - 2000. 7. 4
64대 토라시마 카즈오(虎島和夫) 2000. 7. 4 - 2000. 12. 5
65대 사이토 토시츠쿠(斉藤斗志二) 2000. 12. 5 - 2001. 1. 5

66대부터 76대 방위청장관은 총리부 외국이 아닌 내각부 외국 소속이 된다. 전원 자유민주당.

  • 국무대신 방위청장관(내각부 외국)
66대 사이토 토시츠쿠(斉藤斗志二)[31] 2001. 1. 6 - 2001. 4. 26
67대 나카타니 켄(中谷元)[32] 2001. 4. 26 - 2002. 9. 30
68/69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2002. 9. 30 - 2003. 11. 19/2003. 11. 19 - 2004. 9. 27
70/71대 오노 요시노리(大野功統) 2004. 9. 27 - 2005. 9. 21/2005. 9. 21 - 2005. 10. 31
72대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郎)[33] 2005. 10. 31 - 2006. 9. 26
73대 규마 후미오(久間章生)[34] 2006. 9. 26 - 2007. 1. 8
  • 방위대신

1대부터 6대까지는 자민당이다.

1대 규마 후미오(久間章生)[35] 2007. 1. 9 - 2007. 7. 4
2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36] 2007. 7. 4 - 2007. 8. 27
3대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37] 2007. 8. 27 - 2007. 9. 26
4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38] 2007. 9. 26 - 2008. 8. 2
5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2008. 8. 2 - 2008. 9. 24
6대 하마다 야스카즈(浜田靖一)[39] 2008. 9. 24 - 2009. 9. 16

7대부터 10대는 민주당이다.

7/8대 기타자와 토시미(北澤俊美) 2009. 9. 16 - 2010. 6. 8/2010. 6. 8 - 2011. 9. 2
9대 이치카와 야스오(一川保夫)[40] 2011. 9. 2 - 2012. 1. 13
10대 다나카 나오키(田中直紀)[41] 2012. 1. 13 - 2012. 6. 4

9대 이치카와 야스오와 10대 다나카 나오키가 국방지식이 전혀 없고 거하게 삽질을 하는 바람에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항공자위대 소령 출신의 외교관이자 방위대신보좌관이었던 모리모토 사토시를 방위대신으로 기용했다. 그는 민주당 당적이 아닌 민간인[42]으로 민간인이 방위대신에 오른 최초의 사례였다. 그 전엔 모두 국회의원이었다.

11대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2012. 6. 4 - 2012. 12. 26

12대부터는 아베 신조가 자민당 총리가 됨에 따라 자민당 출신이 하게 됐다.

12대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2012. 12. 26 - 2014. 9. 3
13대 에토 아키노리(江渡聡徳) 2014. 9. 3 - 2014. 12. 24
14대 나카타니 겐[43] 2014. 12. 24 - 2016. 8. 4
15대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44] 2016. 8. 4 -

4 중화인민공화국

사실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중국의 사실상 통치자이기 때문에 이들의 힘이 막강하지만 정부 차원에 국방부가 있긴 하다. 국방장관을 국방부장이라 부르며 현역 군인이 맡는다. 군사외교를 맡고 타국의 국방장관 같은 힘은 없다는 설이 있는데 북한의 인민무력부장과 오인된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의 국방부장은 한국의 국방장관에 못 할 게 없다. 애초에 야전 출신의 작전통들이 올라간다는 점에서 제복을 벗었냐 안 벗었냐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군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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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완취안(常萬全) 현 국방부장. 란저우 군구의 인민해방군 군구사령관 출신이다. 다만 중국의 경우 국민의 군대가 아닌 당의 군대라는 점에서 정치장교를 통한 당의 통제가 확실히 이뤄진다. 어차피 실질적인 국방부 장관인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도 군대 물을 다 뺀 상태에서 취임하기 때문에 의외로 문민통제는 잘되고 있다. 진짜 문제라면... 중화민국군. 얘네는 대한민국과 다를게 없다.[45]

  • 역대 국방장관

제1대 펑더화이(彭德怀) 원수
제2대 린뱌오 (林彪) 원수
제3대 예전잉 (叶剑英) 원수
제4대 쉬샹첸 (徐向前) 원수
제5대 겅뱌오(耿飚) (원래 군장(야전군 사령관) 출신이나 건국후 군을 떠나있었기 떄문에 군에서 계급을 받은바 없다.)
제6대 장아이핑 상장
제7대 친지웨이(秦基伟) 상장
제8대 츠하오톈(迟浩田) 상장
제9대: 차오강촨( 曹刚川) 상장
제10대: 량광례(梁光烈) 상장
제11대: 창완취안 (常万全) 상장

5 중화민국(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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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국방부장

6 여성 국방장관?

서구권에서 문민통제가 웬만큼 되는 나라들은 간혹 여성 국방장관(!)이 나오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2014년 현재 국방장관은 아니지만 산하 공군청장 자리에 여성인 데보라 리 제임스가 재임 중이고, 독일도 現 국방장관이 여성이다. 여기는 과거 보헤미아 상병이 홀로 군권을 장악하여 어마어마한 난리를 쳤기 때문에, 평시에 한해서지만 국방장관이 연방대통령이나 총리 대신 군 통수권을 행사하는 무지막지한 자리.(국가가 전시상황에 돌입할 경우에는 총리에게 인계된다.) 그런데 이 국방장관이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이라는 여성이다. 그것도 가족부 장관[46]과 노동사회부 장관[47]을 거친 의사 출신이라서 문민통제에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는 "이건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선진국에서 이딴 낙하산 인사라니!" 같은 평이 들리기도 한다.[48] 하지만 이런 장관들도 일을 못하는게 아니라 유럽통합군 창설을 제창한다거나 문민의 눈으로 군대에 부족한 복지요소에 신경을 쓰며[49] 군대에 탁아소를 설치하는 등 여러모로 세심한 면이 눈에 띄어서 크게 까이지 않는다. 폰 데어 라이엔 장관은 2014년 상반기 현재 기독교민주연합의 거물로 떠올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 1순위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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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다른 얘기로, 스페인의 2008년~2011년 기간 국방장관으로 재임했던 카르메 차콘 장관은 30대 중반의 법학 박사 출신이었는데, 사파테로 총리의 보좌관을 지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는 만삭의 임산부로서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그 배나온 여인의 몸으로 스페인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산부인과 주치의를 대동한채 ISAF를 방문하는등 당찬 행보를 보이더니 노산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아들을 낳아서 국방장관 재임 중 출산이라는 전대미문의 위업(;;;)을 세웠다. 국방장관이 출산휴가를 요청하는 진귀한 뉴스에 문민통제에 익숙치 않은 대한민국의 일반인들은 그야말로 컬처쇼크를 받았다고(...)

중화민국(대만)에서는 중화민국군차이잉원 당시 대륙위원회 주임(통일부 장관)에게 국방장관 직을 제의한 적이 있었으나 차이잉원이 국방장관 직을 사양하고 입법의원(국회의원) 진출을 선언하면서 무산된 적도 있다.

7 여담

캐나다에서 1963년부터 1967년까지 국방장관을 지낸 폴 헬리어(Paul Hellyer, 1923-)는 2013년에 외계인 관련 주장을 펼쳐 음모론자들의 반향을 얻었다.
  1. 한국은 징병제의 특성상 병 출신은 민간인 출신 취급이므로 언급에서 제외. 미국의 경우 병 출신이 국방장관이 된 경우도 있다
  2. 그래도 국방차관은 민간인이 임명된 적이 여러번 있다. 일단 현행 국방차관인 백승주도 정치·안보 전문가 출신의 민간인이다.
  3. 상선사관 출신. 국부군 해군에서 교육받았으며 해방당시 영국령 인도의 상선회사 고문이었다. 이 때문에 민간이 아닌 해군 출신으로 오인받기도 했다. 정부수립 당시 주한미군사고문단과 이범석 초대 국방장관의 회담에서, 미측은 신성모를 가리켜 "(그가) 영국 해군(Royal Navy) 출신 맞지요?"라고 질문했고 이범석 장관도 "그렇다"고 답변했다.(...) 덕분에 해방직후 상선사관 출신임에도 해군 중장 직위를 받기도 했다.
  4. 여기부터는 5.16 군사정변 이후 임명된 장관들이다. 즉 실질적인 제2공화국의 국방장관은 위 두 명이 전부.
  5. 현재까지 유일한 해병대 출신 국방장관.
  6. 훗날 KBO 초대 총재가 되는 그분 맞다. 서승환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아버지이자 가수 서지영의 할아버지. 서승환 전 장관과 서지영은 삼촌-조카 관계다.
  7. 12.12 군사반란 이후 신군부에 의해 퇴임한 그 사람 맞다.
  8. 2014년 6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지명되었으며 국방장관에는 제 36대 합참의장이었던 한민구 전 대장이 지명되었다. 한민구 국방장관 지명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될 때까지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국방장관을 겸했다.
  9. 국회의원이 씹히기야 많이 씹히는 직종이지만 선출직 공무원이라 대표성에서 나오는 힘이 막강해 일반 공무원과는 끗발이 다르다. 애초에 국회의원은 개인개인이 모두 헌법 기관이다. 입법부 그 자체.
  10. 대한민국의 경우 정부 수립은 1948년 8월 15일이고, 국군을 창설하고 기존 준군사조직은 국군에 편입한다는 국방부훈령 1호의 공포일이 1948년 8월 16일이다. 조선경비대해안경비대의 국군 편입은 동년 9월 1일, 공군의 창설일은 1949년 10월 1일이다.
  11. 본래 10년이었으나 중도에 법이 개정됨.
  12. 총리부(관방내각)의 외국(外局)이었다.
  13. 보안청에 처음 등청해선 자위대에게 새로운 국군의 토대가 되라고 했다가 언론에게 질타당했다. 본인은 군부를 그렇게 혐오했으면서 정작 국군이란 말을 써서...
  14. 보안청 장관에서 계승하였다.
  15. 지금의 민주당과는 다른 당으로 자유당과 합당하여 자유민주당이 된다.
  16.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버지이다.
  17. 방위대강 등을 변경하여 자위대의 규모를 늘려보려고 애썼으나 미키 다케오 총리에 의해 실패한다.
  18. 전일본공수 여객기와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추락해 여객기 승객 162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한 달이 못 되서 물러났다. 전일본공수 시즈쿠이시 공중충돌 사고를 참고할 것.
  19. 13대를 역임한 인물이다.
  20. 12대를 역임한 인물이다.
  21. 물러난지 1년만에 다시 복귀했다.
  22. 상당한 매파였으나 구로스 히로오미 통합막료장의 항명사건으로 자위대가 문제를 일으키자 저자세로 일관한다.
  23. 일본군 해군에서 주계(회계)장교를 했다.
  24. 미야나가 유키히사(宮永幸久, 육사 54기) 육자대 소장이 소련군의 정보기관과 접촉하여 중소문제를 이유로 정보를 넘긴 사건. 미야나가 소장 본인은 소련군의 정보를 대신 받았다고 주장하나 그 과정에서 현금을 받은 게 문제가 되었고 관련된 하위 장교 둘을 포함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일로 당시 방위청장관과 육상막료장의 목이 날아갔다.
  25. 자유민주당 내에선 노나카 히로무와 더불어 리버럴한 인물로 유명하다. 고바야시 요시노리 등을 비판하는 저서를 냈다. 북한김정일을 두고 일종의 북한덴노라고 표현했다가 까이기도 했다.
  26. 42대를 역임했다.
  27. 1994년 4월 28일 하루 대행했다.
  28. 첫 방위대신을 지내기도 했다.
  29. 방위청 조달실시본부 배임사건 발생으로 참의원에서 문책이 결의되자 사임했다.
  30. 45대를 역임했다.
  31. 65대를 역임했다. 임기 중에 총리부에서 내각부로 소속이 바뀐 탓.
  32. 방위대학교를 졸업한 뒤 육상자위대 중위에서 전역한 자위관 출신이다. 이때문에 취임하는 것을 두고 문민통제 위반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으나 전역 후 10년이 넘게 지난 상태라 유야무야 넘어갔다.
  33. 60대를 역임했는데 당시엔 방위청 조달실시본부 배임사건으로 사임했고 7년 만에 다시 방위청 장관이 됐으나 방위시설청 담합사건이 생기면서 또 사임한다. 부패전문장관
  34. 59대를 역임했으며 그의 재임 중에 방위청은 방위성으로 격상된다.
  35. 59/73대 방위청장관을 역임했다. 원폭 투하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발언하여 사임했다. 아베 신조 총리 시절의 일이다.
  36. 최초의 여성 국방각료였으나 두 달 만에 아베 1차 내각이 총사퇴하는 바람에 물러났다. 2016년 도쿄도지사에 당선되었다.
  37. 후쿠다 야스오 내각으로 들어왔다. 문제를 일으킨 바 있는 방위시설청을 해체하고 방위감찰본부를 신설했다.
  38. 68/69대 방위청장관을 역임했다. 이지스함어선이 충돌한 사고로 어민 두 명이 실종되면서 사임했다.
  39. 방위회의를 신설했으며 논문 사건을 일으킨 타모가미 토시오를 경질했다. 아소 다로가 내각을 해산하면서 임기가 끝났고 그 해 9월에 자민당은 민주당에게 참패했다.
  40. "안보는 아마추어지만 그런 게 진정한 문민통제이다.(安全保障に関しては素人だが、これが本当のシビリアンコントロールだ)"와 같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발언으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고 결국 문책이 결정되자 사임했다.
  41. 방위대신이 된 후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무기수출3원칙을 헷갈리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비서관을 대동시켜 대답하도록 시켜 복화술이나 하냐는 비판을 들었다.
  42. 이 경우 민간인은 문민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이 각료직에 오르는 경우를 말한다.
  43. 67대 방위청장관을 지냈다. 1957년생으로 방위대학교 24기 출신으로 1980년에 졸업했다. 육상자위대에서 4년간 보병장교로 근무한 뒤에 1985년에 중위로 전역해 국회의원 비서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가토 고이치, 이마이 이사오, 미야자와 기이치 등의 비서를 지내다가 1990년에 중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1년 고이즈미 내각에서 방위청장관에 기용되었는데 문민통제 위반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미 전역한지 16년이나 지난 터라 용인되었다. 미국의 경우 문민의 자격을 최근 10년간 현역 군적을 두지 않은 자로 보고 있다.
  44. 일본의 두 번째 여성 방위대신. 여성답지않게 막가파급으로 막말을 쏟아내는데다가 극우, 혐한, 혐중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고 있다. 무관 출신인 전임 방위상은 임기 내내 조용히 임무를 수행하고 퇴임한 반면 이쪽은 여성에 문관 출신임에도 오히려 취임 첫 날부터 주변국들을 자극하는데다가 핵무장도 가능하다라고 언급할 만큼 강경한 색채를 띄고 있다.
  45. 얘네들도 대륙과 대치상 어쩔 수 없어 보이지만 이쪽은 중국 국민당을 비롯한 친대륙 세력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사실상 싸울 명문이 없기 때문에 슬슬 문민통제해도 되지 않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어차피 중화인민공화국 측에서는 중화민국군을 괴뢰군 따위로 보지 않고 "대만군"(臺軍)이라는 이름으로 자국의 준군사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중화민국군에서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대륙에서 "타이완군은 잔인한 군대다."라며 비꼰다. 실제로 훙중추 상병 사망사건이 터지자 바이두 게시판에서 이런 말이 나온 적이 있다. 문민통제가 잘되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문민통제가 안되는 타이완에게 이런 말을해도 타이완 측에서는 할 말이 없다.
  46. Minister of Family Affairs, Senior Citizens, Women and Youth
  47. Minister of Labour and Social Affairs
  48. 다만 이런 현상은 의원 내각제를 실시하는 정부에서는 흔히 찾을 수 있는 현상이다. 요컨데 국방부도 다른 곳과 같은 평등한 정부 부처라는 것. 게다가 의원내각제 특성상 대개 집권당 의원 중에서 각료를 뽑아야하기에 인재풀이 제한적인 탓도 있다. 더욱이 제도상 내각해산 등 내각인선의 지각변동도 잦고 연정이라도 하는 경우 다른 정당 사람에게 맡겨야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마다 징병제를 시행하는 것도 아닌 나라에서 꼬박꼬박 적합한 군 출신자가 나타나 국방장관을 맡는다는 것이 더 어렵겠다. 어쨌든 정부 부처 중 국방부가 유난히 중요성이 강조되는 남북대치 상황하의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굉장히 낯설어할 요소.
  49. 캐치프레이즈부터가 "독일군을 독일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겠습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