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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국가 | ||
?width=50 미얀마 | ?width=50 라오스 | ?width=50 베트남 |
?width=50 말레이시아 | ?width=50 태국 | ?width=50 캄보디아 |
?width=50 브루나이 | ?width=50 필리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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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40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회원국 | ||||
width=50 포르투갈 | width=50 브라질 | width=50 앙골라 | width=50 모잠비크 | width=50 적도 기니 |
width=50 기니비사우 | width=50 상투메 프린시페 | width=50 카보베르데 | width=50 동티모르 | width=50 마카오 |
Repúblika Demokrátika Timór-Lorosa'e (테툼어)
República Democrática de Timor-Leste (포르투갈어)
Democratic Republic of East Timor (영어)
21세기에 독립한 최초의 나라.
면적 | 15,007 km² |
인구 | 1,231,116만명(2015) |
수도 | 딜리 |
공용어 | 포르투갈어, 테툼어 |
대통령 | 타우르 마탄 루악[4] |
총리 | 루이 마리아 드 아라우주 (Rui Maria de Araujo) |
종교 | 기독교 99% 이상(가톨릭 97%, 개신교 2.2%) |
국민총생산 | 56억불 |
1인당 국민소득 | 1,112불(2012), 석유 부문을 포함할 경우 4,840불 |
목차
1 개요
티모르 섬의 동쪽 부분에 자리잡은 공화국. 수도는 딜리. 국토면적은 15,000㎢. 인구 약 121만 명. 필리핀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유이한 가톨릭 국가이다.
소순다 열도 동쪽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티모르"라는 섬 이름은 마인어로 동쪽이라는 뜻의 "Timur"에서 유래하였다. 그렇다면 동티모르라는 나라 이름은 "동쪽 동쪽"이라는 (한때 인도네시아에서는 Timor Timur라고 했다) 동어반복이 된다. 하지만 틀린 표현은 아니다. 포르투갈식 표현이자 공식 명칭인 Timor-Leste에서도 나타나듯, "티모르(동쪽)"에서도 동쪽에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기 때문. 말레이-폴리네시아어 계열에선 이런 표현이 자주 있다. 좋은 예로 일랑일랑: (Ylang-Ylang, 꽃중의 꽃)
2 역사
동남아시아의 역사 | ||
미얀마 | 라오스 | 베트남 |
말레이시아 | 태국 | 캄보디아 |
브루나이 | 필리핀 | |
싱가포르 | 인도네시아 | 동티모르 |
티모르 섬은 서부 지역은 네덜란드, 동부 지역은 포르투갈의 식민 통치를 받으면서 서구인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졌다. 본래 하나의 섬이지만, 이쪽 동네가 대개 그렇듯 언어도 문화도 다르다. 식민지배로 인해 달라졌다는 착각이 있는데 원래 다르다! 동티모르 안에서도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한다. 참고로 다른 인도네시아 섬도 여러 언어와 인종, 문화 모든 게 다른 이들이 살던 곳으로 따로 살다가 네덜란드가 식민지배하면서 합쳐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인도네시아의 다른 섬들은 마인어 방언을 구사한다는 공통점이라도 있었으나 티모르 섬의 경우에는 토양 일부를 네덜란드가 지배했을 뿐 문화적으로는 사실 오스트랄라시아에 더 가깝다. 지형적으로도 인도-오스트레일리아 판(Indo-Australian Plate)에 속해있으며 섬 자체가 인도-오스트레일리아 판과 유라시아 판이 정확히 서로 부딪히면서 생긴 지형이다.[5] 거기다 동티모르의 경우는 아예 수백 년간 정치적으로도 분리되어 있었기에 독립국이 되었을 때는 이미 아무도 토를 달기 힘든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4만 년 전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 뉴기니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관련이 있다. 이후 프로토-말레이인이 이주해 왔으며, 따라서 지금 동티모르엔 멜라네시아인들이 쓰는 뉴기니계 언어와 프로토-말레이인이 쓰는 말레이-폴리네시아계 언어가 모두 쓰인다. 이들은 웨할리 같은 작은 왕국들을 세우긴 했으나 자바섬이나 발리섬 등과 다르게 문자는 사용되지 않았기에 동티모르의 고대사는 잘 밝혀져 있지 않다. 16세기 포르투갈이 티모르 섬 전체를 식민지이자 향료 무역의 거점으로 삼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힌두교, 불교와 이슬람이 근근히 전파되기는 했지만.
그러다가 17세기 이후 포르투갈이 쇠퇴하고 네덜란드가 순다 제도의 패권을 잡으면서 포르투갈의 양도로 서(西)티모르는 네덜란드가 차지하고 동(東)티모르만 포르투갈 식민지로 남았다. 오랜 세월 동안 가톨릭이 깊숙히 전파되어 인도네시아와는 천지차이로 철저한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이것도 티모르 분쟁의 중요한 요소였다. 단, 서티모르도 머릿수로 따졌을 때는 인구의 91%가 기독교를 믿는다. 다만 개신교 비중이 40% 정도로 동티모르보단 많이 높은 편.
포르투갈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정권 (1932~1968) 때 티모르를 포함해 모든 해외 식민지들의 독립을 억압했으나, 지겨운 전쟁에 염증을 낸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킨 뒤 1974년 이후 독립문제가 논의되었으나, 당시 동티모르 일대의 독립 운동의 주도권을 좌파가 장악했기 때문에, 미국-호주-인도네시아 모두 "태평양의 쿠바"가 태어나는 것을 원치 않아, 3국의 암묵적 합의 하에 1975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 침공, 27번째 주로 일방적으로 합병했다.
이후 세계적인 무관심 속에 인도네시아의 식민통치와 군정(軍政)이 이어져,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통치 때 70만 인구 중 무려 20만(!)이 추방되거나 학살되는 등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그러다가 1990년대 냉전이 종식되면서 겨우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아,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이 퇴진하면서 인도네시아가 IMF 크리로 휘청거리는 틈을 타 독립 열망이 고조되어 각국의 승인을 받고 주민투표를 거쳐 2002년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독립에 반대하는 서티모르 출신의 친(親) 인도네시아파 민병대의 반란과 권력 분쟁으로 인한 2006년 쿠데타가 있었다. 인도네시아를 지지하던 군인들이 해고당하여 무직 상태가 되자 벌인 쿠데타로 결국 진압되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주제 하무즈 오르타(José Ramos-Horta)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같은 테러로 치안이 극도로 불안하다.
3 경제
동티모르/경제 항목 참조.
4 군사
동티모르군 항목 참조.
5 언어
인도네시아어를 쓰는 서티모르와 달리, 동티모르는 포르투갈어와 테툼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다. 한때 이 테툼어를 한글로 표기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오보 및 과장으로 판명. 테툼어는 말레이-폴리네시아계 언어로 처음부터 인구 대다수가 구사하는 언어는 아니었으나 종주국인 포르투갈과의 무역에 종사하던 이들은 대부분 해안가에 사는 말레이인들이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에는 국어로 격상되었다.[6]
작은 나라지만 수십 개의 언어가 사용된다! 크게는 오스트로네시아계 언어나 뉴기니계 언어가 쓰이며 세세하게는 국어인 테툼어나 맘바이어, 토코데데어 같은 오스트로네시아 계열 언어와 마카사이어, 파탈루쿠어 같은 뉴기니계 언어들, 그리고 카와이미마어처럼 뉴기니계인지 오스트로네시아계인지 불분명한 언어들이 쓰인다.
90%의 사람들이 테툼어를 할 줄 알고 밖에서 쓴다고 한다. 테툼어와 같이 공용어로 지정돼 있는 포르투갈어는 전통적으로 많은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언어는 아니었으나 최근에는 점점 사용이 확산되고 있다. 포르투갈의 오랜 식민 통치 역사를 갖고 있고, 포르투갈과 브라질 정부의 지원으로 의무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사용 인구가 3억에 가까운 포르투갈어에 비하면 테툼어는 국제적으로 소수어 중에서도 소수어인지라 공식 석상이나 공공 기관 표지는 무조건 포르투갈어만 쓰이거나 포르투갈어가 우선이다. 즉, 공식적으로 동티모르의 제1 언어는 포르투갈어이다. 포르투갈어와 테툼어 외의 주요 외국어는 인도네시아어와 영어이다.
테툼어에 대해 조금 더 덧붙이자면, 이 언어는 구어(입말)만 존재하며 정부 수립과 행정, 학술 등에서 필요한 전문용어가 발달하지 못해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양언어현상이 발생했다. 교통어이자 학술언어로 쓰일 수 있는 언어로는 인도네시아어도 있으나 식민지배의 반감 때문인지 실무언어로만 쓰이며 소수의 엘리트만 쓰는 포르투갈어가 공식어이다. 이는 독재 시절 포르투갈에 대항해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이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점령한 뒤에 오히려 민주화된 포르투갈에 도움을 요청해 유럽연합이 동티모르를 독립시키도록 인도네시아에 압력을 가해 완전 독립하는데 도움을 줬기에 큰 반감이 없고, 포르투갈 입장에서도 전쟁을 펼쳤다지만 어차피 현 포르투갈 헌정 자체가 당시 식민지를 업악했던 2공화국 정부를 뒤엎고 수립되었기도 하고 거기에다가 옛 식민지들을 자기편으로 두는게 어떻게든 이익이다보니 동티모르 및 구 아프리카 식민지 국적자는 포르투갈 대학에 쉽게 진학할 수 있도록 해 전격 구 식민지 특례입학전형 독립 후에도 엘리트 계층은 옛 종주국인 포르투갈에 우호적인 상황이다.
6 외교 관계
6.1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영 좋지 않다. 인도네시아에게서 분리 독립한 신생국가로써 인도네시아에 학살, 탄압 등 갖은 핍박을 당한 동티모르는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도 인도네시아군의 동티모르 강점은 인도네시아가 인권 유린 국가로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동티모르는 가장 큰 옆나라가 인도네시아인데다 경제적으로 워낙 가난하고 인구수도 작고 군사력도 너무 약하여 경제적으로 잘 사는 인도네시아와 무역, 교류라도 해서 벌어먹고 살아야하는 형국이다. 실제로 동티모르인들을 대놓고 차별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있으며 일부 인도네시아 극우들은 동티모르를 서구의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분리 독립시킨, 언젠가는 다시 찾아와야 할 고토라고 헛소리까지 하고 있다. 애당초 인도네시아도 네덜란드에 식민지 되기 전까지는 통일된 국가로 존속한 전례가 없었다. 다만 동티모르는 가장 큰 옆나라가 인도네시아인 관계로 울며 겨자먹기로 관계를 이어나갈 수 밖에 없는 판국..물론 동티모르도 일방적으로 인도네시아에게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라서 인도네시아와 적대관계에 있는 말레이시아나 태국 같은 다른 동남아 나라들과 손을 잡아 원교근공으로 인도네시아를 견제해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근데 말레이시아와 태국도 사이 굉장히 나쁘다
6.2 포르투갈과의 관계
식민 본국인 포르투갈과의 사이는 우호적인 편이다. 아시아에 있는 휴양지로서는 포르투갈인과 브라질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며, 갔다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좋았다는 평이 거의 대부분. 그럴만한게 포르투갈 식민체제에서 문화나 언어, 종교를 깊히 받아들여 지금까지도 동티모르 이름은 포르투갈 이름이 허다하다.
유로 2016 당시에는 포르투갈을 열렬하게 응원했으며, 포르투갈이 우승하자 포르투갈 국기를 자랑스럽게 흔들며 축하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7]
6.3 말레이시아와의 관계
인도네시아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있는지 똑같이 인도네시아와 앙숙 관계에 있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인 말레이시아와의 외교 관계는 우호적인 편이다.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강점했을 당시 동티모르의 독립을 지지한 적도 있었고, 말레이시아는 현재도 1980년대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강점 당시 인도네시아군이 동티모르에서 자행한 학살과 인권 유린 만행들을 인정하며 인도네시아를 비난하고 동티모르를 편 들어주기도 한다.
6.4 호주와의 관계
호주는 동티모르가 독립했을 때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해상분쟁 등에서 갈등을 빚고 있고 최근에는 동티모르가 호주를 제소했다. # 결국 동티모르해의 해양경계선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다뤄지게 됐다. #
6.5 한국과의 관계
2002년 독립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그 해 수도 딜리에 한국대사관이 설치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동티모르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 동티모르가 출전하자 이 파병부대 장병들이 동티모르 응원단을 구성하여 응원했다. 2003년 3월 6일 시간당 100mm의 폭우가 쏟아져 작전 중이던 상록수 부대 장병 5명이 급류에 휩슬려 사망하기도 하였다. 2003년 10월에 한국군 상록수부대는 4년간의 파병활동을 마치고 철수를 했다.장교 66명, 준사관 1명, 부사관 189명, 병사 163명이 참여하여 국위선양과 동티모르의 안전 및 평화유지에 힘을 썼다.
동티모르 하면 주로 상록수부대를 떠올리지만.. 잘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2006년에 한국경찰 5명이 파병되어서 PRT및 치안활동을 전개한바 있다.
당시 UN에서는 1개 경찰중대 규모를 요구했으나 한국경찰의 인력부재 문제로 5명을 파병하였고 PRT임무와 치안유지임무에 힘을 썼다. 따라서 동티모르는 한국 경찰 창설이래로 최초의 해외파견 사례가 되어있다.
7 동티모르 출신 인물
초대 대통령 샤나나 구스망과 노벨상 수상자인 2대 대통령 주제 하무스 오르타가 그나마 알려져 있다.
8 한국인 감독과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
한국인으로 여기에서 유명한 사람이라면 단연코 유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8년째 이끄는 김신환 감독이다. 동티모르에선 거스 히딩크라 할 수 있는 인물.
실업팀 선수로 활약하던 그는 사업에서 실패하고 빚으로 인한 구속(6달 수감), 이혼과 여러 가지로 파멸하여 삶을 포기하려다가 동티모르로 가서 사업으로 재기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유소년 축구팀을 맡게 되었다. 이 과정에 자비로 수천만 원을 써가며(동티모르 정부에겐 1푼도 보상은 커녕, 선수들 밥 먹일 돈까지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고 한다.)유소년 팀을 맡으면서 여러 가지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단 1년 만에 일본 히로시마 리베리노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비록 일본에서 열린 유소년 친선대회이지만, 인프라와 체력적으로 압도적인 일본 유소년 클럽들을 상대로 7전 전승 26득점 2실점이라는 가공할 점수차로 우승했다. 동티모르 독립 이후 처음으로 가진 국제대회 참가이자 우승이었다. (동티모르는 2006년부터서야 국대팀이 국제대회에 참가했으나 2011년까지 국제 전적이 1무 11패이다. 참고로 김신환 감독의 유소년팀과 성인 클럽팀이 친선전을 가졌는데 평균연령 14살인 유소년팀이 평균 연령 25살인 이 클럽을 무려 9:1로 뭉개버렸다.) 참고로 이 대회에 나갈 때 동티모르 축구협회는 일절 도와주지 않고 아시아나항공이 지원해서 겨우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대회 우승당시, 동티모르 반응은 월드컵에서 우승한 분위기였다.
곧이어 다음 해에 열린 이 대회에서 또 6승 1무로 우승하였다. 그러자 싱가포르에서 김신환 감독에게 유소년 대표팀 감독 제의가 왔는데 월급은 4천 달러에(동티모르에선 무상으로 여태 일하고 있다! 2010년까지 동티모르 정부가 해준 일이라곤 그나마 땅을 제공한 게 전부이며 이마저도 한국 측의 지원으로 유소년 경기장 및 시설을 갖췄다.)온갖 혜택으로 유혹했지만 거부했다. 세 번째 대회 일본 히로시마 리베리노컵 대회는 불참했는데 아시아나항공 측의 사정으로 항공기 지원을 받지 못했고 불참할 수밖에 없었고 2006년 벌어진 내전 때문에 김신환 감독도 한국으로 대피해야 했기 때문이다.(유소년 대표팀 선수 부모가 이 내전에서 살해당하기도 했다.)내전이 진정되자 김신환 감독은 동티모르로 돌아가서 다시 감독을 맡았다.
곧이어 동티모르 유소년 대표팀은 2007년 중국 쿤밍에서 열린 유소년 대회 우승, 2008년 말레이시아 유소년 대회에서도 8전 전승으로 우승하였다. 2008년에는 포르투갈어권 친선 17살 이하 유소년 대회에서도 참가했으나 여기선 14살 정도 선수들로만 데려갔고 결국 브라질 17살 이하 대표팀(피파 U-17 우승후보)에게 7-1, 포르투갈에게 5:2,앙골라에게 3:1로 완패했다. 그래도 상대들이 체력과 여러 모로 압도적인 팀들(모두 유소년 대회 세계적 강호들)이며 브라질에서 열렸던 대회인 걸 생각하면 선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2009년 AFC 16살 이하 아시아 대회 예선에 나가 중국과 0:0,싱가포르와 홍콩, 괌을 3:0, 마카오를 13:0으로 크게 이기면서 본선에 진출하기도 하여 아시아 유소년 정상급 실력을 보여주는가 했지만, 본선에선 일본에게 0:1 아쉬운 패배를 당하고 호주와 베트남에게 패하며 8강 탈락했다.
2011년 같은 대회 예선에선 중국에게 0:2,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게 0:3,북한에게 2:11로 대패하면서 조 꼴지로 일찌감치 탈락했다. 이전 대회를 생각하면 아쉽겠지만 자국에선 돈 한푼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자비 및 한국 측 지원으로 겨우 이끌어가는 사정을 생각하면 여태껏 잘 이끌고 있다.
2011년 8월에 열린 전남지사컵 유소년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전남 드래곤즈 유소년 팀과 0:0으로 비겼고 중국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유소년팀을 6:0으로 뭉개며 6강에 진출했다. 이것도 예상을 뒤엎었는데 광저우 헝다는 알다시피 돈지랄을 엄청 하는 구단답게 유소년도 투자를 펑펑 하는 팀인데 동티모르 유소년팀에게 이렇게 대참패했다. 결국 광저우 헝다 유소년팀 감독이 이 패배로 경질될 정도로 중국에선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6강에서 전년 대회 우승을 거둔 FC 바르셀로나 유소년 A팀과 격돌하여 5:1로 대패했다.(참고로 대회 우승은 전남 유소년 팀이 바르셀로나 팀을 이기고 우승) 그래도 역시 이 정도도 선전한 것이기에 2016년 지금까지도 김신환 감독이 유소년 팀을 맡고 있다.
2010년 한국 영화 맨발의 꿈이 바로 이 동티모르 유소년 팀과 김신환 감독을 모델로 만들었던 영화이다.
김신환 감독은 아쉬운 게 유소년에서 잘해도 성인 클럽, 프로리그가 워낙 열악한 동티모르 사정으로 유소년에서 빛을 보인 선수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축구를 그만둔 채로 다른 일로 벌어먹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한다.
2013년 8월에 경주시에서 열린 경주컵 U-12 유소년 대회에서도 김신환 감독이 이끄는 동티모르 유소년팀은 충무 유소년 팀이나 나고야 그람퍼스 유소년 팀을 비롯한 팀을 차례로 이겼고 결승에선 스포르팅 리스본 유소년 팀까지 제치고 우승했다.
그리고 2014년 1월, 맨발의 꿈의 주인공인 알베스와 마리아누스가 챌린저스 리그의 전주 시민 축구단에 입단했다고한다.- ↑ 여행자제 발령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 ↑ 인도네시아 국경 지역
- ↑ #
- ↑ Taur Matan Ruak, 테툼어로 "날카로운 눈"이라는 뜻의 가명으로, 본명은 주제 마리아 바스콘셀로스: (Jose Maria Vasconcelos) 2012년 5월 취임했으며 임기는 5년
- ↑ Audley-Charles, M.G. "Dispersal of Gondwanaland: Relevance to Evolution of the Angiosperms," <Biogeographical Evolution of the Malay Archipelago>. Oxford: Clarendon Press, 1987
- ↑ 오스트랄라시아와 멜라네시아의 경우 고지인(高地人)들과 저지인(低地人)들의 인종이 확연하게 다르며 특히 고지인들의 경우 섬에 정착하고 나면 해양 생활을 하기보다는 섬 깊숙이 들어가 산악 생활을 하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이들 중에는 심지어 1930년대가 되서야 유럽인들과 처음 접촉을 이룬 경우도 많았다.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