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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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빛의 건축가

1 개요

루이스 이저도어 칸(Louis Isadore Kahn, 1901.2.20. ~ 1974.3.17.)


필라델피아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유대인 현대 건축가. 모더니즘 건축 최후의 거장으로 불린다. 현대 건축을 지배하던 모더니즘 사조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전통 건축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의적인 현대 건축으로 승화시켰다. 말 그대로 전통과 혁신을 실현시킨 몇 안되는 건축가다. 또한 무엇보다. 그의 건축은 감정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특히 빛을 잘 이용해서 극적인 장면을 잘 나타내는 건축물을 많이 남겼다.

특이한 점은 인생 후반에 센스가 폭발하여 남은 20년 동안 질풍같이 걸작들을 남기다가 죽었다. 건축계의 노벨상프리츠커상이 제정되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수상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좀 더 오래 살았다면 프리츠커상을 받는 것은 확실했다고 여겨질만큼 뛰어난 건축가였다.[1]

2 인생

2.1 탄생과 성장

본명은 Itze-Leib Schmuilowsky(이체-레이브 슈무일로프스키). 1901년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일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는데 이는 유대인[2]이었던 그의 부친이 러일전쟁에 징집될 것을 두려워하여 1906년에 미국으로 이민하였기 때문이다.(무려 17번이나 이사를 했다!)

부친은 스테인드 글라스 기사였고 모친은 하프 연주가였다. 피는 못 속이는지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 재능이 돋보여 음악가 혹은 화가가 되려고 하다가 건축을 공부하게 되었다. 다들 그렇게 건축가가 되는 거야

어렸을 때 벽난로의 불에 데어 손과 얼굴에 큰 화상을 입었는데, '불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불붙은 탄을 손으로 잡았기 때문이었다. 트라우마로 남을 법 하지만, 칸은 평생 불꽃의 따스함과 빛을 사랑했고, 그것들이 충만한 건축을 남겼다. 대인배?

그는 에꼴 데 보자르[3] 방식의 대학교육을 받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르 코르뷔지에등의 유럽의 모더니즘 건축가의 작품에 보다 큰 영향을 받았다. 졸업 후 20년간 건축교수를 맡기도 했다.

아무튼 학교를 졸업한 루이스 칸은 나름대로 뛰어난 건축가이긴 했지만, 이 때만 하더라도 세계적인 명성과는 좀 거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1900년부터 195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모더니즘 건축의 전설들이 활동하고 있던 시기였고, 루이스 칸은 그에 비하면 평범했다. 거기다가 한참 일을 배울 시기에 대공황도 겹처서...안습.

2.2 모더니즘 건축을 넘어서다

펜실베니아와 예일 대학 외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교수에 불과했던 그는 1955년 논문 하나를 발표한다. '오더와 디자인'(Order & Design)이라는 이름의 이 글에서 시작된 그의 건축철학은 1960년 이후의 세계 건축계의 움직임을 촉발하게 된다.

  • 오더(Order)란 "~가 되려고 원하는" 이상이며 디자인(Design)이란 특정한 상황의 결과로서 생긴 것을 의미한다.
  • 공간은 '봉사받는 공간' 과 '봉사하는 공간'으로 나뉜다.
  • 기하학적 형태란 그저 딱딱한 미니멀리즘과는 다르다. 'Form'을 최대한으로 표현해 주는 물리적 속성을 발견하고 Form의 의지에 명확한 실체를 주는 것을 뜻한다. 또한 아름다움이란 '놀라움'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 본질에 대한 질문은 숙련된 전문가보다 미숙한 구도자의 속에서 생긴다.

이는 모더니즘 건축이 가졌던 단점과 한계를 명백하게 짚어주며 그를 뛰어넘은 것인데,

  • 모더니즘 건축에서는 창조에 대한 기본 철학이 정립되지 못했다. 애초에 과거의 창조 방식을 싸그리 부정하면서 새로운 것을 찾고자 했었기 때문에 가진 한계였던 것이다. 칸은 이러한 철학을 정립했다.
  • 기능주의와 미니멀리즘은 기존의 건축체계를 부수는 데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건축 위계를 정립하지는 못했다. 칸의 위계설정은 건축 뿐만 아니라 공간까지 아우르며 위계 문제의 해결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 역사의 가치를 부정하던 시기에 칸은 역사적 건축(이집트, 로마, 그리스) 에 잠재하는 물질적인 존재성을 재발견한 것이다. 그러면서 묻혀져가던 미적이며 감성적인 가치를 건축에 다시 불어넣었다.
  •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엘리트주의에 한방 먹였다. 이후 건축가들은 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거나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등 다각적이며 민주적인 자세를 가지게 된다.

2.3 인생의 후반기

그야말로 질풍같이 달린다. 아래에 있는 주요 작품들은 전부 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들이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달라진 건축에 대한 생각를 바탕으로 걸작들을 남기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당연한 추측은 물론 인생의 경험들이 무르익으며 위의 이론을 정립한 끝에 깨달음을 었었다는 것이지만, 다른 추측으로는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을 여행하면서 불멸의 고전 건축을 보며 인생의 기쁨과 건축에 대해 통달했다는 추측도 존재한다. 뭐 둘 다 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그렇게 인생의 후반 20년 동안 커다란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경제적 감각도 부족했지만 평생 돈 되는 설계 의뢰를 마다하고 사람이 사는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건축을 추구한 나머지 재산은 파산상태였다. 그럼에도 후학을 위해 교육에도 힘썼는데, 대학 강의를 위해 무리하게 서둘러 이동하다가 73세에 뉴욕의 펜실베니아역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쓸쓸하게 죽었다. 당시에 루이스 칸은 옷도 남루하고, 신분을 증명해 줄 소지품이 아무것도 없어서 신원을 확인하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고 한다.

3 주요 작품

3.1 리처드 의학 연구소


Richard Research Laboratory

펜실베니아 대학교 의대의 실험실 건물이다. 모듈화된 연구실 건축양식으로 건축학적으로는 많은 격찬을 받았고 루이스 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힌다.

반면 이 건물에서 실제로 일해본 연구자에게는 대개 "내가 일해본 최악의 실험실 건물" 이라는 평가를 받는 편. 복수의 연구실을 별도의 블럭으로 된 구획으로 나누어놓았으나 실제 연구를 하는 연구자에게는 옆방의 기기 하나 쓸려면 문을 서너번 여닫고 들락거려서 동선을 길게 하는 매우 비합리적인 구조라는 평가. 그리고 지나치게 잘 되는 채광으로 여름에는 지나치게 덥고 실험에 지장을 주는 관계로 많은 층에서는 선팅을 해 두었다.


채광이 너무 잘되는 관계로 빛이 너무 많이 들어와 연구에 지장을 끼치는 관계로 위에서 보다시피 더덕더덕 종이를 붙이거나 (...) 블라인드로 조절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실험실 내부에서도 불필요하게 많은 구획이 설정되어 공간이 낭비되는 경우가 많다. 건축가의 의도와 실제 건물을 사용하는 사용자간의 괴리가 큰 건물이라 할 수 있다.건축학적으로는 매우 유명한 건물인 관계로 노상 건축학과에서 견학와서 '우와~' 이러는 것을 볼때마다 '이 건물이 그리 좋으면 우리하고 건물 바꾸지 그래' 라는 말이 기어나오는걸 참았다. 동일인이 설계한 솔크연구소 건물의 실제 거주경험자의 의견이 궁금한데 아마 비슷할것으로 생각된다 (..) 솔크연구소도 비슷하다는 건축과 모 교수님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3.2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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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s Exeter Academy library

도서관은 책을 담는 것이 아닌 책을 읽는 사람을 담는 것이다라는 점을 강조해 설계한 작품. '책의 정신'을 공간으로 나타낸 가장 훌륭한 도서관으로 평가받는다. 보스턴 북쪽의 작은 마을 엑시터에 있는 명문 보딩스쿨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의 도서관으로, 미국에서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만큼 커다란 사립학교 도서관이다. 서구의 고딕 성당 건축에서 가져온 천장의 형태를 현대건축으로 잘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장의 X형태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육중한 느낌의 물체가 떠있다는 신비한 존재감을 주며, 빛을 반사시켜 건물 밖의 빛을 로비로 끌어오고 있다.

지역 주민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전통적인 건물이 가득한 엑시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대 여론이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건물이 지어진 후로는 그런 소리는 쏙 들어갔다고 한다.

3.3 킴벨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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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ell art museum

상부에 빛을 받아들이는 틈을 낸 볼트 구조 하나로 건축의 구조, 기능, 공간, 설비, 그리고 아름다움을 전부 해결한 걸작. 이 건물만큼 모든 것이 통합된 건물은 아직 나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볼트는 반원형의 둥근 천장을 말하는 것으로, 고대 로마부터 쓰여지던 오래된 천장 구조다. 이 것을 재해석하여 빛을 받아들이는 창을 내어 천장인 동시에 조명으로 활용한 것. 실로 전통과 혁신이란 말에 딱 맞는 걸작이다. 이 과정의 핵심은 텍사스의 강렬한 햇빛을 부드럽게 만들면서도 잘 반사시켜 실내를 비추는 것에 있었는데, 그 장치를 설계하는 것이 난관이었다.

미국 댈러스-포트워스의 포트워스에 있다. 바로 뒤에는 안도 다다오의 포트워스 현대 미술관이 있으며, 댈러스에는 렌조 피아노의 내쉬 조각센터가 있는데, 나름대로 건축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둘의 작품조차 이 킴벨 미술관을 오마주해서 만들어졌 정도로 킴벨 미술관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인 지금은 렌조 피아노에 의해 앞에 신축동을 짓고 있어서 번잡하다.

3.4 솔크 생물학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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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

태평양을 향해 난 이 건물의 중정[4]20세기 가장 위대한 공간으로 선정되었다. 대칭과 무장식의 기하학적 아름다움 자체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바로 비움으로써 완성된 공간이라는 철학적인 개념이다. 원래 루이스 칸은 이 공간에 나무를 심을려고 했지만, 멕시코 건축가루이스 바라간의 조언에 따라 빈 공간으로 놔두게 되었다. 그 대신 태평양과 하늘을 벽으로 가지고 있는 새로운 빈 공간을 얻게되었던 것!

중앙의 수로는 알함브라 궁전의 정원을 연상케 한다. 역시 고전에서 모티브를 따오고 있다.

3.5 다카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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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tiyo Sangshad Bhaban 샹샤 바반.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있는 국회의사당. 아마도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자 가장 예술적인 국회의사당 중 하나일 것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가벼움과 중세 성처럼 보이는 투박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루이스 칸의 대인배적인 면을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미국에서는 당연시되는 건축장비나 기반시설이 없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지만[5] 가난한 나라였던 방글라데시의 민주주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루이스 칸은 1962~1974년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설계를 하였다. 그것도 70대의 노인이(...) 그래서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루이스 칸에 대해 굉장히 감사한다고 한다.

그러나 루이스 칸의 역작이자 그를 파멸로 몰고간 작품이기도 하다. 너무나 길어진 설계기간과 방글라데시 공무원들의 불성실한 설계비 지급으로 인하여 루이스 칸은 재정적으로 큰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감사한 것은 감사한거고 돈은 돈인가보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돈을 삥땅치고 조금 주거나 안주기까지 했다고 하니 루이스 칸의 대인 기질이 느껴진다. 루이스 칸이 1974년에 죽었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 작품이나 다름 없게 되었다.

3.6 기타

이 외에도 걸작들은 많지만, 미국 뉴헤이븐 예일 대학교에 있는 Yale University Art Gallery와 Yale Center for British Art도 위의 건축물들에 비견되는 좋은 작품이다.

4 평가

건축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 현대의 모더니즘 건축이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와 같은 결정론적인 태도에 의한 건축을 행하였다면, 1960년대의 칸의 출현 이후로 "형태는 인간의 기본욕구에 따른다."라는 인간의 목적론적인 태도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칸의 이러한 사고는 그 당시의 시대상이 기능적 근대주의가 팽배해 있을 때 나온 것으로 한 시대의 변혁을 의미하는 것이다.

칸은 모더니즘은 물론이고, 합리주의, 신고전주의, 심지어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로도 분류될 수 있으나, 단순히 어떤 사조의 작가로 분류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런 분류 이전에 칸은 그의 독특한 건축적 사고와 몇몇 작품으로 인하여 근대건축에서 현대건축으로의 전이적인 삶을 살았던 건축가로서 평가받고 있으며, 칸의 명성은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두 시대에 걸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사회적으로 크게 격동하여 변화하는 시기에 속해 있으면서, 시대의 변화 사이에 있는 교량으로써 존재 한 것이다.ㅇㅇ

5 이야깃거리

키도 작고, 옷 입는 센스도 없고, 얼굴에 화상까지 있어 멋지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외모였지만, 그는 동시에 세 여자와 사랑하고, 아이를 갖고, 추억을 나눠가진 바람둥이였다. 오히려 화상이 동정심을 유발시켰다고(...)

그런데 루이스 칸은 (여자 빼면) 일에만 빠져 사는 성격이라 세 아이들 중 한 아들인 나다니엘 칸은 아버지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자랐고, 후에 자기 아버지가 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인지 알고 싶어서 루이스 칸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My Architect -A son's journey'를 찍었다. 이 영화는 건축과 가족에 대한 수작 다큐멘터리로 평가받는다.

6 어록

  • "방(room)은 건축의 시작이며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단위이다. 동시에 평면이란 방들이 그 속에서 서로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독특한 빛을 가진 공간의 구조이다."
  • "벽돌아, 너는 뭐가 되고 싶니?"
  • "나는 빛이란 모든 존재를 주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 "나는 위대한 건물은 잴 수 없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며, 디자인 과정에서 '잴 수 있는 것'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에는 잴 수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
  1. 프리츠커상은 수여하는 시점에 생존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수여된다.
  2. 따라서 탈무드 형식의 질문적 교육방식으로 자랐고, 후에 그의 건축을 대표하는 명언 "벽돌아, 너는 뭐가 되고 싶니?"로 발전하게 된다.
  3. 19세기 식의 고전 건축을 가르쳤던 학교.
  4. 건물 중앙의 빈 공간
  5. 모든 것은 인력으로 해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