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역대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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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7세, 알렉산드르 쿠차르스키, 1792년 | |
왕호 | 프랑스와 나바르의 왕 루이 17세 (Louis XVII Roi de France et de Navarre) |
이름 | 루이 샤를 (Louis Charles) |
생몰년도 | 1785년 3월 27일 ~ 1795년 6월 8일 (10세)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베르사유 궁전 |
사망지 | 프랑스 공화국 탕플 탑 |
재위기간 | 1793년 1월 21일 ~ 1795년 6월 8일[1] |
1 불행한 생애
1.1 허수아비 국왕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차남으로 본명은 루이 샤를. 본래 노르망디 공작이었다가 형인 왕세자 루이 조제프(1781년 ~ 1789년)가 죽고 난 후 왕세자가 되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처형된 다음 날, 왕당파에 의해 프랑스의 군주로 선포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탕플 탑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왕권을 전혀 행사할 수가 없어, 명목상의 군주였을 뿐이었다.
1.2 근친상간 논란
프랑스 혁명정부에 의해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게 되었는데,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재판 중에 어머니가 자신을 검열삭제했다고 증언하는 바람에 마리 앙투아네트를 곤경에 몰아넣었다. 왜 루이 17세가 그런 증언을 했는지에 관해서 몇 가지 가설이 대두된 바 있는데 가장 신뢰할 만한 자료는 바로 루이 17세의 성격과 당시 정황.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들의 성격에 대해 '주변의 부추김이나 자신의 상상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고,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을 지녔다'고 기록한 바 있는데, 또래의 남자아이들에게서는 흔하게 나타나는 성격이었지만 이러한 성격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파멸로 몰아갔다.
재판 과정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사형을 선고할 만한 결정적인 물증이 없자 혁명가들은 가장 어린 루이 17세를 꼬드겨 근친상간을 했다고 말하게끔 했다. 루이 17세가 빗자루를 타고 놀다가 고환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는데 마리 앙투아네트와 고모인 엘리자베트 공주가 이 상처를 돌봐준 적이 있었고 보다 어렸을 때의 루이 17세가 자신의 생식기를 자꾸 만지고 건드리는 장난을 치자 이를 마리 앙투아네트가 저지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기억을 토대로 혁명가들은 루이 17세를 부추겨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저질렀다고 말하도록 했는데, 오히려 성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7살의 남자아이였기에 이런 괴랄한 증언이 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루이 17세는 본래 건강이 좋지 않았고, 홀로 지내게 될 당시 심하게 학대를 당해서 정신 상태가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런 일면을 잘 알고 있기에 아들을 용서했지만, 누나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는 이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아 평생 남동생을 증오했고 남동생을 사칭하는 자들도 절대 만나지 않았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전기를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어른들이 어린애의 감정을 건드려 애를 꼬셨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나 근친상간 증언을 한 데에는 루이 17세의 망상과 성격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원래 어린아이의 기억은 굉장히 조작하기 쉽다.[2] 어른들이 아이의 다른 기억과 연관시켜 그때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어? 이런 행동을 했지? 정도로 구슬리면 대부분은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고 믿어버린다. 혁명 정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리 앙투아네트와 엘리자베트 공주를 처형할 증언을 만들어 냈어야 했고, 루이 17세가 아니라 어떤 아이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들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2 죽음과 음모론
2.1 그의 죽음과 사칭자의 등장
부모인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사형당하고 난 후, 계속 탕플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열악한 식사와 지저분한 옥 속의 환경으로 늘 병에 시달렸다가 고열에 의한 의식불명 상태로 빠져 사망했다. 그러나 사망 당시 정황이 불분명했기 때문에 감옥에서 탈출해 도피했다는 설이 돌았다. 죽기 전에 주정꾼 구두 수선쟁이 앙투안 시몬에 손에 맡겨져 시몬과 그의 아내에 의해 온갖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전해오지만, 정식 기록이 없어 입증되진 않았다. 루이는 시몬이 떠나고 6개월 동안 구석진 독방에 갇혀 있다가 1795년 6월 8일, 캄캄한 감옥에서 폐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루이의 시신을 검사한 검시관 필립-장 플르탕(Philippe-Jean Pelletan)은, 루이가 영양실조로 뼈만 남아 있을 정도로 앙상하게 여위였다고 기록했다.
검시관은 루이의 몸에 채찍으로 맞은 상처자국이 많이 있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가슴, 등, 팔, 다리가 상처투성이었다고 기록했으며 검시관은 루이에 대해 동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루이를 해부하면서 왕족의 심장은 따로 보관한다는 관례를 생각하고 심장을 떼어내어 작은 항아리에 넣어 몰래 가지고 나왔다. 루이의 시신은 상트 마르게리트(Ste Marguerite) 섬에 있는 공동묘지에 아무런 표지도 없이 매장되었다. 이것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생존한 유일한 아들이자 프랑스의 1순위 왕위계승권자였던 루이 17세의 쓸쓸한 최후였다.
하지만 시신을 바꿔치기 하여 빼돌려졌다는 등 도시전설이 되어가고 결국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의 아나스타시야 니콜라예브나 로마노바 공주와 마찬가지로 별의 별 사칭자들이 다 나타나 자기 권리를 주장했는데 그 수만 3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프로이센 출신의 시계공 카를 빌헬름 나운도르프. 마리 테레즈 샬로트가 만남을 거부하여 그녀로부터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자신과 마리 테레즈 샬로트만이 알고 있는 증표를 갖고 있다며 만나기를 요구했고, 파리에서 과거의 시녀들을 비롯해 샤를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루이 샤를임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마리 테레즈는 "내 남동생은 죽었으니 헛소리 말라"며 그를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프랑스 왕실의 재산을 받기 위하여 법정 소송까지 벌였지만 패소했고, 영국과 네덜란드 등 체류한 나라에서 추방당하기에 이른다. 그는 1845년 네덜란드에서 병사했는데, 죽어서도 비문에 자신을 루이 17세라고 남겼다….
2.2 밝혀진 진실
진위는 현대에 들어서야 밝혀졌다. 루이 17세의 시신을 부검했던 의사 필립-장 플르탕이 그 심장을 따로 훔쳐다 보관한 뒤로 유럽 각지를 떠돌다가 수정으로 된 병에 담겨 왕실묘지로 사용된 생 드니 대성당 지하묘실에 안장되었는데, 이 심장의 진위여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친정인 오스트리아 쇤브룬 궁전에 보관되어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리카락과 루이 17세의 것이라고 알려진 심장에서 DNA를 추출해 검사를 해본 결과 모자지간임이 확인되었다. 작게 쪼그라들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루이 17세의 심장은 사후 200년 만에 부모와 만나 합장되었다. 비록 시신은 전술한 이유 때문에 찾을 길이 없지만, 심장이나마 부모가 잠든 생 드니 대성당에서 안식을 되찾았다.
그런데 나운도르프의 자손들은 1851년, 1874년에 프랑스 국가를 상대로 소송까지 냈었지만…. 루이 17세의 심장이 발견되고 과학적 검사로 드러난 사실로 그저 사기꾼의 후손임이 드러났을 뿐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도 이 검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루이 17세 생존설을 외치고 있다.
3 기타
만화 라 세느의 별에서는 주인공 커플이 누나와 함께 프로이센으로 탈출시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워낙 유명했는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도 루이 17세를 사칭하는 사기꾼이 나온다. 스스로를 황제로 자칭하지만 흑인 노예이던 짐이 비아냥거리듯이 프랑스어가 듣고 싶다고 하자 미국에 온 지 너무 오래되어서 잊어버렸다고 한다. 더 웃긴 건 허클베리 핀이 가짜 왕보다 프랑스어를 더 많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 그래봤자 Parlez-vous Francois(프랑스어 할 줄 아세요)? 이거 하나가 다지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짐은 자신을 욕하는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대가리를 날려버리겠다고 말한다 사실 나이가 안 맞아서 가짜인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게다가 보나파르트 가문도 아닌 주제에 왕도 아니고 황제라니? 결국 역시 공작임을 자처하는 사기꾼과 붙어다니면서 갖은 사기를 치다가 들켜서 조리돌림을 당한다. 이 사기꾼들 때문에 허클베리 핀도 곤욕을 치뤘고 짐도 잡혀서 죽을 뻔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루이 17세의 심장을 찾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 ↑ 본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주로 옹립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누이 마리 테레즈 샬로트와 함께 탕플 감옥에 갇혀 있었다.
- ↑ 현대 법정에서 어린이의 증언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또다른 예를 들자면, 어렸을 때 길을 잃어버린 사실을 기억 못하는 아이가 어른들에게 자꾸 길을 잃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진짜로 자신이 길을 잃은 기억을 떠올리는(사실은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신이 만들어낸 거짓 기억)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