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린다 카터 Lynda Carter |
다른 이름 | 린다 진 코르도바 카터 Linda Jean Córdova Carter |
출생 | 1951년 7월 24일,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 |
신장 | 177cm |
직업 | 배우, 가수 |
가족 | 자녀 2명 |
SNS | > > |
1 개요
미인 대회 출신의 미국의 배우 겸 가수,. 1970년대 원더우먼으로 뜬 스타이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 성장
미국 애리조나에서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멕시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린다 카터는 5세에 이미 TV 데뷔를 한다. 16세 때는 사촌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도 하는 등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에 의해 Linda에서 Lynda로 개명하였고 애리조나 주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음악을 내려놓고 연기의 길로 들어선다.
1972년에는 어머니의 권유로 애리조나 뷰티 콘테스트에서 수상하여 미스 월드 USA[1]에 출전하여 우승하였다.[2] 그 후로 뉴욕의 연기 스쿨을 몇 년 다닌 후 1974년 드라마 나키아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까지만 해도 B급 영화나 드라마에나 주로 나오며 별다른 유명세는 없는 배우였다.
그러나 몇 년 후, 일생 일대의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3 원더우먼
그녀가 주연한 드라마 원더우먼이 대성공을 거두며 그녀의 인지도도 대폭 상승한다. 드라마 종영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린다 카터야말로 진정한 원더우먼"이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드라마는 대성공, 린다 카터의 커리어에 큰 획을 그었다.
사실 린다 카터는 원더우먼을 하기 직전, 연기에 대한 마음을 접으려고 했다. 애리조나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던 그녀에게 매니저가 원더우먼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었고, 그 길로 원더우먼을 맡아 그대로 연기의 길을 고수하게 된 것. 그러나 그 후 그녀는 원더우먼만 세 시즌을 찍으며 인생 작품을 남겼다.
http://2.bp.blogspot.com/-9M-sKBBJd7E/VF6tneSvFMI/AAAAAAAAnqY/FRQc_Mpw4SQ/s1600/ww%2Bwonder_womanlynda_carterbouncing_big_breasts_by_uperx10-d759lmm.gif |
사실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는 그리 좋은 편이 못 되었다. 만화지향적인 컨셉이라 중간에 쫄쫄이 입은 외계인이 나오고 거미인간도 나오고 그런 식이었는데 아무리 70년대라지만 당시 기준으로도 좀 유치한 편이었고 지금 보면 더 유치하다(...). 그런데 위 사진을 보면 잘 느낄 수 있듯이 린다 카터가 원더우먼 복장 입고 나오는 것 자체가 시청율을 많이 상승시켰는데(...) 제작자 측과의 생각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인터뷰에서 원더우먼의 이미지를 섹슈얼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고, 자신의 포스터나 사진이 남자들의 방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신체 등에 대해 남자들이 보내는 성적인 시선들을 혐오한다는 표현까지 했다. 이러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해 린다 카터는 헐리우드가 가지고 있는 문제임을 지적하며 여성을 마케팅 용도로 사용할 뿐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자신의 몸매가 부각된 포스터의 대성공에 대해서도 꽤나 실망했었다고 전해진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대중들에게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인 코믹스 속 원더우먼의 모습을 알리지 못하고 그저 예쁘면서 섹시한 모습의 원더우먼으로 각인시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의 원작 만화도 딱히 그런 이미지를 갖진 않았다. 근육질 아마존 전사의 이미지는 코믹스에서도 좀 나중에 추가된 이미지로, 단순한 미녀 슈퍼히로인과의 차별성을 추구하려고 했지만, 대중들에게는 과거에 린다 카터로 인해 강렬하게 각인된 이미지를 바꾸지는 못했다고 봐야 할 듯.[3]
어쨌건 드라마 원더우먼의 대성공으로 원더우먼 자체에 대한 인지도 역시 크게 상승했다. 그것을 기려 DC Comics는 1985년에 원더우먼 시리즈에 큰 기여를 해준 것에 감사하다는 입장을 전했고, 드라마가 끝난지 30년 가량이 지난 2007년에는 린다 카터 버전 원더우먼 피규어가 나오기도 했다![4]
350px |
거기다 1970년대의 원더우먼을 기리는 만화까지 연재중이다. 30년이 지나도 린다 카터 버전의 원더우먼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드라마의 성공이 어느 정도였는지 대충 알 수 있는 부분. 아직도 린다 카터와 관련된 글에는 원더우먼의 언급이 끊이지 않고, 수식어로 '영원한 원더우먼' 등이 자주 쓰인다.
3.1 이후
하지만 오히려 원더우먼으로 거둔 너무나 큰 성공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원더우먼 후로 그녀가 출연한 모든 작품에는 '원더우먼'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위에서 언급되었듯 30년이 지나도 '원더우먼=린다 카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기 때문에, 이미지 탈피가 매우 어려웠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여러 캐릭터[5]를 연기했지만,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날 만큼 연기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해서 결국 따라오는 수식어는 원더우먼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본인도 잘 알기 때문에 80년대 후로는 원더우먼 모습으로 미디어에 노출하는 일을 줄이고 다른 드라마,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그래도 드라마 스몰빌이나 스카이하이 같은 슈퍼히어로 관련 미디어에 출연하기도 했다.
결혼은 두 번 했는데 첫 결혼은 원더우먼을 찍을 때의 매니저와 했고 두 번째 결혼은 변호사 로버트 올트먼과 했다. 두 번째 결혼에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출산했다. 헌데 올트먼이 공동으로 제니맥스 미디어를 설립하고 CEO가 된 덕분에 제니맥스 산하의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게임들에 성우로 출연하게 되었다.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모로윈드에도 출연했고, 오블리비언에서는 여성 오시머 목소리를 맡았으며 스카이림에서는 노르드와 아주라를 맡았다. 심지어 폴아웃 4에서는 써드 레일이란 술집에서 매그놀리아라는 가수로 등장해 직접 노래도 부른다.
3.2 기타
- 의외로 노래를 괜찮게 부르는 편인데 앨범도 몇 번 냈다. 외화 방영 당시 국내에도 소개된 노래 제목은 "Just one look"으로, 허스키한 목소리에 거친 창법이라, 예쁜 외모와 더빙을 맡은 성우 이경자의 꾀꼬리같던 목소리와 갭이 커서 국내 팬들에겐 살짝 충격을 주기도, 노래 자체는 평범하여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 위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알다시피, 페미니즘 등에 관심이 많다. 또한 유방암, Pro-choice[6], LGBT에도 관심이 많아 2010년, 2013년에는 게이 퍼레이드에 참가하기도 했다.
- 2008년에는 강에 떠내려온 시체를 발견하기도 했다....
- ↑ 미스 월드 대회의 미국 예선 겸 미스 아메리카와 유사한 급의 미국내 미인 대회
- ↑ 린다 카터가 미스 월드였다는 잘못된 정보가 널리 퍼져 있으나
원더우먼 시절의 미모를 생각해 보면 그런 오해를 받을만 하기도 하지, 엄밀히 말해서 린다 카터는 미스 월드 대회 우승자가 아니고, 미스 월드의 미국내 대표를 뽑는 예선인 '미스 월드 USA'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문서 수정 전에는 미스 월드 USA 2위라고 써 있었고 미스 월드에도 참가 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었으나 1위가 맞고 미스 월드에도 미국 대표로 참가하였다. 같은 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스 월드 대회에 USA 대표로 출전하여 준결선(semi final)까지 올랐다미스 월드1972 위키피디아 Miss World 1972 NEWS 동영상)그 해의 미스 월드가 누군지 지금은 아무도 모르지만 린다 카터는 여전히 원더우먼으로 전세계의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 함정 - ↑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난 요즘에는 DC 확장 유니버스에 참여하게 된 갤 가돗도 근육을 더 키워 오라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는 등 변화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여담으로 국내 유머 사이트 등에 린다 카터의 사진을 포샵해서 깡마르게 만들어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 이거 보고 린다 카터가 엄청 말랐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꽤 된다.
- ↑ 해당 시리즈는 2010년에 재판
- ↑ 베드신은 물론이고 범죄자 역할도 맡았었다.
- ↑ 낙태에 있어 여성의 결정을 존중하자는 것. 낙태 찬성이라고 보면 된다. 반대 말은 Pro-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