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와 와사부로

三輪和三郞
(1884 ~ ?)

파일:201506 9 (三輪和三郞) (2) - 복사본.jpg

일제 시기 경성(서울) 종로경찰서의 유명한 악질 고등경찰계 주임 미와 와사부로(三輪和三郞) 경부의 실제 사진 경성종로경찰서 사진첩(사진집) (1926)에 수록되어 있음 빨간 동그라미친 게 미와 경부

출처 : [1]
[2]

1 소개

일명 三輪(삼륜) 경부. 유명한 일본인 고등경찰관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인들에게 악명을 떨쳤다.

취미는 다도, 꽃꽂이[1]

일본 명륜중학교를 졸업하고 나고야 기병(名古屋 騎兵) 제3연대에 입대하였고 이어서 동 제17연대로 전속되었다. 1905년 10월 제13사단 기병 제17연대로 옮기고 한국 수비를 위해 한반도에 건너왔다. 1908년 고등계 경찰관이 되어 경부에 임명되어 경기도 경찰부 고등경찰과 조사계 주임으로 근무하였다. 그는 경찰관이 된 이때부터 조선인 사상범들을 체포해 악명을 떨쳤다.

사상범 사찰 업무에 두각을 나타내어 한용운, 이상재, 안창호, 박헌영, 의친왕[2], 김두한, 나석주 등 좌 우 이념성향에 상관없이 항일성향이 있는 인물이라면 그의 손에 거치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없을 정도로 조선인들에게 악명을 떨쳐 "오니 게이부"(귀신 경부)이라는 별칭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해방될때까지 조선에 있으면서 조선어가 유창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실제로 조선어장려시험 갑종 1등에 합격하고, 경찰관 공로 휘장(警察官功勞徽章)을 수상한 경력도 있다.

성격이나 성품은 온후하고 독실하면서 부하들에게 인자한 아버지처럼 존경받고, 고등경찰 방면에 정통하여 경찰 내에서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냥개로 집요하고 용의주도한데다가 잔인한 질긴 놈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복합적인 성격을 가졌다.

이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독립운동가이상재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깍듯이 대하였고, 이상재에게 사람 좀 작작 잡아가라는 호통을 들었음에도 늘 그런 모습을 보이면서 이상재가 아플 때 문병을 갔다고 한다. 또한 한용운이 조선불교청년회가 주최한 집회에서 연설할 때, 그의 사상적인 감화를 느낀 것처럼 행동하면서 열렬히 박수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화를 보면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에게 잔인하게 굴면서도 독립운동 명망가들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인간적인 친분을 맺으려고 하는 것으로, 수사 대상에게 그만큼 밀착하기 위한 기만술에 능한 인물이다.

1923년에 김상옥종로경찰서 투척 사건을 일으키면서 특별수사대가 설치되자 그 대장에 임명되었다. 김상옥이 은신처인 매부 고봉근의 집에 숨은 것을 탐지하여 경찰서장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며, 1926년에 허무당 선언의 주동자를 체포하였다.

그의 마지막 공식자료는 1944년까지 등장하는데, 총독부 어용신문이었던 매일신보 1944년 3월 27일자에 의하면 종로총궐기위원회(鍾路總蹶起委員會) 특별위원으로 참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의 사망 등 행적에 관련에서는 어린시절인 1920년대부터 악연을 맺었던 김두한에 의해 해방후 사망설, 해방후 일본으로 돌아가 1968년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으나 후자는 아래 설명처럼 카더라 통신으로 밝혀졌다.

2 의외로 미스터리한 최후

일본 자료가 있다는 카더라 통신의 기자 자료를 인용해 해방후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1968년에 사망했다는 내용으로 리그베다 위키 등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유포되었다.'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한겨레신문 2006년 8월18일 한국의 책쟁이들 ‘박세록’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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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바람 구글 검색결과이며, 진위 여부는 확인 모호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확인한 결과 미와 와사부로의 공식적 자료는 1944년까지 자료가 있으며, 그 이후 자료는 현재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자료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 답변[3]

오히려 당시 정황을 고려하면 적어도 해방 직전이나 직후 김두한이나 부하에 의해 뒷산으로 끌려가 죽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볼 수 있지만, 이것도 김두한의 회고록 외에는 교차검증을 할 수 있는 기록이 없다. 확실한 건, 일본으로 돌아가서 곱게 죽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3 대중문화 작품

미와 와사부로(야인시대) 문서로.
  1. 한국사데이터베이스 三輪和三郞
  2. 의친왕을 요시찰 감시대상으로 감시한 인물이 미와와사부로였으며, 의친왕은 망명 당시 미와 경부를 따돌려 망명시도를 했지만 목적지를 앞두고 일경에 발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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