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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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李富榮
1942년 09월 26일 ~

대한민국의 언론인, 정치인이다. 호는 청우(靑牛)이다. 종교가톨릭으로 세례명은 이사도르이다.

2 생애

1942년 경기도 포천군(현 포천시)에서 태어났다. 서울특별시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용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였다. 1974년 동료 기자들과 함께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약칭 동아투위)를 결성하여 유신 체제에 맞서 언론 자유를 수호하자는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였다가 1975년 해직되었다. 그리고 긴급조치 위반,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되어 7년간 복역하였다. 출소 후에도 재야 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다. 1986년 5.3 인천 사태 주도 혐의로 체포되어 1988년 2월까지 복역하였다. 복역 중이던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축소, 은폐되었다는 사실을 교도관으로부터 전달받고[1] 휴지에 관련 사실을 작성하여 김승훈 신부가 명동성당에서 이를 폭로하게 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동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5년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따라가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에 흡수 합당되어 한나라당이 되자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는 한나라당 경선에 출마했지만 이회창의 낙승으로 끝났고, 이후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아 이회창을 적극적으로 도왔지만 결국 한나라당의 집권이 좌절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 때 당선된 노무현을 향해서는 김대중 정권의 연장 선상에 있다는 것만 집중적으로 지적했을뿐 큰 비난을 하지 않았으며, 참여정부 출범 전후로는 한나라당 내의 개혁소장파를 규합해 노무현 대통령과 개혁성으로 겨뤄보겠다는 발언을 하는 등 점차 참여정부에 가까워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2003년 9월 김부겸, 안영근, 김영춘, 이우재 등과 전격적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독수리 5형제라 불렸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2]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충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불출마를 선언하였으나, 2012년에는 번복하고 출마하였다. 그러나 강동구청장 출신 신동우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비서를 지낸 사람 중 이해식은 현 강동구청장이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강동구 갑 선거구에 당선된 진선미는 이부영의 추천으로 강동구에 뿌리를 내린것으로 전해진다.

3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특별시 강동구 갑)민주당49,646 (38.5%)당선(1위)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동구 갑)통합민주당42,872 (39.9%)당선(1위)1997년 신한국당과 합당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동구 갑)한나라당52,147 (52.5%)당선(1위)2003년 열린우리당에 입당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동구 갑)열린우리당50,693 (43.4%)낙선(2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동구 갑)민주통합당57,909 (47.5%)낙선(2위)정계은퇴 선언
  1. 그 교도관은 민주화 운동에 대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입장이었던 터라 이부영을 비롯한 몇몇 민주화 운동 연루 수감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봐줬다고 한다. 특히 이부영에게는 '선생님'이라는 명칭으로 깍듯이 대했으며 근처 방에서 박종철 고문에 가담했던 조한경 경위가 울부짖는 것을 들은 이부영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조심스럽게 사건의 진상을 알려준 것.
  2. 정식 창당 전의 가칭이었던 국민참여통합신당(약칭 통합신당) 결성에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