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놀이
나폴리탄 계열의 수수께끼. 기묘한 내용 때문에 곳곳에서 유행한 바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냥 괴담이나 도시전설으로 알려져있지만, 해외에서는 엄연한 추리 놀이이다.
Paul Sloane의 저서 Lateral Thinking Puzzles(평행사고 수수께끼)에서 유명해진 이 놀이의 정식명칭은 상황 수수께끼(Situation Puzzles) 또는 LTP 이다. 평행사고란 한 마디로 상식적으로는 언뜻 말이 안 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새로운 방향, 다른 관점에서 생각의 틀을 깨서 사고하는 방식. 일본 인터넷에서는 주로 Lateral Thinking을 줄여서 라테신(ラテシン)이라고 부른다.
게임의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출제자가 (이야기 형식의) 수수께끼를 만들어 출제한다. 2. 참가자들은 출제자에게 스무고개 형식의 질문을 하고, 출제자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한다. 3. 정보를 통해 참가자들은 이야기의 전말을 추리한다. 4. 적당한 때가 되면 출제자는 정답을 공개한다. |
예와 아니오 질문으로 여럿이 참가하는 놀이는 특히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여러 사람이 참가하며 행해질 때가 많다. 이 게임의 시초가 된 이야기가 바다거북 스프에 관한 것이므로, 특히 2ch 등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 놀이가 행해지는 일본에서는 주로 바다거북 스프 놀이라고 불린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다.
한 남자가, 어느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바다거북 스프를 주문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바다거북 스프를 한 수저 먹고는 주방장을 불렀다. "죄송합니다. 이거 정말로 바다거북 스프인가요?" "네, 틀림없는 바다거북 스프 맞습니다." 남자는 계산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자살했다. 왜 그랬을까?[1] |
이런 식으로 LTP의 문제는 어떤 이야기의 결말과 몇 가지 사실만 언급한 채 많은 궁금증을 남기는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1.1 게임의 예시
이러한 문제가 출제되면, 참가하는 여러 사람들은 출제자가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게 된다.
바닷가 레스토랑인 게 중요한가요? 남자는 빚을 지고 있습니까? 남자가 자살한 것은 스프를 먹은 것이 원인입니까? 남자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주방장은 남자입니까? |
이러한 질문에 출제자는 하나하나 대답해간다. 약간의 힌트를 줘서 푸는 사람들을 정답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 이 놀이는 답을 못 맞추면 출제자가 이기는 그런 놀이가 아니라 어떻게 재미있게 답을 추측해가느냐, 얼마나 날카로운 질문을 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즐거운 플레이를 위해서는 출제자의 적절한 대답 스킬이 요구된다.
바닷가 레스토랑인 게 중요한가요? → YES 약간 관계 있습니다 남자는 빚을 지고 있습니까? → NO 남자가 자살한 것은 스프를 먹은 것이 원인입니까? → YES!! 아주 중요합니다!! 남자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 YES, NO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임 주방장은 남자입니까? → YES,NO 상관 없음 |
출제자와의 문답으로 얻는 정보들을 가지고 참가자들은 서로 토론하기도 하고 독자적으로 추리하기도 하면서 이야기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왜 스프 좀 먹었다고 자살하지? 남자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바다거북 스프는 맛있나? 요리사가 악당인가? 바다거북이라는 재료가 중요한가? |
이러한 과정에서 최종적으로는 누군가가 정답, 또는 정답과 아주 가까운 질문을 하게 된다.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되면 출제자는 답을 맞춘 사람과 다른 참가자들을 칭찬하고 미리 준비해둔 해답문을 공개한다.
남자는 배를 타고 있었다. 어느 날, 남자가 탄 배가 조난되었다. 몇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구명보트를 타서 죽음은 면했지만, 작은 섬에 표류하는 처지가 되었다. 식재가 떨어진 일행은 체력이 떨어지는 사람부터 죽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기 위하여 시체의 살을 먹기 시작했지만 단 한 사람은 이 행위를 강력하게 거부했다. 당연히 그 남자는 서서히 죽어가게 되었다. 이 꼴을 가만히 둘 수 없었던 다른 사람 중 하나가 "이건 바다거북 스프야"라고 거짓말을 하고 남자에게 스프를 먹여서, 구조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레스토랑에서 명백하게 맛이 전혀 다른 이 "진짜 바다거북 스프"를 직면하게 된 남자는 진실을 알게 되고, 목숨을 끊는다.[2] |
1.2 여담
문제가 허를 찌르는 재미있는 것일수록, 또 질문자들의 추리력이 높을 수록 좋은 게임을 할 수 있으며, 모두가 즐겁게 된다.[3] 출제자의 아이디어와 대답하는 요령, 질문자들의 추리력과 질문하는 요령, 또 전체 참가자의 매너가 상당히 중요한 게임이다. 룰 자체에도 변형이 많이 가해져서, 정말로 스무고개처럼 질문 횟수를 제한하여 질문자들끼리 토론하며 무슨 질문을 할지 신중하게 정하거나, 출제자가 아예 처음부터 질문 중 X개에는 거짓으로 대답하겠다! 라고 선언하여 질문자들이 머리를 감싸안게 하거나, 1대 1으로만 질문과 대답이 이루어지고 다른 사람들은 구경만 해야 하는 등 여러가지 변형 룰이 존재한다. 출제자가 어떻게 중요한 사실을 출제 단계에서 숨기느냐,[4] 질문자가 어떻게 숨겨진 사실에 파고드느냐가 중요한 게임이므로 서술 트릭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이도 재미도 없는 억지 문제를 내면 욕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제일 유명한 문제가 이런 만큼 인터넷에서는 오컬트나 괴담, 범죄 미스터리 계열 문제가 많이 제작되며 그중에는 이 문제를 아득히 능가하는 잔인하거나 무섭고 사악한, 또는 감동적이고 슬픈 문제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진상이 단순히 언어유희이거나 별 거 아닌 일을 의미심장한 글로 표현해서 참가자들을 낚는 코믹한 문제들도 인기가 많다. 흔히 IQ퀴즈 등으로 알려진 수수께끼들도 실은 이 게임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
일본의 레벨파이브에서 이 게임의 원작이 되는 Lateral Thinking Puzzles를 게임화했는데 역시 게임을 대표하는 수수께끼로 등장한다
2 1번에서 파생된 괴담
우리나라에서는 1번 항목의 시초인 바다거북 이야기가 조금 와전되어서 알려져 있는데, 다음과 같다.
바다에서 조난 당했을 당시, 쇠약해져가는 선원이 동료에게 먹인 어떤 스프. 그 바다거북 스프 맛은 최고로 맛있어서 그는 그 환상적인 맛을 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사히 생환에 성공한 그는, 태어나서 2번째로 바다거북 스프를 시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외마디를 내뱉더니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아, 이것은 거북이의 고기가 아니다." 과연 남자는 왜 죽었을까? |
이미 처음부터 조난, 선원, 예전에 바다거북 스프를 먹은 적 있다 등의 사실을 다 제시해두고, 또 요리사에게 진짜 바다거북 스프라고 물어보는 의미심장한 부분은 지워버려서 보다시피 LTP 문제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다. 원래의 이야기가 의도하던 부분이 전부 사라져 있기에 이 정도 글이면 누구나 전에 먹은 스프가 인육이라는 추측은 금방 내놓을 수 있다. 단지 인육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오싹해할 뿐, 괴담으로서도 질이 낮아져서 나폴리탄 계열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공포특급 등의 90년대 괴담책에서는 이게 표류된 부부와 갈매기 고기로 변형되기도 했다.
무인도에 어느 부부가 표류되었는데, 추위에 배고픔에 시달리던 중 남편은 일시적으로 시력까지 잃게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은 하늘을 나는 갈매기 소리를 듣고 죽기 전에 저 갈매기 고기를 먹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다음 날 진짜로 갈매기 고기를 가져왔다. 남편은 아내가 주는 갈매기 고기를 먹으면서 점차 건강을 되찾지만, 아내는 얼마 못 가 죽고 남편만 구조선에 구조된다. 훗날 시력도 되찾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온 남편은, 아내를 추억하며 아내가 해주던 갈매기 고기맛을 다시 한 번 맛보기 위해 갈매기 고깃집을 찾았다. 그런데 그는 고기를 한 점 베어물더니, 갑자기 피눈물을 흘리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내가 해준 갈매기 고기와는 맛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
이 경우에는 단순한 괴담이라기보다는 안타깝고 비극적인 부부애에 더 중점을 둔 이야기가 된다. 참고로 공포특급 원본에서는 아내가 자기 허벅지살을 베어서 구워주었다는 해석까지 실려있다.
3 그런데 사실은......
일단 바다거북이고 육지거북이고 덩치가 있는 거북은 어디서나 좋은 먹거리다. 정글의 법칙에서도 바다거북 통구이를 김병만 부족에서 선사했는데, 먹어본 사람들의 평은 치킨 비슷한 맛이 난다고 했다. 과거 대항해시대에도 바다에서 건지거나 섬에서 잡은 거북은 훌륭한 식량원 역할을 하는 생물 중 하나였다. 일부 육지거북은 선원들이 너무 잡아서 멸종위기에 놓일 정도.
또한 "바다거북 스프"라고 해도, 식당에서 먹은 것과 바다 위에서 먹은 것은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조난 중에 살기 위해 먹은 바다거북 스프는 분명 뼈와 고기와 내장을 몽땅 쓸어 넣고 잡탕으로 끓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제대로 된 식당에서 전문 요리사가 만든 바다거북 스프는 고기와 내장 같은 것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등딱지와 늑골 사이에 있는 연골만을 재료로 해서 끓인다. 즉 이 놀이를 만든 사람은 진짜 바다거북 스프 만드는 과정을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밖에는...하지만 진지 빨면 괴담 치고 말이 되는 게 뭐 있던가
재미있는 것은 쇠고기를 재료로 해서 바다거북 스프와 비슷하게 만드는 '가짜 거북 스프(mock turtle soup)'라는 요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언급된다...기 보다 그 가짜거북이 출연한다(…). 사실 나는 바다거북 스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