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1 만화가

1.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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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옹 아닙니다 만화가. 본업은 디자이너.

1.2 리즈 시절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졸업 이후 주로 페이퍼 지 등에서 활동했고 일러스트 중간 중간에 글을 올린 걸로 만화와 인연을 갖게 되었으며 조선일보광수생각을 연재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연재했던 만화들을 모아 만화집도 출판해서 잘 나갔다. 한때는 광수생각이 너무 잘 나가서 웬만한 신문만화는 광수생각 아류란 소리를 듣기도. 얼마나 잘 나갔나면 단행본 다 합쳐서 130만부가 팔려나가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을 정도인데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수치냐면 동시대 만화 가운데서는 까꿍이나 오디션, 힙합 정도나 이 정도 수준의 발행부수를 기록했는데 이들 만화는 흑백만화라서 책값이 상대적으로 쌌던데 반해 광수생각은 올컬러로 발행했기 때문에 책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었고 연재분량도 전자에 비해 적은편이었기 때문에 권수도 4권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비슷한 발행량을 기록한것.

실제로 현재 학습만화로 인기를 끈 이우일도 오버그라운드 데뷔 초반에 그림체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페이퍼 출신에서 조선일보에 발을 담근 정확하게는 웹툰을 먼저 시작한 "생활의 참견"의 김양수의 경우도 일부 에피소드가 박광수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소변기에 대변 누면서 호통치는 아저씨가 대표적인 예. 박광수가 활동한 잡지 페이퍼의 기자가 바로 김양수이니 소재를 돌려썼을 가능성이 있다.

1.3 비판

대표적인 보수 신문인 조선 일보에 연재된 광수생각은 일간지로서는 새로운 시도로 호평을 받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도 받았으나, 싫어하는 사람은 엄청 싫어했다.

일단 이우일의 <도날드닭>과의 비교인데, 박광수의 만화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서 이우일이 박광수를 따라했다고 알고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1] 일간지에 소개된 시기는 엇비슷했지만,[2] 박광수의 만화가 데뷔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언더그라운드에서 이우일은 그의 그림체와 마니아팬층을 확립하고 있었다. 둘은 그 언더그라운드 시절부터 어느정도 친분은 있었으며, 누가 누구를 따라했다고 할 정도의 정황은 아니지만,[3] 당시 만화판에 관심이 있던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박광수가 이우일을 따라했다고 여겼다.

이우일과 박광수는 조금 미묘한 사이인데 둘의 만화에는 서로의 캐릭터가 가끔 등장했다. 박광수는 신뽀리가 도날드 닭으로 변장해 원고료를 가로채는 만화를 그린 적도 있다. 자학개그 반대로 이우일은 딴지일보에 연재하던 존나깨가 달을 보고 신뽀리로 변신하는 만화를 그렸다.

그림체나 형식은 비슷했으나 막연한 온정주의의 광수생각에 비해,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냉소적 풍자로 사회적 모순이나 병폐를 꼬집었던 것이 도날드 닭이 광수생각과 다른 점이었고 이 때문에 도날드 닭을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당시의 인기와는 반대로 현재는 노빈손 시리즈로 이우일이 더 잘나간다. 가정적이라든지 사생활에서도 이우일은 훨씬 박광수과 대조적이다. 박광수가 만화를 내며 계속하던 소리나 하는 비슷한 소재 우려먹기 하는 거랑 다르게 이우일은 여행기에서 수필,자신의 수집품에 대한 책자까지 다양하게 내며 왕성히 활동 중이다.

1.4 몰락

어쨌든 감성적이고 가족애를 중요시하는 내용이 많았기에[4]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었다.

게다가 광수생각 단행본에서 자신의 부모님과 아내/아이들의 사진을 올리고 백년만년 사랑한다는 등의 표현으로 자신의 사랑을 피력했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였고 인터뷰에서도 본인은 이런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면서 사람들은 소박한 행복을 모른다며 좋은 말 실컷 쓰면서 가족애/아내와 아이들이 전부인 듯 운운하더니…….

자신의 팬이었던 한참 연하의 여자와 바람이 나서 이혼을 했다. 그리고 그후에는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 급급한 행보만 보였다. 그 중 유명한 것이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인데 '남자의 외도는 화장실에서 배설 욕구를 해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자의 외도에 갈라선다고 하는 여자는 멍청한 짓을 하는 것이다',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한 여자만 보고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 '살면서 바람 안 피는 남자는 없다. 없다고 하는 남자들은 거짓말쟁이다', '자신의 새 아내는 이런 것을 이해하기에 자기가 밖에서 배설욕구 해결을 하고 와도 이해해준다.'는 등, 병크 발언들을 터뜨려 이제까지 쌓아온 이미지를 날려먹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궁금하면 검색 사이트에서 박광수 혹은 광수 생각으로 검색해 보면 나온다. 심지어 "(재혼한)내 아내는 내가 자주 가는 룸살롱의 마담 생일까지 다 알아서 챙겨준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발언까지 덧붙였다(...). 그동안 박광수는 (전)아내를 본따 만든 캐릭터를 만들어 만화에 출현시켰다고 밝히기도 했고, 아내의 본명까지 만화에서 거론하면서 부부간의 사랑을 피력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는 충격은 더욱 컸다.

전부인과 아이들은 현재 해외이민을 갔다는 소식이 들린다. 박광수가 이혼 후 재혼한 뒤에도 얌전히 있지는 못하고 툭하면 방송/각종 인터뷰에서 말도 안되는 자기핑계 급급한 이야기들만 하고 있으니 한국에 계속 있는 것도 괴로운 일일 듯하다.

거기다가 만화의 소재가 여기저기서 베낀 것[5]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만화가로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되고, 또 나중에 전처와 합의이혼한 직후 새 부인과 결혼식을 한 사실까지 알려져 욕을 대차게 먹은 후 점점 잊혀졌다. 나쁜 광수생각이나 다른 캐릭터를 사용한 비슷한 만화나 19금[6] 만화를 그리고, CF도 몇 개 찍었었지만 하도 해놓은 게 많아서 재기하지는 못했다. 어설프게 정치에 발을 담근 것도 패인의 하나.

광수생각 성공 이후 완전히 매너리즘에 빠져 원패턴으로 나가다 망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고는 하나, 광수생각 자체는 소재고갈로 고사 상태가 계속이었기 때문에 끝나는 게 당연했다. 만화 외적으로는 또다른 요인으로 몰락했다. 디자인 및 여러가지 사업을 벌이다가 40억 원이 넘는 재산까지 날려버렸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다. 거기에 사업체 정리하면서 직원들 밀린 월급 문제로 또 말이 많았다고 한다. 몰락 이후에는 간간이 책을 출판하며 활동중이다. 생각보다 볼만한 책은 그다지 없어서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다…….

1.5 기타

외모가 가수 이무송을 닮아서 사람들의 오해를 많이 샀다고 한다. 대중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을 무렵 어떤 행사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저분, 노사연씨 남편 이무송 씨 아냐?' 라는 말을 했다고. 그리고 광수생각과 기타 활동으로 점점 인지도가 상승했을 무렵 또 나간 행사에서 가수 현미 씨가 '아이구~ 조카사위가 여기 어쩐 일로?' 라고 환대를 했다고. 참고로 현미 씨의 조카딸이 바로 노사연 씨고, 이무송은 노사연 씨의 남편(...)

어찌나 예비군 훈련을 싫어했는지 계속 훈련에 불참하여 불구속 입건되는 바람에 TV 뉴스에 보도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걸 자신의 만화에서는 '나는 벌금형을 받았는데 내가 영창에 갔다고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식으로 반성의 기미도 없이 개그 소재로 삼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일명 박광수 3대 떡밥이 생겼는데. 그게 바로, '표절-여성편력-예비군'이다..

또한 자기 만화에 때때로 조선시대를 연상케 하는 남녀차별 의식을 그려내 항상 여성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아왔었다.근데 그건 남녀차별이라기보단 정말로 그냥 외모지상주의 아닌가?예를 들어 연재 초기에는 '잘생긴 여자는 뭘 해도 칭찬받고, 못생긴 여자는 뭘 해도 욕을 먹는다'는 짤막한 만화를 그려놓고 그 밑에 '잘 생기고 볼 일이다-광수생각'이라는 말을 광수생각 1권에 떡하니 실려있다. 물론 외모지상주의를 까는 의도일 수는 있지만 본인의 행적을 미루어 봐서는...

광수생각의 주인공 캐릭터인 신뽀리도 몰락해서 추악한 아동성범죄자사진 역할에 팔리고 있는 등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2012년에는 한미 FTA 찬성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하여튼 신문연재는 꿈도 못 꾸고(...) 이렇게 정치 및 여러 홍보물 만화를 그리며 벌어먹는 듯.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SBS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에서 연기자로 데뷔했었다. 하지만 드라마 자체가 인기를 끌지못했고 연기도 그다지 좋다고 봐야할 것도 아니라서 이후로 연기자로 활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초로 봐야할 인물.

2010년 이후부터는 '위로'라는 키워드로 광수생각을 15년만에 재연재를 통해 재기를 하려는 것 같다. 교보문고 북뉴스를 통해서 홍보하고 있으며 광고 캐치프라이즈는 '나에게 전하는 위로'(...)다. 그러나 인기를 얻지못하여 종종 인터넷에서 박광수 2010년대 이후 책 낸 거 있나요? 이런 질문도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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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현재는 SBI저축은행 대출 광고에 나오고 있다. 구글 애드센스에 등록되어 나무 위키에서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신뽀리가 눈물을 머금고 있다

1.6 광수생각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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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를 권장하는 서체

그의 글씨체인 '광수체'는 조형미가 뛰어나 서체로 팔리기까지 하였다. 그리하여 인기가 높던 시절에는 그의 글씨체를 그의 만화 작품을 넘어서 상업 광고, 출판 등 다방면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도처에서 쓰이고 있다. 한때 팬택의 휴대폰 SKY의 기본 폰트가 광수체였다고 한다. 지금은 맑음체가 기본 폰트로 적용되어 있다. 하지만 폰트 설정에서 광수체와 광수뽀리체로 바꿀 수는 있다.

2 개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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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7월 19일 생. 現 예명미키광수.[7] 주요 출연작은 웃찾사개그투나잇, 코미디빅리그 시즌 4시즌 5시즌 6시즌7
갑과을로 떠올랐고, 항상 "딱! 보면 몰라요?"와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치며 현실 사회의 갑과을 을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 역관광을 도맡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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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화 감독

박광수(영화 감독) 문서로.
  1. 심지어 이우일은 심지어 출판사에서 광수생각처럼 그려달라고 의뢰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2. 이우일이 조금 먼저 실렸으나, 정식 연재는 박광수가 더 빨랐다.
  3. 둘이 대담도 한 적이 있다.
  4. 당시 얼마나 유명했으면, KBS1에서 방영하던 TV유치원 하나둘셋에서 그의 자녀 둘이 나온 VTR이 나왔을 정도. 지금으로 따지면 SBS의 오 마이 베이비의 시초라고 볼 수 있을 듯.
  5. 대부분이 옛 연강학술재단 및 두산동아에서 발간한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월간지의 유머란에서 따온 것이다. 다만 유머란 자체가 항간에 떠도는 유머를 모은 것이므로 이를 소재로 삼은 것 자체가 표절은 아니다. 광수생각이 한창 인기 있던 시절에도 웬만한 독자들은 만화를 보면 이미 있는 이야기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만 작가의 아이디어 빈곤이라는 점에서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6. 이를테면 깡패를 만나서 신체 훼손 장난으로 자해하는 등의
  7. 예전 자주찾기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캐릭터로 활동했었다. 참고로, 미키광수로도 여기로 들어을 수 있다. 그 유래는 동방신기믹키유천을 패러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