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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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그네」


산은
구강산
보랏빛 석산

산도화
두어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산도화 1」


한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난」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가정」

朴木月
1916년 1월 6일 ~ 1978년 3월 24일 A형,.

대한민국시인이다. 본명은 박영종(朴泳鍾)이다.

1916년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다만 이후 경상북도 경주군으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갔다가 귀국하여 대구 계성중학교,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등에서 교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1962년부터 한양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육영수의 시 선생 노릇을 한 적도 있었고, 대통령 찬가를 작사하여 권력에 아첨하는 어용시인이라는 비판도 듣고 있는 상태. 개인사적으로 박목월은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둘 정도로 다복하지만 가난했는데, 어느 날 집 앞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목월을 보고 장남이 "힘드시죠?"라고 물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호철은 그의 이런 행적에 대해 '가난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옹호하긴 했다.[1]

처음에는 동시로 출발하였다. 1933년 어린이지에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특선되었다. 그러다가 1939년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1946년 조지훈, 박두진 등과 청록파(靑鹿派)를 결성하고 청록집(靑鹿集)이라는 시집을 발간하였다. 청록집에 실린 그의 시로는 임, 윤사월, 청노루, 나그네 등이 있다. 참고로 청록집이라는 시집은 그의 시 청노루에서 따 온 것이다. 이 시집에 실린 그의 시는 한국적인 서정과 극히 간결하고도 리듬감있는 시어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청노루

머언 산(山)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靑)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기타 유명한 시로는 하관(下棺), '내 신발은 십구문 반'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가정> 등이 있다.

개인적인 성품으로는 언제 어디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호인이었다고. 다정다감하고 목소리는 약간 가냘픈 듯 하며, 조용조용한 성품에 원고 청탁을 거절해본 적이 없고, 모든 원고는 꼬박꼬박 본인이 직접 가져다주었다.

1978년 별세하였으며 박동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그의 아들이다. 박동규 교수의 회고에 의하면 풍족하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자녀들을 위해 애쓰는 아버지였다. 가령 만화책을 보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하루 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며 만화책을 한자루 쓸어담아왔다거나, 서커스가 마을에 오자 몰래 개구멍으로 아들을 들여보내고 자기는 그 개구멍을 들키지않게 서커스가 끝날때까지 가로막으며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아들이 장성해 대학에 진학할 때 "같이 책을 쓸 수도 있구..."하며 은근히 국문학과 진학을 권했는데, 나중에 교수가 된 아들이 자신의 논문을 보여드리자 며칠 후 빨간 펜으로 문법과 용어 사용을 일일이 교정해 방문 앞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아버지 이전의 시인으로서의 박목월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시인 유안진은 목월의 추천으로 등단했는데, 나중에 시인을 추천해서 등단시키는 것에 대해 엄격했던 목월의 면모를 회고했다. 11년 만에 추천 받은 사람, 다시는 이 집에 발길 안 한다고 치를 떨며 나간 사람, 박목월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유안진에게도 처음엔 "유군은 국문과 영문과도 아닌데, 시 몇편 좋다고 시인으로 추천했다가 사는 게 힘들어지고 바빠서 시 안쓰면 추천한 나는 뭐가 되노?" 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

여담으로 배우 윤여정도 그의 제자 중 한 명이다.
  1. 이호철이 박목월과 같은 출판사에 몸 담은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일 때문에 필요해서 물어물어 그의 집을 찾아갔더니 티는 안 내려고 하지만 너무 가난해서 딱하더란다. 그래서 이호철은 박목월의 지조 없다 싶은 행태를 비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