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바둑기사 조치훈을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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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 조지훈 |
조지훈 (趙芝薰, 1920년 12월 3일 ~ 1968년 5월 17일)
1920년 12월 3일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조동탁(趙東卓). 본관은 한양(漢陽).[1]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1939년 <문장(文章)>지의 추천을 받아서 '고풍의상(古風衣裳)'이라는 시로 등단하였다. 그 외의 작품으로는 승무(僧舞), 봉황수(鳳凰愁) 등이 있다. 또한 고려대학교의 '호상비문'을 지었다.1946년 박목월, 박두진과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하여 청록파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조론'이라는 수필을 통해 이승만 정권 및 정치인들의 지조없음을 꾸짖은 전례가 있을 정도로 대쪽같은 인물이었다. 후배 문인 중엔 대선배인 서정주보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이승만 과 박정희 독재정권에 비판적이었다. 이승만 정권 때는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에 적극 참여했다.
다만 정치적 성향 자체는 진보가 아니라 어느정도 보수적이었던듯 하다. 신경림 시인에 의하면 생전의 지론이, 부도덕하고 경박한 진보주의자보다 도덕적이고 성실한 보수주의자가 역사에 더 많이 기여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정부와 대립하면서 강경하게 나가는 진보적 문인들에게도 한 소리 했다는 말도 있다. 사실 이해가 갈만한게 조지훈 자신부터가 명문가 출신인데다가[2] 한의학자 겸 정치가였던 부친 조헌영이 6.25 전쟁 때 납북되고, 조부 조인석은 6.25 전쟁때 좌익 청년들이 자신을 모욕하고 집안에서 난리를 쳐대자 그 수치감에 자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와는 달리, 야사 중에는 매우 해괴한 장난을 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시전설들인 '교수의 독특한 시험문제' 중 '시험지를 날려서 멀리 날아가는 순서에 맞춰서 채점하기' 방식을 쓴 사람 중 한명이 조지훈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둑의 급수에 빗대어 술꾼의 등급을 매긴 주도 18단이란 글이 유명하다.
1968년 5월 17일 사망. 고혈압으로 토혈한 후 입원했는데, 기관지확장증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