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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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峰性. 본명은 박종구(朴鍾球). 1949.03.29~2005.10.15.

한국의 만화가. 부산예술문화대학 겸임교수 및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1974년 데뷔했으나 무명에 머물러 잠시 만화를 접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실패, 1982년 만화계로 복귀하였다. 하지만 사업 실패 경험을 살려 제작한 기업물 신의 아들이 대히트하면서 80년대 대본소 시절 이현세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젊은 시절에는 만화로 도무지 벌어먹을 기반을 못잡았는데 한때는 한복 무늬 세공기술자로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했다. 아내가 군복무 시절 여군장교였는데 적극적으로 구애했었다. 당시 일병 주제에 중위이던 아내에게 구애했다가 버럭거리면서 군장뺑뺑이 명령받아 뺑뺑이 돌기도 했으나 포기하지 않고 제대할때까지 구애한 끝에 이뤄지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대본소 만화가들이 스포츠와 무협 만화에 치우친 것과 달리 자신의 경험을 살린 기업만화라는 특이한 소재를 선택해 인기를 얻었으며,[1]당대의 검열제도 때문에 직접적인 잔혹, 선정적인 묘사는 없었지만 기업 내부의 암투, 조직 폭력배들의 청부 폭력, 미인계로 상대를 파멸시키는 내용 등등으로 주로 청소년 보다는 성인 독자들에게 주로 인기를 얻었다.

당시 이현세, 허영만, 박봉성 등이 타 대본소 만화가들에 비해 차별적인 위치에 있었던 이유는 다양한 소재와 형식에 대한 시도였다. 박봉성의 경우 기업만화로 대변되지만 일반인이 기업에 대항하는 스토리를 그린 새벽을 여는 사람들, 화개장터, 열풍을 배경으로 한 민족종교, 환빠 사상이 드러나는 선각자, 일제시대 만주 배경으로 마적단이 설치는 시대가 배경이 되는 열망, 원양어선을 배경으로 한 미스테리 복수극 분노의 바다, 당시 김홍신인간시장의 영향으로 사회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돈키호테같은 인물의 기행을 그린 나는 왕이다 등 다채로운 형식과 소재들을 선보였다.

80년대 말 민주화 이후 검열의 완화 및 당시 유행했던 영웅본색 등의 홍콩 느와르의 인기에 편승하여 대본소 만화들이 야쿠자나 마피아 폭력 만화 쪽으로 바뀌는 추세를 보였다.[2] 박봉성도 기업물이라는 배경은 유지하면서 주인공에게 킬러 속성을 추가한 집행인을 통해 이 흐름에 편승하였다. 이제는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한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원래 대본소 시절에 출간되었던 이 집행인 시리즈의 2부 제목이었다. 3부 제목은 말소인.

이후 보물섬, 점프, 챔프 등의 잡지 체제로 만화 시장이 변화하는 시점에 대본소 만화에만 주력함에 따라 대본소 만화를 접하지 않은 세대를 상대로는 이현세, 허영만 등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게 되었으나, 90년대 후반 스포츠신문 만화 열풍이 불 때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등을 리메이크 연재해 다시 성인층을 대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소재의 다양성을 꾀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요리, 디자이너, 화류계(웨이터, 호객꾼)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하였으나, 그래도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이상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김성모를 능가하는 다작 작가로도 유명한데, 만화 제작에 기업적인 시스템을 도입한 소위 공장제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대본소 만화의 질적 저하를 우려했던 독자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대본소 시절 저런 작품 하나가 약 3~4달 동안 보통 20~30권으로 완결되었다. 최소 한주에 1권이상은 출판되었다. 뭐 대본소 만화가들에서 인기 많으면 이런 경우가 허다하긴 했지만.

당시 이현세 등 다른 대본소 만화가들처럼 한번 쓴 캐릭터를 계속 사용하는 스타시스템을 애용했는데, 그의 만화 주인공 이름은 항상 최강타, 그의 연인인 여자 주인공 이름은 진보배, 마동탁 포지션의 라이멀 악역 이름은 엄동호(안경 쓴 엘리트 타입이란 것도 똑같다), 백두산 포지션의 듬직한 조력자 캐릭 이름은 장백산, 주인공의 아버지격 캐릭 이름은 최대풍이었다. 그밖의 캐릭터는 괴팍하고 주먹 센 형사나 최강타의 스승 역할인 한만수, 땅딸막한 대머리 노인네 표주박 등이 있다.

주인공 최강타의 성격은 대략 이현세의 까치와 비슷하지만 까치보다 똘끼는 적고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을 가졌다. 까치가 고독한 아웃사이더 타입이라면 최강타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타입.

인기작가인 만큼 많은 작품이 드라마, 영화화 되었는데, 신의 아들은 최민수 주연으로 영화화 되었고, 화개장터,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등이 드라마화 되었다. 80년대에는 워낙 돈을 많이 벌어서 심지어 간첩이라는 억울한 소문까지 듣었다고 한다. 세무조사 끝에 아님이 드러났지만...그 시절 반공이란 이름으로 얽매이던 억울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데 누군가가 시샘하여 일부러 신고한 게 아닌가 이야기도 있지만, 당시 출판업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 신고는 부산의 한 은행원이 했다고 한다. 당시 박봉성 화백은 부산에서 만화를 그렸는데(80년대 작품들을 보면 자갈치 시장을 주제로 하거나 자주 등장 하기도 한다.) 프리랜서인 만화가의 특성상 외부인이 보기에는 별 직업이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매달 거액의 돈을 은행에 맡기니... 간첩으로 오해하고 신고했다고 한다. 한국의 만화가 18인이나 이 책자를 더 보강해 나중에 그가 죽은 뒤에 재출간된 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한국 만화가들의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에서도 나오고 본인에게 확인받은 걸 보면 카더라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이다.

그렇게 만화가로서 지내던 2005년 10월, 아들 및 문하생과 평소 하던 대로 산악 등반을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인공호흡법을 알던 문하생이 대처했지만 이미 빈사상태였고 병원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장례식이 있던 날 아들의 꿈에 나타나 손을 잡으면서 부탁한다고 미소지으며 떠나갔다고 한다.(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한국 만화가들의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에서 참고.)

그가 죽고 그의 아들이 주축이 되어 박봉성 프로덕션이란 이름으로 계속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비슷한 경우로 무협만화로 알려진 이재학(1939~1996)이 사망한 뒤 지금까지도 아내가 이재학 프로덕션 이름으로 대본소 만화를 계속 내고 있다.

소년한국일보에 <매직헌터>라는 제목의 어린이용 판타지 만화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이외에도 90년대 초 단편중에 아이큐점프 별책부록으로 제공된 <괴짜 파이터>라는 격투기만화(?)도 있었다. '파이터'가 들어갔다고 해서 대전액션게임패러디같은건 아님

2001년 즈음에 박봉성 삼국지를 출간했는데 삼국지 덕후들로부터 숨겨진 명작으로 평가받을 만큼 퀄리티가 훌륭하다 다만 분량이 상당한편(...)[3]

그러나, 생전에 연재하던 "달려라 백수!" 에서 히그마를 대놓고 트레이싱하여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1. 박봉성의 경우도 스포츠를 소재로 채용하였지만 주력은 아니었으며, 신의 아들에서 권투, 선각자에서 야구 등을 스포츠 만화에 익숙했던 당시 독자들을 유인하는 도구로 활용하였다.
  2. 시초는 이현세의 문하생 출신이었던 박원빈의 제2의 킬러 시리즈로, 이 작품의 대히트로 말미암아 일부 무협작가 및 코믹작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극화 만화가들은 킬러물로 노선을 전환하였다.
  3. 68권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