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식(정치인)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朴忠植
1903년 ~ 1966년 4월 5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03년 경상남도 공주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법학전문학교(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3년 과정을수료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기부터 화신산업 간부, 중앙신문사 사장, 동아해상주식회사 대표이사, 경성전기주식회사 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8.15 광복미군정기 때 이승만이 이끄는 민주의원 비서실장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독립정부수립대책협의회 후보로 충청남도 공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명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하였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였고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후보등록이 취소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의 당선을 규탄하는 시위가 있었다. 결국 부정선거로 선거가 무효 판결을 받아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고 재선거가 수행되어 민주당 엄대섭 후보가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남도 공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박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