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와 숙제

1 백이(伯夷)

이 문단은 백이(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생몰기간? ~ ?
묵태(墨太)
윤(允)
공신(公信)

고죽국후작인 아미(亞微) 묵태초(墨太初)의 세 아들 중 맏이. 장남인 자신에게 군주의 자리를 넘겨주려는 동생의 뜻을 거절하고 나라 밖으로 피신한다.

2 숙제(叔齊)

생몰기간? ~ ?
묵태(墨太)
치(致) / 지(智)
공달(公達)

고죽국의 후작인 아미 묵태초의 세 아들 중 막내. 자신이 물려받은 군주의 자리를 거절하고 장남인 백이에게 양보하려 한다. 백이가 도망치자 형제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따라서 도망쳐나온다. 후한 말에 황번이라는 사람에게 '백이의 동생'이라는 시신이 자신을 묻어달라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3 사기 백이 열전

삼형제의 아버지는 삼남 숙제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주려 했으나, 숙제는 관례에 따라 큰형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하지만 백이는 부친의 뜻이라며 사양하고 나라 밖으로 피신해 버렸다. 이에 숙제도 형제간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형을 따라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그 나라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둘째 아들 아빙을 왕으로 세웠다. 이 후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희창(姬昌)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으나,[1] 이미 서백은 사망한 후였다. 백이와 숙제는 서백의 아들 주무왕이 부친의 상중에 은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는 것을 보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아직 장사도 지내지 않았는데 전쟁을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주나라상나라의 신하 국가인데 신하가 임금을 주살하려는 것을 어찌 인(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라며 만류하려다가 목숨을 위협받았다. 강태공은 형제를 죽이려는 신하들을 만류하며 "이들은 의로운 분들이다" 라고 변호해 형제는 목숨을 건진다. 무왕의 주나라가 강국이 되자 형제는 주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에 은거하여 고사리를 캐먹으면서 여생을 보냈다.

사마천사기에서 이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인 '백이열전'을 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궁형을 당한 자신의 비참한 현실과,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먹다 굶어죽은 모습을 연관해 보며 세상의 모순을 상기한 모양.

'"천도(天道)는 공평 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고 한다.[2] 하지만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인가. 그들은 이와 같이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이렇게 굶어 죽었다. 또한 공자의 고제 칠십인(高弟 七十人) 가운데 중니(仲尼)는 오직 안연(顔淵)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추상(推賞)했다. 그러나 회(回)는 가끔 쌀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일까?(중략)

근세에 이르러서도 소행(素行)이 도(道)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고도 종신(終身)토록 일락(逸樂)하여, 부귀가 자손 대대로 끊이지 않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정당한 땅을 골라서 딛고 정당한 발언을 해야 할 때만 말을 하며, 항상 큰 길을 걸으며 공명 정대한 이유가 없으면 발분(發憤)하지 않고, 시종 근직(謹直)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재화(災禍)를 당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천도라는게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하지만 사기열전와 반대로, 본기에서는 서백이 멀쩡히 살아있어 백이와 숙제는 멀쩡히 도착했고, 무왕은 문왕이 죽은 후에 바로 주왕을 치지 않았다. 사기본기에서 진시황소양왕의 아들이라고 서술하고, 사기열전에서는 여불위의 아들이라고 서술한 것과 같이 받아들이면 될 듯

4 여담

'백', '숙'은 백중숙계 항렬이고, '이'와 '제'는 두 형제의 시호이다. 따라서 차남인 아빙후 풍의 시호는 중X이겠지만 군주가 되었으므로 따로 전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절개를 지키는 충신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인물들이지만, 일각에서는 단순히 왕에게 절개를 지키는 것만을 지키는 걸 중시하는, 소극적인 의미의 충신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주장은 잘 보면 현실성이 없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극소수나마 있다.[3] 사육신 중 한 명이었던 성삼문도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에게 등을 돌렸다고 하면서도 그들이 먹은 고사리는 결국 주나라의 것이 아니었냐고 깠다고 한다(...) 그럼 굶어죽으라는 거냐[4]

  1. 그런데 이 백이와 숙제 이야기를 실은 사기열전에서는 둘이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 그동안 뭐했는지는 실려있지 않는다.
  2. 노자 79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3. 기실 은나라는 필연적으로 거의 망해가서 왕조교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은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한 걸 생각해보면 아래에서 들고 일어나도 이상할 거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인이니 뭐니 하고 들먹이면서 왕조 교체를 바라는 세력들을 말려봤자 결국 의미가 없다는 것.
  4. 주나라 건국 이후 후일담격으로 나오는 일설 중에는 이런 얘기도 있다.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산나물 캐러 다니던 아낙네에게 성삼문이 한 것과 같은 지적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불쾌하게 여기고 무시했다가 나중에 학식이 높은 어떤 사람이 이를 똑같이 지적하자 그제야 오류를 인정하고 식음을 전폐하여 아사했다." 사실 지금 입장에서 보면 딱히 성인이라기보다는, 천도니 법도니 하며 폭군을 숭상하고 민초들을 멸시하다가 기행이 지나쳐 굶어죽은 꼴통들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고죽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