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1 路資

여행 또는 먼 길을 떠날 때 드는 비용. 노잣돈. 즉, 여행비용.

2 老子

Laozi.jpg
당나라의 추존 황제
묘호성조(聖祖)
시호고상대광도금궐현원태상천황대제
(高上大廣道金闕玄元太上天皇大帝)
이(李)
이(耳)
아버지이경(李敬)
생몰기간? ~ ?

당나라의 추존 황제이자 도가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사람.

2.1 개요

춘추시대 사람으로 도가의 창시자로 전해지는 인물. 다만 본인이 딱히 창시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다. 도교에서는 신격화하여 태상노군이라고 부른다. 더불어 동명의 책인 《노자》의 저자로도 알려져있다. 《사기·신한노장열전》에 따르면 본명은 이이(李耳)[1][2], 는 담(聃)이다. 또 중국의 설화집인 《태평광기》에 따르면 본명은 이중이(李重耳), 자는 백양(伯陽)으로 초나라 고현 곡인리 사람이라고도 전해진다. 현대에는 노자의 성이 노씨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매우 부족하여, 여러 전설이 전해져오고 그런연유로 노자로 추정되는 고대인물들도 많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기록이 사마천의 사기인데, 노자는 초나라 출신으로 주나라에서 도서관장[3]을 지냈으며, 공자가 주에서 잠깐 머무를 때 노자에게 배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도 한다. 재미있는게 노자와 공자는 서로에 대한 평가를 남겼는데 이게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난다. 노자는 공자에 대해 사기꾼이자 위선자와 같다고 비판한 반면, 공자는 노자를 가리켜 처럼 변화무쌍하고 감히 접할 수 없는 인물이라며 극찬했다.

노자는 이후 소를 타고 함곡관 밖으로 가 종적이 묘연해졌다 하는데, 출관하기 전에 문지기인 윤희에게 5000자로 된 책을 전수하니, 이것이 '도덕경'이라고도 불리는 《노자》이다.[4] 이대로면 노자는 춘추 말엽의 사람이 되나, 문제는 함곡관이 지어진 것은 전국시대인 (秦) 효공대의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설화는 후세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사기·신한노장열전》에는 이 외에도 전국시대의 인물인 사마담(司馬儋)이 노자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해진다. 이때문에 노자가 한나라 이후 창조된 가공의 인물로 보는 학자들도 있었으나, 기원전 3세기 초 이전으로 추정되는 시기의 노자 사본이 발굴되어 이 설은 힘을 잃는 등 여전히 정확한 생존여부를 비롯한 실체 자체가 불분명하다. 사실 은둔하려고 작정한 사람한테 실체 따지는게 우습긴하지만

2.1.1 트리비아

워낙 실체가 불분명한 인물이라 여러 전설이 있는데 어머니 뱃속에서 70년을 지내다가 태어났다는 알에서 태어난 김수로 쌈싸먹는 얘기가 유명하다. 평생 임신하신 엄마는 몇살이시냐 태어나면서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외모였고 벤자민 버튼?, 태어나자마자 집 앞에 있던 오얏나무를 가리켜 자신의 성씨로 삼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 도교가 발전하고 노자가 태상노군으로 격상되면서 사람들에 의해 윤색된 설화로 여겨진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후, 노자가 서쪽으로 떠나(혹은 노자가 석가로 환생하여) 사람들에게 내려준 가르침이 불교라는 이른바 노자화호설(老子化胡說)이 떠돌기도 했다. 이를 놓고 도교계에서는 자기들이 불교보다 우월하다는 근거로 삼았고, 불교에서는 조작되었다고 응수하는 한편 삼성화현설(三聖化現說)과 이 설이 담긴 '청정법행경'이라는 위경을 지어 공자는 유동보살(광정보살)의 환생이고 가섭보살은 노자의 환생이라고 역공을 가했다. 이 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말이 많은데, 도교계에서 불교가 크게 번성하여 도교의 자리가 위험해지자 도교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과, 현존하는 노자화호설 등장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게 불교 쪽 문헌이라[5] 처음 중국에 불교가 전해질 때 중국 내에서 반발이 많자 불교 쪽에서 포교를 위해 지어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노자화호설은 처음 불교전래 당시만 해도 오랑캐의 종교라며 받아들이는 것을 꺼렸던 중국에서 불교가 퍼지는데 상당 부분 기여하였다.실제 노자가 보면 코웃음 칠지도 사실 도가의 철학적 의미를 찾는거라면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자의 사상적 계승자로는 장자열자가 거론되지만, 사상의 지향점이 서로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장자의 경우는 노자의 주요사상 중 하나인 현실주의를 극대화시킨 유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초극강의 현실주의

당나라때 같은 씨라고 도교를 숭상했던 역대 당나라 황제들이 조상이라고 윤색하기도 했다. 현종 같은 경우 아예 황제로 추숭하기도..

아마존에게 바치는 거라고도 한다

2.2 老子가 집필했다는《老子/道德經(책)》

2.2.1 개괄

도교가 성립된 이후 경전시되면서 《도덕경》으로 불리기도 한다. 참고로 《도덕경(道德經)》이란 이름은 상편의 "道可道, 非常道"의 "道"와 하편의 "上德不德"의 "德"을 합해 부른 이름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도덕의 의미가 얼마나 수준이 높은가 생각해 보라!)

2.2.2 판본

2.2.2.1 전래되어 온 주요 판본

현전하는 《노자》에는 3개의 주요 판본이 있다. 하나는 한대에 성립된 하상공본(河上公本),[6] 또 하나는 삼국시대의 왕필#s-2이 주석한 왕필본(王弼本), 그리고 당대의 학자 부혁이 전한 부혁본(傅奕本)이 그것이다. 이 중 왕필본의 권위가 가장 인정되어 후대에 나온 대부분의 《노자》텍스트들은 대부분 왕필본에 의거하고 있다.[7] 이 외에도 당대에 새겨진 여러 《노자》비들 또한 참고가 된다.

2.2.2.2 근대에 출토된 판본

20세기의 문헌출토는 그야말로 《노자》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일단 20세기 초반에 발견된 대량의 돈황문헌들 가운데에는 《노자》의 판본 또한 존재하였는데, 이러한 발견은 《노자》의 연구자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진정으로 《노자》연구자들에게 경천동지적인 소식을 전한 것은 1974년에 한대 이전에 조성된 무덤인 마왕퇴에서 발견된 《노자》갑,을본이다. 이 《노자》사본은 비단에 쓰여졌기 때문에 백서 노자라고 불리며, 서한의 황제 고조(劉邦)와 문제(劉恒)의 이름이 피휘되지 않아, 서사된 시기가 한대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때문에, 《노자》의 한대 이후 위작론 및 노자라는 인물의 가공성을 논하던 학자들의 기세는 한 풀 꺾였으나, 확증은 없었기에 백중세가 되었다. 또한 특기할만 사항은 노자의 편집순서인데, 백서 《노자》 왕필본 《노자》와는 달리 상편과 하편의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어 본래는 덕도로 순서로 되어 있었음을 알려주어 《덕도경(德道經)》으로 불리기도 하며, 왕필본과는 다르게 몇몇 내용의 순서와 글자가 바뀌어 있어 본래 도덕경의 모습을 유추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1993년에는 후베이성 징먼시 궈뎬촌의 한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 무덤(기원전 3세기 초 이전)에서 죽간에 쓰여진 《노자》의 사본이 발견되어, 《노자》의 '한대 이후 위작론'은 완전히 일소되었다. 다만 이 《노자》에는 오늘날 전하는 《노자》의 모든 편이 실려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이 실려있기 때문에 죽간본 노자는 《노자》에서 발췌된 내용인지, 혹은 《노자》의 본래 형태가 그러하였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재도 논쟁중이다. 때문에 백서 노자는 초판본 노자의 주석서라는 견해를 몇 학자들이 밝혔다.

《노자》의 판본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노자》와 성격이 다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천하 만물은 有에서 나오고 有는 無에서 나온다'라는 익히 알려진 왕필본과 백서의 구절이 죽간본에는 '천하만물은 有에서 나오고, 또 無에서도 나온다'라고 되어 있다.[8] 또한 '큰 도가 사라지니 인의가 나오고, 지혜가 생겨 큰 거짓말이 생기고-'라는 구절이 원래는 '大道가 폐하니 安有仁義리오?인데 이는 "큰 도가 사라지니 어찌 인의가 있으리오?"로 읽을 수 있다.[9] 이는 《노자》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반 유가적 성격'이 후대에 와서야 생긴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근거이다.[10] 다시말해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노자》를 바라보았던 시선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면에서 연구할 것이 많은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발굴된 《노자》죽간본의 내용과 기존 판본들의 내용/사상의 큰 차이는 기존 주장 중 《노자》가 후대에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가필되었다는 주장을 더욱 강화시켜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2.3 《노자》의 사상적 성격

왕필본으로 대표되는 《노자》는 일반적으로 반 유가적이면서 역설적인 격언을 담은 문헌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는 특히 《장자》가 갖는 성격과 연동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출토문헌은 그러한 이해에 대하여 의구심을 던져주고 있다. 가령 왕필본의 "絶聖棄智, 民利百倍(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로움을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란 문장이 "絶智棄辯, 民利百倍(지식을 끊고 변론함을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배)"라는 내용으로 바뀌어 있으며[11], 왕필본의 "國家昏亂, 有忠臣(국가가 혼란해져야 충신이 생긴다)"란 문장도 "邦家昏亂,安有貞臣(나라가 혼란해지면 어디에 바른 신하가 있겠는가)"으로 바뀌어 있어 반유교적인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12] 오늘날 이러한 문제는 학자들 중에서 치열하게 토론되고 있는 중이나, 지금까지 이해했던 노자의 모습은 최초의 노자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를지도 모른다.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기초하여 《노자》의 사상에 대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언어, 개념, 인식의 상대성을 강조하고, 서로 대립되는 것들의 관계에 주목한다. 특히 강함, 단단함, 높음, 그리고 채움에 대비하여 약함, 부드러움, 낮음, 비움, 그리고 겸손함을 강조한다. 억지로 그리고 작위적으로 무엇인가를 함을 반대하고 명예와 이익에 대한 추구 그리고 지나친 욕망 등을 비판하고, 마음을 깨끗하고 고요하게 하여 일이 자발적 또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게끔 함을 주장한다. 통치자의 욕심으로 인하여 국가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결국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피해가 되니, 통치자는 헛된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치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명령과 법률을 시행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문장이 있다. 또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맞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오래 사는 것이라는 문장도 있다. 이렇게 통치자와 관련된 구절이나 유, 무에 대한 구절들에 주목하여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왕필 등이고, 뒤의 '오래 사는 것'(장생불사)에 주목하여 양생론적, 종교적으로 보는 쪽이 하상공 그리고 도교의 노자에 대한 해석 그리고 입장이다. 이빡에 노자의 정치철학은 소국과민이다. 이는 나라는 작게하고 백성은 적게하라는 말로써, 노자는 원시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여긴다.

여기에서 간과되기 쉬운 사실은, 노자의 사상은 유가법가와는 확연히 다른 수단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통치자가 지향해야 할 바를 논한다는 점이다. 노자 사상의 이른바 도교적, 양생론적 측면을 주목하는 입장에서는 노자 사상의 이러한 통치 규범적 측면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경향이 강했으며, 그래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도가"적이라고 묶이게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도덕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13]과, 장자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 등을 종합하여 노자의 상대성, 자연, 부드러움 등에 대한 태도가 결국 "부드러운" 형태의 통치술을 논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라고 보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특히, 한비자의 "해로" 부분이나, 황로학파 등은 아예 노자가 유가, 법가, 묵가 등보다도 더 섬세한 고도의 통치술을 이야기한다고 보았으며, 이 때문에 후대의 왕필본에서는 이게 권모술수에 대한 서술인지, 자연적 원리에 대한 서술인지 애매하게 읽히는 부분들이 나온다. 실제로 이렇게 애매한 몇몇 부분들은 죽간본에는 없다. 대표적으로 36장. 다만, 죽간본에 있는 부분들만 놓고 봐도 유가와는 대비되는 통치 기술서로 읽을 여지가 없는 게 아니다.

이런 면을 보면, 왜 한비자가 노자에 주석을 달았고, 병법가, 무술가들이 은근히 노자에서 영감을 얻거나 비유를 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놓고, 억지로 의도를 내비치면 상대가 반발할 것까지 미리 예상하고,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몇 수 앞을 읽어 행동하는 교활한 통치자나 전략가야말로 도에 맞추어 사는 사람일 수 있으니까. 병법서에서도 거국적인 외교술을 다루고, 격투기나 무기술에서도 음양수라고 해서, 실로 허를 치고, 허로 실을 치고, 허를 드러내는 것과 같이 기묘한 원리들을 다루는데, 노자를 이러한 맥락으로 읽을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점이 노자의 묘미이다. 당연하지만 노자식 사회를 이상사회로 긍정적으로 평하는 학자들은 노자를 "권모술수를 담은 책"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둘 다 노자를 정치,사회적인 맥락에서 읽은 관점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2.3.1 《노자》의 기타 특징

《노자》는 다른 제자백가의 사상서들과는 달리 시적인 운율이 중시되어 상당히 많은 구절에 압운이 되어 있고, 역사상의 고유명사가 단 하나도 출현하지 않는 매우 특이한 성향을 보인다. 이 점은 《노자》의 저작연대나 작자를 파악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3 4WD(feat. 버벌진트, Lucy)가 만든 디스곡

전설의 나우누리 힙합 동호회인 SNP(Show N Prove)에 속해 있던 4WD버벌진트가 만든 한국 힙합 최고의 디스곡으로 꼽히며, 버벌진트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곡이다. 디스곡이므로 가사 내용은 앞의 항목과는 관련이 거의 없다.[14] 그런데 4WD와 Lucy는 행방이[15] 가사가 시궁창/한국참고.

멜로디가 매우 평화롭고 부드럽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단음절 라임을 신봉하는 조PD와 Daz money, DJ Uzi를 디스한 곡이다. 디스대상이었던 조PD와는 화해했다고.[16]

이 노래는 한국 최초로 다음절 라임을 사용한 노래로, 한국 래퍼들이 학 거리던[17] 단음절 라임에서 다음절 라임을 이용한 작법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일부 래퍼들은 한글 발음을 영어 발음처럼 꼬아서 랩을 하는 등 다음절 라임을 어설프게 따라해 플로우는 물론 라임과 곡 자체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비판도 있다.[18]

긴말 필요없고, 일단 노래를 들어보면 '노자'가 당시 단음절 라임을 숭배하던 MC들에게 전해준 충격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단음절 라임을 산도, 칸쵸, 뽀또 등의 과자 이름을 이용해 풍자한 '과자라임' 이 일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19]

혹자는 이것을 한국 힙합 최초의 디스곡이라고도 한다.[20] 어쨌든 디스 측면과 라임 방법론 측면에서 한국 음악(특히 힙합)계에서는 어떻게 보면 세라복을 벗기지 말아요급의 핵폭탄급 임팩트를 낳은 곡이다.

이 곡의 반격곡으로 소울트레인의 일원인 DJ Uzi, Deze, 현상이 참여한 불이병강천하(不以兵强天下)가 있지만 노자에 비해 넘사벽스럽게 안습한 퀄리티로 인해 아는 사람만 아는 반격곡이 되어버렸다. 안습.

3.1 노래와 가사


우릴 위해 준비된 너무나 소중한 기회
밝은 세상 나와 그대가 다같이 만들어요

우릴 위해 준비된 너무나 소중한 기회
이 노래가 지친 그대의 마음 깊숙히 다가가

가만 보자하니 이렇게도 역시 많이 파리만이 귀옆에서 얼쩡대네
내가 만일 나 가만히 보고 있는다면 니 놈들이 만회할 기회마져 없어질것 같네 그만해

개나 소나 rapper, MC라고 말한 너도 역시 소 개 그속에 너도 속해
구석에서 니네 clan DJ 발이나 핥아 계속해 그래 열좀 받냐? 우냐? 잔말 많다 개새꺄

어이 거기 Daz money! 저기 아주머니한테 물어 봐 좀. 저의 랩이 어떤가요
힙합의 성역 저리가서 성형이나 해라 니 이상형 현주가 미소 짓겠끔 미워죽겠군
따라와 니 개꿈 깨게끔 나의 주먹 그리고 발로 면상을 완전히 뭉개주마
니가 rap을 하느니 이놈아 내가 춤을 추마 돈벌려고 그러면 내 돈 한 줌을 주마

우릴 위해 준비된 너무나 소중한 기회
밝은 세상 나와 그대가 다같이 만들어요

우릴 위해 준비된 너무나 소중한 기회
이 노래가 지친 그대의 마음 깊숙히 다가가

스타 의식의 DJ uzi의 의지 없어보이는 rappin'이 요새 나의 귀를 건드리지
간드러지는 uzi's mind 음성 변조 목소리가 나오는 곳이 너의 주둥아린가
미국가서 욕만 배운 미친 조 PD 그게 좋아 꼬붕이 된 DJ uzi
빨아봐 이걸 빨아봐 너희가 빨기엔 나의 좆이 너무 커

오빠 나 조PD 랩해줘
아이... 무슨 자다말고 조PD 랩해~
아니~ 조PD 랩해달라니까?
아이... 그럼... 한번만이다?
응, 딱 한번.

산도 이렇게 보듯이 멋진 과자들로 뽀또 모르는 애들 한번 먹여주러
누가 뭐래도 우린 딸기맛 산도 이런 과자이야기가 너무 낯선 너도
설명이 필요하면 치즈맛 뽀또도 사둬
니가 누구라도 칸쵸 산도 뽀또 모른다면 뭐하며 사는거니 너는 아무것도 몰라 좆도

그래 좆도 몰라 유치한 rhyme을 조물락 길지 않은 verse에도 flow는 호흡 곤란
조 PD he's a wack 초보자
he ain't spittin' rhymes He just suck on the microphone a lot
콧물 가득한 안타까운 목소리가 밤새워 고민한
망가진 flow 에다 애송이 rhyme 을 들려줄 때 조용히 난 웃곤 하지
Oh my God 버르장머리없는 꼬마가 고만고만한 rap을 지껄이다 우릴 보고 도망가
쪼다 hip-hopper 들을 따먹고 느끼는 포만감 4WD & Verbal Jint의 치밀한 2인조 강간
좋아라 좋아라 당하며 느낄 줄도 알아 니들의 rhyme 연습장 그건 가벼운 수작
우린 반면에 문자 그대로 새로운 rhyme의 선구자
Suckers turn loser! 4WD & Verbal Jint, 우리는 가장 높은 곳을 원해 겁없이

우릴 위해 준비된 너무나 소중한 기회
밝은 세상 나와 그대가 다같이 만들어요

우릴 위해 준비된 너무나 소중한 기회
이 노래가 지친 그대의 마음 깊숙히 다가가

* 출처 : 가사집
  1. 애초에 도교의 태상노군 전설에도 이씨라고 나온다. '늙을 로' 자를 쓰는 이유 자체가 어머니 뱃속에서 70년을 살다가, 어머니가 오얏나무 밑에서 그를 낳자 할아버지인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인데, 태어나자마자 할아버지였던 그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말하고 그 오얏나무를 가리키며 '이 (오얏)나무를 나의 성씨로 해 주시오'라고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성이 오얏나무 '李'(리)인 것이다.
  2. 귀가 크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이름의 한자도 '귀 이'자이다.
  3. 정확히는 문서 기록을 담당하는 관직. 당시 이 관직의 명칭이 '사'(史)였는데, 이것이 후에 '역사'를 뜻하는 글자로 쓰이게 된다. '史 記事者也 從手持中 中正也(史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글자의 형태는 '손'이 글자의 한 부분이고, 中을 잡고 있는 모양이다. 中은 바름이라는 뜻이다.) -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 역사교육학 배우면 한번 이상은 꼭 지나치는 기록이다.
  4. 사실 노자가 그와 친분이 있어서 미리 준것은 아니고 노자가 은둔하기위해 관문을 떠나려 할 때 문지기인 윤희가 선생님께서는 이제 곧 은거하실테니 쉬운 부탁은 아니겠지만 떠나시기 전에 소인을 위해 글을 남겨주고 가십시오.라고 부탁했는데 평소에 언어를 통해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며 글 자체를 남기지 않았던 그도 윤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 문지기를 위해 자신의 유일한 저서를 집필한다. 사실 노자는 학문이나 책 자체를 그가 주장하는 도에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보고 아주 몹쓸 것으로 취급하던 사람이다. 도덕경만 봐도 이미 책읽고 공부한 학자(혹은 지자 = 똑똑한 자)라는 인간들을 평범한 사람들 상대로 '(인)위'(현혹이나 선동에 가까운 것들을 의미한다.)하려 하는 자로 간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음모(?)에 맞서 도를 거스르지 않는 방법은 백성이 무식하고 욕심이 없는 것, 즉 무위라 봤다.
  5. 참조:불교의 중국정복(에릭 쥐르허 저)
  6.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여러 가지 기록과 주석의 사상적 경향으로 보아 한대로 추정하고 있다
  7. 왕필은 노자의 주석을 16세에 달았다. 또한 주역의 주석도 달았는데, 그때 나이가 22세였다. 이를 바탕으로 위진시대 현학(玄學)이 발전할 수 있었다. 위진 현학의 3대 경서가 바로 《노자》, 《장자》, 《주역》임을 생각한다면 왕필은 정말로 천재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젊은 나이에 역병에 걸려 요절하였다.
  8. 일반적으로 알려진 구절은 만물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 문장이지만, 죽간으로 된 판본의 구절은 그렇지 않고 단지 有와 無의 상대적인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한 구절이다.
  9. 安을 '이에'로 해석하는 견해 또한 있어서, 그 의미에 대한 논쟁이 현재 진행중이다.
  10. 그렇다고 해서 반 유가적인 구절이 죽간으로 된 《노자》에 아예 없지는 않다.
  11. 성과 지라는 한글자가 바뀌었는데 뜻이 바뀐다. 글씨 일부만 조금 지워져도 둘이 모양이 헷갈리는 형태의 글자라
  12. 기존에는 반유가적인 성격이 많이 부각되었다. 군사정권 시절 다석 류영모, 함석헌 등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사상가들이 노자 연구를 많이 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 였다. 그러나 노자에 반유교적인 모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측면이 발전되고 부각됐을 뿐이다.
  13. 왕필본 이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백서본, 죽간본 출토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함축적인 운문 형태인 노자 텍스트의 특성상 한 글자만 다르게 읽어도 뜻이 천지차이로 벌어지는지라...
  14. 다만 시적인 운율과는 관련이 있는데, 이 '시적인 운율' 이 당시 유행했던 단음절 라임이 아니라 그 당시 혁신적이었던 다음절 라임이다. 또한 곡의 모티브가 '노자'의 한 구절에서 유래했는데(자켓에 적혀 있다.), 그 구절은 '누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더라도 앙갚음을 하려 들지 말라. 강가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곧 그의 시체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게 되리라'이다.
  15. 4WD는 최근에 '아마빌레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사진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는 @blues4wd. 버벌진트의 어카운트를 팔로윙하는 것으로 보아서 최근까지도 교류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어반 코너 피쳐링을 통해 오랫만에 등장, 건재함을 알렸다. Lucy는 2009년 발매된 Artisan Beats(前 Saatan(Of Da Crew))와 마이노스의 합동 앨범에 피쳐링으로 참여한 이후로는 10인조 R&B 그룹 뉴클리어스에 합류, 본명인 김다영으로 활동하고 있다.
  16. DJ Uzi우지파동는 아이스크림 가게 했다가 대차게 말아먹었다. 일본에 유학가서 강의를 했으며 한 때 한글 위키피디아발 사망설이 돌았으나 사실이 아니다. Daz money는 근황이 알려지지 않았다.
  17. 버벌진트의 '1219 Epiphany' 중 가사.
  18. 쉽게 말하자면, T-pain의 유려한 오토튠 스킬을 실력 없는 프로듀서들이 어설프게 따라하다가 OME급의 작품을 내놓는 현상과 유사하다.
  19. 사실 이것은 힙합계의 정석원이현도의 '흑열가'가사 중 디스의 대상 중 하나인 조PD의 파트를 패러디함으로써 조PD의 라임 수준을 폄하하는 의도라 할 수 있다. 디스 대상의 파트를 그대로 가져온 라임이 일품이라는 평가는 어불성설.맥락상 일품이라는 말이, 그런 의미로 쓰인 게 아닐 텐데
  20. 전에도 유승준과 김진표의 가사 구절을 통한 '까기'를 디스로 보는 의견도 있으나, 본격적으로 곡 전체에서 상대 아티스트를 까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 '디스곡'을 창작한 것은 이 곡이 사실상 최초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