ब्रह्मा (Brahma)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 비슈누, 시바와 함께 힌두교 3대신 중 하나. 불교에서는 범천(梵天)이라고 부른다.
1 설명
신화에 따라서는 시바나 비슈누가 창조신으로 나오기도 하나, 통상 창조의 영역은 브라흐마가 주관하는 것으로 본다. 어쨌든 창조의 신이지만 창조라는 추상적인 이미지 때문인지[1], 창조한 이후에는 담당하는 권세가 없어서 믿어봤자 별 이익이 없기 때문인지(...)[2] 인기는 별로 없다.[3] 신화를 살펴봐도 같은 3대신이면서 묘하게 비슈누나 시바보다 대우가 좋지 않다.
2 외형 및 성격
4개의 팔과 4개의 얼굴, 붉은 몸을 지닌 흰 수염의 노인으로 묘사된다. 머리는 원래 5개였으나 시바에게 까불다가 시바의 가운데 눈에서 나온 히트 비전 공열안자경 눈에서 빔(...)을 맞고 머리 하나가 날아가 버렸다. 신들의 지물에 대해서 설명하는 경전에 따르면 브라흐마는 물 주전자, 목걸이(염주), 큰 국자와 작은 국자를 들고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그대로 맞춰서 그려지는 경우는 보통 없고 대부분 베다 경전과 연꽃, 물 주전자, 국자를 들고 있다.
그 후 시바와 세계 창조자가 누군지 두고 싸우다가 다섯 개의 머리 중 하나가 잘려나가는 안습한 대우도 있었지만, 명색의 삼주신이고 시바가 그래도 양심이 있어 사과할 정도로 아직 권위는 내려가지는 않았다.어쨌든 브라흐마의 머리 하나를 자른 대가로 시바는 사람들에게서 천대를 받으며 구걸하며 속죄의 여행을 해야 했다.[4]인기가 없어서 문제지만
게다가 자신들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이 고행을 쌓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이루어 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사건사고가 생겼다. 물론 전부 다 들어준 것은 아니고 들어주지 않은 것도 있었다. 신보다 강력한 힘을 원한다고 말한 아수라가 있었는데, 브라흐마는 그걸 잘못 들은 척하면서 강력한 힘보다 수천 수백년간 잠을 자다가 어느날에 한 번 깨게 해주는 걸로 해주었고, 아수라는 후에 어떤 영웅에게 죽었다. 뭐,"신에게 상처를 입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뻔한 소원을 들어준 탓에 신계를 도탄에 빠뜨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고행하면 힘을 주는게 법칙이라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이다. 생각이 없이 그냥 '짠'하고 소원을 들어준 것이 아니다.
게다가 비슈뉴도 자기를 열렬하게 믿는 아수라의 소원인 '자기 몸에 닿으면 정화'도 들어줬다가 세상이 난리 난 적이 있는데, 브라흐마도 아니라 삼신들도 소원 들어줬다가 세상이 난리나는 경우도 있다.
머리가 다섯 개가 된 이유도 자기 배우자로 삼으려고 '사라스바티(辯才天)' 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들었는데 사라스바티는 그런 브라흐마가 부담스러워서 도망다녔지만, 도망다닐수록 그의 머리가 늘어나서 그녀를 쳐다보자 어쩔 수 없이 왼쪽 무릎에 앉게[5] 되었다.
절대자는 자신의 성격을 구분해서, 오른쪽, 왼쪽, 가운데의 3개로 구분하는데, 3개의 자리 중에서 브라흐마는 오른쪽에 속한다.
세 신의 위대함을 따질 때 시바와 비슈누 모두 1등을 했던 적이 한번씩 있었으나, 브라흐마는 그런 적이 없는 모양이다. 인기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게다가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신인지라 그러는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힌두교의 최고 계급인 승려 계급을 브라흐만이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힌두교의 교리에서 뺄 수 없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3 창조 주기
칼파 항목 참고
4 불교의 범천
불교에서는 범천(梵天), 범천왕(梵天王), 청정(淸靜), 적정(寂靜) 등으로 기록한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자 맨 먼저 찾아와 불법에 귀의했으며, 이대로 조용히 홀로 성불할까 아니면 자신의 깨달음을 전파해 중생들을 구원할까 고민하던 석가모니를 설득해 불교를 세우게 했는데 이를 범천권청(梵天勸請)이라 한다. 이후 범천이라는 이름을 얻어 불교의 수호신 중 하나가 된다. 그 후로 인드라를 비롯해 아수라 등 많은 신들이 불법에 귀의하게 된다. 다만 남방 빨리어 문헌에는 조금 기록이 다른데, 사함빠띠라는 범천이 석가모니를 두 차례 설득했다고 나온다. 이외에 남방불전 문헌에는 여러 다른 범천들이 등장하여 유일신적 면모보다는 천인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외에 초기 불경인 아함경 중에 범천을 묘사하는 구절이 몇몇 있는데 불교에서 보는 브라만/창조주에 대한 관점을 잘 보여준다.
(전략)혹은 이런 때도 있었다. 이 겁(劫)이 처음으로 시작되던 때에 어떤 중생이 복(福)이 다하고 목숨[命]이 다하고 행(行)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이 끝나 허공의 범천에 태어났다. 그는 곧 그곳에서 애착심을 내어 다른 중생도 함께 그곳에 태어났으면 하고 원했다. 이 중생이 애착의 원을 일으킨 뒤에 다시 다른 중생이 목숨과 행과 복이 다해 광음천(光音天)에서 목숨을 마치고 범천에 태어났다. 그러자 먼저 범천에 태어난 중생은 곧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곳의 범(梵)이요, 대범(大梵)이다. 나는 저절로 있게 되었으며 아무도 나를 만든 자는 없다. 나는 모든 뜻을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自在)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나는 중생의 아버지로서 나 혼자 먼저 있었고 다른 중생은 뒤에 왔으니, 뒤에 온 중생은 다 내가 조화로 만든 것이다.' 그 뒤에 온 중생들도 또 이렇게 생각했다. '저 분은 대범이다. 저 분은 스스로 생겨난 자이며 저 분을 만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모든 뜻을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중생의 아버지로서 저 분 혼자 먼저 있었고 그 뒤에 우리가 있게 되었다. 우리들 중생은 저 분이 조화로 만든 것이다.' 저 범천의 중생들은 목숨과 행이 다해 이 세상에 와서 태어났다. 그들은 점차 자라나서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닦았다. 그들은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자기 자신의 본생을 기억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 대범천은 스스로 생겨난 자이며 저 분을 만든 자는 없다. 모든 뜻을 다 알고 1천 세계를 맡아 그 가운데서 자재하며 가장 존귀하고 잘 변화하며 미묘하기 제일이다. 저 분은 중생의 아버지로서 항상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저 범천이 조화로 만들었으므로 무상하여 변하고 바뀌며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나와 세간은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며 이것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인 줄을 안다.' 이것이 초견(初見)이다. 사문 바라문들은 이로 인해 본겁 본견에 대해서 '반은 영원하고 반은 무상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4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후략)
- 출처 : 동국대학교 한글대장경 불설장아함경 21. 범동경[6](불설장아함경 제 14권)
(전략)'범천은 저절로 있게 되었다.' 이것은 범지[7]들이 하는 말이다. 그런 소견 참되지도 바르지도 않으니 그저 그들의 소견일 뿐이니라. '우리 주인이 연꽃을 피웠고 그 속에서 범천이 태어났다.' 지주가 범천을 낳은 것이니 저절로 생겼다는 말 맞지 않다. '지주(地主)는 찰리 종족과 범지 종족의 부모이다.' 그러면 왜 찰리의 자손들과 범지들은 다시 서로를 낳는가? 그들이 태어난 곳을 더듬어 보면 그것은 저 여러 하늘들이 한 말 그것은 바로 찬탄한 말이거늘 도리어 굴레의 재앙을 스스로 덮어쓰네. '저 범천이 사람을 낳았고 지주는 세상을 만들었다.' 혹은 '다른 이가 만들었다' 말하지만 이 말을 누가 증명할건가? 성냄과 탐욕과 어리석음 이 세 가지가 함께 어울려 그 마음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세상에서 내가 훌륭하다'고 스스로 일컫는구나. 천신(天神)이 세상을 만든 것도 저 범천이 낳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범천이 만들었다 한다면 그것은 허망한 말이 아닌가? 그 자취 찾아보면 갈래가 많고 진실을 살펴보면 그 말들 허망하다 그런 행들 제각기 서로 서로 다른데 그런 행은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니라.(후략)
- 출처 : 동국대학교 한글대장경 증일아함경 제 43권 47. 선악품
물론 힌두교에서는 이러한 불법에 감화되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오히려 부처(붓다)를 비슈누의 9번째 아바타라[8]로 설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5 관련 항목
- ↑ 애초에 태생 자체도 태양신에서 비롯된 비슈누나 폭풍의 신이었다는 시바와 같이 개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주적 원리인 브라만의 신격화에 가까운 존재이다. 그리고 이런 순수하게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신은 어느 신화이건 지위만 높았지 인기가 없다. 우주적 법칙이라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도 별로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 ↑ 이미 브라흐마가 창조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 ↑ 이원복 교수의 저서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에 따르면, 인도 전역에서 브라흐마를 섬기는 사원은 단 1개라고 한다. 실제로 푸쉬카르에 있는 브라흐마 신전 외에는 인도에는 브라흐마 신전이 없다(…). 물론 인도네시아의 쁘람바난 사원같은 종합사원세트 같은 곳에 가보면 삼대신 신전이 각각 있긴 하지만. 덤으로 캄보디아 힌두교 신전인 앙코르 와트에도 브라흐마의 신상은 제대로 관리가 안되어서 팔 부분이 부러지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안습한 상태이지만 비슈누의 신상은 위에 차양막도 설치되고 그 앞에 꽃과 향이 바쳐져 있는데다 그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 ↑ 이것은 고대 인도의 관습을 반영한 것이다.죄를 지은 브라흐만 계급은 아무리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계층에게라도 천대를 받으며 걸식하며 일정기간 동안 속죄해야 했다. 시바 또한 신이므로 브라흐만 계급의 관례를 따른 듯.
- ↑ 인도에서 왼쪽 무릎은 아내 오른쪽 무릎은 자식이 앉는 자리다.
- ↑ 불설범망육십이견경(佛說梵網六十二見經)이라는 다른 번역본이 있다.
- ↑ 한자로는 梵志. 바라문, 혹은 바라문교의 사제들이 행하는 4기의 생활 중 제 1단계인 스승 밑에서 배우는 시기를 말한다.
- ↑ 부처가 9번째 아바타라라는 건 세상이 점점 말세로 가고 있다는 뜻으로, 10번째 아바타라 칼키의 등장을 예고한다. 9번째 아바타라 부처는 마족들에게 이단의 교리를 설파해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으로도 칼리 유가는 오랫동안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열 번째 아바타라가 나타나게 된다.
- ↑ 인도지역 2차장수를 만들려면 브라흐마의 권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