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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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고향팀 고어헤드 이글스에서 뛸 당시의 판 마르베이크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램베르투스 판 마르베이크 (Lambertus van Marwijk)
생년월일1952년 5월 19일
국적네덜란드
출신지데벤터르
포지션미드필더
181cm
소속팀고 어헤드 이글스 (1969~1975)
AZ 알크마르 (1975~1978)
MVV 마스트리흐트 (1978~1986)
포르튀나 시타르트 (1986~1987)
어센트 (1987~1988)
지도자포르튀나 시타르트 감독 (1998~2000)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감독 (2000~200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 (2004~2006)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감독 (2007~2008)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8~2012)
함부르크 SV 감독 (2013~2014)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5~)
국가대표1경기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역대 감독
마티아스 잠머
(2000~2004)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2004~2006)
위르겐 뢰버
(2006~2007)

1 선수 시절

1969년 고향팀 고 어헤드 이글스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6시즌 동안 146경기 16골을 기록한 후 1975년 AZ 알크마르로 이적하였으며 3시즌 동안 69경기 20골을 기록했다. 이후 MVV 마스트리흐트에서 8시즌 동안 225경기 11골, 포르튀나 시타르트에서 1시즌을 뛰며 11경기 1골을 기록했다. 마지막 시즌은 벨기에 어센트에서 17경기를 소화했고 이후 축구 선수에서 은퇴하였다.

국가대표로는 1975년 유고슬라비아와의 친선 경기에 출전해 네덜란드 국가대표 선수로는 딱 1경기에 출장하였다.

선수로서는 그다지 크게 주목받지는 못 했다. 그러나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참고로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했었던 조 본프레레와도 인연이 있는데 MVV 시절 선배였고 이 팀의 감독을 하기도 하면서 사제지간이기도 하다.

2 지도자

MVV 마스트리흐트에 소속되어 있던 1982년 현역 선수이면서 같은 팀의 유소년팀 코치를 맡아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 1986년 포르튀나 시타르트로 이적한 뒤에도 현역 선수 생활을 계속하면서 아마추어 클럽인 SV 메일센의 유소년 팀 감독을 겸임했다. 감독 업무에 전념하기 위해 1988년에 선수 생활을 은퇴한 뒤 국내 아마추어 클럽의 감독으로 3개 팀을 떠돌아 다녔다.

1998년 포르튀나 시타르트의 감독에 취임하여 마르크 판 봄멜 등 장래 네덜란드 국가대표 선수를 길러냈고, 1999년 KNVB컵 결승전까지 팀을 이끈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0년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리그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했으나, 2002년 욘 달 토마손, 피에르 반 호이동크 등을 이끌고 UEFA컵(UEFA 유로파 리그의 전신)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4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2006년 중반에 사퇴하였다. 2007년 다시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감독을 맡아 KNVB컵을 차지하였다. 이 점을 인정받아 2008년 8월부터 마르코 판 바스턴의 후임으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다. 이 과정에서 컵 대회 외에는 딱히 성적이 없고, 상위 수준의 감독 경험이 없는 판 마르베이크를 국대 감독으로 선임하는 것이 불안하다는 반응도 있었으나 토너먼트에 강하다는 점이 크게 어필되었다고 한다.

월드컵 유럽 예선을 전승으로 돌파한 판 마르베이크는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네덜란드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결승 상대가 세계 최강 스페인이었다는 점이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1] 그러나 유로 2012에서는 사위인 마르크 판 봄멜을 중용한다는 비판을 받는 등 선수단 장악에 실패, 조별 리그를 3패로 마쳐 계약 기간은 2016년까지 남아 있었으나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6월 27일 사임하였다. 사위인 판 봄멜도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을 떠났다.

2013년 9월 함부르크 SV의 감독으로 취임하였으나 7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하여 순위가 강등권으로 추락하기까지 했고, 성적 부진으로 2014년 2월 15일 해임되었다. 함부르크 SV의 경우 토르스텐 핑크 감독이 2013~2014시즌 초반 1승 1무 3패로 부진하여 경질당했고 이로 인해 시즌 도중 부임한 것이었는데 프리 시즌에 자기만의 팀을 만들 시간을 갖지 못하고 시즌 도중에 갑작스레 부임했기 때문에 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뤄야했고, 당연히 자신의 전술을 팀에 제대로 녹여 낼 수가 없었다는 점에서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함부르크는 아르네센 단장의 잘못된 선수 영입으로 이미 2011~2012 시즌에도 강등권에서 기웃거릴 정도였고 시즌 막판 손흥민의 맹활약으로 아슬아슬하게 강등권을 탈출했었다. 2012~2013 시즌에는 손흥민의 포텐이 폭발하면서 잠시 성적이 상승하기는 했지만 손흥민이 이적하자마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르크는 판 마르베이크가 상황을 반전시켜주길 기대했겠지만 그 또한 속수무책이었다.

다만 유로 2012의 부진과 함부르크의 실패가 연속적이다보니 실패가 더 크게 부각된 점이 있는 듯하다.

2014년 여름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제의했지만 본인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결렬되었고, 그 대신에 카타르 스타즈 리그에서 감독 생활을 하고 있었던 독일 출신의 울리 슈틸리케가 선임되었다.

2015년 8월 26일에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1년 단기 계약인 점을 생각하면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나 사우디나 서로 길게 갈 생각은 없는 듯 했으나 2016년 말에 들어서도 여전히 사우디 감독으로 계약을 연장했다. 이후 팀은 9승 3무 무패 행진을 기록 중.

2.1 사상초유의 재택근무 요구

2014년 8월 당시에 무직으로, 홍명보 감독이 사퇴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차기 1순위 감독으로 낙점하여 협상을 진행했었다. 이 문서가 생긴 진짜 이유 판 마르베이크 감독은 일단 대한민국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다소간의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답변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8월 7일 브리핑에서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 1주일 이내에 대한민국행 여부에 대한 대답을 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발표하였다. 그가 국대 감독이 된다면 거스 히딩크 이후로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인)을 제외하고 모두 네덜란드인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될 터였다.

없던 항목이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으나, 결국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었다. 추측되는 사유로는 연봉 문제와 계약기간, 거주 문제라고 한다. 계약기간에 있어서 판 마르베이크는 2+2 계약을 원했지만 축구협회에서는 4년 계약을 요구했다. 연봉 문제야 이해할 수도 있지만 거주 문제는 사실상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재택근무 알바하면서 36억이나 받아가면 그게 도둑놈이지, 뭐여? 판 마르베이크는 사실상 일부기간은 대한민국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 밝혔는데, 대한민국에 머물지 않는다면 유럽파 선수들의 점검은 몰라도 그 기간 동안 K리그 출신 국내파는 전혀 관리할 수가 없다. 이런 부분은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 이로 인해 판 마르베이크에게는 재택근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2015년 9월, 협상을 맡았던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협상 결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일부 공개했다. 당시 판 마르베이크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요 선수들이 유럽에서 활동 중이므로 자신의 주 활동 무대는 유럽이라고 생각했으며, '대한민국에서 활동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낼 수 없다.'라면서 '네덜란드에서의 소득세대한축구협회에서 부담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대한민국에 오지도 않고, 세금 조차도 내지 않겠다는 판 마르베이크의 심보에 의문을 품었고,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협상을 바로 결렬시켰다고 한다. 기사내용

2016년 말에 이르러 슈틸리케호가 부진하자 차라리 판 마르베이크 감독을 조건을 협상해서라도 데려왔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사우디에서도 결국 재택근무 형태로 일하는데도 호주와 일본을 제치고 B조 1위로 올라서며 크게 선전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아직 더 두고 봐야한다는 반론도 많다. 무엇보다 무패행진에 강호랑 경기를 치룬 게 없으며 월드컵 최종예선 초반에는 슈틸리케 이상으로 사우디에서 무지 욕먹었다. 1차전 상대인 조 최약체급인 태국과 홈경기도 논란이 큰 패널티골로 1-0으로 겨우 이겼으며 아직 1위라고 해도 호주나 일본 원정 경기가 남아있다.그리고 태국 원정경기도 남아있네 이때문에 냄비같이 초반부 결과만 가지고 무조건 마르베이크를 숭배하는 것은 이르다는 반론이다. 무엇보다 위에 나온 9승 3무 무패행진도 모조리 아시아 나라와 경기를 해서 벌인 결과다.

3 전술

4-2-3-1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수비적인 성향의 선수들로 세우고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공격의 창조성을 부여하는 축구를 선호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성향상 "선 수비-후 역습"의 수비 축구를 지향한다.

1선 공격수부터 적극적인 압박을 주문하는등 활동량과 체력을 중요시한다는 점도 특징. 팀의 조직력을 중요시하며, 선수의 이름값보다 실력을 더 중요하게 보는 편이라고 한다.

"승리를 위해 '추한' 축구도 마다하지 않겠다" 라는 그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네덜란드 축구 특유의 토탈 사커에 집착하기 보다는 '재미없더라도 일단 이기고 보는' 실리 축구를 지향한다. 네덜란드의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는 "판 마르바이크 감독의 축구는 지루하고 따분하다" 라고 비판하는 등 네덜란드 내에서는 판 마르바이크식 축구를 비판하는 여론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 때문에 단기전인 토너먼트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기복이 심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덕장으로서 선수단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지어 유로 2012에서 참담한 실적을 낸 이후 로번 등의 선수들과 빚은 마찰이 3패로 조별예선 탈락이란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 여기에 더해 전술적 차원에서의 임기응변 및 대처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남아공 월드컵 당시에는 프랑크 데 부어 수석코치의 전술적 역량/선수단 장악 능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프랑크 데 부어AFC 아약스의 감독으로 옮긴 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보여준 모습을 고려하면 이런 평가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4 여담

축구 선수 마르크 반 봄멜의 장인이다. 과거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감독 시절에 송종국이천수를 영입하기도 했으며, 출전 기회도 많이 주며 중용하는 등 상당히 아꼈다고 한다.

가족을 아주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할 때 대한민국에서만 감독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직 협상이 결렬되는 원인이 되었다.
  1. 그러나 네덜란드전승준의 성적을 거두는등 호성적을 거두었으며 결승전에서도 0-0으로 연장까지 가는등 잘 싸웠으나 석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