伏壽
(? ~ 214)
1 개요
후한 말의 황후로 헌제의 황후이며 낭야군 동무현 사람이다. 복완과 영(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0년에 낙양에서 서쪽으로 장안으로 옮길 때 귀인이 되었다가 195년에 황후가 되었으며, 헌제가 낙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이각, 곽사 등이 쫓아와 조양에서 황제의 군대를 패배시켜 헌제가 밤에 몰래 황하를 건너 도망칠 때 생사로 짠 명주를 들고 있었는데, 동승이 손휘에게 시켜 빼앗기면서 곁에 모시던 이를 살해하자 그 피가 복황후의 옷에 튀었다고 한다. 안읍현에 이르렀을 때 옷이 구멍이 나 해졌으며, 오직 밤과 대추만으로 양식을 삼았다.
이후 조조가 조정을 장악하였고, 동승은 조조의 암살을 모의했다가 발각되어 동승 일가는 물론 헌제의 귀인인 동승의 딸 동귀비까지 예외없이 처형되었다.[1] 이 일로 복황후는 두려움을 품어 아버지 복완과 편지를 주고받아 이를 알렸으며, 몰래 조조를 도모해달라고 했지만 복완은 함부로 시도하지 못했다.
조만전에 따르면 214년에 결국 일이 발각되어 조조가 황후를 폐위하라고 황제를 핍박한 끝에 거짓으로 조서를 내려 어사대부 치려에게 황후의 옥새와 인수를 빼앗도록 했다. 그리고 상서령 화흠에게 치려를 부관으로 삼아 병사들을 거느려 궁궐로 들어가 복황후를 잡아들이게 했는데, 복황후는 문을 닫아 걸고 벽 사이에 숨어있다가 화흠이 잡아 끌고 나가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헌제가 전각 바깥에 있었지만 치려가 잡아당겨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산발한 머리에 맨발로 끌려가 흐느끼면서 이제 살아서 볼 수 없겠다고 헌제에게 말한 후에 폭실에 가둬졌다가 유폐되어 죽었다. 복황후가 낳은 황자 둘이 짐독으로 살해[2]되고 형제 및 종족들 중 백여 명이 살해되었으며, 어머니 영(盈) 등 19명은 탁군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거의 비슷하나[3] 조조가 부하를 시켜 때려죽이게 했다.
2 미디어 믹스
조조: 황제의 반란에서는 조비에게 겁탈당하나 이후 자신을 탐하는 조비를 꼬드기게 된다. 자신을 가지고 황후로 만들어주기 위해선 황제가 되어야 하며 황제가 되기 위해선 조조가 없어야 한다고 말이다.[4]그리하여 조조를 죽이기 위한 계획으로 조비에게 조조를 죽일 것을 재촉한다. 그러나 조조가 암살을 시도하는 자들의 공격을 받아 군사들이 이를 진압하면서 밀서를 발견해 헌제가 주모자였음이 드러나게 된다.
조조가 잔치를 빙자해 암살에 대한 추궁을 하면서도 일부러 누가 강요했냐고 묻자 복완이 주모자라고 자청한 것을 보고 아버지 복완과는 무관한 일로 자신이 주동했다고 얘기했으며, 죽기 직전에 조비가 자신을 죽이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결국 조비의 칼에 죽는다. 이때 조비가 헌제에게 황제가 말한다면(죽이지 말라)하면 황후를 죽이지 않겠다고 했으나 복황후가 조비와 관계하는 것을 본 바 있는 헌제는 속으론 분노를 느끼면서도 겉으론 조비에게 죽이라고 웃으며 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