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승

1 일반적인 의미

  • 同乘 : 2인 이상이 하나의 교통수단에 같이 탐. 교통카드를 사용할 경우 환승 혜택이 1인에게만 적용되므로 주의하길 바란다. 이니셜D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 혼백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
  • 童僧 : 나이가 어린 스님. 동자승이라고도 한다. 한창 클 나이이므로 고기오신채를 먹는 것을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 어린이는 종교 규율이 느슨한 편이다. 당연히 라마단의 금식도 어린이는 제외시키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실은 시궁창.

2 후한 말의 인물

董承
(? ~ 200)

후한 말기의 무장이다. 헌제의 측근이었으며, 그의 딸은 헌제의 후궁인 동귀비이다.

정사 삼국지에 주석을 달은 배송지하진에 의하여 살해당한 동태후의 조카라고 하였다.[1] 하지만 동탁의 사위 우보 밑에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면, 원래 동탁군에 소속된 장수이고, 동태후와 같은 집안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의 신상에 관한 명확한 사료가 남아있지 않으며, 딸을 귀비로 들여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조차 전하지 않는다.

2.1 정사

그는 본래 동탁의 사위 우보의 부곡에 속했던 인물이었기에 동탁이 살해당한 뒤 여포이각 그리고 곽사 등의 권력다툼에도 관련되어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줄곧 세력다툼을 벌이던 이각과 곽사가 장제의 중재로 195년에 화해하였다. 이에 헌제가 낙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동승은 안집장군에 임명되어 헌제의 수행을 맡았다. 낙양으로 돌아가는 도중 곽사가 변심하여 헌제를 억류하려 들었기에 양정과 양봉이 합심하여 이를 무찔렀고, 곽사는 이각과 힘을 합쳐 다시 헌제를 겁박하고자 했다.

어가가 화음(華陰)에 이르자, 그 일대를 다스리던 단외가 헌제를 모시려 했지만, 수행원 중 양정충집은 단외와 사이가 나빴던터라 이를 반대했다. 동승도 이들과 뜻을 같이하여 헌제에게 곽사의 병력이 이미 단외의 영내에 들어왔다고 거짓으로 고하여 결국 어가는 화음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단외는 애초에 헌제를 겁박할 뜻이 없었고, 양정은 단외와 한바탕 싸운 뒤 어가를 쫓아온 이각과 곽사의 병력에게 협공당하였기에 궁지에 몰려 형주로 달아났다.

이후 장제가 양봉, 동승과 대립한 끝에 다시 이각, 곽사와 힘을 합쳐 어가 호위군을 공격했다. 이에 동승은 양봉과 의논해 흑산적의 일파인 백파적(호재, 이락, 한섬)과 남흉노의 선우 어부라 및 우현왕 거비[2] 등을 포섭하여 사예군을 무찔렀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사예 군세는 끈질기게 어가를 추격해 많은 수행원들이 희생되었으며, 수로로 헌제를 안읍까지 피신시키는 과정에서 관리들이 뱃전에 매달려 함께 떠나려 하자 동승은 창으로 이들의 손가락을 닥치는 대로 찍어 떨어뜨렸다[3]. 이후 어가는 이락과 장양, 하동태수 왕읍 등의 호응으로 간신히 안읍까지 도달할 수 있었지만, 따르는 인원은 수십여 명에 불과했다.

196년에 조조가 헌제를 맞아들이려고 조홍에게 군사를 주어 낙양에 가게 하자, 처음에 동승은 원술을 끌어들여 조조의 세력의 침입을 막았다. 그러나, 헌제가 낙양에 돌아오면서 한섬, 장양, 양봉 등 함께 수행을 맡았던 이들 사이에 알력이 빚어졌다. 동승은 이들이 헌제의 신임에 기대어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므로, 몰래 조조와 결탁해서 그를 조정 중앙으로 끌어들인 뒤 한섬, 장양, 양봉을 내쳤다.

같은 해 8월에 그는 제후에 봉해졌다가, 199년에는 거기장군에 임명되었다. 이후 그는 조조가 조정에서 점차 권세를 강화시켜가는 정세를 걱정하다가 왕자복, 충집, 오석, 오자란, 유비[4]을 끌어들여 힘을 모아 조조를 제거하려고 했다. 그러나 200년 정월에 계획이 발각되어 유비를 제외한 모든 관련자들이 처형당했으며, 당시 임신 중이던 동귀비도 예외없이 처형되었다.

2.2 평가

정사에 따르면 출신상으로는 그는 이각, 곽사처럼 동탁의 수하였다. 결국 그들과 등을 돌려 낙양으로 어가를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동료들과 마찰을 빚거나, 개인적인 감정이 앞서 헌제를 몇차례 위기에 빠뜨리는 원인을 여러번 제공하였다.[5] 그가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발각되어 처형당한 그의 마지막은 사실이지만, 배반의 동기가 결코 연의에서처럼 충심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 애초에 조조를 헌제에게 끌어들인 것도 동승이었다.[6]

2.3 연의

이런 논란이 될만한 동승의 행적을 나관중은 정반대로 미화하였다.

동승이 이민족이나 도적떼를 포섭하거나 지원을 요청한 사실은 모두 삭제했고[7], 헌제가 탄 배에 매달려 따라오려는 관리들의 손가락을 찍은 사람은 이락으로 왜곡하였다. 동승이 조조를 끌어들여 그 때까지 동료였던 한섬, 양봉 등을 내쳤다는 정사의 기록과는 달리 연의에서는 동승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한섬과 양봉이 조조에게 당할까봐 미리 피한 것으로 되어 있다.

더불어, 태의 길평과 공모하였으나 거사가 가노인 진경동이 밀고해서 발각되는 이야기와 같은 극적인 연출을 덧붙여 마등과 더불어 한황실의 충신으로 왜곡했다.

그는 삼국지연의의 수혜자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정도로 수혜를 많이 받았다.

2.4 미디어 믹스

삼국지평화에서는 황건적의 난에서 공을 세운 유비가 십상시로 인해 상을 받지 못하고 조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자 영제에게 주청을 해서 유비가 안희현 현위로 부임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장비원교, 최염 등을 죽이고 유비가 산적이 되자 영제에게 십상시를 죽이도록 하면서 그들을 사면할 수 있게 했다.

삼국지 12,13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능력치를 보여준다. 의리나 한실중시 스탯 등은 물론 높게 잡혔지만 인재로서의 쓰임새는 어디에도 특화된 구석이 없어서 그냥 애매한 무장.

삼국지 5에서는 60~70대의 능력치에 매력만 80을 딱 맞추어 그저그런 무장처럼 보이겠지만 189년 시나리오에서 만큼은 약소군주들의 희망같은 장수다. 기본적으로 조정(혹은 구하진 or 동탁)의 신하들이 높은 용명수치를 가지고 있어서 고위 장군이 될 수 있는데다 특기로 강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군데에 머물고 있어도 여러 곳을 수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50/55/70/69. 돌파, 기사, 배반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57/56/68/61/74에 특기는 5개(상업,일제,진정,반목,명사)인데 명사 빼곤 별 볼 일 없다. 동탁군으로 어차피 주로 쓰게 될텐데 매력이 74이고 동탁군이 전반적으로 매력이 바닥을 치는만큼 징병 특기를 넣어줬으면 좀 좋았겠지만. 사정상 동탁군에 주로 있게 되어서 그런지 의리가 의사가 아닌 중시이다. 궁합은 유비쪽에 가까운 편.

삼국지 12에서는 헌제가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쓴 밀조를 읽으며 분개하는 일러스트로 그려졌다. 능력치는 특기 상재말고 별 볼 일이 없다.

삼국전투기에서도 등장. 연의보다는 정사의 모습에 가까운 듯하다. 김풍의 옛 폐인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삼촌 폐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능력 하나 없이 욕심만 많은 백수 같은 이미지로 등장하여, 헌제가 낙양으로 올 때 갑툭튀해 이각, 곽사로부터 도망가려고 하고 한섬, 장제과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조조가 집권한 뒤로는 질투심에 빠져 사람들을 끌어보아 암살을 일으키려다 처형된다. 이때도 피노키오 꼭두각시 인형으로 패러디 된 헌제를 조종해서 밀서를 따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자기 이익만 노리는 추악한 간신으로 묘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1. 촉서 선주(유비)전의 배송지의 주석
  2. 후한서와 위서에는 좌현왕으로 나오지만, 실제 좌현왕은 어부라의 아들 유표였으므로 오기다.
  3. 연의에서는 이 역할을 위에 나온 흑산적 일파인 이락이 하게 된다. 아마도 연의에서 나오는 동승의 충신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잔인한 일을 하는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 듯.
  4. 연의에서는 마등도 포함.
  5. 사실 심배와 같은 경우도 주군인 원소원상에 대해선 충성했지만 시종 다른 동료들과 내분을 일으켰으니 꼭 동승의 불충에서 비롯한 일이라고 단정하기엔 약간 애매하다.
  6. 하지만 이는 조조가 헌제의 충직한 신하가 될 것이라는 오판을 해서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당시 이각과 곽사에게 추격받던 상황에서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강력한 군벌인 조조를 배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 이각과 곽사는 그 여포를 무찔렀을 정도로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은 결코 나쁘지 않았고,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원래는 동탁군이었으니 그 세력도 상당했다. 당시 강력한 군벌중 하나였던 원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하북은 너무 멀었으니 가깝고 강한 조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7. 다만 이각, 곽사의 횡포가 심하여 당장 헌제와 중신들이 죽게 생겼으니 백파적을 포섭한 일을 두고 뭐라하기는 힘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