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군트족

유럽의 역사
서로마 제국부르군트 왕국프랑크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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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게르만족의 한 일파.

413년에 지금의 남프랑스 지역에 부르군트 왕국을 건설했다. 세력은 별로 크지 못했고, 훈족에게 공격을 받아 왕인 군터가 사망하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는 훈족에게 군터 왕이 사망한 사건에 게르만족 전통 이야기인 지크프리트의 영웅담을 섞어서 지어졌다.

어쨌든 이 시기에 부르군트 왕국은 한 번 멸망하지만, 로마 제국의 약체화를 틈 타 지금의 사부아 지역에 작은 왕국을 재건한다. 국왕 군도바트의 치하에서 법령을 제정하고 다시 한 번 부흥하지만 이도 길지 않았고 534년, 샤를마뉴 시대에 프랑크 왕국에 의해 정복되었으며, 부르군트 왕국은 부르고뉴 공작령이 되어 프랑크 왕국이 쪼개진 후에도 프랑스에 복속된다. 하지만 이후로도 부르고뉴 지역은 강한 독립성을 유지하였다.

1.1 부르군트족의 부르군트 왕국

부르고뉴(Burgundy, Burourgogne)라는 이름은 동게르만 일파의 부르군트족(Burgundian)과 그들이 세운 부르군트 왕국에서 기원한다. 이들 부르군트족은 다른 여타 게르만족들과 같이 이주를 거듭하다 쇠락하가던 로마 제국을 맞딱드렸고, 5세기 쯤에는 라인 강 중하류 지역에 정착해 왕국을 세운다. 부르군트 왕국은 한때 로마를 따라 훈족에 맞서싸우다 왕이 전사하고 왕국이 멸망하는 역경을 겪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다른 게르만 왕국들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로마와 형식적인 동맹-신종 관계를 맺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로마 문물을 수용[1]하는 단계를 착실히 밟았다. 그러나 6세기 로마 총독 시아그리우스, 서고트 왕국, 인근의 프랑크 부족을 모두 격파하고 서유럽의 패권국으로 떠오른 프랑크 왕국 앞에 부르군트 왕국은 쉬운 상대에 불과했고 결국 534년 고도마르 왕 시기 프랑크 왕국을 나눠 다스리던 클로비스의 아들들의 침략을 받아 멸망한다.

1.2 프랑크족의 부르군디 왕국

이렇게 부르군트 왕국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허망하게 멸망했지만 그 이름만큼은 프랑크 왕국 시기에도 이어진다. 그러나 카롤링거 왕조 시기 샤를마뉴의 제국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손 강 이서 지역이 로타링기아[2]에 속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서프랑크 왕국으로 넘어가게 되고 이것이 부르고뉴 공국의 원류이다.

한편 나머지 지역은 고지 부르군트(상부르군트, 오늘날의 프랑슈콩테 지방과 스위스 서부)와 저지 부르군트(하부르군트, 프로방스 지방)으로 나뉘었다. 이 두 지역은 각자 왕국을 선언하여 카롤링거 왕조로부터 독립했는데, 고지 부르군디아의 왕 로돌프가 저지 부르군디아의 왕 위고를 이탈리아의 왕으로 인정하는 대신 위고는 로돌프를 양 부르군디아 연합 왕국의 왕으로 추대하여 933년 부르군디아의 연합 왕국이 형성되었다. 이 왕국은 수도가 아를이었으므로 '아를 왕국'이라고도 부른다. 이후 잦은 왕조 교체를 걷다 최종적으로 11세기 초 신성로마제국의 잘리어 왕조로 왕위가 넘어가게 된다.

부르군트족의 역사에 대해서는 이 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진짜 별일없는 부족인데 니벨룽겐의 노래에 수록된 덕분에 이름만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왕인 군터가 완전 찌질이로 묘사되거나, 취급은 영 좋지 않다.(...)

2 관련 문서

  1. 서고트 왕국과 같이 법전을 편찬하였다. 법전의 정식 명칭은 심플하게 부르군트법(Lex Burgundionum).
  2. 샤를마뉴의 장손 로타르의 왕국. 로렌(로트링겐)의 어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