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세구/한국

春復秋兮 花開葉落 봄 지나 가을 되니 피는 꽃 지는 잎이고
東復西兮 善養眞君 동에서 다시 서로 바꾸니 내 본성[1]을 잘 양생하리라.
今日途中 反觀此身 오늘 길 가는 도중 내 몸을 돌이키니
長空萬里 一片閑雲 머나먼 하늘의 한 조각 뜬 구름이로다.
(윤언이는 고려의 문신. 여진 정벌로 유명한 윤관의 아들이자 김부식의 정적. 이 시를 남기고 앉은 채로 죽었다고 한다.)

比因左目患 久矣不作詩 요즈음 오른쪽 눈이 아파서 오랫동안 시를 짓지 못했네
猶有右目存 云何迺如斯 그래도 왼쪽 눈이 남아 있는데 어째서 시를 짓지 못한단 말인가
君看一指傷 滿身苦難支 손가락 하나가 아파도 온 몸이 괴로워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安有目官慟 同類恬不隨 같은 유의 눈이 아픈데 어찌 같이 따라 아파하지 않겠는가
興復從何出 而事作詩爲 흥취가 다시 어디에서 나와서 시를 짓겠는가

이규보의 마지막 작품으로 전해진다. 동국이상국집에 의하면 이규보는 이 시를 1241년 8월 29일에 지었고, 그 해 9월 초2일에 세상을 떠났다.

操存省察兩加功 조존과 성찰[2] 두 일에 공력을 다 기울여
不負聖賢黃卷中 서책 속 성현 말씀을 저버리지 않았네
三十年來勤苦業 삼십 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온 공업
松亭一醉竟成空 송정 한 잔 술에 그만 허사가 되었구나.

다만 이 시는 정도전의 사세구가 아닐 가능성도 크다. 자세한 것은 정도전 항목 참고.

擊鼓催人命 북치는 소리 사람의 명을 재촉하는데
西風日欲斜 서풍에 해는 뉘엿뉘엿 지누나.
黃泉無一店 황천에는 주막 하나 없다 하던데
今夜宿誰家 오늘 밤은 뉘 집에서 묵고 갈꼬.

愛君如愛父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했고
憂國如憂家 나라를 내 집처럼 근심했네.
白日臨下土 하얀 해가 아랫세상을 굽어보니
昭昭照丹衷 붉은 충정을 밝게 비추리.

只知有國 나라가 있는 줄은 알았으나
不知有身 내 한 몸 있는 줄은 알지 못했네.

山無語杜宇啼啼 산은 말이 없는데 두견새는 울고 울며
杜宇啼啼山不答 두견새 울고 우는데 산은 대답이 없네
山雖無語意已足 산이 비록 말이 없으나 마음은 이미 족히 안듯 한데
淡月飛上梅杪白 어스름 달은 매화 끝 가지에 하얗게도 걸려 있구나

정확히는 사망 6일 전에 남긴 류성룡의 마지막 시이다.

千計萬思量 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은
紅爐一點雪 불 벌건 화로에 한 송이 흰 눈일세
泥牛水上行 진흙 소가 물 위로 걸어가는데
大地虛空裂 대지와 허공이 산산히 부서지더라

八十年前渠是我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였는데
八十年後我是渠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구나

四大假合 훍과 물, 불과 바람이 모여서 된 이 몸
今將返眞 이제 참된 나로 돌아가노라.
何用屑屑往來 무슨 까닭에 부질 없이 왔다 가면서
勞此幻軀 이 허깨비 같은 몸을 수고롭게 하리오
吾將入滅 나 이제 멸도에 드노라.

雨後晴光萬綠新 비 개인 뒤 맑은 빛에 온갖 초목이 새로운데
一堂長少是君臣 한 자리의 늙은이와 젊은이는 임금과 신하로다
花臺柳榭渾如畫 꽃 속의 대(臺)와 버들에 싸인 정자는 마치 그림 같은데
時有鶯聲喚主人 때때로 들리는 꾀꼬리 소리는 주인을 부르는구나.

효종이 승하하기 1개월 전 잔치에서 읊은 시. 효종의 부마 정재륜의 <한거만록>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를 읊고 효종은 주변 신하들에게 "9월 가을에 단풍이 오면 다시 부르겠다"고 하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뒷날 만날 것을 어찌 기약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시를 읊은지 1개월 후인 5월에 세상을 떴다. 죽기 직전에 남긴 시는 아니지만 분위기도 그렇고 전후 이야기로 보면 사세구로 따져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時來天地皆同力 때 오매 천지와 함께 힘썼지만
運去英雄下自謨 운이 다한 영웅은 꾀할 바 없도다.
愛民正義我無失 백성을 향한 정의에 내 잘못은 없으나
愛國丹心誰有知 나라 위한 충정을 그 누가 알아 주랴.

登樓遊自却行路 누각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잃고
可歎檀墟落木橫 낙목이 가로놓인 단군의 터전을 한탄하노라.
男子二七成何事 남자 스물 일곱에 이룬 것이 무엇인가
暫倚秋風感慨生 잠시 가을바람에 감회가 이는구나.

  • 매천 황현[3]

鳥獸哀鳴海岳嚬 나는 새와 들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니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 우리 세상 이미 잠기고 빠져버렸구나
秋燈掩卷懷千古 가을 등잔아래 책 덮고 흘러간 긴 역사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인간 세상의 글 아는 자 되기 정말로 어렵도다.

我生五百末 赤血滿腔腸
조선왕조 마지막에 세상에 나왔더니 붉은 피 끓어 올라 가슴에 차는구나.
中間十九歲 鬚髮老秋霜
19년 동안을 헤매다 보니 머리털 희어져 서릿발이 되었네.
國亡淚末己 親沒痛更張
나라 잃고 흘린 눈물 마르지도 않았는데 어버이마저 가시니 슬픈 마음 더더욱 섧다.
獨立故山碧 百計無一方
홀로 고향 산에 우뚝 서서 아무리 생각해도 묘책이 가히 없다.
欲觀萬里海 七日當復陽
저 멀리 바닷길 보고파 했더니 7일 만에 햇살이 돋아오네.
白白千丈水 足吾一身藏
천길 만길 저 물속에 뛰어들면 내 한 몸 파묻기 꼭 알맞겠네.

五十年來判死心 臨難豈有苟求心
오십 평생 죽기를 다짐했던 이 마음, 국난을 당하여 어찌 살 마음을 먹으리
盟師再出終難復 地下猶餘冒劍心
다시 군사를 일으켰지만 끝내 나라를 찾지 못하니, 지하에도 남아 있을 칼날 같은 이 마음.

斷頭臺上 猶在春風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부는구나
有身無國 壹無感想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難復生此世上 幸得爲男子身
다시 태어나기 힘든 이 세상, 다행히 장부의 몸을 얻었건만
無一事成功去 靑山嘲綠水嚬
이룬 것 하나 없이 저 세상 가려하니 청산이 조롱하고 녹수가 비웃는 구나.

母葬未成 君讐未復
어머님 장례 마치지 못하고, 임금의 원수도 갚지 못했네.
國土未復 死何面目
나라의 땅도 찾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저승에 가나.

文明日月此江山 忽入腥塵암애間
해같이 발고 달같이 밝던 이 강산, 홀연히 성진에 덮여 앞이 캄캄한데
未覩一晴歸地下 千秋化碧血痕班
미처 맑은 날 맞아 못한 채 지하로 돌아가니 멍든 피 푸르러 천 년은 가리.

  1. 원문은 '善養眞君'인데 '조물주를 잘 봉양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2. 조존성찰(操存省察)은 성리학에서 흩어지는 마음을 붙잡고 자신을 깊이 반성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3. 구한말의 유명한 기록물 중의 하나인 매천야록의 그 황현선생. 한일 강제병합이 되자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원래 절명시는 총 4수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제 3수를 싣는다.
  4. 순국하기 1년 전에 쓴 것이지만 절명시로 취급된다.
  5. 두 시 중에 아래에 있는 시는 사형당하기 하루 전에 쓴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