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奎報
1168~1241
1 일생
고려의 문신으로 어려서부터 시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영웅서사시 동명왕편 등을 썼으며 벼슬에 임명될때마다 즉흥시를 쓰기로 유명했다. 한때 권신의 압객이란 말도 들었다.
그가 활약을 하던 고려 중기는 하필이면 무신정권 기간이었다. 그도 벼슬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최충헌(진강후)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고 한다. 기개가 있고 성격이 강직해 "인중룡"이란 평도 있었다.
본래의 이름은 인저(仁氐)였다. 부친은 이미 호부 낭중을 역임한 중앙 관료였다. 초년기에는 제법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인데 어렸을 적부터 시문에 뛰어나 수재 소리를 듣고 자랐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좀 약했는지 과거 시험에 3번이나 떨어진 경력이 있다. 본인도 공부를 잘 안 했다는 걸 인정했는지 이 때는 술 때문에 시험 망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게으른 천재? 이렇게 적으면 n수생 이미지일듯 한데 이규보는 15세, 18세, 20세 때 과거를 치렀다. 질풍노도의 시기여서 그랬나?
그러다가 4번째(22세 때)로 과거를 보게 되었는데 시험 전날 꿈에서 문장을 관장하는 별인 규성(奎星)의 화신이 나타나서 "너님 합격요"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결국 그 과거에서 규성의 말대로 장원으로 합격했는데, 이후 '규성이 결과를 알려준 은혜를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규보(奎報)'로 바꾸었다고 한다.
진사 시험에 합격하긴 했는데 합격자들 사이의 석차가 꼴찌였다.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했는지 합격을 취소하려고 했다가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했고 전례도 없었기 때문에 취소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합격을 해서 당시 축하파티를 벌였는데 이규보가 이 자리에서 "아오. 내가 지금은 꼴찌지만 나중에 혹시 문생들 양성할 사람이 될지 어찌 암?"이라고 주사를 부려 손님들이 비웃었다는 일화가 있다.
명종 말년에 자기 스스로 이력서 추천서를 써서 재상들에게 보냈고 재상들 역시 이규보를 명종에게 추천했으나 이규보를 싫어했던 사람이 있어서 등용되지 못했고, 이후 몇 년 간 저술활동을 하다가 32세 때 전주의 하급 관리로 임명되어 간신히 벼슬을 얻었는데 이번에는 1년 3개월만에 교체되었다. 상관이 재물을 탐하는 것에 대해 굽히지 않고 간언하다가 높으신 분들 눈밖에 나버렸다고.
또 그렇게 30대를 보냈다. 이규보 본인이 문집에서 밝힌 바로는 30대에 이미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그 사이 경상도 지역에서 농민 반란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아직 임관되지 못한 사람 중에서 종군 문관을 뽑으려고 했는데 이규보는 여기 자원해서 약 1년 정도 반란 토벌군에서 종군했다. 정식 직함은 '병마녹사 겸 수제'. 그런데 반란군 토벌 후 돌아온 뒤에 다른 사람들은 다 논공행상으로 벼슬이나 포상을 받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규보만 이걸 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걸 보다 못한 관리들이 왕에게 추천하여 직한림원에 임명되긴 했는데 그나마도 비정규직 임시직. 이쯤 되면 참 안습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헌이 이규보에게 문장을 적게 했는데 이규보는 특유의 문장력으로 최충헌을 감탄시켰고 최충헌은 이규보의 한림원 벼슬을 정규직으로 돌려 주었고 이후로도 최충헌의 초청을 받아 문장을 지어 그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로도 벼슬은 계속 승진하여 마침내 그가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여몽전쟁기에 고려의 조정을 총괄하는 재상직에 올랐다. 재능에 비해 비교적 늦게 출세한 대기만성형 인물. 다만 그러다보니 최우의 강화도 천도를 찬성하는 등 문제 많은 "최비어천가" 행보를 보였다. 잠깐 용비어천가는 훨씬 후대의 작품이잖아
야사에 따르면 어릴 때 피부병을 앓았다가 미신만 믿고 방치해서 죽을 위기에 놓였었는데, 나중에 겨우 약을 쓰고 나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문학적, 현실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어 교과서에 그의 작품이 자주 실린다. 특히나 '토실을 허물어 버린 설'은 따뜻하자고 만든 온실을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라며 화를 내며 허물어 버리라고 한 내용을 통해 자연에 역행하는 현재의 인간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득권으로서 오만한 면이라는 평도 만만치 않다. 아래사람 편한 꼴을 못보는 개꼰대 단 이것은 이규보 개인의 성향이었지, 그의 경우를 유학자 전반에 소급하는 것은 적절히지 않다. 애초에 '실학'을 비롯한 당대의 과학기술 개발과 보급의 주도자들 또한 유학자들이었다. 게다가 이규보는 후대 유학자들에게도 그 문장력으로 유명하지, 성품 면에서 특별히 높은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실제 행적상으로는 오히려 권력에 아부하며 부화뇌동하였던 사람이다.
앞서도 언급되었지만, 이규보는 문인으로서는 현실을 다룬 이야기가 많다. 자신도 그렇고, 문학세계도 그렇다.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限' 이규보가 과거에 낙방하고 있을 때에, 집 문에 이 글귀를 붙였다. 왕(대부분은 명종이 언급된다)이 암행을 나갔을 때, 이 글을 보고 그 뜻을 알 수 없어서 주변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노래를 잘 부르는 꾀꼬리에게 까마귀가 찾아와서 두루미를 심판으로 노래 대결을 하자고 청했다. 꾀꼬리는 쾌히 승락하고 3일간 노래 연습을 했는데, 까마귀는 노래는 부르지 않고 논밭을 뒤지면서 개구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잡은 개구리 3마리를 두루미에게 주었다. 3일 후, 노래 대결을 하자 두루미는 승자를 라는 것이다. 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과거를 열면서 '유아무와 인생지한'을 시제로 내걸어서 이규보가 장원을 했다. |
라는 일화가 떠돌고 있다. 물론 이건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재미있는 것은 두루미, 혹은 학이 악역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시가 하나 더 있다. 이건 이규보의 시가 확실하다.
蓼花白鷺 | 요화백로 | 여귀꽃과 백로 |
前灘魚富蝦 | 전탄부어하 | 앞 개울에 물고기와 새우가 많아서 |
有意劈波入 | 유의벽파입 | 물 가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
見人忽驚起 | 견인홀경기 | 사람을 보고 문득 놀라 |
蓼岸還飛集 | 요안환비집 | 여뀌꽃 언덕에 다시 날아와 모였다네 |
翹頸待人歸 | 교경대인귀 | 목을 빼고 사람 돌아가기를 기다리느라 |
細雨毛衣濕 | 세우모의습 | 가랑비에 날개 깃은 젖어가고 |
心有在灘魚 | 심유재탄어 | 마음은 오직 개울 물고기에 있건만 |
人道忘機立 | 인도망기립 | 사람들은 속세의 욕심을 잊고 서 있다고 하네 |
뭐랄까 여러모로 후대의 윤치호와 많이 닮아있다. 정철까지는 아니고
이규보와 관련된 일화 하나 더. 무신정권기에 이에 낙심한 문인들인 이인로 등이 죽림고회라고 해서 술 마시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해좌칠현 혹은 대놓고 죽림칠현이라고 불렸는데, 이규보는 이들중 오세재와 인연이 깊어서 같이 드나들었다. 그런데 오세재는 가난 때문에 경주에 머무르다가 가장 빨리 죽었다. 때문에 이규보에게 가입하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규보는 혜강이 죽은 이후에 죽림칠현에 누가 가입했다는 소리는 못들어봤다고 하면서, 누군가 왕융 같은 이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가 했다고 한다. 이 글이 바로 이규보의 '칠현설'이다.
백운거사(白雲居士)라는 호가 있고 그 외에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바로 술, 시, 거문고를 좋아한다는 의미이다. 당대의 문장가이자 풍류인다운 면모. 이 사람의 문집이 바로 <동국이상국집>으로 아래에 열거된 작품들은 모두 이 책에 들어 있다.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된 이규보의 시는 무려 2천여 수에 이른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이규보/이규보.png |
징기스칸 4 일러스트 |
일본에서도 유명한지 코에이의 푸른 늑대와 흰 사슴 시리즈에서도 고려의 문신으로 계속 등장한다. 징기스칸 4의 경우 지모가 상당히 높게 잡혀있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를 빼온다던가 하는데 유리하다. 그런데 일본판에서는 지모가 74. 한글판에서는 85로 한글판에서 능력치가 상향되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지모가 74라도 쓸만하다. 여담이지만 이사람도 고증오류가 있는데. 출생년도가 문제인데. 원래 출생년도가 1168인데. 여기선 1178로 나온다.
심지어 도쿄대학 99년도 입시 국어(한문편)에서 그의 '동국이상국집'이 출제되기까지 했다!!!(99년)
2 작품들
- 국선생전 : 고려시대 유행하던 산문문학 중 하나인 가전체로 쓰여진 소설. 술을 의인화하여 주인공으로 삼았다.
- 동명왕편(동명성왕 신화를 읊은 영웅 서사 한시)
- 슬견설 : 이와 개의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손님과 논쟁을 한 것을 적은 수필. 오늘날에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며 동물학대 또는 개고기 관련 소식이 뜨면 자주 인용이 되는 글이다.
- 칠현설 : 젊은 시절에 이인로가 포함된 죽림칠현의 모임에 갔다가 깽판친 이야기.
- 영중정월: 5언절구. 해를 품은 달에 나와서 많은 이들에게 인식된 시.
詠中井月 | 영중정월 | 우물 속 달을 읊다 |
山僧貪月色 | 산승탐월색 | 산사의 승려가 달빛을 탐하여 |
幷汲一甁中 | 병급일병중 | 병 속에 물과 함께 담아가네 |
到寺方應覺 | 도사방응각 | 절에 도착하면 비로소 깨달으리 |
甁傾月亦空 | 병경월역공 | 병을 기울이면 달 또한 빈 것을 |
牡丹含露眞珠顆 | 모란함로진주과 | 모란꽃 이슬 머금어 진주 같으니 |
美人折得窓前過 | 미인절득창전과 | 신부가 (모란을) 꺾어 들고 창 앞을 지나다 |
含笑問檀郞 | 함소문단랑 | 웃음을 머금고 신랑에게 묻기를 |
花强妾貌强 | 화강첩모강 | "꽃이 더 낫나요 제 모습이 더 낫나요" |
檀郞故相戱 | 단랑고상희 | 신랑이 일부러 장난치느라 |
强道花枝好 | 강도화지호 | "꽃가지의 아름다움이 더 낫구려" |
美人妬花勝 | 미인투화승 | 신부는 꽃이 더 낫다는 것을 질투해서 |
踏破花枝道 | 답파화지도 | 꽃가지를 밟아 짓뭉개며 말하기를 |
花若勝於妾 | 화약승어첩 | "만약 꽃이 저보다 낫다시면 |
今宵花同宿 | 금소화동숙 | 오늘밤은 꽃과 함께 주무세요" |
- 청강사자현부전
- 토실을 허물어 버린 설(=괴토실설, 壞土室說)
- 이옥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