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실의 사해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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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상의 큰 발견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 사해문서를 복구하기 위해 독일을 중심으로 한 화석 복원 등의 기술이 서적 등 문서 복구에 응용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많은 문서들과 고고학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벽화 등이 복원되고 있다. 여러가지로 역사적, 학술적 의미가 많은 인류의 재산이라 할 수 있다.
1947년 2월 ,이스라엘의 유명한 소금호수 사해 주변에서 발견된 히브리어 성경이다. 아마도 에세네 일파의 수도승이 당시 판을 쳤다고 생각되는 도적떼의 손으로부터 문서를 보호하기 위하여, 특별히 맞춰진 가죽상자나 점토항아리에 자신들이 기록한 글들과 성경의 사본을 사해주변에 위치한 사암 동굴들에 숨겼는데, 먼 훗날 베두인족 목동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서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졌다. 고대어를 읽을 줄 몰랐던 목동은 양피지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므로 두루마리 중 3개를 한 골동품상에게 헐값에 넘겼다. 그외의 두루마리 중, 5개를 예루살렘의 시리아 정교회 대주교 마르 아타나시우스 사무엘이 샀으며, 나머지 3개는 그 해 11월24일 유명한 성서학자인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 고고학과장 E.수케닉 교수가 매수하였다. 당시 예루살렘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아랍인 구역인 구 예루살렘과 유태인 구역인 신 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수케닉 교수는 철조망 너머로 아랍인 골동상인이 보여주는 두루마리를 보고 눈이 번쩍 뜨여서 목숨을 걸고 철조망을 넘어가서 그 두루마리들을 구입했다. 그뒤 1954년에 수케닉의 아들 Y.야딘이 25만 달러를 지불하고 사무엘 대주교로부터 5개의 두루마리도 사들여 현재는 이들 두루마리 전부가 이스라엘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그 뒤로 고대문서가 발견된 주변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탐사와 발굴 그리고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총 11개 동굴에서 100여 개 이상의 문서나 문서 파편 그리고 단편 등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문서들은 해외 반출의 문제나 이득을 노린 고문서 사냥꾼들의 무분별한 매각 행위 등으로 인하여 뿔뿔이 흩어졌고, 때문에 이것들을 찾아내고 다시 매수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사해문서에는 내용이 작성되던 당시의 시대상과 더불어 유대인들의 가치관 그리고 신앙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이 담겨있으며, 유일신을 가리켜 일관되게 Elohim으로 칭한다.[1]
사해문서의 작성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발견 당시에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가 작성했을 것이라고 여기는 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과학적 기술과 고고학에는 지대한 발전이 있어 왔으므로, 덕분에 발견당시보다 더욱 더 다양한 과학적 분석과 연구가 가능해졌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많은 반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반론들 중 하나는 에세나파 외에 제록스 파가 작성했다는 설이며, 또 다른 반론은 유대교의 한 종파가 아닌 여러 학파가 제작했다는 설이다. 나아가, 사해문서를 동굴에 보관한 이유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논란이 많다.
사해문서의 작성시기는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세기 경으로 생각되는데, 이 사백년이 흐르는 동안에는 이런 저런 큰 사건들이 많았다. 유대교의 여러 종파들간의 불화로 인하여 종교적 박해가 심했고, 때문에 이로 인하여 갈라져 나온 분파들이 자신들의 구원을 신에게 빌며 사해문서를 동굴에 보관했다는 설이 있다. 반면에, 120년간 로마의 통치를 받던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로마군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무력진압한 사건 당시에 일부의 유대교인들이 예루살렘 땅밑의 수로를 통해서 외부로 몰래 빠져나왔는데, 그들이 함께 가져온 사해문서를 임시로 동굴에 보관했다는 설 역시 있다. 더불어 이 당시 최후의 격전지였던 마사다에서도 사해문서와 같은 종류의 문서들이 발견되었기에 이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 설명한대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갔기 때문에 문서의 전반적인 보존상태는 아쉽게도 양호하지 못하다. 문서들중 일부분은 단지 몇 글자 혹은 몇 문장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거나 파편화되었다. 그러므로, 영문 위키의 문서 총목록들을 봐도 '미확인(unidentified)' 이나 '미분류(unclassified)' 로 분류된 문서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신학자들이나 고고학자 그리고 언어학자들 사이에는 이에 대한 해석이나 보족의 옳고 그름 여부를 따지는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가톨릭이나 개신교, 혹은 유대교는 문서의 상당 부분을 왜곡해 해석하거나, 누군가가 문서의 일부분을 임의로 몰래 파기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했다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마이클 베이전트와 리처드 레이가 공저한 '사해사본의 진실' 이라는 책은 이 음모론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국내에 간행되었다. 음모론 까지는 아니더라도, 성경 관련 논쟁에서 흔히 대두되는 외경이나 위경의 분류 문제, 영지주의의 현대적 수용 같은 풀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 관련이 있어서 앞으로의 연구나 논쟁이 주목된다.
현재 가톨릭 교회서만 인정하는 2경전의집회서(시라서), 토빗기 등의 히브리어 사본이 별견되었다. 그리고 개신교 가톨릭 모두 위경으로 치는 문서도 히브리어 원문이 발견 되었다.
2003년 가을즈음 한국내에는 총 3권으로 구성된 번역서가 정발 되었다.
2011년에 이스라엘 국립박물관에서 홈페이지에 원본 이미지와 해설 등을 공개하였다.
2016년 9월 21에 미국 켄터키 대학의 컴퓨터 과학자들이 탄화된 문서를 컴퓨터로 복원하였고, 그 내용은 레위기의 첫 두 장으로 알려젔다.
대항해시대 3에서는 사해사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성분묘 교회를 발견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전투시에 낙뢰를 쓰는 '심판'이라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며, 게임 내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전투인 북경 공략 등에 필수적인 아이템이기 때문에 반드시 얻어야 한다.. 또한 사해사본을 해독하면 바벨탑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2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사해문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예언서 비슷한 것.
이카리 유이와 동급인 만악의 근원.
제레가 실행하는 시나리오의 기반이며 이카리 겐도나 후유츠키 코조는 이 문서에 사도의 출현과 서드 임팩트에 대한 예언이 적혀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사해문서에 언급되지 않은 일도 간혹 벌어진다고 한다. 게임 신세기 에반게리온 2에서는 제1시조 민족이 작성한 생명의 씨앗과 롱기누스의 창의 사용법에 대해 적혀있다고 언급된다.
작중에 언급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제레가 보유한 사해문서는 제1시조민족이 남긴 것을 종교집단이 자신들의 교리에 맞춰 옮겨적은 것이며, 이면의 사해문서라 불린다. 현실의 사해문서는 이 원본 사해문서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만 골라 공개한 것이라고 한다.
신극장판에서도 제레의 중요 시나리오로 부각되는데, 여기서 에반게리온 6호기를 두고 사해문서의 알려지지 않은 외전이 언급된다. 이전 TV판의 설정을 적용해서 보면 아마 이면의 사해문서 중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부분인 듯. 그리고 나기사 카오루는 이 사해문서를 가리켜 태고적부터 전해져온 절멸 프로그램이라고 표현한다.
여담이지만, 2007년 12월 ~ 2008년 6월에 걸쳐 항목 1의 사해문서가 전쟁기념관에서 전시회를 가진 적이 있다. 이 때 성질 급한 몇몇 에바 덕후들이 설레면서 달려가 15,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갔다가 낚였다는 후문이 있다 카더라. 당연하지만 항목 1에서 종말론적 이미지만 떠 왔을 뿐, 실제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에반게리온 내부의 설정을 적용해서 본다고 해봤자 이건 이면의 사해문서도 아니니 그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