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중국 슈퍼 리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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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 (Guizhou) | 광저우 푸리 (Guangzhou R&F) | 광저우 헝다 (Guangzhou Evergrande) | 랴오닝 (Liaon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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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Beijing) | 산둥 (Shandong) | 상하이 상강 (Shanghai SIPG) | 상하이 선화 (Shanghai Shenhu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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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 (Yanbian) | 장쑤 (Jiangsu) | 창춘 (Changchun) | 충칭 (Chongq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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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진 취안젠 (Tianjin Quanjian) | 톈진 터다 (Tianjin Teda) | 허난 (Henan) | 허베이 (Hebei) |
상하이 뤼디 선화 | |
Shanghai Greenland Shenhua | |
정식명칭 | 上海绿地申花足球俱乐部 Shanghai Greenland Shenhua Football Club |
구단형태 | 기업구단 |
소속리그 | 중국 슈퍼 리그 |
창단연도 | 1993년 |
연고지 | 상하이 |
홈구장 | 훙커우 축구 경기장 (35,000명 수용) |
구단주 | 저우쑨 |
감독 | 그레고리오 만사노 |
애칭 | 蓝魔 (푸른 악마) |
공식 홈페이지 | [1] |
목차
1 개요
상하이 뤼디 선화(上海绿地申花足球俱乐部)는 중국 슈퍼리그에 소속한 프로축구클럽이다.
2 초창기 1960~1970년대
1951년 1부리그에 참가해 준우승을 거뒀으며 1953년, 1954년 연속 3위를 거두었다. 1955년 6위로 잠깐 떨어지기도 했으나 1956년 다시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팀창단 최초로 FA컵 우승을 했다. 1957년 8위를 차지했고 1958년 7위를 기록하면서 잠시 중위권에 머물렀지만 1960년 3위를 기록하고 1961년 팀창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다. 1962년도에도 우승을 하면서 2연속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1963년 11위로 곤두박질 치다가 1964년 준우승을 하면서 다시 부활하나 싶었지만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에 모든 문화, 예술활동이 금지되고 선수, 감독은 숙청당하는 비운에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9년이라는 긴시간이 지난 1973년 리그참여가 허용되고 당해 상하이는 다시 리그에 참여해 준우승을 거두며 좋은 출발을 알린다. 1976년에도 조별리그 2위를 차지하면서 그저 그런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3 암흑기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
그러나 1977년 부터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1부리그에서 12위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하더나 1978년 10위를 기록 하면서 하위권에 맴돌다가 1979년 9위로 잠시 중위권에 있나 싶더니 1980년 13위로 2부리그 강등을 당하게 된다. 1981년 2부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여 다시 1부리그로 승격되었다.
4 1980년~1990년대
1982년 1부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였고 1983년 3위를 기록하고 1984년 4위 1985년 6위를 1986년 5위를 기록하면서 중상위권 클럽으로 자리 매김 한다. 1987년 3위를 차지하였으나 1988년 6위로 잠시 떨어지더니 1989년 다시 3위를 차지한다.
1990년 4위를 기록하고 1991년 18년만에 1부리그 준우승을 기록한다. 그러나 1992년 5위를 기록하고 1993년 7위를 기록하면서 중위권을 뒤쳐지게 된다. 1993년 상하이는 상하이 지역회사 선화 그룹이 팀을 인수, 창단 선언을 하면서 지아 A리그에 참가하게 된다.
5 콩라인 지아 A리그
1994년 지아 A리그 원년에는 3위를 기록하면서 다시 상위권으로 도약했고 1995년 슈퍼컵 우승을 기록하고 라이벌 베이징 궈안을 승점 4점차로 따돌리고 팀창단 첫 우승을 차지한다. 1996년 다롄 스더에게 승점 7점차로 우승을 내줘 준우승을 기록하고 1997년에도 다롄 스더에게 11점차로 우승을 내줘 2연속 준우승을 차지한다. 1998년에는 다롄을 슈퍼컵에서 복수하면서 우승했으나 다롄 스더가 19승 5무 2패 승점 승점 62점을 기록하고 상하이 선화는 11승 12무 3패 승점 45점을 기록하면서 승점 17점 차로 다롄스더 에게 우승을 내주게 되고 3연속 준우승을 차지하자 선화 팬들은 다롄에게 한지 맺히기 시작했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FA컵을 우승했다는게 유일한 위안거리다. 그러다 1999년에는 5위로 떨어지게 되고 2000년에 다시 우승권으로 다롄 스더와 경쟁하게 되었으나 다롄에게 승점 6점 차이로 우승을 내주게 된다. 2001년에도 다롄에게 5점 차이로 우승을 내주게 준우승만 5번을 기록하게 되 지아A리그 출범이후 최다 준우승팀이 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슈퍼컵에서는 다롄을 상대로 3:1로 복수하면서 슈퍼컵 3번쨰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 부터 상하이와 다롄간 경기가 열리면 서포터즈간에 폭력사태는 기본이고 무장한 중국 인민해방군이 주둔 할정도로 치열한 더비매치를 형성하게 된다.
2002년에는 11위로 미끄러지게 돼서 감독을 경질하고 드디어 2003년 8년만에 2번째 우승을 차지했으나 이후 승부조작 때문에 취소가 되었다.
6 중국 슈퍼리그
2004년 슈퍼리그 원년에는 10위를 기록하면서 하위권으로 미끄러지나 했지만 2005년 다시 우승권 경쟁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다롄 스더 강세 떄문에 승점 12점 차로 다롄에게 우승을 내줬다. 2006년 산둥 루넝 22승 3무 3패 승점 69점을 기록하면서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되지만 상하이는 14승 10무 4패 승점 52점을 기록하면서 17점 승점 차이(!)로 우승을 내주게 된다. 베이징, 다롄과 더불어 산둥까지도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2007년 4위를 기록하면서 잠시 주춤하다가 2008년 산둥 루넝, 베이징 궈안과 다시한번 우승경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2점 차이로 산둥 루넝에게 우승을 내줄수 밖에 없었고 상하이 팬들은 산둥 루넝, 다롄 스더 말만 들어도 한이 맺히고 원통할 정도를 뛰어넘어 죽이고 싶을정도로에 감정을 지니게 된다. 2009년 5위를 기록했지만 라이벌 베이징 궈안이 우승하는걸 지켜봐야 했으며 팬들은 베이징 궈안에 우승을 지켜보며 울화통을 터트린다.
하지만 2010년도에 들어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며 니콜라 아넬카와 디디에 드록바 등 대형 영입을 연속적으로 이루어냈고, 2010년 3위를 기록하면서 다시 상위권에 드나 싶었지만 2011년 11위 2012년 9위로 떨어지면서 중하위권 팀으로 추락하게 된다. 한가지 위안이라면 그동안 상하이를 괴롭혔던 다롄 스더가 해체되 공중 분해된게 유일한 위안거리 였다. 2013년에는 8위를 기록하면서 시즌을 마감한다.
7 라이벌
원래 상하이 선화의 최대라이벌은 베이징 궈안이 아닌 다롄 스더였다. 1996년부터 시작해서 다롄과 힘겨운 우승경쟁을 펼쳐야 했으며 어쩔때는 다롄에게 승점 10점 이상으로 우승을 내줄정도로 다롄에게 열세를 보여왔다. 1996, 1997, 1998 3연속 준우승 할때도 다롄이 있었고 2000, 2001년 2연속 준우승 할때도 다롄에게 우승을 내줘 상하이 팬들은 다롄에게 분노와 열등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경기 시작하기 전부터 살벌한 분위기는 기본이고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가 주둔했지만 그걸로도 모잘라 중국 인민해방군이 주둔할정도로 과격하고 폭력이 오가는 더비 매치를 형성했다. 그러다가 2012년 다롄이 공중분해되고 지역 라이벌팀에 합병되자 상하이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는데..... 1년뒤 다롄 스더 서포터들과 시민들이 나서서 기업을 유치하고 다롄 차오유에라는 이름으로 재창단하고 을급리그에 참여했다. 그리고 2년뒤 갑급리그행. 이제 이 팀이 올라올날도 얼마 안남았다. 에이 씨. 좋다 말았네.
다른 라이벌로는 베이징 궈안인데 베이징 궈안과 상하이 선화는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의 중심적인 도시로서 서로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두 도시는 축구에서도 열띤 경쟁을 벌인다. 경기가 시작하기전 살벌한 분위기는 물론이고 심지어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중국 인민해방군이 주둔한적도 있을정도로 과격하고 흉폭할 정도의 응원들이 오가고 폭력이 난무한다. 상하이 선화는 베이징 궈안을 상대로 11승 8무 9패로 약간 우위에 서있다.
2008년 상하이는 원정에서 베이징에게 2:0으로 이겼으나 홈에서는 1:1로 비겼다. 2009년에는 상하이는 원정에서 0:0 홈에서 1:1로 승부를 둘다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2010년 상하이는 베이징 원정에서 1:4로 크게 패했으나 홈에서는 상하이가 베이징 3:2로 이기면서 사이좋게 1승 1패를 기록하게 된다. 2011년에는 상하이는 원정에서 0:3 대패를 했으나 역시 상하이도 베이징 상대로 자기 홈에서 1:0으로 복수하면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2012년도에도 상하이는 원정에서 2:3로 패했으나 홈에서 베이징 상대로 3:1로 이기면서 베이징과 상하이는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정도로 치열한 승부를 펼치고 있다.
2013년 베이징 궈안과 전적은 15승 11무 12패로 베이징상대로 약간 우세에 있다.
최근에는 상하이 상강이 라이벌로 떠오르고있다. 원래 상하이 선화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클럽이란 자부심으로 똘똘뭉친 구단인데 상하이 상강이 슈퍼 리그로 승격한 뒤로 막대한 투자를 퍼부으며 선화보다 순위가 높게 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선화팬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상하이 상강 경기때마다 상대팀 서포터에 합류하며 상강 디스질을 하고있다. 결국 상강의 2016 AFC 챔피언스리그 감바 오사카 원정에서 "상하이를 대표하는 클럽은 선화뿐이다"라는 현수막을 그것도 상강 원정팬들 좌석 바로 앞에(...) 걸어놨다가[1] 분노한 상강팬들과 난투극까지 벌어졌다. 주먹다짐으로 이어진 오사카발 상하이 더비
두 팀의 팬층은 미묘하게 다른데, 상강은 신흥 부호들과 유럽 축구에 눈을 뜬 젊은 팬들이 많은 반면 선화는 순수 상하이 거주민과 나이가 있는 중국 골수 축구팬 중심이다.
상하이 선신과도 지역더비관계이긴 하지만 상하이 선신이 원래 다른데에서 연고이전해서 온 경우라 그렇게까지 원수관계는 아니다. 그리고 선신의 2부리그 강등으로 당분간 선화-선신 경기는 개점휴업상태라서 언제 다시 열릴지는 모른다.
8 AFC 챔피언스 리그
1995년 지아 A리그 우승자격으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쉽에 참가 했다. 1라운드 홍콩 인스턴트 딕트를 상대로 13:0 대승을 거두었으나 2라운드 당시 천안을 연고로 하던 성남 일화 천마를 상대로 0:1 패배를 당하면서 탈락 했다.
아시안 클럽 챔피언쉽 02-03시즌 2라운드 인도네시아 페트로키미아 푸트라를 상대로 1차전 1:3으로 패배했으나 2차전 5:1로 이기면서 3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3라운드에서 싱가포르 게일랑 유나이티드 FC를 1차전 3:0, 2차전 2:1로 이기면서 통합 5:1로 조별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조빌리그에서는 대전 시티즌, BEC 테로 사사나, 가시마 앤틀러스와 속하게 되는데 1차전 대전 시티즌에게 2:1로 패배했으나 2차전 가시마 상대로 혈투끝에 4:3으로 이기면서 4강 진출에 희망을 이어갔으나 3차전 BEC 테로 사사나에게 2:1로 패해 1승2패 조3위로 대회를 마치게 된다.
2004년 AFC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해 E조 전북 현대 모터스, BEC 테로 사사나, 주빌로 이와타와 속하게 되었는데 1차전 BEC 테로 사사나에게 1:4로 대패하고 2차전 전북에게 0:1로 패하고 3차전 주빌로 이와타에게 1:2로 패하면서 승점 셔틀 역할을 하나 싶었지만 4차전 주빌로 이와타를 3:2로 꺾고 5차전 BEC 테로 사사나를 1:0, 6차전 전북 현대 상대로 1:0으로 이기면서 3승3패 조 3위로 대회를 마쳤다.
2006년 G조에 속해 부리람, 페르시푸라 자야푸라, 베트남 동텀 롱안과 속했으나 부리람과 페리시푸라가 선수 등록기한을 지키지 않아 실격처리돠 동텀 롱안과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1차전 홈에서 3:1로 승리했고 2차전 원정에서는 4:2로 승리하면서 가볍게 2승을 기록 팀 창단 처음으로 8강에 올라갔다.
8강에서는 전북 현대 모터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1차전 홈에서 1:0 승리를 거두었고 2차전 원정에서 전반 35분 선제골을 넣으면서 기분좋게 4강에 올라가나 싶었지만 전반 44분 추격골을 내주고 후반 15분 역전골 24분 추가 실점을 내주며 3:2로 골득실로 인해 순식간에 탈락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후반 33분 또다시 추가실점을 내줘 경기가 4:2로 달아나게 되자 다급한 상하이는 전북을 계속 공격해 후반 45분 추격골을 만들어 냈지만 추가 득점에 실패해 1, 2차전 통합 3:4로 전북에게 4강을 넘겨주게 된다.
2007년 준우승 자격으로 E조에 시드니 FC, 페르식 케디리,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속하게 돠었다. 1차전 시드니에게 1:2로 패배하고 2차전 페르식 케디리에게 0:1로 패배 3차전 우라와에게 0:1로 패배 3년전과 같은 3연패를 기록했지만 4차전 우라와 상대로 0:0 무승무를 기록했고 5차전 시드니 상대로 0:0무승부 6차전 페르식 케리리 상대로 6:0대승을 거두며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었지만 1승2무3패를 기록해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다.
2009년 준우승 자격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해 G조에 속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가시마 앤틀러스, 싱가포르 암드포스와 속하게 되었다. 1차전 암드포스를 4:1로 누르면서 기분좋게 출발했으나 2차전 가시마에게 2:0으로 패배했으나 3차전 수원 상대로 2:1으로 승리하면서 시즌중반 2승1패를 기록 나쁘지 않는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4차전 수원 원정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1:2로 역전패를 당하게 되고 암드포스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는등 영 좋지않는 성적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가시마 전도 선제골을 넣고도 그걸 못지켜 1:1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면서 2승 2무 2패 조3위로 대회를 마치게 된다.
2011년 3위 자격으로 대회 참가해 또다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가시마 앤틀러스, 시드니 FC와 속하게 되었다. 1차전 홈에서 가시마 상대로 분투했지만 0:0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2차전 수원 원정경기에서 하태균에게 헤트트릭을 내주고 오장은에 추가골 까지 얻어맞아 4:0대패를 당하게 된다. 3차전 시드니와 원정경기는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4차전 시드니와 홈경기에서도 2:3으로 역전패 했으며 5차전 가시마 원정경기에서도 0:2로 패배하게 된다. 6차전 수원과 홈경기에서도 하태균에게 2골 신세계에게 1골을 내줘 0:3으로 패배해 2무4패 조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9 기타
- 1993년 상하이 지역 회사 선화 그룹에 의해 창단되었다.
- 1994년 중국 프로리그 설립. 첫 해부터 참가
- 2002년 상하이 선화 SVA 웬광 축구 클럽으로 개명.
- 2005년 오이타 트리니타와 업무 제휴.
- 2006년 상하이 유나이티드(리앤청) FC의 구단주에게 인수되어 선화 선수 15명과 리앤청 선수 15명으로 구성되는 클럽이 되었다.
- 2007년 상하이 리앤청과 완전 통합
- 2007년 상하이 선화 리앤쉥 축구 클럽으로 개명
- 2008년 2008년 중국 슈퍼리그 2위
- 2001년 이후 SVA 그룹과 SMEG, 후앙푸 투자회사에 지분이 넘겨져, 선화 그룹과의 계약 관계는 종료되었으나, 클럽의 이름에는 '선화'를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2007년 상하이 유나이티드를 합병하였고, 동시에 홈구장도 옮겼다.
- 2015년 뤼디그룹이 상하이 선화를 인수해서 상하이 뤼디로 이름을 바꾸고 로고도 뤼디그룹 로고를 집어넣으면서 상당부분 변경시켰지만, 상하이 선화 서포터들이 선화란 이름에 가진 애착이 무시무시해서 매일마다 반대시위가 열렸다. 덕분에 못견딘 뤼디그룹이 기존 선화란 이름을 그대로 존치시키고 로고도 새로 공모해서 현재 새로 쓰는 로고가 만들어진것.
10 주요 선수
- ↑ 이미 아챔 조별예선 1라운드 상하이 상강의 멜버른 원정부터 상하이 선화 서포터들이 멜버른까지 비행기타고 쫒아가서 홈팀 멜버른 빅토리 서포터에 합류해 걸개를 걸어놓는걸로 어그로를 끌고있었다(.....)
모 중국 언론에서는 이들에게 법적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나불대다 다른 축구팬들에게도 까였다.후에 어느 상하이 상강 서포터의 증언으로는 상하이 선화 서포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저짓거리를 하고다녔단다(....)거참 대단한 집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