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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 FC 시절
상하이 선화 입단
필드 위의 캥거루
멜버른 시티 FC No. 17 | ||
티모시 필리가 케이힐 (Timothy Filiga Cahill) | ||
생년월일 | 1979년 12월 6일 | |
국적 | 호주 | |
출생지 | 시드니 | |
신체 조건 | 180cm, 77kg | |
포지션 | 중앙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 |
등 번호 | 항저우 뤼청 - 17번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 4번 | |
유소년 클럽 | 시드니 올림픽 FC (1995-1997) 시드니 유나이티드 (1997) 밀월 FC (1997-1998) | |
소속 클럽 | 밀월 FC (1998-2004) 에버튼 FC (2004-2012) 뉴욕 레드불스 (2012-2014) 상하이 선화 (2015-2016) 항저우 뤼청 (2016) 멜버른 시티 FC (2016~) | |
국가 대표 | 89경기 47골 |
1 소개
현재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중 한명이자 호주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티머시 필리가 "팀" 케이힐[1] (영어: Timothy Filiga "Tim" Cahill, 1979년 12월 6일 ~ )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축구 선수이다.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한국의 박지성과 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어[2]축구를 안보는 사람들도 팀 케이힐은 알 정도이다. 사모아인 어머니와 아일랜드계 잉글랜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서사모아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하였다.
2015년 1월 26일, 아시안컵 4강 UAE전을 앞둔 묘한 시점에서 UAE의 알 와다 이적설이 나왔다. 미국 생활을 마치고 A리그로의 리턴을 기대했던 호주 팬들은 무척 아쉬워하는 중. 스타 플레이어가 은퇴를 앞두고 한 몫 잡으러 중동에 가는 것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2015년 2월 2일 상하이 선화로 이적하였다.
2015시즌이 끝난 뒤 상하이와 연장 계약을 체결했지만 새로 부임한 그레고리오 만자노 감독이 전력외 통보를 하며 결국 2016년 2월 16일자로 팀과 계약을 해지하였다. 위약금은 두둑히 챙길듯하다.
그런데 뜻밖에도 2월 17일날 케이힐의 에이전트가 한국에 체류중이라 하며 K리그행도 적극적으로 검토중이라고 한다. 중국 슈퍼리그 항저우 그린타운 에서도 관심 보이고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항저우 부회장은 케이힐 영입에 부인한 상태 48시간 안에는 거취가 결정될 거라고 한다.
나이가 많긴해도 지난 중국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줌으로 아시아리그 에서 검증받은거나 마찬가지기에 많은 팬들이 그의 K리그 행을 바라고 있는 중이다. 2월 19일 오후에 나온 기사로는 중국, 일본, 한국 세곳에서 영입제안을 받았고, 호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현재 K리그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제주 유나이티드, 성남 FC(!!!), 서울 이랜드(!!!!)가 관심을 가지고있고 이중 약 3구단이 정식 오퍼를 보냈다는 루머가 있다.
2016년 2월 21일 강하게 링크되었던 항저우 그린타운(항저우 뤼청)과 6월까지의 단기계약을 맺었다. 항저우 감독으로 홍명보가 부임한 상태라 이래저래 국내 언론에 많이 노출될 듯 싶다.
그러나 같은 해 떠난 다음 고국으로 돌아와 멜버른 시티와 3년 계약으로 이적했다.
2 플레이 스타일
케이힐은 주로 공격성이 강한 미드필더이면서, 긴급 시에는 공격수로도 활약할 수 있는 선수이다. 요새는 미드필더보다는 주로 세컨탑이나 최전방 공격수로 뛰고 있다. 다소 투박하고 화려한 기술이나 창의적인 면은 부족하지만, 세트피스 시 위협적인 제공력을 과시하며 수준급 골 결정력을 자랑한다. 사실 케이힐의 키는 178cm으로 그리 큰 선수라고 할수 없지만 경악할만한 수준의 서전트 점프 능력, 강인한 피지컬과 뛰어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 실로 대단한 수준의 제공권을 가지고 있다. 슛의 파워와 테크닉도 일품으로 어느 위치나 앵글에서도 골을 넣을수 있는 능력이 있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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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오세아니아 올해의 축구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시아 축구 연맹 가입 이후 유럽에서 성공한 아시아축구연맹 지역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FIFA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다. 이 때 넣었던 2골이 그 유명한 일본을 침몰시킨 대역전 경기이다! 히딩크 감독이 바로 '정의가 승리했다'라고 포효했던 그 경기.[3]
현재까지 FIFA 월드컵에서 총 5골을 넣어 오스트레일리아 선수 중 FIFA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에 올랐다. 호주가 2007년 아시아축구연맹에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출전한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AFC 아시안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다.
2010년 FIFA 남아공 월드컵에선 세르비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날카로운 헤더를 성공시키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독일에 0-4로 지고 가나와의 경기에서 어처구니없는 1-1 무승부 때문에 골득실에서 가나에게 밀리며 조 3위로 탈락했다. 독일을 꺾은 세르비아, 그 세르비아를 꺾은 호주, 그 호주를 꺾은 독일? 뭐야 이거
케이힐은 골을 넣으면 언제나 코너로 달려가 섀도우 복싱을 하는 세레머니로도 유명하다.
3.1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
B조 조별예선에서 칠레와 네덜란드를 상대로 각각 1골을 넣었으나, 팀은 3:1(vs 칠레)과 3:2(vs 네덜란드)로 모두 패배.
특히 네덜란드전에서는 선제골 허용 이후 1분만에 동점골을 터뜨렸다. 공격 진영 오른쪽에 페널티 에어리어 부근으로 맥고완이 롱패스한 것을 팀 케이힐이 그대로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한 것. 강력한 케이힐의 발리슛은 그대로 크로스바를 맞고 골문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3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선수로는 월드컵 개인 통산 5골을 기록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4]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경고 누적으로 인해 최종전인 사이좋게 탈락 확정인스페인과의 경기에 뛸 수 없다는 것이다. 케이힐 없는 호주는 팥없는 찐빵과 같으므로 매우 아쉬운 상황. 전망에 비해 꽤 선전했지만 아쉽게도 승리가 없었던 호주는 스페인을 상대로 유종의 미를 거두려했지만 케이힐의 결장으로 매튜 레키나 브레시아노, 타가트 등 후배들에게 맡길 수 밖에 없게되었다.
한편 본인의 반응은 '후회없다.'는 반응. 네덜란드 전 후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일이 아닌 오늘을 위해 뛰었다. 내가 한 경기를 더 뛰고자 느슨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다면 여기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고, 결국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을 다섯 번째 골을 만들었다. 경고를 받은 것에도 후회는 없다."라는 폭풍간지의 대사를 날리며 장렬히 월드컵 무대에서 퇴장했다.
여담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케이힐은 조별리그 첫 게임이였던 독일전에서 레드카드를 받아서 두번째 게임이였던 가나전에서 뛰지 못했다. 2006 월드컵을 합쳐서 월드컵 통산 총 8게임을 뛰었는데 무려 5골이나 넣었다. 흠좀무.
3.2 2015년 AFC 아시안컵에서의 활약
조별리그 첫 경기 쿠웨이트전에서 뜻밖의 선제골 허용으로 끌려가던 호주를 구원하는 동점골을 작렬하고 전매특허인 시원한 섀도 복싱 세리머니를 보여주었다. 이후 조별리그에서 추가득점은 없었으나 특유의 존재감으로 수비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여 조별리그에서 호주가 무려 8골을 득점하고 각각의 골 자체도 모두 다른 선수로부터 나오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5년 AFC 아시안컵/조별리그 A조, B조 참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한국전에서는 이미 서로 2승으로 8강 진출을 확정한 상태였으므로 체력안배를 위해 1:0으로 뒤지던 후반 71분에 교체 출장했다. 여전히 문전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부족한 시간탓인지 동점골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실패. 그래도 틈틈이 후배들을 다독이며, 늪에 빠진 침체된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평범한 심판 판정에도 강하게 항의하는 등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경기 종료 직전 볼 다툼 중 김진현을 팔로 쳐서 온돌축구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8강 중국전에서는 선발출장으로 두 골을 몰아쳐 팀Tim을 4강으로 이끌었다. 경기 내내 호주가 중국을 몰아붙였지만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아 초조하던 후반,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올라오던 짧고 높은 크로스 상황에서 골대를 등지다가 벼락같은 바이시클 킥을 작렬하여, 그 때까지 과도하게 수비에 치중하던 중국에 치명적인 한 방을 날렸다. 골을 기록하기 직전 페널티 에어리어 내 위치 선정 과정에서 그의 뒤에 있던 중국 수비가 갑자기 드러누웠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슛. 수비가 그냥 서있었으면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자업자득 경기가 살짝 초조해지던 상황에 나온 천금같은 골이라 동료들의 환호가 엄청나 깃발복싱 세리머니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후 수비 조직력이 와르르 무너지며 사실상 전의를 상실한 중국 수비진을 유린하다가 헤딩골로 쐐기를 박았다. 헤딩슛을 시도하기에는 골문에서 살짝 거리가 있었지만 용수철처럼 솟아올라 빨랫줄처럼 구석에 정확히 꽂히는 명품슛을 만들어냈고 중국 골키퍼는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했다. 이후 체력안배를 위해 80분에 교체 아웃되었다. 이 때 브리즈번 렉탱귤러 경기장을 찾은 4만5천명의 관중 대다수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두 골 모두 아시안컵 골 베스트에 꼽힐 만한 명장면들이었다. 한국과의 결승전에서는 득점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무난한 활약이었고 결국 한국을 2-1로 꺾고 2015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한다.
대회 이후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함께한 단짝 마크 브레시아노가 국대 은퇴를 선언하고 떠났지만 케이힐은 여전히 대표팀에서 활약 중이다. 이분 이러다 2018 러시아 월드컵 가는거 아니야?ㄷㄷㄷ
4 기타
에버턴 FC 소속이었던 2010년 볼턴 원더러스와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 이청용에게 거친 태클을 가해 부상을 입혔는데, 경기 후 엉뚱하게도 케이힐과 비슷한 예명을 가진 케이윌의 미니홈피가 수많은 방문자 수로 폭주했다. 이에 투데이가 늘어 기분 좋아진 나름 억울했던 케이윌은 케이힐 쥬길럼, 저는 '윌' 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재치있게 대처했다.
- ↑ "카힐"이라는 표기를 사용하는 곳들도 있다. 영어식 발음 자체가 두 가지. 본인은 "케이힐"이라는 발음을 선호하는 걸로 보인다.
- ↑ 케이힐이 에버튼에서 활약하고 있었던 시기에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고 있었는데 둘은 같은 물리치료사에게 치료를 받았던 사이라고 한다.
- ↑ 일명 8분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기인데 그 당시 일본에서의 시청률보다 한국에서의 시청률이 높았다는데 확인바람
- ↑ 이들 중 두 골은 호주가 오세아니아 소속이였던 시절인 2006년 월드컵에서 넣은 골이여서 아시아 선수의 월드컵 최다수 골 기록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해다. 호주가 AFC소속으로 나온 월드컵들 중 케이힐이 넣은 골 수는 총 3골로 한국의 박지성, 안정환, 일본의 혼다 게이스케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자베르와 동률이다. 게다가 엄연히 말하자면 케이힐은 현재 AFC 소속 선수이긴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아시아 선수라 할수는 없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