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순제

유송의 역대 황제
7대 후폐제 유욱8대 순황제 유준남제 초대 제고제 소도성
묘호없음
시호순황제(順皇帝)
연호승명(昇明, 477년 7월 ~ 479년 4월)
유(劉)
준(準)
중모(仲謀)[1]
생몰기간469년 8월 8일 ~ 479년 6월 23일
재위기간477년 8월 5일 ~ 479년 5월 27일

유준(劉準, 463년~477년, 재위 477~479)

중국 육조시대 유송의 마지막 황제. 마지막 황제였고 혼란기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황제다.

재위 기간 내내 승명(昇明)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묘호는 없고 시호는 순황제(順皇帝)[2].

태시 5년(469년) 7월에 태어났으며 명제 유욱의 삼남으로 의모는 진씨[3]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계양왕 유휴범의 아들이었다. 소도성은 소(小)유욱의 동생이자 대(大)유욱의 셋째 아들이었던 안성왕, 양주자사, 표기장군이자 효무제 유준과 동명이인인 유준을 옹립했다. 유준은 용모가 단아하고 눈썹이 마치 그린 것처럼 멋이 있었는데 문제는 표기대장군, 사공, 녹상서사였던 소도성의 허수아비이자 꼭두각시였고 소도성은 제공에 올라 구석을 하사받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제왕이 되었다. 중서감 원찬과 상서령 유병은 소도성이 권력을 장악하자 거사를 하려다가 패전하여 자살했다. 이렇게 소도성에게 맞서는 세력은 없어졌으며 승명 3년(479년) 4월에 강압에 의해 선양한다는 조서를 내렸다.

결국 선양하던 날 불상 아래에 숨어 있다가 결국 수색당하자 결국 나왔다. 유준은 "나를 죽일 건가?"라고 물었는데 군대를 인솔하던 직각장군 왕경칙은 "죽이진 않을 겁니다. 사실 폐하의 조상(유유)도 사마씨(동진)에게 이러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그러니까 선양 된 뒤에 죽겠지요란 의미다! 이에 순제는 "내세에는 제왕의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하니 궁중 사람들이 슬프게 울었다.[4] 결국 선양한 다음 여음왕으로 강등되어 단양궁에 유폐되었다가 1달도 안되어 11세에 살해당했다. 비록 7월에 황제의 예로 수녕릉에 안장되었으나 나라는 쫄랑 망하고 제(齊)나라로 이어진다.

  1. 삼국시대 의 초대 황제 손권과 자가 같다. 하지만 수명은 극과 극이었다
  2. 반항하거나 유혈사태없이 평화적으로 순순히 선양해줬다는 의미이지만 결과는 안습.
  3. 이름은 진법용
  4. 자치통감에 주석을 단 원나라 호삼성은 이때부터 선양한 임금이 천수를 누린 사례는 없었다라고 기록했다. 사실 정확히는 유준의 증조할아버지 유유가 동진 공제를 죽인 것부터 봐야 된다. 물론 이 문장은 길게 봐서는 틀린 문장이다. 송나라의 예가 있었으니까. 후주의 공제 시종훈은 단명했으나, 남송이 망하는 날까지 그의 후손은 후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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