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네이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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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의 역대 국왕
제2 쇼씨 왕조
13대 국왕 쇼에이 왕14대 국왕 쇼네이 왕15대 국왕 쇼호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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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4년 ~ 1620년

1 소개

쇼네이 왕(尙寧王, 재위 : 1589년~1620년) 류큐 왕국 제2 쇼씨 왕조 제7대 국왕이다. 신호(神號)[2]는 테다가스에아지오소이(日賀末按司添 てだがすゑあじおそい)인데 뜻은 해의 마지막 임금님이다. 쇼네이 왕은 3대 국왕인 상진尙眞의 현손자, 폐세자 상유형尙維衡의 증손자, 상홍업尙弘業의 손자, 상의尙懿의 아들이며 6대 국왕인 쇼에이 왕의 재종질이자 사위인데 이는 쇼에이 왕에게 아들이 없이 딸만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쇼에이 왕에게는 아우 상구尙久가 있고 상구의 아들이자 친조카인 상풍尙豐이 있었는데도 굳이 재종질을 사위로 들이는 근친혼을 해서 물려주었다. 정 아우와 친조카가 싫어서 재종질에게 물려주었다고 해도 양자(가족)로 들여서 물려주면 되건만 굳이 근친혼을 한 것은 아직 류큐에 종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3]

쇼네이 왕이 즉위한 지 얼마 안된 1592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류큐 왕국에게도 출병을 요구했으나 쇼네이 왕은 이를 거절했다. 사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류큐 왕국은 명나라의 제후국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세키가하라 전투가 모두 끝나고 일본도쿠가와 이에야스 천하가 된 이후인 1609년, 명나라가 망해가고 있자 이 틈을 노린 사쓰마 번의 시마즈 가문이 류큐 왕국을 침공하였고, 이에 쇼네이는 시마즈 씨에게 항복하였다. 이후 류큐 왕국은 사실상 비독립국인 채 시마즈 번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일본과 명 두 나라에게 양속(兩屬)하게 되었다. 추후 명나라가 멸망하자 형식상으로는 청나라에게도 조공을 바쳤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예 일본에게만 소속되었다.

쇼네이 왕은 시마즈 요시히로에 의해 에도로 압송되어 이 당시의 쇼군인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알현하였고, 나중에 류큐 왕국으로 돌아갔다.

1613년에는 종전조약을 맺었지만 그 대신 아마미 열도를 할양하고 엄청난 양의 공물을 감당하게 했다. 류큐 왕국은 이것을 인두세로 충당케 했는데 이로 인해서 각 마을에서는 세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을 죽이거나 먼 곳까지 나가서 하루종일 일만 하게 하였다. 이 가혹한 조치는 메이지 정부 때 일본 영토로 공식 편입된 지 30년이 지난 1900년에서야 폐지되었다.

2 평가

사실상 류큐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다. 쇼네이 왕 이후에도 왕조는 이어지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반식민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지 유신까지 왕조가 지속된 이유는 형식상으로 류큐 왕국을 살려놓으면 조공무역을 2배로 할 수 있고, 일본의 상품을 중국등지에 팔아먹기 딱 좋기 때문이다.

류큐 왕국의 역사상으로는 굉장히 치욕적인 왕으로 여겨진다. 이유는 일본, 그것도 일개 번에 힘없이 항복했기 때문이다.

3 매체에서의 등장

마에다 케이지가 주연으로 나오는 꽃의 케이지란 만화에서 주인공의 연적으로 후반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여기서는 나름대로 현명한 국왕으로 나오지만...

1993년 NHK에서 23부작 대하드라마[4][5]로 방영한 '류큐의 바람 (琉球の風 DRAGON SPIRIT)'이 이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진순신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며 일본인으로 살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형과 류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애쓰는 동생의 갈등과 향토애를 그린 작품이다.

징비록에서 류큐의 사신으로 등장한다.
  1. 류큐 왕국 국왕의 어진을 우구이 또는 오고에(御後絵)라고 부르는데, 불교 탱화의 영향을 받아 임금을 부처님처럼 표현해 위엄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무속 회화도 불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신과 함께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2. 류큐어로 지은 존호(尊號)
  3. 류큐에도 종법이 받아들여져 중하급 사족은 동족혼을 꺼렸지만 상급 사족과 왕족은 기득권을 배타적으로 지키기 위해 혼인의 문호가 좁다 보니 동족혼이 성행하였다. 히가시온나간준(東恩納寬惇)이 소개한 바로는 상온尙溫왕에게 책봉부사冊封副使 이정원李鼎元이 왕과 성이 같은 비妃가 있어서 왜 동족끼리 결혼하냐고 묻자(중국에서 촌수가 멀어도 겨레붙이와의 결혼은 가까운 친척끼리의 결혼처럼 매우 상스럽게 여긴다.) 그 왕비가 사실 제1 상씨왕조의 후손이라고 둘러대고 아예 족보를 주작하였다. 정작 쓰지 않은 게 함정. 다나마사유키(多名眞之), 「근세 류큐 사족층의 혼인」, pp. 37~39, 호남문화연구 50 : 25~43(2011. 12),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4. 기존 NHK의 대하드라마가 1년동안 방영하는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경우. 1993년은 유일하게 NHK가 반년씩 대하드라마를 방영한 해이다. 상반기에는 '류큐의 바람', 하반기는 오슈 후지와라씨의 몰락을 그린 '불타오르다(炎立つ)'.
  5. 특이하게도 오프닝곡이 관현악이 아니라 일반 가요풍의 가사가 있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