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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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슈퍼소닉스 시절. 이 사진이 그 유명한 95-96 파이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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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살이 찌기 시작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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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 증가와 마약 복용으로 인해 예전의 운동능력을 모두 잃은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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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NBA 시즌이었던 올랜도 매직 시절.

이름숀 켐프 (Shawn Kemp)
생년월일1969년 11월 26일
국적미국
출신지인디애나 주 엘크하트
출신학교트리니티 밸리 커뮤니티 칼리지
신체 조건208cm[1], 104kg[2]
포지션파워포워드/센터
프로입단1989년 드래프트 1라운드 17순위
소속팀시애틀 슈퍼소닉스(1989~1997)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1997~2000)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2000~2002)
올랜도 매직(2002~2003)

1 개요

엄청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90년대 NBA 최고의 파워포워드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했던 선수. 부족한 자기관리로 인해 전성기가 짧았던 선수이며 NBA에서 14시즌을 뛰었으나 실질적인 전성기는 그 절반이 채 안된다.

2 NBA 이전

고등학교 시절 이미 전국구 선수로 주목받았으며, 켄터키 대학교로 진학한다. 그러나 불미스럽게도 절도 사건을 일으키고(...) 트리니티 밸리 커뮤니티 칼리지로 전학간 후 한 경기도 출전하지 않은 채로 한 학기만에 중퇴, 19세의 나이로 NBA 드래프트를 신청한다.

1989년 NBA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7순위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지명받으며 NBA 커리어를 시작했다. 당시 NBA 최연소 선수였다.

3 시애틀 슈퍼소닉스 시절

루키 시즌 백업으로 나오며 NBA 적응 기간을 가진 켐프는 2년차인 1990-91 시즌부터 주전 파워포워드로 발탁, 포인트가드 게리 페이튼과 함께 팀을 이끌어 나가며 활약했다. 특히 무지막지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탄력 넘치는 덩크와 인사이드 장악력은 그를 리그 최고의 파워포워드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로 인해 94년부터 3년 연속 NBA 올 세컨드 팀[3]으로 선발되었으며, 슈퍼소닉스 역시 서부의 강호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조지 칼 감독 이하 게리 페이튼, 데틀렘프 슈렘프, 허시 호킨스, 숀 켐프, 샘 퍼킨스, 네이트 맥밀란 등으로 이루어진 매우 탄탄한 라인업을 자랑하던 팀.

93-94 시즌 소닉스는 무려 63승 19패로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지만, 1라운드에서 8번 시드 덴버 너게츠에게 업셋당하는 굴욕을 당한다. NBA 최초의 8번 시드 업셋이었다.(...)
95-96 시즌은 켐프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해였다. 평균 19.6득점 11.4리바운드 2.2어시스트, FG 56.1%로 시즌 스탯도 최상이었고 팀도 플레이오프에서 새크라멘토 킹스, 휴스턴 로케츠, 유타 재즈를 차례로 꺾고 NBA 파이널에 진출한다. 그러나 상대는 하필이면 그 시즌 72승을 찍은 시카고 불스.(…) 켐프는 파이널 6경기에서 평균 23.3득점 / 10리바운드 / 2블록으로 미친듯이 활약했으나 2승 4패로 시카고 불스를 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4]

소닉스의 프랜차이즈로 남을 것 같았던 켐프였지만 96-97 시즌이 끝나고 소닉스를 떠나게 되었다. 계약 문제로 인한 팀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는데, 소닉스가 빅맨 보강을 위해 워싱턴 블리츠에서 게오르그 뮤레산의 백업으로 뛰던 수비형 센터 짐 맥일베인에게 거액의 돈을 안겨주는 계약을 하면서 갈등이 수면 위에 올랐다. 숀 켐프는 자신의 팀 기여도에 비해 낮은 연봉에 불만을 토했고, 결국 팀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켐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된 후 클리블랜드와 7년간 1억7백만달러 계약을 맺으며 고액 연봉자의 반열에 올랐다.

켐프 이적 후 소닉스는 빈 베이커를 영입하며 리그 최고수준의 강팀으로서의 위용을 유지했으나, 켐프 이상으로 몸관리가 안되던 베이커가 2000시즌을 기점으로 완전히 망가지면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한다.[5], 7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팀은 이후 11년간 단 4번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그치며 2008년 연고지를 옮겨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재창단된다.

4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시절, 몰락의 시작

97-98시즌엔 고액연봉자다운 활약을 보이며 새로운 팀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97-98시즌 종료 후 직장폐쇄가 일어났고, 직장폐쇄 종료 후 단축시즌에서 그는 전년도에 비해 살이 엄청나게 찐 모습으로 나타났다. 전성기 시절 균형잡힌 몸매와는 거리가 좀 있어진 것. 하지만 클래스는 어딜 가지 않았는지 클리블랜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99-00시즌까지 18-10을 꾸준히 찍어주는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시애틀 시절의 다이나믹한 모습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체중관리가 잘 되지 않는 모습에 팀은 켐프를 좋게 보지 않았고, 켐프는 명문구단으로 가기 위해 아낌없이 현질을 시전하던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5 진짜 몰락

체중관리에 실패해 이미 클리블랜드 시절부터 127kg까지 쪄버렸던 숀 켐프는 포틀랜드에 이적하고 나서는 거의 씨름선수급의 몸매로 변화했다.[6] 게다가 알콜중독에 코카인까지 손을 대며 자다가 연습에 지각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결국 2000-2001시즌 주로 백업 멤버로 뛰며 평균 6.5득점 / 3.8리바운드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전성기 시절에도 기본기보다는 운동능력으로 먹고 살던 선수였기에, 운동능력을 상실하자 말 그대로 몸빵밖에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포틀랜드에서 두 시즌을 보낸 뒤, 켐프는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적 후 한 시즌간 백업 파워포워드 겸 센터로 뛰었으며, 2002-2003시즌을 끝으로 NBA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올랜도 매직에서 방출된 후, 다이어트를 하며 댈러스 매버릭스, 피닉스 선즈와 단기 계약을 맺으며 NBA 재입성을 노렸으나, 실패로 끝났으며 2005년에는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에는 대구 오리온스 입단 루머가 퍼져 화제가 되었다. 2008년 이탈리아 프레미아타 몬테그라나로와 1년 계약을 맺기도 했으나 프리시즌 중에 고향에 밀어닥친 허리케인 때문에 귀국, 계약이 파기되었다.

6 플레이스타일

무지막지한 운동능력으로 덩크를 엄청나게 꽂아댔고, 인사이드 장악력도 뛰어났다. 특히 주특기인 정글 덩크는 정말 호쾌하게 스파이크하는 맛이 일품. 빵빵한 운동능력을 가진 파워포워드 계보는 이후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블레이크 그리핀으로 이어진다.

덩커 이미지와는 좀 다르게 블록슛 능력도 나름 수준급. 중거리 점퍼 능력도 있어서 페이튼의 패스를 잘 받아먹었다. 자유투도 70% 중반으로 평균 수준은 됐다. 다만 거친 플레이때문에 파울관리가 매우 미숙해서 자주 파울 트러블에 빠졌고, 출장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두번의 이적과 자기관리의 실패로 인해 운동능력을 상실, NBA 말년에는 주로 상대 빅맨의 몸빵용으로 뛰었다.

6.1 그 외

현역시절 별명은 레인 맨(Reign Man). 별명의 어원은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아나운서 케빈 칼라브로가 "Reignman"이란 이름이 붙은 포스터를 보고 켐프와 어울리겠다 싶어 붙여준 이름이다. [7] 실제로 시애틀은 비가 많이 오는 곳으로 유명했고 그가 전성기를 달리던 시대에는 저 별명의 영문철자에서 보여지듯이, 경기를 지배하는 남자로 통했다. 물론 망가지고 난 후에는 그런거 없다.

아들로 숀 켐프 주니어가 있는데 대를 이어 농구를 하고 있으며 아버지와 거의 같은 206cm의 포워드이다. 2012년 워싱턴 대학교에 입학해 1학년을 마쳤다. 아들은 아버지만한 재능은 없는 건지 2015년 7월에 열릴 KBL 트라이아웃에 응시했다고 한다.

시애틀에서 스포츠 바를 운영했으나 현재 폐업 상태.
  1. 실제 맨발 키는 205.1cm
  2. 전성기 시절 한정. 클리블랜드 이적 후에는 127kg까지 불었으며 포틀랜드 이적 후에는 더 쪘다.(…)
  3. 그 앞을 가로막은 NBA 퍼스트팀 포워드는 바로 칼 말론스카티 피펜이다.
  4. 하지만, 소닉스는 72승의 시카고 불스 상대로 정규시즌 1승을 포함, 가장 많은 3승을 따낸 팀이 되었다.
  5. 기존 버전에는 켐프의 이적 이후 계속 팀이 몰락했다고 되어 있었으나, 오히려 켐프가 이적한 첫해에는 61승을 거두는 등 오히려 그의 마지막 시즌(57승)에 비해 성적이 올랐다. 위에 서술되어 있듯이 소닉스 몰락의 계기는 사실 베이커였다. 베이커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다재다능한 포워드였으나 연습 도중에 술냄새가 날 정도로 심각한 알콜 중독자였다. 그는 직장폐쇄로 단축시즌이던 99시즌을 기점으로 평균 득점이 5점 넘게 폭락했으며 (이떄 부상으로 50경기 중 34경기에만 나왔다), 그 다음 시즌에는 전성기 211cm, 105kg의 슬림한 몸이 135kg 전후까지 불어버렸다. 결국 몸무게는 112kg 전후까지 줄이는데 성공했으나 사라진 기량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널뛰기 경기력을 보이다 02시즌 이후 팀을 떠나게 된다. 이후 소닉스는 2003시즌 중반에 팀의 오랜 에이스이자 상징이었던 게리 페이튼까지 떠나보내면서 기존의 조지 칼 체제의 마지막 흔적까지 없애게 된다.
  6. 거의 150kg까지 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7. 출처: http://old.seattletimes.com/html/stevekelley/2016439949_kelley09.html?cmpid=2727